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395)화 (395/449)
  • 외전 구염상 2-18

    ‘여기서 파는 음식을 모두 본공주에게 한 가지씩 내오너라… 아, 이게 아니지.’

    구염상은 불쌍한 척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국수를 보던 그녀가 힘겹게 선택하며 말했다.

    “여기 혼돈餛飩 한 그릇 주세요.”

    주인의 눈에는 어렵게 밥 한 끼를 사먹는 가난한 남매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는 표정처럼 보였다.

    물론 매일같이 만나는 유형이었다. 세상살이가 힘든 탓에 가난한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었다.

    “오라버니는 뭘 먹고 싶어요?”

    구염상은 주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노점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만 빠져 있었다.

    구염황이 사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아. 너 많이 먹어.”

    ‘안 먹을 테면 관두라지. 어쨌든 오라버니는 자주 먹으니까.’

    구염상은 역시 남자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바마마는 자신과 비교하여 오라버니에게 보다 큰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즉시 사소한 슬픔을 잊어버린 구염상은 곧 맛보게 될 음식을 신나게 기다렸다.

    주인은 오라버니가 누이동생에게 참 잘해 주는구나 생각했다. 아까워서 못 먹는 음식을 누이동생만 먹이다니. 마음속 동정심이 더 커졌다.

    “어린 친구가 한나절 가까이 길을 걸었으니 힘들겠네. 자, 물 한 잔 더 주마. 혼돈은 곧 나올 테니 우선 물부터 마시면서 목이라도 좀 축여.”

    구염황이 고마워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구염상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오라버니를 바라보며 웃었다.

    구염황은 사랑스럽다는 듯 더러워지고 헝클어진 누이동생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만약 동생의 검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마치 피난민들이 사는 곳에서 기어 나온 꼴로 만들어 놓은 것을 들킨다면 어머니는 분명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했다. 구염황은 왠지 어깨가 으쓱했다.

    오라버니의 심술궂은 생각을 눈치채지 못한 구염상이 다양한 음식을 파는 노점을 훑어보았다. 손님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주 맛있는 게 분명했다.

    구염상이 달콤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맞은편 탁자에 잘 차려입은 손님들이 들어왔다. 남자 셋, 여자 둘의 기개는 범상치 않았다.

    시녀들은 주인을 위해 의자를 다시 한 번 닦고 나서야 아가씨들께 앉으라고 청했다. 남자들은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지만 뒤를 이어 들어온 하인들 역시 다급히 옷소매로 주인을 위해 의자를 닦아 주었다.

    두 여인은 구염상처럼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둘 중에서도 뒤에 선 아가씨는 왠지 불쌍한 표정이었고, 앞에 선 흥분한 아가씨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다 난생 처음 노점에서 음식을 먹게 되어 모든 게 신기한 것처럼 보였다.

    다급히 달려온 노점 주인은 세상에서 가장 공손해 보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는 듯 활짝 웃으며 이들을 응대했다. 연경 땅, 천자의 발 아래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이든 겪어 보지 못한 적이 없는 주인에게 귀족 아가씨와 공자들은 간혹 날로 먹는 경우가 있기는 해도 대부분 돈을 벌기에 좋았다. 특히나 이들은 권세를 믿고 방자하게 구는 것도 아닌 듯했기에 한몫 크게 벌 수 있는 게 분명했다. 주인은 기꺼이 공손히 굴었다.

    “도련님, 아가씨들께서는 어떤 음식을 주문하시겠어요?”

    산뜻한 차림의 아가씨가 구염상이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을 했다.

    “이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들은 하나씩 다 주세요.”

    천진난만한 말투에 반짝이는 눈빛은 구염상의 눈에 담긴 기대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마침 자리를 떠나려던 중년의 주인은 남색 비단 옷을 입은 공자가 허리에 보석띠를 찬 금포錦袍를 입은 남자에게 정성스레 차를 따르는 모습을 보았다.

    남자는 구염상을 등지고 있었기에 구염상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봉 공자, 이곳에서 이렇게 마주치다니요. 다들 이 집 우육면牛肉面(쇠고기면)이 일품이라고 했지만 봉 공자께서도 좋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참으로 우연이군요. 제 누이동생도 이 집 우육면을 좋아합니다.”

    언급된 ‘누이동생’은 조금 전 구염상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한 그 시원시원한 소녀였다. 소녀는 오라버니가 봉 공자에게 자신을 소개하자 수줍은 듯 미소 짓는 얼굴로 한껏 소녀 티를 드러냈다. 동시에 그녀는 단장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오라버니를 나무랐다.

    “누이동생에 대해 오라버니처럼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봉 오라버니께 웃음거리가 되겠어요.”

    이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소녀가 사근사근한 자태로 웃으며 주인이 찻주전자를 여러 차례 닦아 준 일을 언급했다. 그녀가 봉 공자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오라버니, 막 퇴청하셔서 목이 마르실 테니 좀 드세요.”

    부드러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사촌 오라버니 옆에 앉아 말은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산뜻한 차림의 소녀는 눈썹을 한 번 찌푸린 뒤, 봉 공자 옆에 앉은 소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경멸하는 듯한 시선이 스치고 지나갔다.

    구염상은 봉 공자 옆에 앉은 소녀의 신분이 그리 좋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봉 공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경멸하는 표정을 지을 리가 없었다.

    분명 소녀는 남에게 얹혀사는 처지이리라. 양친이 돌아가신 후 봉씨 가문에 얹혀 지내거나, 혹은 과부가 된 어머니가 시댁에서 궁지에 몰리자 딸을 데리고 봉씨 집안에 몸을 의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정도의 사연이 아니라면 산뜻한 차림의 소녀가 이 아가씨의 비위를 맞추기는커녕 대놓고 무시했을 리 없었다.

    마침내 혼돈이 나오자 구염황은 누이동생에게 빨리 먹으라고 권했다.

    “식으면 맛이 없어. 이런 음식들은 따뜻할 때 먹어야 해.”

    구염상의 시선이 순식간에 탁자 위로 향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을 보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

    음식이 나오는 소리에 봉 공자에게 아첨을 하던 소년이 무심코 옆 탁자를 쳐다보다 순간 소녀의 웃는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병색이 완연했고, 옷차림도 고상하지 않았다. 이곳저곳 헝겊 조각을 기운 자국과 거칠고 누런 머리카락은 딱 봐도 오랫동안 병상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환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 소녀의 모습이 소년의 눈에는 이상하게도 아름다워 보였다. 소년은 기이한 생각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설마 봉 공자를 만난 게 지나치게 기뻐서 눈이 어떻게 됐나?’

    구염황이 즉시 눈을 부릅뜨고 소년을 노려보았다.

    소년은 순간 뜨끔했지만 즉시 이성을 되찾았다. 그가 뜨끔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다시 소녀와 함께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누이동생을 바라보는 모습은 보통의 농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바짓가랑이에 남아 있는 흙을 보며 그가 쓸데없는 생각을 했음에 스스로를 비웃었다.

    소년의 눈빛이 다시 밥을 먹는 소녀에게 머물렀다. 놀랍게도 이 아가씨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을 보아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다.

    산뜻한 옷차림의 소녀는 오라버니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기분 나쁜 표정으로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을 똑같이 쳐다보았다. 촌스러운 얼굴에 키가 큰 뚱보를 한 번 쳐다본 그녀의 시선이 곧 구염상에게로 향했다. 즉시 적의가 치밀어 올랐다.

    소녀는 기분이 나쁜 듯 오라버니의 주의를 돌려놓으려 했다.

    “오라버니, 뭐 볼 게 있다고 그래요? 그저 시골 사람들일 뿐이잖아요.”

    이윽고 소녀가 고개를 돌려 봉 공자를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공자께서는 평소 집에 돌아가실 때 이쪽 길로 가시나요?”

    이 말에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던 소녀가 순간 의아하다는 듯 질문을 한 소녀를 쳐다보았다. 마치 실례되는 말이라도 했다는 태도였다. 다시 빠르게 고개를 숙인 소녀는 봉 공자의 옆에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급히 시선을 거둔 소년이 누이동생을 매섭게 쳐다보았다. 산뜻한 옷차림의 소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저 질문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소년은 미동도 하지 않는 봉 공자에게 사죄했다.

    “누이동생이 철이 없어 무례를 범했습니다. 공자께서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산뜻한 옷차림의 소녀는 기분이 나쁜 듯 속으로 투덜거렸다.

    ‘내가 잠복이라도 할까 봐? 그저 길을 물어봤을 뿐인데 사과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한편, 옆 탁자에서 구염상은 혼돈을 한 숟가락 가득 담아 오라버니의 입가에 가져갔다.

    “오라버니도 먹어 보세요.”

    과분한 대우에 놀란 구염황이 즉시 혼돈을 한 입에 삼켰다. 웃느라 실눈이 된 그가 계속해 고개를 끄덕이며 어딘지 모호하게 말했다.

    “음… 맛있네.”

    누이동생이 주는 음식이 맛이 없을 수는 없었다. 구염상 역시 서둘러 한 입을 먹었다.

    “정말 맛있어요. 우리 나중에 와서 또 먹을까요?”

    구염상은 고개를 숙인 채 숟가락에 담긴 뜨거운 혼돈을 후후 불었다.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퍼졌다.

    구염황의 표정이 즉시 일그러졌다.

    ‘또 먹긴 뭘 먹어, 맛도 없는데!’

    누이동생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어쩌다 한 번 먹은 것일 뿐, 자주 먹을 음식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이러한 두 남매의 모습은 누이동생의 식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오라버니가 기대에 가득 찬 누이동생에게 원하는 만큼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걸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처럼 보였다.

    큰 눈으로 이를 힐끗 바라본 산뜻한 옷차림의 소녀가 경멸하듯 말했다.

    “혼돈 한 번 못 먹어본 것처럼 서로 먹여 주고 받아먹다니 정말 구역질이 나요. 혼돈 한 그릇에 저렇게 기뻐할 필요가 있나요? 주인장! 우리 국수는 아직 멀었어요?”

    입안에 넣은 혼돈을 채 삼키지도 못한 채 구염상이 잽싸게 탁자 밑으로 오라버니의 손을 눌렀다. 다급히 오라버니를 쳐다본 그녀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입에 든 뜨거운 혼돈을 식혔다.

    “빨리… 먹기나 해요. 얼른…….”

    “알았어. 알았으니까 어서 먹어. 두리번거리다 또 혀를 델라.”

    구염황은 이보다 더 깨끗할 수 없는 손수건을 꺼내어 누이동생의 입을 닦아 주었다. 그는 입방아를 찧는 소녀에게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봉 공자의 옆에서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던 소녀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그리 말씀하지 마시어요. 저 남매도 쉽지 않을 거예요. 어린 소녀가 아파 보이는데, 그렇다면 모아둔 돈을 다 썼겠지요. 저들에게는 혼돈 한 그릇이나마 먹을 수 있는 게 감격스러울 테니 그만큼 소중할 밖에요.”

    소년이 바로 대답했다.

    “과연 아가씨의 말이 일리가 있군요. 제 누이동생이 경솔해서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주인장! 옆 탁자에 혼돈 두 그릇을 더 주시오. 돈은 우리가 내겠소.”

    소년은 낭패스러운 표정을 짓는 태자의 탁자를 가리켰다. 그는 미련이 남은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혼돈을 먹고 있는 소녀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저 아가씨는 정말 예쁘구나. 아무리 연경의 좋은 산과 물을 다 써도 저렇게 수려한 여인을 키워 내지는 못할 거야.’

    구염황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누이동생과 관련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