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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399)화 (399/449)
  • 외전 구염상 2-22

    봉익의 어머니는 초조한 얼굴로 아들과 뜨뜻미지근한 표정의 남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노야,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보세요. 이게 어찌 된 일이에요? 정말로 우리 익이가 부마가 되어야 하는 건가요? 허면 어째요.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소식을 전하러 온 공공을 돌려보낸 봉 어사는 놀란 부인의 말에 순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요? 얼마나 많은 명문가에서 그 자리를 노리고 있는데, 그게 어찌 익이에게 쉬이 돌아가겠소. 공주가 혼기가 찼으니 폐하께서는 설령 방법이 지나치더라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오. 연경에서 폐하의 눈에 든 모든 명문가 자제들은 공주가 출가하기 전까지 혼인을 미뤄야 한다고 하오.”

    봉 부인은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걱정스럽던 마음은 어느 새 아들에 대한 불확실한 기대로 바뀌어 있었다.

    “노야, 허면 우리 익이가 부마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까?”

    “그야 당연하지. 그 부마 후보에 누가 올라 있는지 아시오?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에 전국 각지의 공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권씨 가문의 공자까지 올라 있다고 하오. 그러니 우리 익이에게 얼마나 희망이 있겠소?”

    남편의 말에 봉 부인은 어느 정도 실망을 금치 못했다.

    ‘우리 익이는 정말로 희망이 없는 걸까?’

    “그럼 어찌 폐하께서 사람까지 보내어 우리 익이도 대기하라고 하신 걸까요?”

    비록 대기하라는 말은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황제는 하나뿐인 딸을 끔찍이 아끼고 있었다. 그런 황제가 부마 선발을 위하여 공주에게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준다고 해도 감히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봉 어사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대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폐하께서 어찌 특별히 너를 언급하셨냔 말이다.”

    사실 봉 어사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상 공주에게 청혼을 한 인재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 또한 뛰어나지만 수많은 인재들과 겨룬다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니, 딱히 상 공주가 아들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봉익은 굳이 숨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오늘 상 공주와 태자를 만난 일을 털어놓았다. 말을 마친 봉익이 아버지의 의견을 구하려던 찰나, 갑자기 어머니가 전혀 관계없는 재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익아, 공주는 어떻더냐. 정말 그리 예쁘더냐?”

    봉 부인은 마치 아들이 답을 해 주기를 바라듯 간절한 눈빛으로 봉익을 바라보았다. 이에 봉익은 순간 경직되었지만 왠지 아버지 역시 흥미로운 듯 귀를 쫑긋 세우자 눈을 딱 감고 작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를 봉 부인이 보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예쁘다는 거니, 안 예쁘다는 거니?”

    항간에는 상 공주가 경국지색에, 어머니를 뛰어넘는 보기 드문 미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봉익은 아버지도 어머니와 같은 반응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더욱 크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기쁜 얼굴을 한 봉 부인이 흥미롭다는 듯 아들을 옆으로 끌어당겼다. 그녀가 길게 할 이야기가 있다는 듯 아들을 옆에 앉혔다.

    “공주는 어떻게 생겼니? 정말 달도 숨고 꽃도 부끄러워할 정도로 아름답니? 공주가 지나간 곳은 온갖 꽃이 만발하고 만물이 빛을 잃을 정도라던데 정말 그랬니? 눈도 정말 다색茶色이고?

    머리카락은? 공주는 머리카락을 흑진주처럼 관리한다고 하던데, 정말로 그리 아름답고 매끄럽니? 혹 평소 어떻게 머리카락을 관리하는지 물어보진 않았지? 진주일까 하수오일까? 아냐, 어쩌면 달걀 흰자일 수도 있겠어. 아니면 사람을 시켜서 두피를 주물러 주는 걸까? 그런 건 참 신기하던데, 혹시 공주…….”

    “됐소. 그렇게 많이 물어봐서 뭘 하오.”

    봉 어사는 아들의 안색이 좋지 않자 서둘러 부인을 제지했다.

    ”공주가 뭘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안다고 해도 어차피 지금은 공주처럼 될 수 없으니 어서 가서 음식이나 준비하시오. 쓸데없이 아이를 들볶지 말고.”

    “제가 뭘 또 쓸데없이 들볶습니까? 궁금해서 그러지요.”

    그러나 봉 부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부자끼리 이야기 나누시지요. 저는 식사나 준비하러 가 보겠습니다. 누가 듣고 싶대요?”

    봉 부인은 남편에게 불만이 생긴 듯 차갑게 흥 소리를 내며 방을 나갔다.

    아들과 둘만 남자 봉 어사는 조금 전까지 부드러웠던 표정을 바꾸어 보다 엄숙한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멍해졌던 봉익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장담하건대, 공주는 저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 상 공주의 눈이 지나치게 반짝이지 않았다면 봉익 역시 아버지처럼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을 거라 의심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들의 말을 들은 봉 어사는 실망한 것인지 안심한 것인지 모를 얼굴로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몸을 돌려 자리에 앉은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상 공주는 하늘이 내린 황손이지. 성품 또한 단정하고 흠잡을 데가 없으니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겠지만, 황실에 공주가 한 명뿐이니…….”

    봉 어사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봉익은 아버지가 채 마치지 못 한 말의 뜻을 이해했다. 너무 귀한 것은,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봉익의 머리에 문득 자신을 쳐다보던 상 공주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강경하게 생각을 멈췄다. 표정이나 태도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저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

    * * *

    그릇에 담긴 마지막 생선 한 점을 먹은 구염상이 빙그레 웃으며 서풍엽의 어머니, 장소접庄小蝶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손맛이 점점 더 좋아지세요. 저희 외할머니께서도 항상 당신의 손맛을 과장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할머니의 손맛이 최고예요!”

    나이가 지긋해진 장소접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가까이에 있는 구염상의 작은 얼굴을 꼬집었다.

    “요 입 좀 보시게. 할미를 기쁘게 할 줄도 알고. 네 외할머니가 너를 위해 십 년 동안 배운 요리가 다 헛일이 되었구나. 만약 네 외할머니가 들었다면 당장 이 저택을 허물어 버렸을 게다.”

    “절대 외할머니가 모르시게 할게요.”

    서율瑞栗이 하하 웃으며 접시를 치우라고 분부했다.

    “공주가 오랜만에 우리집에 왔구나. 네 백부가 이번에 남쪽에 갔다가 좋은 물건들을 많이 가져왔는데, 할머니가 네게 주려고 모아 두었지. 할머니를 따라 가서 보려무나.”

    구염상의 눈이 즉시 반짝였다.

    “정말요? 백부, 할머니, 정말 감사해요.”

    그녀가 늦장을 부리는 장소접에게 애교를 부렸다.

    “할머니, 할머니, 배부르게 드신 거죠? 얼른 상아를 데리고 가서 선물을 보여주세요. 상아는 선물이 보고 싶어요.”

    더 이상 배가 고플 리가 없었다. 장소접은 손녀와 다름없는 구염상의 애교에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구염상을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구염황은 두 사람을 따라가려다 서율과 서풍엽이 눈을 크게 뜨자 바로 자리에 앉았다.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본 구염황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

    서율은 탄식하며 차를 올리라 일렀다. 정해진 대로 서풍엽이 장서열과 혼인했다면 지금 이 두 아이들은 바로 그의 친손주였을 것이다. 그때 그런 변고가 생기지만 않았다면…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었다.

    ‘이미 무슨 말을 해도 늦어버린 것을… 지나간 일은 지나가게 두어야지.’

    그나마 태자와 공주가 이 저택에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황제가 서풍엽을 인정한다는 뜻이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랫사람들이 몰래 간계를 꾸민다 해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능력이 없는데 왕위에 앉으려 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과 다름없었다.

    * * *

    칠흑 같은 밤, 봉씨 가문 후원의 한 켠에는 송씨 가문의 모녀가 초조한 기색으로 함께 앉아 있었다.

    송 부인은 봉 어사의 서출 누이동생으로, 남편이 죽은 뒤 시댁에서 배척당하자 적출 오라버니인 봉 어사에게 몸을 의탁했다. 봉 어사로서는 모든 성의를 다한 셈이었고, 송 부인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송 부인은 줄곧 딸을 봉익에게 시집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윗감이 부마 후보에 들어갈 줄이야! 봉익은 도련님이지 아가씨가 아니었다. 명문가 여식들이 입궁하여 후궁이 되길 기다린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공자들이 부마로 선발되기를 기다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황제는 공주의 명성은 생각지 않는 건가?’

    그러나 송 부인은 생각만 할 뿐 감히 이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심지어 어사인 오라버니도 감히 왈가왈부하지 못 하는 황실의 일을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 관여하겠는가. 목숨이 두 개가 아니라면 말이다.

    만약 황제의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송 부인 또한 그런 불손한 생각을 감히 하지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황제가 자신의 이익을 건드렸다 해도 감히 의견을 드러낼 수도, 심지어는 반항을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의미심장하게 딸의 손을 붙잡고, 속되지 않은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안타까워하는 일뿐이었다.

    “아니면… 차라리…….”

    송 부인의 머릿속에 갑자기 무언가가 번뜩였다.

    “익이의 사촌 동생이 너에게 잘해 줬던 기억이 나는데, 그렇다면…….”

    송미宋媚가 곧장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얼굴에는 억울한 기색이 가득했다.

    “어머니, 저는 그 사람은 싫어요. 저는……!”

    송 부인은 화를 내지 않고 다시 딸의 손을 잡았다.

    “이 어미도 네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안다. 하지만 더는 가능성이 없지 않느냐. 부마 선발을 기다리면 적어도 이 년 동안은 혼담을 꺼낼 수 없고, 공주가 혼인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못 해도 삼 년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이미 노처녀가 되어 있을 거고. 미야, 우리는 공주처럼 높은 신분이 아니라서 그렇게 시간을 쓸 수가 없단다.”

    어머니의 말이 송미의 마음을 건드렸다. 송미는 바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사촌 오라버니를 좋아했으며, 출신이 좋지 않았다. 비록 친척이라는 점에 기대어 다른 사람보다 더욱 자주 오라버니를 볼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자라면서는 일 년에 두 번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 날은 길에서 하인과 헤어지는 바람에 우연히 봉익을 마주친 것이었다. 송미는 하늘이 내린 기회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라버니는 여전히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 날도 ‘오라버니’라고 소리 내어 부르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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