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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402)화 (402/449)

외전 구염상 2-25

아버지가 봉익을 부마 후보에 올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구염상은 수치심에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난 구염상은 큰 용기를 내어 아버지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아바마마! 어찌 이러실 수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찌 생각하겠어요? 저는 그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요! 잘못 본 것이라고 해도 놓칠 수 없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제가 시집을 못 가는 것도 아닌데! 아바마마, 정말 너무하세요. 사람들은 제가 부마를 찾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급하게 시집을 가려고 한다고요!

다른 사람 말은 신경 쓰지 말라니요? 아바마마는 그게 가능하시겠지만 저는 공주인데 어찌 오라버니처럼 사내들을 대기시키겠어요! 왜 오라버니는 신경 쓰지 않으시는 거예요? 먼저 오라버니부터 여인을 찾아주세요! 어마마마, 아바마마께서 저를 괴롭게 해요!”

수치심에 분노한 구염상은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가 두려워하며 일러바쳤다.

“앞으로 어찌 제가 바깥에 나갈 수 있겠어요?”

구염상은 오늘 자신을 바라보던 봉익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자신이 나쁜 마음으로 그를 괴롭힌 것이라 여긴 게 분명했다.

‘어쩐지 놀라서 도망가더라니… 앞으로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라고!’

장서열은 딸을 위로하는 동시에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는 구염락을 노려보았다.

“분명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기어이 안 들으셨군요! 대체 부마가 결정될 때까지 그 많은 공자들을 대기시킨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설마 규정이라도 만들어서 서로 겨루게 하고, 마지막에 남는 자를 부마로 삼겠다는 건 아니겠죠?

결과가 엉망일까 두렵지도 않은 거예요? 상아가 우스워지면 책임질 거냐고요! 착하지, 착하지… 울지 말거라. 다 아바마마 잘못이야. 아바마마께서 잘못하신 거야.”

그러나 억울해 죽을 지경이 된 구염락은 패기 넘치게 탁자를 치며 일어나 딸을 위해 고안해 낸 억지스런 방법을 고수했다.

“엉망일 리 없지! 상아를 아내로 맞이하는 건 필시 여러 대에 걸쳐 복을 쌓은 결과일 텐데, 어찌 엉망일 수가 있겠어?”

장서열은 황제의 자리에 오래 앉아 있던 탓에 구염락의 머리가 나빠졌다고 생각했다.

“황아를 장가보낸다고 하면 온갖 명문가에서 서둘러 딸을 보내려고 줄을 서겠지요! 아들이니까요! 하지만 권세에 아첨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중 대체 누가 공주를 데려가 모시려고 하겠어요? 게다가 남자들은 대를 잇는 걸 첫째로 친다고요. 당신 딸이 아무리 자식을 많이 낳는대도 한계가 있으니, 그럴 바엔 처첩을 여럿 두는 게 낫죠!”

“그것들이 감히!”

“감히든 아니든 어쨌든 그렇게 생각한다고요! 당신은 사람들이 마땅히 황제의 딸을 앞다투어 데려가려고 해야 한다고 여기는 거예요? 차라리 황제가 아니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돌연 울음을 멈춘 구염상은 점점 목소리가 약해지는 아버지와 과거처럼 사나운 어머니가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동정했다.

‘처첩을 여럿 두는 게 낫다니……. 나를 앞에 두고 숨도 쉬지 않고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어마마마도 정말… 내 체면은 생각지도 않으시는구나.’

장서열은 구염상의 안색이 좋지 않자 서둘러 태세를 전환하며 딸을 위로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남자에게는 남자들만의 생각이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공주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거야. 이건 네가 어떤 사람인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그저 네 신분 때문에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 슬퍼할 필요 없단다.”

구염상이 돌연 악랄하게 말했다.

“그럼 제가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남자를 좋아하면요?”

순간 구염락과 장서열이 동시에 긴장하여 딸에게 다가갔다. 특히나 구염락의 얼굴은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보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누구를 좋아하기에 감히 그가 널 싫어한다는 게야? 당장 짐에게 말하거라!”

놀란 구염상이 다급히 어머니의 등 뒤로 숨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없어요. 없다고요! 아바마마는 너무 무서워요…….”

장서열이 즉시 구염락의 귀를 비틀었다.

“상아가 놀라잖아요,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그럼 정말로 누가 있대도 제대로 대답이나 하겠어요? 착하지, 어미에게 말해 보거라. 누구를 좋아하게 된 것이냐? 누구든 이 어미가 책임지고 처리해 주마.”

구염락이 서둘러 표정을 풀었다.

“그래, 그래. 아버지도 도와주마.”

“없어요. 정말 없다고요!”

구염상은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보며 왠지 벌집을 쑤신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속으로 서둘러 맹세했다.

‘앞으로 다시는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지…….’

* * *

구염상의 바람과 달리 세상은 여전히 부마 간택으로 떠들썩했다. 황제의 유일한 딸이자 주국에서 가장 고귀한 소녀. 하늘이 내린 얼굴에 부드러운 성정을 지닌 구염상의 혼사는 회오리처럼 주국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공주를 향한 청혼의 물결은 끊이지 않았다. 숨어 있던 가문, 부귀한 명문가, 각 지역의 패주覇主까지 모두가 주국의 어린 공주를 원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첨을 잘하는 한 소국의 국왕은 영덕제를 알현한 뒤 간절하게 말했다.

“폐하, 소신에게 어린 아들이 하나 있사온데 승마와 궁술, 금서琴書(민간 예능의 일종) 모두 일품으로 국가의 드문 용사이며 재자입니다. 아들이 공주의 초상화를 본 뒤로 흠모하는 마음을 품고 소신에게 부디 폐하께 말을 전해 달라 간청하였습니다.

제 아들은 감히 유일한 부마가 되지 못하더라도 여러 신랑들 중 하나만 되어도 족하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내린 공주의 자태로 보건대, 세상의 어떤 사내도 홀로 공주를 차지할 자격은 없을 것입니다. 사내대장부들이 평생 쫓아 마땅하지요!”

“좋다!”

황제의 호방한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딸을 칭찬하는 건 곧 구염락 자신을 칭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조정 중신들의 표정은 일시에 굳었다. 그들은 아첨하는 교활한 자에게 맞장구를 치는 황제를 따라 마찬가지로 맞장구를 쳐야만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과연 황제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딸에게 남편이 둘이나 있는 걸 묵인하다니? 황제는 누군가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이 공주를 모독하는 게 아닌, 오히려 공주를 치켜세우는 것이라 확신하는 듯했다.

그리고 구염락은 정말로 그 말을 딸을 치켜세워 주는 말로 해석했다. 눈앞의 왕이 진실로 그리 생각하고 몸소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면, 이는 상아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었다. 구염락은 제후국의 국왕이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었기에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황제에게는 문제가 없어 보일지라도 주국의 중신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이들은 황제의 눈에 들지 않도록 서둘러 아들을 ‘시집’보내 버리고픈 심정이 되었다.

‘아니지 아니지, 부마 간택을 기다리는 대열에서 벗어나도록 아내를 맞이하도록 해야지!’

황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로 공주를 위해 부마를 두 명이나 뽑을지도 모른다.

* * *

최근 구염상은 감히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알아봐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누군가 알아보면 너무나 난처했다. 특히 젊은 관원들은 구염상을 마주칠 때면 마치 자신들을 볼까 겁이 나는 듯 하나같이 머리를 무릎까지 숙였다. 그나마 사근사근한 이들은 가까이에서 암암리에 조용히 자신은 첩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이곤 했다.

구염상은 언제나 자신은 규율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전생에서 쓸데없는 말이 퍼졌을 때도 부끄럽고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그녀는 아무리 인내심이 강할지라도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아버지 때문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되었다.

장서열은 딸의 기분이 저조하자 결코 구염락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장서열은 구염락을 문 밖에 사흘 동안 가둬 버렸다. 결국 구염락은 거대한 폭탄을 보내왔다.

“공주가 왜? 상아는 어찌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하는 게야! 만약 짐이 외손자도 태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짜증은커녕 목숨을 걸고 짐의 딸을 데려가려고 달려들겠지!”

그리고 가장 큰 불행은 이 말이 밖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었다.

황후는 황제를 완전히 문 밖에 가둬 버렸다. 구염락은 하마터면 구염황을 지하 감옥에 던져 넣고, 다시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도록 매질을 할 뻔했다. 황제의 말이 새어 나가다니? 황궁에는 구염황 외에 그를 도발할 사람이 없었다.

장서열은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었고, 구염상은 더더욱 골칫거리를 만들 리가 없었다. 머리가 이상한 아들 외에 누가 감히 황제의 기분을 망칠 수 있겠는가!

“구염황! 아주 영원히 돌아오지 말거라! 영원히 돌아오지 마!”

야경이 아름다운 황궁 밖에 선 구염황은 공기가 시원하니 기분이 좋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소문이 나면 안 된다는 말이지?’

구염황은 뒤에서 공주가 도리를 어기고 있다며 수군대는 자들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만에 하나 누이동생의 자식들에게 정말로 황권을 이을 권리가 생긴다면… 그리고 자신이 계속 혼인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누이동생이 지켜야 할 도리를 어긴다 말하겠는가? 누가 감히 우물쭈물 군자인 척 흥분하여 달려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머지않아 구염황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소문이 퍼져 나가자 황제가 정확한 의견을 표명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황제가 입을 여는 순간, 연경의 모든 사내들은 마음대로 고르시라 청한 뒤 감히 헛소리를 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구염황은 기분이 좋은 듯 두 팔을 벌리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는 빠르게 뛰어오르며 우뚝 솟은 황궁 문 앞에서 사라졌다.

* * *

다음날 저녁, 화가 난 구염상이 무장한 채 궁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오라버니의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어 있는지 보고자 했다.

늦은 시각, 헌원사사는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늘에는 맑은 거울 같은 달빛이 걸려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너무 일찍이 찾아온 생계에 대한 책임과 막막함, 그리고 고달픔이 그를 또래보다 더욱 신중하고 조숙하게 만들었다.

구염상은 여기에서 헌원사사를 만날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아직 그를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떤 얼굴로 헌원사사를 마주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과거 구염상은 헌원사사를 이용했고, 그의 어머니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도구로 그를 활용했다. 그녀는 그를 속인 것은 물론, 무고한 아내인 척 그의 모친을 모함했다.

구염상은 스스로에게 여러 차례 물었다. 정말로 헌원사사에게 일말의 감정도 없는 것일까?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 어찌 이번 생에서 처음 깨어났을 때 며칠간 꿈에서까지 그의 이름을 불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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