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442)화 (442/449)
  • 외전 구염상 2-65

    어머니가 위독했다. 그에게 어떤 과거와 유년기를 만들어 주었든 어머니는 어머니였고, 그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었다. 금용이 저택에 들어오기 전, 희미한 기억 속 어머니는 아들에게 글자 쓰는 법을 알려 주고 함께 장난을 치는,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 악몽처럼 변했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부었고, 아버지와 할머니와 늘 다툼이 끊이지 않아 집안은 편안할 날이 없었다.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했다. 어머니의 눈 속에 자식들은 없었고, 오로지 원한만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헌원사사는 어른이 되었다. 금용도 죽었다. 그는 이제 곧 편안한 날이 시작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년의 행복도 누리지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몸은 오래전부터 쇠약해져 있었다. 아버지 때문이든 가정 때문이든 어머니는 이미 기억 속 굳세고 주관이 뚜렷한 그 어머니가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늙은이로 변했다.

    헌원사사는 마차 안에서 실컷 슬퍼하고 비통해했다. 그러나 다시 마차에서 내릴 때 그는 다시 헌원부의 희망이자 무표정하게 가문을 지탱하는 주인으로 변해 있었다.

    “나리! 어서 가 보세요! 노부인께서 이미…….”

    헌원사사는 하인의 말을 듣지 않고 빠른 속도로 어머니가 있는 뜰로 돌진했다. 어머니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조용히 대청에 서서 지난 달 부인이 쓴 글자를 보고 있었다.

    헌원사사는 아버지가 보고 있는 글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기억 속 청아하고 온화하던 어머니처럼 웅장하고 힘 있는 마른 필체였다.

    헌원사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안방으로 돌진했다. 그를 본 의원은 급히 침을 놓아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주소유를 깨웠다.

    겉보기에 주소유는 상태가 매우 좋아 보였다. 비록 나이 든 몸은 여위었지만 눈에는 생기가 돌고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들이 들어온 것을 본 그녀가 부들부들 떨며 손을 내밀었다.

    “아… 아들…….”

    헌원사사는 얼른 슬픔을 거두고 안으로 달려 들어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저 여기 있어요.”

    헌원사사는 어머니의 손을 뺨에 얹고 조심스럽게 어리광을 부렸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는 사람 같았다.

    주소유의 눈빛은 초점을 잃고 풀려 있었지만 미소는 여전했다.

    “정말 잘됐구나……. 공… 공주 전하는 어디 계시니…? 넌 이제 막 혼례를 올렸으니 공주께 잘해 드려야 한다…….”

    자리에 있던 하인들의 눈가가 반짝이더니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인은 또 제정신이 아니었다. 부인은 늘 큰도련님이 공주와 혼례를 올렸다고 여겼다. 부마인 아들은 전도가 유망하고, 자신은 대사마 부인이 되었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정말이지 귀신에 홀린 사람 같았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주소유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기며 그녀를 상대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오늘 임종을 앞둔 부인이 다시 같은 말을 하자 사람들은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평생을 슬픔과 고통 속에 산 부인은 임종 직전에도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불쌍한가. 유년 시절부터 눈을 감는 지금까지, 헌원씨 가문에 시집온 부인은 어느 것 하나 뜻대로 이룬 일이 없었다.

    헌원사사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모친이 시집올 때 데리고 왔던 노복老仆과 유모를 제외한 나머지 하인들은 모두 방을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어머니의 심복이었다. 설령 어머니가 대역무도한 말을 한 대도 그들은 그 말을 소문내어 죽은 어머니를 다시 한 번 죽이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헌원사사는 괴로운 마음으로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으려 꼭 쥐었다.

    “어머니, 어머니… 조금만 더 버티세요. 저를 위해서라도 버티셔야 해요. 아직 복을 누려 보지 못하셨잖아요. 아직 제가 부인을 맞이하고 자식을 낳는 것도 보지 못하셨잖아요. 아직 제 효도도 받지 못하셨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가시려는 거예요. 어째서요…….”

    아들이 우는 것을 본 주소유가 쇠약한 입술을 들썩이며 꾸짖었다.

    “사내대장부가 뭘 하는 게냐……. 공… 공주께서 보시면 널 비웃겠구나……. 걱정 말거라. 어미가 앞으로… 앞으로 다시는 공주와 싸워 너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마…….”

    말을 하는 주소유의 수척한 눈가에서 회한이 담긴 가슴 아픈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희가 잘 지내기만 하면… 잘 지내기만 한다면… 어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마. 아무것도……. 공주께 말씀드리렴……. 어미가… 후회한다고……. 뱃속의 아이를 죽인 일을 후회하고 있다고……. 어미는… 어미는 정말 후회한단다…….”

    눈물이 다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헌원사사의 슬픔은 어머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터무니없는 말을 듣는 마음은 더욱더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마치 어떤 것이 그의 영혼을 마구 휘저으며 가슴을 찢는 것 같았다.

    헌원사사는 마치 줄곧 어머니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같은 착각을 느꼈다. 계속 기다렸지만 듣지 못했던 그 말에 마침내 슬픔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주소유가 갑자기 경직된 몸으로 몸부림을 치며 아들의 손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안 돼! 죽으면 안 돼! 내 아들… 어미가 잘못했다! 잘못했어! 공주를 따라 죽으면 안 돼! 어미가…….”

    주소유가 돌연 몸부림을 멈췄다. 그녀는 공포와 짙은 슬픔이 어린 얼굴로 뻣뻣하게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헌원사사가 울음을 터뜨렸다. 헌원상도 방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두 명의 노고고老姑姑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숨이 넘어갈 듯 슬프게 흐느꼈다. 주인이 세상을 떠났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녀는 여전히 절망 속에 있었다. 부군의 총애를 받지 못하고 원하던 평온함도 누리지 못한 채, 꿈에서조차 다시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주소유는 생활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떠났다.

    헌원사사는 어머니를 위해 슬퍼했다. 평생을 싸움 속에서 살았던 어머니. 이제 금용도, 어머니도 죽었다. 설마 이 모든 건 숙명이고 돌이킬 수 없는 걸까.

    성대한 장례도 주소유의 슬픈 일생을 숨길 수는 없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법이다. 주소유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지난 과거가 되어 다시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끼친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헌원씨 가문는 계속해 명성을 의심받고 명문가의 수치로 기억됐다.

    헌원사사는 어머니의 관을 어루만지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머니를 사랑하셨나요?”

    “난 일생 동안 네 어머니를 존중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녀는 집착이 강했어. 난 단지 딱 한 번 금 이랑을 찾았을 뿐이다. 그것도 실수였지. 그런데 네 어머니는 날 용서하지 않았다.

    내게 네 어머니를 사랑하냐고 물었느냐? 나야말로 그녀에게 날 사랑했냐고 묻고 싶구나. 우리 가문의 부귀영화를 보고 시집을 온 건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을 보고 시집을 온 건지 말이야.”

    헌원상은 주소유가 죽었다고 해서 그녀의 영정 앞에서 위로를 건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헌원사사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장례 의식이 시작되었다. 자식들을 제외하면 과연 몇 명이나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 줄지 알 수 없었다.

    같은 시각, 구염상은 태자부의 정자 안에 앉아 있었다. 두꺼운 망토를 걸친 채 고목과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평온하기만 했다. 다만 구염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한 가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잘 죽었어. 당신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어야 했어. 만일 당신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하고, 죽는 순간까지 고통을 주려던 게 아니었다면 당신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거야.’

    구염상은 며칠 전 만났던 외조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부패한 몸 군데군데에 난 상처는 제때에 치료받지 못해 이미 썩어 짓무르고 있었다. 정신 역시 온전하지 못해 겁먹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었다.

    구염상은 외조부의 곁을 지나가는 장서양도 보았다. 따뜻한 만두를 던져주자 외조부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었다. 장서양은 외조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그리고 장서양은 더러운 솜옷을 여미며 자리를 떠났다.

    사람을 보내 장서양의 뒷조사를 하던 구염상은 그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전생에서 수많은 처첩과 자손을 거느렸던 그는 현재 혼인도 하지 못한 채 쉼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여러 일을 겸하고 있었기에 매일 괜찮은 수입이 들어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장서양은 동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는 관부管府에 있는 누이동생의 병을 치료하는 데 모든 돈을 썼다. 장서영은 어린 시절 얻은 병 때문에 대량의 약재를 써서 생명을 이어 나가고 있었고, 만일 약을 끊는다면 채 삼 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었다. 지난 세월 장서양은 이렇게 내내 누이동생을 뒷바라지하고 있었다. 그는 누이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했다.

    구염상은 생각했다. 그는 장서영에게 미안해하는 걸까? 과거 장서양은 은자 오만 냥을 위해 외가에 사는 장서영을 억지로 데리고 나왔고, 그렇게 누이동생의 남은 생을 망쳤다. 장서양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누이동생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이기심만 아니었다면 장서영을 해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서출들이 맞이한 말로는 외할머니나 어머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어머니는 자주 말하곤 했다. 전생에서 자신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건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이 죽어도 마땅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또한 그녀는 다시 생을 살면서 도에 넘는 복수를 하고 원수를 갚을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해쳤고, 그들이 자신을 해쳤으니 공평한 싸움이었다고.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강렬한 앙심을 품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 다시 사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머니는 바보처럼 아버지를 붙잡았다. 자신이 기댈 산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의도와는 다르게 살찐 늑대 한 마리를 키운 꼴이 되었지만.

    구염상은 어머니의 두 생애가 모두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그게 바로 어머니였다. 몇 생애를 다시 살아도 죽음에 여한이 없다는 그녀. 그 말대로 어머니는 어떤 생에서도 원한을 품지 않았고, 다시 살고픈 욕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구염상은 달랐다. 구염상은 도량이 좁은 자신과 아버지를 경멸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수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놓아 주려 하지 않았고 이를 고려해 본 적도 없었다. 만약 억울하게 죽은 권 비, 혹은 어머니의 손에 억울하게 죽은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생을 살게 된다면 그들도 어머니를 죽이려 할까?

    구염상은 얼른 하던 생각을 멈추고 다시 활짝 웃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봉익과 천하무적인 아버지를 생각하자 다시 기력이 샘솟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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