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448)화 (448/449)

외전 구염황 2

다음날, 태자비 간택 명단이 나왔다. 간택된 여인들은 올해 5월에 입궁해야 했고, 명단에는 놀랍게도 두 사람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권서함은 매우 만족했다.

하지만 모든 이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류소양은 매우 불만족스러웠다. 며칠 동안 계속 딸을 보아도 안색이 좋아지지 않았다.

태자는 지난 반년 동안 후부에 오지 않았으므로 이유를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또한 딸이 이번 간택 명단에 들지 못했으니 이제 신분 상승의 기회는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류소양은 정말 납득할 수 없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딸에게 어떤 책망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편함이 남아있었지만 류정헌을 대할 때는 겉으로 평소처럼 대했다. 태자의 속마음이 어떤지 누가 알겠는가.

눈치 빠른 류정헌은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변화를 모두 눈여겨보고 있었다. 쫓겨날 줄 알았으나 여전히 이곳 저택에 살고 있다는 게 오히려 뜻밖이었다. 간택에 참가할 자격이 없는 딸을 쫓아내지 않은 아버지에게 류정헌은 다소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류정헌은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들인 이유가 이번 수녀 간택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왔었다. 혹여 군왕 곁에서 함께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태자를 위해 준비를 해야 할 줄 알았다. 희망하던 일에 성과를 얻지 못하면 장자로 돌아가야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마땅히 아버지의 관대함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류정헌은 기뻐하지 않았다. 다만 사는 게 따분하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 눈에 이미 그녀는 가치 없는 사람으로 비춰졌고, 아버지의 계획은 두 번이나 좌절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를 불운하게 만든 것만 같았다.

아가씨가 입궁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류정헌의 시녀는 사람이 없을 때 아가씨를 위해 안타까워했다.

“폐하께서는 굉장한 분이시고 태자 전하 역시 보기 드문 인재라고 들었어요. 비록 폐하께서 후궁을 들이지는 않으시지만 태자께는 아직 태자비가 없으니, 만일 아가씨께서 입궁하셨더라면…….”

어린 시녀는 낙담한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미 입궁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으니까.

“태자 전하 같은 분을 놓치다니 참 아쉬워요. 우리는 영영 그 분을 만나 뵐 수 없겠네요.”

어린 시녀는 자신이 이미 수없이 태자를 만났고, 그를 향해 고함도 질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태자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했다.

“예전에 태자 전하는 매우 뚱뚱하고 놀기 좋아하는 분이셨대요.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매우 단호해서 남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시는 분이시라고 들었어요. 작년에 시끌벅적했던 ‘평반사변平反事變’도 태자께서 혼자 힘으로 평정하신 거라 하더라고요! 태자 전하는 정말 우리 주국의 자랑이세요.”

시녀의 입에서 ‘뚱뚱한’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문득 류정헌의 머릿속에는 불확실하고 비현실적인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젓다가 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그녀가 아는 반구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뚱뚱하다는 특징 하나로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다니?’

류정헌은 자신이 갈수록 비현실적인 생각을 한다는 사실에 자조를 금치 못했다. 어린 계집종은 아가씨가 웃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아가씨?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떠오르셨어요?”

“눈치 빠르기는.”

입궁은 본래 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화를 내지 않아 류정헌은 안심이 됐다. 그리고 쓸모없게 되면 자신을 장자로 돌려보내 주기를 바랐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 * *

명정은 결국 상 공주를 따라 출궁하지 않았다. 그는 자애롭게 공주에게 말했다. 그건 그와 장서열의 일이며, 좋든 나쁘든 장서열과 함께 할 거라고. 자신이 떠나서 그녀가 찾지 못하면 어떡하냐고.

구염상은 눈시울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명정은 그녀에게 좋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테니 애석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명정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는 스스로의 운명을 망친 구염락이 좋은 결말을 맞이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은 많았다. 이미 두 번의 생을 기다려 왔으니 더 못 기다릴 것도 없었다. 비록 누군가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 * *

구염상은 매우 바빴다. 봉익은 그녀가 집에서 심심해할 뿐더러 또 지난번 그녀가 몇 번 밖을 돌아다니다 자신을 불쾌하게 하는 사람을 다수 만난 것을 보고 현천기에게 부탁해 가면을 주문했다. 구염상에게 가면을 선물한 봉익은 그녀에게 아역衙役(관아에서 부리는 하인)이 되어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며 사건을 조사하게 했다.

구염상은 지금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남자가 될 수 있고, 관직과 일이 있고, 의지할 곳이 있고, 남편이 있었다. 구염상의 세계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녀는 매일 봉익보다 일찍 일어났고, 관아에서 퇴근해 돌아오는 시간은 봉익보다 늦었다. 근무를 하거나 사건을 조사하는 것 외에도 그녀는 가끔씩 동료들과 함께 찻집에 가서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다른 집 며느리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도 했다.

봉익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는 속으로 애초에 왜 그런 꾀를 내었을까 후회했지만 한편으로 매일 즐거워하고 활력이 넘치는 부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또 모든 게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인이 해가 떨어진 뒤 술냄새를 폴폴 풍기며 돌아오는 상황은 정말이지 원치 않았었다.

불시에 대문 앞에 나온 봉익은 어슬렁어슬렁 돌아오고 있는 상 공주를 보았다. 한 손으로 부인을 낚아챈 그가 그녀를 문앞에 세우고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제야 돌아오는 거요?”

구염상은 기분이 상했다. 몸에서 나는 술냄새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오늘 그녀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왜냐하면…….

구염상은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봉익을 본 순간 알 수 없이 억울한 감정이 부풀어 오른 구염상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순간 당황한 봉익은 구염상을 꾸짖는 것도 잊고 얼른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는 일단 부인을 달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울지 마시오. 내가 말이 경솔했소. 당신을 꾸짖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 상아는 원하는 시간에 돌아와도 되지. 그러니 이제 뚝 그치시오. 난 정말 당신을 혼낼 생각이 아니었소.”

봉익은 단지 부인을 조금 놀라게 해 주려 했을 뿐이었다. 그래야 밤에 이득을 좀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봉익의 말에 구염상은 더 억울해졌다. 무엇이 억울한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너무 억울하고 억울해서 이상하게도 계속 울고 싶었다.

봉익은 이를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구염상은 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평소 냉담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또 어떤 때는 열정적인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을 때, 봉익은 공주를 울리다니 잠깐 정신이 나간 모양이라고 자책했다.

“울지 마시오. 내가 잘못했소…….”

구염상이 돌연 눈물이 그렁그렁한 머리를 들었다.

“뭘 잘못했는데요?”

봉익은 아연실색했다.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건데 정말로 뭘 잘못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남자는 모두 자기반성에 능했다. 특히 사랑스러운 아내가 서러워하는 모습 앞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당신을 귀찮게 하지 말았어야 했소.”

구염상의 눈에서 순간 눈물이 더 무섭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리 없이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봉익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누가 당신을 괴롭혔소? 아니면 어디가 안 좋은 것이오?”

그 말에 눈시울을 붉힌 구염상이 봉익의 품에 와락 안겨 목메어 울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상공, 저… 저 회임했어요……. 이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을까요?”

구염상은 자신이 응석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왠지 봉익을 본 순간 그냥 울고 싶어졌고, 왜 우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멈칫하던 봉익이 이내 몹시 놀라 기뻐했다.

“정말이오? 정말 잘됐소!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다니!”

하지만 이내 아내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을 알아차린 봉익은 즉시 구염상을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위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내가 있고, 유모가 있고, 또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지켜 주고 계시니 우리 아이는 틀림없이 무사히 태어날 거요. 그때가 되면 당신은 아이가 귀찮다고 매일 울겠지.”

구염상은 봉익의 품에 안겨 눈물을 삼켰다. 왠지 모르게 그녀는 또 어머니가 될 기회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

봉익은 구염상을 꼭 껴안았다. 그는 긴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지나치게 긴장한 그녀를 진정시켰다.

“걱정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소. 아이도 나처럼 당신을 사랑할 거요. 쉬지 않고 열심히 자라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어머니를 보러 세상에 나올 거요.”

봉익의 품에 안긴 구염상은 그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자신의 것인 저택과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곁에서 무릎을 꿇은 채 회임을 축하하고 싶지만 주인의 기분을 살피며 감히 입을 열지 못하는 마마嬤嬤들을 보았다.

구염상은 갑자기 희망으로 가득찼다. 그렇다. 이곳은 헌원씨 가문이 아니었고, 그녀가 아이를 갖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봉 부인은 구염상에게 매우 잘했다. 마작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취미가 없는 시어머니는 설이나 명절이면 선물로 여러 문양의 마작패를 받는 것으로 만족했고, 며느리의 혼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주관이 없어 보이는 봉익은 사실 말 한마디로 주변에 있는 모든 이를 복종시키는 사람이었다.

봉씨 가문에서 구염상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자녀를 낳고 키우는 데 어떠한 방해물도 없었다. 어머니와 봉씨 가문이 그녀의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는 봉익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걱정할 게 뭐가 있겠는가. 또 뭐가 그리 걱정이겠는가?

회임에 놀라 얼떨떨한 걸까, 혹은 두 생애에 걸친 설움이 복받친 걸까. 봉익의 품에 기댄 구염상은 그가 고생을 마다 않고 머리를 쥐어짜며 자신을 위로하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갑자기 이유 없이 웃고 싶어졌다.

바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열심히 부인을 끌어안고 위로하는 봉익은 정말 바보였다.

봉익은 구염상이 울다가 웃는 것을 보고 한시름을 놓았다. 그가 마음 아픈 듯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방으로 들어갑시다. 날이 춥소.”

구염상은 움직이지 않고 애교스럽게 입을 열었다.

“걸어왔더니 다리가 너무 아파요.”

촉촉한 큰 눈동자는 비할 데 없이 가련해 보였다. 봉익은 두말없이 구염상의 허리를 감싸 안아 올렸다.

“귀엽기는.”

구염상이 빙그레 웃었다.

곁에 있던 궁인들 역시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얼른 뒤를 따랐다. 공주께서 마침내 회임을 하셨다. 이건 아주 큰 경사이자 국가의 경사였으므로 하루 속히 폐하와 황후께 알려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