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436)화 (436/449)
  • 외전 구염상 2-59

    류소양은 보면 볼수록 사윗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관사소가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를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내 정신 좀 보게. 나 혼자 주절주절 떠들었으니 자네도 따분할 테지. 여봐라! 도련님을 모시고 저택 구경을 시켜 드려라!”

    “대인, 소인 몸이 좋지 않으니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이제 막 왔으면서 어찌 그리 허둥지둥 가려 하는가. 몸이 좋지 않으면 이곳에 머물게. 마침 내 형님의 진맥을 보느라 태의가 와 있으니 자네도 봐 주라고 하겠네.”

    류소양은 관사소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류소양은 관사소가 대체 어떤 고수를 만났기에 이렇게 맞았는지 궁금했다.

    관사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알기로 류 후부는 은자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을 상대하려 하는 걸까?

    ‘형식적으로 나를 맞이하고 달래 준 뒤 그냥 보내는 게 더 좋지 않나? 설마 내게 정말 그 값어치 없는 딸을 시집보내려는 생각인가?’

    관사소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냉소를 터뜨렸다. 총애받지 못한 적녀를 관씨 가문에 시집보내는 건 류씨 가문에 있어 참으로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관사소가 흥미가 없었다.

    곧이어 류소양의 아들이 왔다. 한눈에 봐도 관사소보다 나이가 너무 많자 류소양은 곧 손자를 불렀다. 아들딸과 손자들의 연령대가 비슷한 건 류소양의 집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다른 집안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지만 류 후부처럼 많지는 않았다. 류소양은 백발을 하고도 여전히 어린 첩실에게서 자녀를 보고 있었고, 관사소는 이들 가문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통솔자가 관사소를 데리고 나갔다. 류소양은 그에게 꼭 저택에 남아 식사를 하고 가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류소양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관사소는 저택을 떠나려 했다. 류씨 가문의 손자가 비열한 눈빛으로 예비 고모부를 관찰했다. 손자는 류 부인의 당부와 받기로 한 은자를 떠올리며 속으로 꾀를 내었다.

    “도련님, 전 도련님을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 없어요. 아, 저희 호숫가에 있는 정자에 가서 앉아 계시지요. 만일 도련님께서 바람을 맞고 병세가 심해지면 이 저택을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도련님께는 집으로 돌아갈 이유가 생기고, 저도 어른들께 보고하기가 쉽지 않겠어요?”

    말을 마친 그는 관사소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이며 중지와 엄지로 딱 소리를 냈다.

    관사소는 이런 수작에 이골이 난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모두 관씨 가문을 상대로 사기 치기를 좋아했고, 이건 일종의 악습이었다. 그러니 관몽득과 노십이 전력을 다해 높은 자리로 기어오르려는 걸 마냥 탓할 수는 없었다.

    관사소는 또 한 번 자기도 모르게 달빛 아래 그림자를 떠올렸다. 고귀하고 평온한 그녀는 영원히 이런 무료한 일은 맞닥뜨리지 않을 것이다.

    류씨 가문의 손자는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했다. 관사소가 호수의 정자를 떠나 외진 곳으로 가야 류 부인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사소는 경계심이 매우 높았기에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옷이 더러워졌다는 핑계나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는 수작은 그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관사소는 그저 한 시간 정도 더 있다가 돌아갈 계획이었다.

    류씨 가문의 손자는 점점 초조해졌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은자를 받을 수 없었다. 자그마치 만 냥이었으니 큰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었다. 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물에게 산으로 가라고 하는 수밖에.

    류씨 가문의 손자는 마음을 굳혔다. 여우는 속일 수 없을지 몰라도 세상 물정 모르는 류정헌은 속일 수 있었다. 류씨 가문의 손자가 얼른 조심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잠시 기다리세요. 차만 마시면 재미없으니 술을 가져올게요.”

    관사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하인들이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궁지에 몰린 사람은 온갖 극단적인 수단을 쓰는 법이었다. 그들은 호숫가 누각 안에 있는 성장 차림의 류정헌을 누각 아래로 떨어뜨려 호수에 빠뜨렸다. 관사소의 주의를 끌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관사소가 류정헌을 구하게 함으로써 두 사람을 가까워지게 할 셈이었다.

    그러나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려도 관사소는 움직이지 않았다. 구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몸에 상처가 있는 자신이 움직여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인들이 달려와 장대로 아가씨를 구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자 관사소는 남의 집에 온 손님 신분으로 차마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최소한 돕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관사소는 돕는 시늉을 하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옆에 서서 장대를 끌어당길 때 그는 부러 앞으로 밀지 않았을 뿐 장대에 매달린 낭패한 여인을 다시 물속으로 떨어지게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안타깝게도 하늘은 관사소의 뜻을 들어주지 않았다. 호수에 빠진 여인이 거의 물 밖으로 끌려 나왔을 때,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관사소를 세게 밀었다. 뒤쪽에서 구하는 시늉만 하고 있던 관사소는 그 힘에 앞으로 튕겨 나갔다. 덕분에 사람들은 물 밖으로 거의 나온 류정헌을 그가 거의 끌어 올린 것 같은 시각적인 착각을 느꼈다.

    “어서! 아가씨를 끌어올리고 태의를 불러라! 태의를 불러!”

    “태의께서 벌써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류정헌은 물에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물에 빠지자마자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고, 기슭에 있던 장대로 구조되었다. 지금 류정헌이 느끼는 기분은 옷이 흠뻑 젖어서 매우 춥다는 것뿐이었다.

    반구가 얼른 겉옷을 벗어 덮어 주자 류정헌은 옷을 힘껏 당겨 잡았다. 낭패 일색인 그녀는 온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류씨 가문의 손자가 날 듯이 뛰어왔다. 관사소가 막 빠져 나가려고 하는 것을 본 그가 단숨에 관사소를 붙잡고 감격한 듯 말했다.

    “관 형!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희 고모가 제때 구조될 수 있었어요!”

    비록 관사소가 고모부가 될 희망이 있다 해도 아직 고모부가 아닌 이상 류씨 가문의 손자는 가문의 지위를 고려해 동년배인 관사소를 마음대로 부를 수 있었다.

    관사소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과찬이십니다. 아가씨가 무사한 건 제가 아니라 이쪽 형님 덕분입니다.”

    관사소가 옆에 있는 반구를 보라고 눈짓하며 말했다.

    반구를 슬쩍 본 류씨 가문의 손자는 별안간 씩씩 화를 내며 류정헌의 손을 감싸고 있는 반구를 밀어냈다. 그는 반구를 매섭게 쏘아봤지만 관사소가 자리에 있었기에 감히 류정헌을 차지하고 있는 반구를 꾸짖지 못했다.

    순간 기댈 곳이 없어진 류정헌은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들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침묵하고 있는 눈빛과 마주쳤다. 먹물처럼 새까만 눈빛과 차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로 그는 약간 짜증스럽다는 듯 미간을 살짝 접고 있었다.

    류씨 가문의 손자가 얼른 관사소를 향해 사죄했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고모, 이 분은 관씨 가문의 손자 사소입니다. 방금 고모를 구해 주신 분이니 어서 고맙다고 하세요.”

    “아니요, 제가 구한 게 아니라니까요. 아가씨는 여기 이 건장한 분께서 구하셨습니다.”

    ‘귀가 먹었나? 내가 아니라고 설명을 했는데 듣지를 않는군!’

    류정헌은 머리가 핑그르르 도는 것 같았다.

    ‘이자가 관씨 가문의 관사소라고?’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류정헌이 고개를 숙였다. 어깨에 걸친 겉옷을 꽉 움켜쥔 그녀는 감히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지 못했다.

    류씨 가문의 손자는 류정헌의 맨살이 드러나지 않아서, 조금 전 류정헌을 안고 위로해 주던 사람이 관사소가 아니라는 점에서 약간 실망했다. 서로 맨살을 보았으니 책임을 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억지스럽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었다.

    “형님과 고모께서 정말 인연이 있나 봅니다. 처음 만나자마자 생명의 은인이 되어 주셨으니까요.”

    “내가 아니라니까! 내가 아니라…….”

    다시 한쪽에 있는 뚱보를 바라보던 관사소는 그가 손안에 두 아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뚱보는 지면에서 높은 누각까지 단숨에 올라갔다가 공중을 날렵하게 날아 발끝으로 호수 수면을 세 번 찍고 내려왔다. 그가 덜덜 떨고 있는 두 사람을 바닥에 내던졌다.

    구염황의 눈빛 속에 냉기가 돌았다. 그는 열 살 남짓한 여자아이들을 전혀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두 아이는 매우 놀란 듯 서로 부둥켜안은 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구염황을 바라보다가, 다시 구조된 류정헌을 두려운 듯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우리… 우린 고의는 아니었어요!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고모가 실수로 미끄러져서… 마, 맞아요! 고모가 미끄러진 거예요…….”

    류씨 가문의 손자는 이 뚱뚱한 하인이 누이동생들을 저렇게 높은 누각에서 여기까지 단숨에 끌고 내려온 것을 보고 놀라 멍해 있다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온 녀석이냐! 고얀 놈! 감히 아가씨에게 손을 대다니!”

    순간 구염황이 차가운 눈으로 류씨 가문의 손자를 훑어보았다. 조금 전 류정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는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처음에는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했으나 두 소녀가 수상쩍게 슬금슬금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재빨리 몸을 피하자 그는 이번 일이 그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구염황이 음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아이들이 한 짓입니다. 저들이 정헌 아가씨를 누각 아래로 밀었습니다!”

    “아녜요! 아니야, 오라버니…….”

    두 소녀는 구염황의 위압적인 눈빛에 말을 더듬으며 서로를 끌어안고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곧이어 태의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아가씨를 진맥하러 온 태의에게 길을 내주었다.

    관사소는 바닥에 있는 소녀들은 관심도 없이 뚱뚱하지만 서슬 퍼런 기세를 내뿜는 남자를 잠시 쳐다보았다. 곧 뒤돌아 자리를 떠나며 관사소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왜 요즘 내 주변에는 죄다 고수들만 있지? 마치 고수라는 존재가 아주 흔한 것처럼 도처에 널려 있군.’

    한편 부끄러운 듯 주변을 훑어보던 류정헌은 관사소가 떠난 것을 깨달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그와 반구가 나를 구한 걸까?’

    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떠느라 주의 깊게 보진 못했지만, 관사소의 얼굴은 그녀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 그는 오늘 그녀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류정헌은 얼떨떨했다.

    ‘그가 바로 나와 혼담이 오간 사람이구나. 그가 관씨 가문의 관사소였어.’

    관사소는 이제껏 류정헌이 상상해 오던, 나이 들고 올챙이처럼 배가 불룩 나온 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비록 웃지 않았지만 자신을 구하러 온 것으로 보아 분명 냉정한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다만… 다만…….’

    류정헌은 자신이 일을 망쳤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자신을 그가 과연 좋아해 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