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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439)화 (439/449)

외전 구염상 2-62

“어머니, 전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어머니께서는 지금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저는 감히 의원을 부르지 않았어요.”

류 부인이 순간 불같이 화를 냈다.

“네가 몰랐다고? 네가 감히 그러지 않았어? 네가 감히 저지르지 않은 일이 뭔데! 넌 단정치 못한 옷차림으로 관씨 가문 공자의 손에 목숨을 구했지. 그런데 네가 뭘 감히 하지 않았다는 게냐? 우리 후부의 명성에 먹칠을 하려는 게지? 네게 체면이라는 게 있다면 그 자리에서 관 공자를 따라갔어야지!”

류정헌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게 무슨 질책이란 말인가. 그 자리에는 반구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후부의 명성에 먹칠을 했으니 관사소를 따라갔어야 한다고?

그녀는 단지 물에 빠져 구조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부인은 앞으로 물에 빠지면 그냥 빠져 죽으라고, 살려고 기어나오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장자에서 자란 류정헌이 지금 이곳에서 무릎 꿇고 용서해 달라고 빈 까닭은 그녀가 여전히 류소양의 딸이었으며, 지금의 정실인 류 부인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상대방이 이렇게 억지를 부리고, 심지어 앞뒤 구분 없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관사소에게 시집보내려 안달이라면 그녀 역시 호락호락 넘어갈 수 없었다.

물론 류정헌이 관사소에게 좋은 인상과 설렘을 느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매파를 통해 정식으로 혼담을 건네지 않고 여인을 모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이런 식으로 나를 첩실로 맞이하려 할 줄이야! 나를 눈먼 장님으로 알았군.’

류정헌의 말투가 딱딱하게 변했다.

“어머니, 말씀을 가려 하시지요. 비록 제가 배운 건 없지만 예의와 염치는 알고 있습니다. 관 공자는 어쩔 수 없이 저를 구해 준 것이고, 저 역시 상황이 급박해 도움을 받았을 뿐 결코 부정한 일은 없었습니다.”

“없었어? 없었다는 말이 잘도 나오는구나? 온몸이 물에 흠뻑 젖었는데 뭔들 못 봤을까!”

류 부인이 신랄하게 말하며 류정헌을 노려보았다. 이 계집을 당장 관사소의 첩으로 내쫓고,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자신의 딸을 관사소의 정실로 시집보내지 못하는 게 한인 사람 같았다. 류정헌은 류 부인이 너무나 가소롭게 느껴졌다.

“말씀대로라면 전 반구에게 시집을 가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지나치게 천진난만하신 듯합니다. 바깥 외출이라도 좀 하시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배우셔야겠습니다.”

진작부터 류정헌이 거칠고 교양이 없다고 생각해 온 류 부인은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자 류정헌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수치도 모르는 천한 것이, 감히 하인을 상대로 불결한 마음을 품은 주제……!”

류소경이 방문을 탕 걷어찼다. 본래 엄숙했던 얼굴은 더욱 음침하고 어두워져 있었다.

“그만해라! 모두 썩 꺼져라!”

류 부인은 더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류소경을 보자 재빨리 험상궂은 얼굴을 거두었다. 그가 여인을 싫어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류소경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되었다.

“아… 아주버님…….”

류소경이 인정사정없이 외쳤다.

“꺼지래도!”

류 부인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자신의 하인을 데리고 얼른 밖으로 뛰쳐나갔다.

류소경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류정헌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일 류정헌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태자가 알게 된다면, 그렇게 자신이 조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게 밝혀진다면…….

류소경이 얼른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짐을 싸서 암자로 꺼지거라. 우리 류씨 가문에 앞으로 너 같은 부인은 없다!”

도망가던 류 부인은 순간 깜짝 놀라 정신이 멍해졌다.

‘말… 말도 안 돼! 나는 류소양의 부인이야! 아우의 처인 나를 어찌!’

“모두 넋 놓고 뭘 하는 게냐! 썩 저 여인을 끌어내라! 이 일은 잠시 후 내가 소양에게 말하겠다!”

“예!”

경악한 류 부인은 귀신처럼 흐느껴 울며 끌려 나갔다. 그녀는 집 밖으로 끌려 나갈 때까지 손에 쥔 부귀영화가 이렇게 사라졌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어찌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아무 짓도 안 했다고!’

한편, 류정헌은 이상한 눈길로 큰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큰아버지의 행동에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왜 저러시지? 어째서 쫓아내기까지…….’

돌연 부드러운 눈빛으로 조카를 바라본 류소경이 전에 없이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물었다.

“물에 빠졌다고 들었다. 몸은 좀 괜찮아졌느냐?”

류정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 집이 낯설었고 큰아버지도 낯설었다. 그가 왜 갑자기 자신을 위해 나서 주고, 이렇게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그럴 가치가 없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얼른 조카를 일으켜 한쪽에 앉게 한 류소경은 하인을 시켜 그녀에게 과즙을 따라 주게 했다. 류소경은 처음으로 조카를 제대로 보았다. 생기발랄하게 생긴 그녀의 양 미간에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으며,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특히 귀족 특유의 까다로운 성미가 없어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기에 류소경도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류소경은 여인은 그다지 예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면 그만이었다.

“마음 놓고 머물거라. 네가 물에 빠진 일은 이 백부가 나서서 조사해 보마. 너와 관씨 가문의 혼사도 내 물러 줄 것이다. 넌 후부의 적녀다. 어찌 상인 가문과 혼담이 오갈 수가 있겠느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걱정 마라. 아직 사주단자도 건네지 않았으니 이 일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류소경은 만일 관씨 가문과 혼담이 오고 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후에 류정헌이 황후가 되는 날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고, 태자가 가문을 저주할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류정헌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큰아버지는 놀랍게도 자신이 관사소에게 시집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류소경은 류정헌이 기뻐서 놀란 거라고 여겼다.

“안심하거라. 넌 존귀한 신분이다. 네 아버지 역시 더는 널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본래 네 것이었던 것 모두가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집에서 열심히 몸을 돌보거라. 여긴 네 집이고 넌 손님이 아니다. 서둘러 떠날 필요가 없단 뜻이다. 이제부터 이 누각은 네 것이니 마음 편히 묵거라. 내일 내가 집사를 시켜 말 잘 듣는 계집종 몇 명을 사서 보내마.”

류정헌은 큰아버지의 말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류씨 가문은 이미 자신을 십육 년간 방치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황송히 대해 주다니 이건 너무…….

류소경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반구는? 네 곁을 따라왔다고 들었는데?”

류정헌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장중하고 엄숙하던 큰아버지께서 어째서 이렇게 온화한 말투로 하인에 관해 묻는 걸까?

‘내 경계심을 풀어주려고? 아니면 가문에서 나를 다른 용도로 쓸 속셈인가? 혹시 나를 더 큰 권력자에게 보내려고?’

어떤 의미에서는 류정헌의 추측이 맞았다. 하지만 류정헌은 가문에서 자신을 부인이 있는 사람의 후처, 혹은 첩실로 들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 생각을 한다고 여겼다. 이게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전부였다.

류정헌이 답했다.

“반구는 누이동생을 돌보러 휴가를 내고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는 평소 자주 일하러 오지 않아요.”

“그렇구나.”

태자는 최근 무척 바빴기에 그럴 만도 했다.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여인을 보러 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능력이 있는 자다. 네 안목이 뛰어나구나.”

류정헌은 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반구를 장자의 일꾼으로 영입하기 위해 큰아버지가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녀는 당연히 반구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과찬이세요, 큰아버지. 저도 우연히 그를 만난 것뿐이에요.”

류소경은 조카가 반구를 언급하며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자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을 겁나게 하는 태자의 외모는 분명 여인의 호감을 얻기 힘들었다. 아무리 천한 여인이라도 모든 남자에게 천하게 구는 것은 아니었다.

한결같이 여인을 증오하는 류소경의 고질병이 여기서 또 발병했다. 그는 역시 여인은 귀찮고 쓸데없을 뿐더러, 사리분별 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눈앞의 조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덩어리를 품에 안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더 좋은 걸 찾으려 하다니!

그러나 류소경은 속으로 생각만 할 뿐 감히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무례는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노고고老姑姑와 하인에게 이곳에 머물며 류정헌의 시중을 들게 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의원을 불렀음을 밝히며 이곳은 그녀의 집이니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말하라고 당부했다.

말을 마친 류소경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류정헌은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류정헌은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될 거라던 그 사람과는 이제 맺어질 가능성이 없는 걸까. 하지만 어찌 장래 남편이 되지 않을 사람을 마음에 둘 수 있겠는가. 그건 대역무도한 일이었다.

* * *

저녁이 되어 저택에 돌아온 류소양은 어안이 벙벙했다. 관사소가 언제 돌아갔는지는 제쳐두고 부인이 어떤 추태를 부려 형님의 노여움을 샀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는 황공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형님을 찾아갔다.

류소경은 아우를 한바탕 호되게 꾸짖었다. 태자가 류소양을 질책한 일을 낱낱이 전한 그는 마지막에는 사리에 어두운 아우를 욕하는 걸 잊지 않았다.

“대체 여인이 뭐가 그리 좋으냐! 아버지께 나쁜 것만 배워서는! 이제 어쩔 테냐. 그 여인이 정헌이에게 미움을 샀으니 넌 이제 뼈도 못 추릴 게다!”

류소양은 다시 어안이 벙벙했다. 형님 말이 정말 사실일까? 태자께서 내 딸과 아는 사이이고, 그간 왕래해 왔으며 심지어 딸아이를 위해 나섰다니?

류소양은 오전의 류소경처럼 머리를 뭔가로 맞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이 일이 사실인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 수밖에 없었다.

만일 사실이라면 부인은 진작에 암자로 보냈어야 했다. 암자로 보낼 뿐 아니라 능지처참을 해야 했다.

류소경은 아우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자 울화가 치밀었다.

“그만 생각하거라! 우선 네 후계자 자리를 어떻게 지킬지나 생각해! 내가 보니 정헌이가 물에 빠진 일은 절대 우연이 아니야. 네 저택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더는 내가 나서는 것도 곤란하다. 너는 돌아가 철저히 조사하여 태자께서 만족할 만한 처분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네가 죄를 뒤집어쓰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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