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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425)화 (425/449)

외전 구염상 2-48

본래 오라버니를 비웃어 주려 했던 구염상은 그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상심하자 조금 의아해졌다. 한 나라의 태자가 저택에서 초어를 기르는 것도 몹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또 그걸 서재 입구 앞에서 기르고 있다니? 이는 끝없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이 물고기…….”

구염황이 애타게 소리쳤다.

“여봐라! 여봐라! 초어가 왜 죽었는지 조사해라!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나!”

구염상은 물항아리 주변을 서성이는 오라버니를 바라보며 중병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저택을 고르지 못한 그녀는 오라버니 저택에 머물면서 최근 한 달 사이 여러 곳에서 들어오는 구혼을 피하는 중이었다.

“이 물고기가 오라버니에게 특별해요?”

“응? 아니, 그냥 물고기일 뿐이야.”

말을 마친 구염상은 애타게 항아리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오라버니를 응시하며 깜빡이던 눈을 살짝 찡그렸다. 어렴풋한 생각 하나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라버니에게 여자가 생긴 거 같은데?’

“초어는 모두 똑같이 생겼잖아요. 다른 물고기로 바꿔도 몰라볼 거예요.”

순간 구염황이 눈을 반짝 빛냈다. 어떻게 그걸 잊고 있었지? 그는 오로지 다 자라면 명절 때 먹겠다고 한 정헌靜軒의 말만 기억하며 줄곧 물고기를 길러 왔다. 물고기를 기르면 정헌에게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물고기의 말로가 ‘먹히는’ 것이라는 건 잊고 있었다.

구염황은 언젠가 먹혀 죽을 운명이었던 물고기의 죽음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졌다. 그는 자조하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더는 물고기를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두 걸음 내딛던 구염황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휙 돌렸다.

“헌데 네가 왜 전원前院에 들어와 있지? 당장 나가!”

구염상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야 그 사실을 떠올리다니 참 대단하군.

“봉 공자가 제게 차를 마시자고 했거든요.”

그러냐고 대답하려던 구염황이 돌연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물 항아리 주변을 돌고 있는 누이동생을 바라보았다.

“뭐 해? 항아리에 뭐 볼 게 있다고! 그나저나 봉익도 참 간덩이가 부었구나. 또 널 만나려 하다니 죽고 싶은 게 분명해.”

항아리를 빙빙 돌던 구염상이 걸음을 멈춘 후 옥처럼 고운 손가락으로 물을 살짝 저었다. 물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아바마마께서 제게 부마를 택하라 하시니 당연히 만나 봐야죠. 그도 규율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이에요. 오늘이 그와 만나는 마지막 날이에요. 내일부터는 고원 차례고요.”

구염황이 재빨리 달려가 누이동생의 여린 손가락을 닦았다.

“뭐하는 거야! 물이 얼마나 더러운데!”

싱긋 웃은 구염상이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확인 결과 특별할 것 없는 항아리에 보통의 물, 그리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고기일 뿐이었다.

‘오라버니는 왕자와 거지 극을 연기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용이 새우를 놀리는 극을 연기하고 있는 걸까?’

조금 전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진 모습으로 보건대 구염황의 사랑은 한창 무르익는 중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상대 여인이 장래의 올케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해요. 알았어요. 외출한다고 말하려고 온 거예요.”

* * *

백청색의 긴 치마 위에 연녹색 실로 수놓인 얇은 비단을 걸친 구염상은 간단히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었다. 깜찍한 붉은 비녀 위에 놓인 반들반들한 분홍빛 구슬이 청아함과 귀티를 더해 주었다.

봉익은 쪽빛 비단 두루마리를 입고 그녀와 함께 나란히 걸었다. 완벽한 한 쌍이 함께 있으니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구염상은 손에 쥔 버들가지를 되는대로 흔들며 물이 맑은 강둑 위를 걸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치맛자락이 사락사락 가볍게 흔들렸다.

봉익은 가만히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넓은 정자에서 문인들의 거문고 소리와 묵향이 전해졌다. 두 사람은 모임에 참석할 생각이 없었기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정자를 돌아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코끝에 초가을의 축축함이 느껴졌다. 은은한 맑은 향기가 바람을 따라 스쳐 지나갔다. 봉익은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꼈다.

계속 길을 걷던 구염상이 갑자기 발을 헛디디자 봉익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를 붙들어 주었다. 그가 담담하고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해요.”

봉익을 힐끗 바라본 구염상이 빙그레 웃은 뒤 제자리에 섰다. 손을 빼내려 했지만 봉익에게 꽉 쥐여 있었다. 봉익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 그녀의 손을 끌고 걸었다.

구염상은 조용히 그와 함께 걸었다. 불어온 강바람에 그녀의 치마가 봉익의 옷 위를 스쳤다. 봉익이 허리에 매달린 노리개 역시 구염상의 옷깃을 살짝 스쳤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겹쳐 잡은 손은 고요한 강둑 위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구염상은 봉익이 싫지 않았고 심지어 조금 고맙기까지 했지만, 평생을 함께하기에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녀는 사랑을 경험하기 전부터 사랑에 기대가 없었다. 하물며 과거 혼인도 해 본 그녀였다.

구염상은 손안의 온기를 느낄 뿐 다른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감정의 폭이 다른데 어떻게 봉익이 느끼는 편안함과 설렘을 함께 즐길 수 있겠는가.

속으로 자조하며 고개를 돌린 구염상이 고요히 흐르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속은 청산은 몽롱한 안개 속에서 유달리 신비로워 보였다. 백 년 동안 불후의 명성을 이어온 가문. 사람들은 관씨 가문이 한때 곤궁한 처지였다는 걸 잊은 지 오래였다. 어떤 것은 세월이 쌓일수록 점점 더 존귀해진다. 장사를 업으로 하는 관씨 가문이 그러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씨 가문을 본보기로 삼고 있을까. 한 가지 업으로 부를 극대화하여 온 연경을 흔드는 세력으로 성장한 이들은 신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 만큼 연경은 물론 주국 전체에서 위엄을 떨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아바마마는 이 대륙의 모든 뛰어난 귀재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그들이 재주를 뽐낼망정 품어서는 안 될 망상을 품지는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구염상은 자조적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녀는 또 아버지의 좋은 점을 생각하며 나쁜 점을 잊으려 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스친 생각에 구염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는 이제 곧 자신만의 저택을 갖게 된다. 그때가 되면 명정을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명정을 아버지에게서 멀리 떨어뜨리고 그의 남은 생을 돌봐 줄 생각이었다.

구엽상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줄곧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큰 산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웠다.

봉익은 구염상이 웃는 모습을 보자 기분이 묘해졌다. 바람을 맞으며 그녀의 여린 손을 잡은 봉익은 전에 없는 충만함을 느꼈다.

구염상은 이미 남자에게 손을 잡혔다고 모욕감을 느끼는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을 만지는 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형편없는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영혼이 어찌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데 뜻밖에도 누군가 자신을 동정하고, 영혼을 사랑해 줄 줄이야.

심지어 구염상은 위협을 받으면 주소유를 제거할 때처럼 곁에 있는 사람까지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간단한 사랑을 베풀었을 뿐이다.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봉익은 최대한 목소리를 평온하게 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지위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좋아하는 여인을 마주한 남자로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앞에 배가 있어요. 청산에 가서 바람을 쐬고 오는 게 어떻습니까?”

“좋아요.”

구염상은 자신의 어두운 마음에 연연하지 않고 여전히 명랑하게 웃었다.

청산에는 신선이 살 것 같은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셀 수 없이 피어 있는 꽃들은 여전했고 오색나비가 날아다녔다. 산에 오르자 구름과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고, 높은 산과 흐르는 물이 어우러진 장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세차게 아래로 흐르는 구각영월九阁映月은 무수한 문인과 시인에게 훌륭한 작품과 필적을 남기게 한 폭포였다.

전 왕조부터 달빛 속 선경 아래 담담히 수심에 잠겨 있는 모습을 묘사한 권 승상의 《등망루월登樓望月》은 세간에 발표되자마자 대내외적으로 비할 바 없는 뛰어난 시문詩文이 되어 다시금 구각영월에 관한 아름다운 전설을 남겼다.

구염상은 높고 험준한 산간에 걸려 있는 장하은련長河銀鏈(남녀가 사랑을 기원하며 채워놓은 자물쇠)을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정말 장사 수완이 좋네요.”

봉익은 선녀처럼 아름다운 상 공주를 바라보다가 돌연 버릇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눈앞에 놓인 구각영월의 절경을 보고 분위기를 깨는 미인이라니, 뜻밖이었다.

구염상이 입을 삐죽이며 코웃음을 쳤다.

“왜 웃어요? 제 말이 틀렸나요? 청산에서 권 승상에게 뇌물을 준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으면 권 승상이 바위 위에서 그런 낙서를 했을 리가요.”

이는 위풍당당한 권 승상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이었다. 봉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를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산에 인접한 누각은 은은한 호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틀렸어요. 권 승상께서 자발적으로 붓을 드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절묘하게 달빛을 묘사하는 시를 읊을 수 없었겠죠. 소문에 따르면 부인을 위해 지은 시라고 하더군요. 부인에 대한 사랑이 깊으니 자연히 붓을 들어 친필 서화를 남긴 거겠지요.”

“어라, 제가 택진澤秦에게서 들은 말과 다르네요. 택진이 말하길, 권 승상이 식사를 하러 와서 은자를 가져오는 걸 잊었대요. 그 횟수가 잦아지자 미안한 마음에 한 수 지어준 거라고 하더군요.”

봉익은 어이가 없었다.

“택진은 언제나 묘한 구석이 있지요.”

그러나 어떤 점이 묘한 것인지 봉익은 설명하지 않았다. 소년들 중 신분으로 보면 태자 다음가는 사람이 권택진이었다.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라 할지라도 신분 차이는 존재했고, 권씨 가문은 성격상 모든 사람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봉익은 구염상의 부드러운 손을 꼭 쥘 뿐 며칠 전 권택진과 함께 한 시간이 어땠냐고, 두 사람도 마주 앉아 시를 논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구염상은 권택진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상태였다. 누구라도 권씨 가문의 남자에게 그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무예에 정통했으며, 세속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초연했다. 권택진은 태연하게 그녀를 좋아했다. 구염상도 그에게 호감이 있음을 표했다.

권택진은 공주처럼 이렇게 모든 일에 통달한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마치 세월의 침전을 겪은 것 같지만 여전히 깨끗하고 순수해 속세의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사람 같다고.

구염상은 오히려 마음이 너무 때가 타서 깨끗한 것을 좋아하게 됐을 뿐, 권 공자처럼 세속 일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멋진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틀 동안 구염상과 권택진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을 논하고 이상을 논했으며, 복잡한 가족 관계나 사소한 이야기까지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생각이 꼭 맞아떨어져 함께 있으면 서로의 장점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마지막 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서로에게 적합하지 않은 상대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세상사에 너무 통달해서 오히려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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