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401)화 (401/449)
  • 외전 구염상 2-24

    등이 굽은 노인은 악취를 풍기며 구염상을 유혹했다.

    “꼬마 아가씨, 여기서 하루 종일 있어 봐야 몇 푼 벌지도 못 해. 이 할아버지를 따라가면 앞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 만약 운 좋게 재능이 있어서 우리 설 아가씨에게 기예를 배우게 된다면 심지어 몸을 팔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이야? 어쩌면 능력껏 출세도 하고, 부자도 될 수 있다고.

    혹시 알아? 좋은 공자의 눈에 들어 첩실이라도 될지? 하하, 난리 나지 그냥. 첩도 공자를 따라서 덕을 볼 수 있다고. 그리고 청산의 성세안락盛世安樂이라는 곳은 모르는 사람이 없어. 품삯도 가장 높이 쳐 주는 곳이지. 이봐, 꼬마 아가씨. 아가씨가 어리고 성장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니 내가 이렇게 제안하는 거야.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등이 굽은 노인은 마치 많은 사람들을 싣게 된 뱃사공처럼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밥도 배불리 못 먹는 어린 거지를 꼬여 내는 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는 듯했다.

    “할아버지가 네 얼굴을 닦아 볼 수 있게 해 주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예쁜 소녀들에게는 언제나 더 많은 길이 있는 거 아니겠어?”

    ‘이를테면, 몇 년 잘 배워서 관원의 첩이 되는 거? 그런 길이 있겠지.’

    구염상은 늙은이가 마치 진심으로 착한 일을 하는 양, 제 말에 자신감을 갖고 부드럽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평소 이런 자들을 어떻게 언급했는지 알고 있었다. 관원들이 이들을 탄핵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넘어간 여인들의 절반 정도는 제 발로 찾아가기도 했으며, 특히 인신매매 계약서의 내용 때문에라도 정확히 책임을 따지기가 어려웠다. 돈을 벌 때에는 그렇게 즐거워하다가, 일이 벌어지면 태도를 바꾸어 힘든 척하는 것 역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인신매매와 관련된 자들 중 절대적으로 깨끗한 사람은 없었다. 당당한 청산의 ‘성세안락’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성세안락에 팔려간 소녀들이 재주를 익힌 뒤 주인을 배신하고 가난한 서생과 도망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청산은 그러한 소녀들에게 생지옥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고, 소녀들은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바랄 수 없었다. 과거 이러한 일로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소녀가 있었는데, 이 사건이 한바탕 떠들썩하게 알려지는 바람에 청산은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안 가요.”

    “꼬마 아가씨, 찐 만두 좋아하지?”

    “배 안 고파요.”

    구염상은 그들이 감언이설로 어린아이를 속인다는 걸 알았다. 만약 자신이 진짜 거지이고 굶주림에 지쳐 있다면 꼭 은자를 주지 않는다 해도 맛있는 음식 앞에 마음을 굳게 지키기 어려울 터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성세안락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잡혀갔다.

    그것이 범죄인지의 여부는 성세안락이 끌고 온 여인들의 수입에 개입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따져야 했다. 개입한다면 범죄였고, 개입하지 않는다면 범죄까지는 아니었다. 중간 과정은 낱낱이 평가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성세안락이 계속해서 번창할 뿐더러, 이러한 이들이 존재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면 과연 늙은이 같은 자들은 악질일까, 아닐까? 진실은 그들만이 알 것이다.

    구염상은 화를 내며 쪼그려 앉았다.

    “안 간다니까요! 길 막지 말고 비켜요.”

    곱사등이 노인은 듣기 좋은 소녀의 목소리에 목청을 잘 가다듬는다면 더더욱 보기 드문 인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미녀는 널렸지만, 능력 있는 미녀는 찾기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곱사등이 노인의 미소가 더욱 상냥해졌다.

    “그럼 이 할아버지가 얼굴은 보자고 안 하마. 매일 먹을 것과 새 옷을 주지. 어때, 좋지?”

    “싫어요.”

    무심코 주변을 한 번 훑어본 구염상은 문득 퉁소를 파는 노점 앞에 서 있는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식은땀이 났다.

    ‘어찌 또 마주칠 수가 있지? 그것도 매번 가장 재수 없는 일을 당할 때마다!’

    구염상은 자신을 보고 있는 봉익의 시선에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봉익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미간을 약간 찌푸렸으나 침착한 표정이었다. 사방을 둘러본 그의 눈에 시위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없다는 걸 의미했다.

    ‘상 공주는 외출을 하면서 어찌 아무도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인가.’

    봉익은 맹목적으로 다가갈 계획은 없었다. 그저 이틀 연속 그녀를 마주쳤다는 것이 약간 의아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등이 굽은 노인은 소녀의 거절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을 만큼 인내심이 강했다.

    “꼬마 아가씨, 할아버지가 사는 곳에 가보지 않겠어? 보고도 맘에 안 들면 할아버지가 더는 잡지 않을게.”

    “싫어요.”

    ‘아직도 보고 있는 거야? 보긴 뭘 봐! 재수없는 일 당하는 사람을 처음 보나! 진작 알았다면 이 거리로 오지 않았을 텐데!’

    봉익은 왠지 모를 의혹이 생겼다.

    ‘내가 공주를 방해한 건가?’

    하지만 매일 사람을 데리고 황성을 순시하는 건 그의 의무였고, 혹시 모를 위험을 근절하는 것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만약 지금 교대를 한다고 해도 봉익은 반드시 여기에 서서 늙은이를 따르는 게 소녀의 선택인지 확인해야 했다. 어쩌면 조금 더 인자하게 다가가 소녀에게 올바른 길을 찾아 줘야 할지도 몰랐다.

    사실 그는 그러한 의무가 있는 사람도, 마음씨가 착한 사람도 아니었다. 봉익은 구염상을 바라보며 갑자기 웃고 싶었다. 상 공주는 자신이 눈을 아무리 크게 뜨고 노려보아도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화가 난 다람쥐처럼 아주 귀엽다는 걸 알까?

    봉익은 스치듯 지나가려던 이러한 생각을 다급히 멈췄다. 건너편에 있는 사람의 존재는 누구도 그녀가 얼마나 예쁜지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말해 주었다.

    “어르신, 봉 대인이 뒤쪽에 있습니다.”

    깜짝 놀란 늙은이가 눈썹을 찡그린 채 고개를 돌렸다. 가까운 곳에 있는 봉익을 본 그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하는 걸 느꼈다. 즉시 웃는 낯으로 봉익에게 머리를 끄덕이며 예를 갖춘 그가 머리에 난 땀을 닦았다. 동시에 그는 협조하지 않는 구염상을 향해 몸을 돌린 후, 서둘러 그녀를 손에 넣으려 했다.

    늙은이의 웃음이 점점 더 상냥해졌다. 그가 소매에서 은자 한 닢을 꺼내 들었다.

    “꼬마 아가씨, 할아버지랑 같이 가면 앞으로 매달 이만큼의 은자를 얻을 수 있어. 앞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가씨 가족들도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다고.”

    구염상이 놀란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 늙은이는 오래 살다 보니 정말 죽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

    심지어 관차가 바로 뒤에 있는데도 이렇게 대담한 짓을 하다니.

    물론 뒤에 선 봉익이 어느 정도 압박감을 주고 있었기에 곱사등이 노인도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성세안락盛世安樂이라고 어찌 지저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들은 그저 그 안에서 자행되는 일을 은폐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봉익이 부윤府尹(부의 최고 책임자)과 형부시랑을 겸임한 이후로 성세안락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하필 봉익의 배경이 뛰어난 관계로 청산지주 또한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다행히 봉익은 한 번도 도를 넘지 않았고, 성격 또한 세상을 한탄하거나 백성의 고통에 지나치게 이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늙은이와 같은 이들이 이렇게 대담히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숨을 깊이 들이 마신 늙은이가 더욱 분발했다.

    “꼬마 아가씨, 혹시 청산에 대해 들어봤어? 청산지주 관 노야가 바로 우리 주인이야. 우리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가씨 같은 사람이 밖에서 고생하는 걸 보면 도와주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야. 우리는 절대 나쁜 짓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아니고, 아가씨가 원하면 시녀가 되게 해줄 수도 있어.”

    구염상은 돌연 웃고 싶었다.

    ‘내 이마에 ‘바보’라고 쓰여 있기라도 한 거야? 세상에 어떤 시녀가 한 달에 은자를 한 닢이나 받아?’

    구염상의 안색괴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한 번 더 말하겠는데, 저는 필요 없으니 가셔도 돼요. 한 번만 더 저랑 협상을 하려고 하면 소리를 지를 거예요.”

    말을 마친 구염상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봉익을 가리켰다. 미소를 거둔 늙은이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봉익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이 사리분별을 못하는 계집에게 본때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냉소하는 구염상의 말투 역시 친절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보통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사람은 다 죽었어요. 사람을 쳐다볼 때 좀 신중해지는 게 좋겠어요.”

    경직된 늙은이가 돌연 귀신을 본 것처럼 얼굴에 때가 덕지덕지 묻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못 믿겠어요?”

    담담한 말투로 구염상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어차피 당신은 이 거리를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구염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염황의 주먹이 늙은이의 얼굴에 꽂혔다. 구염황은 순식간에 구염상 앞에 있던 사내 다섯 명을 발로 차 엎어 버렸다. 곱사등이의 목을 밟고 있는 그의 눈빛은 서리처럼 싸늘했다.

    “상아, 이놈이 네 귀를 더럽히는 말을 한 것이냐?”

    구염상이 한숨을 쉬었다.

    “오라버니보다는 적게 했어요.”

    그러나 구염황은 영원히 그에게 필요한 말만 들을 사람이었다.

    “하긴 했다는 거군.”

    구염상은 돌아서서 자리를 피했다. 처량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구염상은 사정을 잘 아는 봉익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이미 떠난 모양이었다.

    구염상이 아는 봉익은 이런 사람이었다. 냉정하지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사람. 구염상은 과거 자신의 어떤 행동이 봉익으로 하여금 그가 신분도 잊은 채 자신의 소매 안에 물건을 넣게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구염상은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등 뒤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당시 봉익의 행동은 어느 정도 신분이 반영된 결과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오늘 봉익이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도 감히 그런 일은 하지 못했을 텐데…….’

    구염황은 손목을 돌리며 누이동생을 옆으로 끌어당겼다.

    “뭘 보고 있는 거야?”

    “하늘이 참 파래요.”

    “응, 어젯밤에 비가 와서 오늘 더 파랗네.”

    봉익은 자신이 왜 떠나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굳이 다가가 태자에게 인사를 하거나 공주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두 오누이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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