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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398)화 (398/449)

외전 구염상 2-21

혼자 남겨진 구염황은 장바구니를 든 채 점점 인파가 늘어나는 시장에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구염황은 장을 볼 줄 몰랐다. 물론 그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멍청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하지만 누이동생이 먹을 음식이었기에 구염황은 순간적으로 강한 적과 맞닥뜨린 양 두뇌를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오이 한 근에 육 문이요! 아삭아삭 맛있어요. 배추는 칠 문입니다!”

“강낭콩 삼 문, 삼 문! 누르면 물이 나와요. 물 안 나오면 돈 안 받습니다. 절이고, 찌고, 볶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어요!”

“돼지! 돼지고기 팔아요!”

‘팔아요’라는 소리는 유난히 높고 길 뿐만 아니라 발음도 또렷하고 매끄러웠다.

구염황은 비록 금세 장을 보지는 못했지만 배우는 건 잘했다. 한 바퀴를 돌아 본 그는 다른 사람들이 어찌 물건을 사는지를 익혔다. 마찬가지로 몸을 쭈그리고 앉은 구염황은 감자는 노랗고 딱딱하며 싹이 나지 않은 것을 사야 하고, 두부는 물기가 많지 않고 하얀 것을 사야 하며, 오이는 잔가시가 있는 걸 골라야 한다는 걸 알아챘다. 생선은 당연히 살아 있는 걸 사야 했다.

분주한 생선 가게 앞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큰 생선 상자 안에서 싱싱한 생선들이 한 마리씩 팔려 나갔다. 한 마리씩 따로 팔 때마다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누이동생은 생선을 좋아했다.

구염황의 거대한 몸집이 수월하게 첫 번째 줄로 밀려났다. 그는 하마터면 앞에서 죽은 생선을 고르던 사람을 좌판 앞 생선 더미에 넘어뜨릴 뻔했다.

“뭐예요? 눈이 없어요? 밀긴 왜 밀어요! 사람이 또…….”

상대방의 흉악한 얼굴과 뚱뚱한 체격에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은 어린 시녀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다급히 정신을 차린 아이가 모시는 아가씨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난 괜찮아.”

부딪힌 아가씨는 그 틈을 타 재빨리 죽은 생선 한 마리를 잡았다. 뒤에서 자신을 민 사람을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

“사장님, 여기 있는 것들은 다 한 마리에 오 문이죠?”

“맞아요! 맞아! 죽은 건 다 오 문이에요. 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거라 아주 신선합니다! 오 문이요! 죽은 건 한 마리에 오 문, 살아 있는 건 한 근에 오 문입니다!”

“죽은 게 한 마리당 오 문이라고요? 정말요?”

“정말이죠! 써 놓은 거 못 봤어요? 어서 비켜요! 손님, 살아 있는 건 모두 바다에서 건져 올린 좋은 생선이에요. 가시가 적고 살이 많죠. 찌거나 튀기거나 마음대로 요리하세요!”

생선 가게 사장은 죽은 생선을 사는 사람은 옆으로 몰아낸 후, 잘 차려입은 몸으로 살아있는 생선 앞에 선 손님을 활짝 웃으며 바라보았다.

구염황은 죽은 생선 쪽으로 밀려나자 기분이 언짢아졌다. 사람이 많은 곳이기에 분명 신선한 생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고생스럽게 비집고 들어왔는데, 그저 생선이 싸기 때문이라니!

울적해진 구염황은 애써 인파를 뚫고 지나가야만 신선한 생선을 고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고귀한 머리를 숙인 그가 자신의 가슴팍에 닿을 정도로 작은 아가씨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조금 전에는 고의로 발을 밟은 게 아닙니다.”

이미 필요한 생선을 산 류씨 아가씨는 얼굴에 찬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죽은 지 며칠이나 된 수많은 생선 사이에서 정말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물고기를 골라냈기 때문이다.

오 문이라면 그야말로 거저였다. 이러한 기회 때문에 그녀는 앞다투어 물건을 고를 때 매번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에는 개의치 않았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류씨 아가씨는 상대방의 손에도 죽은 생선이 한 마리 들려 있는 것을 보았다. 상대의 옷차림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그녀는 그 역시 자신처럼 값싼 물건을 찾는 사람일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물고기는 색이 어둡고 칙칙한 데다 비늘도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심지어 층도 확실하지 않고, 아가미도 헐거웠다.

류씨 아가씨는 상대가 괜한 데 돈을 쓰는 걸 원치 않았기에 부리나케 말했다.

“이건 안 돼요. 부딪힌 것도 인연인데 제가 신선한 걸로 한 마리 골라 드릴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빠르게 몸을 돌린 후, 일순간 죽은 생선 더미에서 선명한 색에 반짝이는 비늘을 지닌 깔끔한 생선을 골라냈다.

류씨 아가씨는 생선이 구부러짐 없이 입을 꼭 다물고 있도록 생선 머리를 손으로 꽉 쥐었다. 그녀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걸로 사세요.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해요.”

구염황은 놀란 눈빛으로 친절하게 웃고 있는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계면쩍은 듯 아가씨의 손에 들린, 소위 신선하다는 죽은 생선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평온한 눈빛으로 그 생선을 받아 들지 않았다.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씨 아가씨는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상대방은 가난하지만 고집이 센 사람인지도 몰랐다. 부모님이 반드시 살아 있는 신선한 생선을 먹어야 한다거나, 혹은 아들을 낳은 부인에게 반드시 살아있는 걸 먹이고 싶다거나. 이럴 때면 가난한 사람들도 꼭 한 번은 가격에 상관없이 죽은 물고기를 버리고 살아있는 신선한 생선을 샀다. 이는 형편과 관계 없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류씨 아가씨는 상대가 왠지 후자의 상황에 놓여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왕 괜찮은 생선을 잡은 이상 다시 돌려놓기는 아쉬웠기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발을 구르며 오 문을 더 쓰게 되었다. 장자庄子(귀족이 궁벽한 시골 마을에 소유하고 있는 집)의 아주머니들에게 음식을 더 해 드릴 생각이었다.

한편, 구염황은 난처해졌다. 가진 은자가 부족했던 것이다. 구염황은 당장 자신의 암위에게 욕이라도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주인의 주머니에 겨우 이십 문만 넣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국고가 이 지경까지 궁핍해졌을 리도 없고!

생선 가게 주인은 행색이 가난한 아이가 꾸물거리며 돈도 내지 못 하자 별다른 말 없이 담아둔 생선을 즉시 검은 상자 안에 쏟아 버렸다. 뚱뚱하고 기골이 장대한 녀석이 더 이상 생선을 보지도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주인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이 가난한 소년은 한눈에 봐도 힘이 셌기에 혹시라도 생선을 들고 도망이라도 가 버리면 쫓아갈 수가 없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볼 수 있는 흔한 장면을 뒤로 한 주인은 곧 정성스럽게 다음 손님을 맞이했다. 난처해진 구염황은 일 문밖에 남지 않은 소맷부리를 만지작거리며 점점 안색을 굳혀갔다.

‘서풍엽! 장을 보게 시켜놓고 은자도 안 줘?’

마침 옆 가게에서 오이 두 개를 사 들고 돌아갈 준비를 하던 류씨 아가씨는 조금 전 그 덩치 큰 남자가 생선 가게 앞에서 밀려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손에는 여전히 생선이 없었다.

양 갈래 머리를 한 어린 시녀가 즉시 아가씨의 장바구니를 막으며 사나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가씨, 생선을 다른 사람에게 주시면 안 돼요!”

류씨 아가씨가 웃으며 어린 시녀의 양 갈래 머리를 튕기고 볼을 꼬집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어찌 힘들게 산 생선을 다른 사람에게 주겠어. 그런데 잠시만 기다려 봐.”

류씨 아가씨는 시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장바구니를 시녀에게 건네주었다.

다급히 몇 걸음 다가간 그녀가 허름한 옷차림에 발에 진흙을 묻힌 남자를 쫓았다. 그녀가 가볍게 구염황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잠시만요, 할 말이 있어요.”

고개를 돌린 구염황의 안색은 어두웠다. 깜짝 놀란 류씨 아가씨는 하마터면 그를 불러 세운 이유조차 잊을 뻔했다. 상대가 점점 귀찮게 여기는 듯하자 그녀가 서둘러 말을 꺼냈다.

“혹 은자가 부족하면 오 리 밖에 있는 류씨 가문의 장원에 와서 저를 찾으십시오. 저희 가문에서는 일 년 내내 일꾼을 구하고 있습니다. 좀 피곤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밥은 굶지 않을 테니까요.”

구염황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고 말투도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그는 서풍엽을 향한 증오심이 더 커지는 걸 느꼈지만 그렇다고 분별력을 잃지는 않았다. 아가씨는 좋은 마음인 게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찬란했던 류씨 아가씨의 미소가 순간적으로 경직됐다. 그녀는 다시 서둘러 뛰어갔다.

‘이 사람은 흉악하게 생겼으니 정원 관리에 제격일 것 같은데…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구나. 우연히 만났을 뿐이니 됐어.’

시녀에게로 달려간 류정헌柳靜軒은 다시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시녀와 담소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갔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그만큼 신경을 써 준 것만으로 충분했다.

* * *

서풍엽과 구염상이 찻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구염황이 장바구니를 발 밑에 내려놓았다. 먼저 오라버니를 발견한 구염상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

“오라버니, 여기예요! 얼마나 맛있는 걸 사 오셨어요? 백부께선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로 봐서 분명 오라버니가 아주 맛있는 걸 사오는 거라고 하셨어요!”

구염황은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풍엽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어마마마께서는 서풍엽을 천 번 만 번 뿌리치고, 서로 죽어도 왕래하지 말았어야 했다.

구염상은 장바구니를 뒤지며 놀라워했다.

“오라버니, 정말로 장을 봐 오셨네요? 다음에는 저도 같이 가요!”

“그러시지요.”

“안 돼!”

두 남자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서풍엽은 씁쓸한 표정으로 구염황을 바라보았다. 구염황의 성격은 아버지와 판에 박은 듯했다.

‘어쩐지 귀여운 구석이 없더라니.’

구염황은 아끼는 이를 제 시야 안에서 통제하는 걸 좋아했고, 도망칠까 두려운 양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구염황은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에 누이동생을 섣불리 돌아다니게 할 수 없었다. 생선이나 닭, 오리를 파는 사람들은 모두 손님 앞에서 거리낌없이 피를 보았다. 누이동생이 놀라기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만약 놀라지 않는다 해도, 울긋불긋한 피가 몸에 튀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날 것이다.

‘자기 딸이 아니니 아끼지 않는 거지! 소중한 나의 누이동생을, 무뢰배들이 섞여 있는 그런 곳에 드나들게 한다니 대체 무슨 속셈이야!’

서풍엽은 구염황과 논쟁하지 않았다. 의견이 충돌하자 과감히 입을 다문 그가 화제를 돌렸다.

“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가시지요.”

* * *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이날 봉씨 가문에는 매우 큰일이 벌어졌다. 황궁에서 봉씨 가문의 적장자를 부마 후보에 올리라 명하는 서신이 온 것이다.

막 집에 돌아온 봉익은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늘 상 공주를 만났고, 그녀의 눈빛에 왠지 모를 낯익은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절대 남녀 간의 연정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폐하께선 어찌 이런 명령을 내리신 걸까?’

잠시 생각하던 봉익은 깨달았다는 듯 즉시 쓴웃음을 지었다. 다들 황제 폐하께서 그리도 상 공주를 총애한다고 입을 모은 건 역시 거짓이 아니었다. 고작 한 번의 우연을 두고 황제는 공주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온실 속에서 자란 공주가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성품으로 자라지 않은 건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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