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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388)화 (388/449)
  • 외전 구염상 2-11

    오랫동안 남자를 쳐다보던 구염상이 만두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에게 머물러 있었다. 조금 전 그녀는 남자가 은자를 지불하는 장면을 보았다.

    만두 하나를 덥석 집어 든 구염황이 두 손을 번갈아가며 뜨거운 만두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묘기에 가깝게 만두를 한 입에 다 먹어 치웠다.

    잠시 오라버니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구염상은 이내 다시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오라버니야 투실투실한 살가죽 덕에 뜨거운 걸 잘 견딜 뿐이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시위는 주인들이 음식을 다 먹은 후에야 비로소 몸을 일으켜 찜통을 돌려준 뒤, 다시 공손하게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생각 없이 박수를 친 구염황은 기름이 묻어 번지르르한 손으로 누이동생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를 쑤셨다.

    “가자.”

    하지만 구염상은 줄곧 넋이 나간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를 따라오는 자들은 혹시 일등공일까? 일등공은 번개 같이 나타났다 구름처럼 사라지면서, 천하를 마음대로 누빈다던데……. 게다가 일등공은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고.’

    구염황이 의아한 표정으로 누이동생을 쳐다보았다.

    “왜 계속 저들을 쳐다보고 있는 거야?”

    구염상이 빙긋 웃어 보였다.

    “대단한 것 같아서요.”

    “그야 당연하지. 아바마마께서 일부러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붙여 준 사람들이니까. 조금 전 그자는 네가 태어날 때부터 너를 따라 다녔어.”

    구염황은 아버지가 동생이 태어난 지 만 한 달이 되던 날 누이동생에게 시위를 붙여 줬다는 사실을 아버지께 직접 전해 들었다. 그는 두 살이 되어서야 얻은 시위였으니, 아버지는 편애를 하시는 게 분명했다.

    깜짝 놀란 구염상이 멍하니 그 자리에 섰다.

    “그러니까… 지금 오라버니 말은… 저 사람이 줄곧 저, 저를 쫓아다녔다는 거예요……?”

    “계속 따라다녔지. 옆에 사람이 있으면 그림자처럼 숨어 있고, 지금처럼 옆에 사람이 없으면 나타나서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거야.”

    구염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럼 목욕을 할 때도요?”

    구염황이 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생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당연하지.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안전을 지켜 줘야 하니까. 우리는 아바마마께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일 뿐만 아니라 애지중지하는 자식이잖아. 우리의 안전이 곧 주국의 미래니까, 저들에게도 반드시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거야.”

    순간 구염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하…….”

    참으로 깊은 깨달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내가 침대에서 뒹굴며 혼자 하는 말까지 다 들은 걸까? 내가 슬피 울며 ‘그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른 것도? 나를 뭐라 생각했을까……. 대체 옆에 누군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왜 아무도 알려 주지 않은 거야!’

    구염상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곳곳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초 전까지 득의양양했던 스스로의 모습에 울고, 총명하지도 않은 주제에 스스로 똑똑하다 여긴 스스로를 향해 웃었다.

    누이동생의 마음을 꿈에도 헤아리지 못한 구염황이 득의양양하게 다가와 말했다.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이야! 부르면 언제든지 바로 나타나거든. 평소에 잠도 안 자는 걸까? 못 믿겠으면 돌아가서 한 번 해 봐. 큰일을 보러 갈 때도 불러낼 수 있다니까!”

    구염상은 위풍당당한 오라버니를 쳐다보며 자신도 똑같이 당당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국의 미래를 위해, 별일 아닌 이런 사소한 일들은 따지지 않아야…….

    “오라버니… 저들이 아바마마께서 저희에게 붙여 준 사람이라고 했죠? 그럼 저들은 우리 사람이니, 우리 말만 듣겠죠?”

    “당연하지. 안 그럼 어찌 저들이 우리 것일 수 있겠어?”

    ‘저 사람들은 물건이 아니라고!’

    아무래도 구염황은 일등공의 ‘공’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듯했다.

    ‘바보 같은 오라버니!’

    하지만 어차피 천하가 곧 오라버니의 것이 될 테니, 알든 모르든 상관없을 터였다.

    구염상은 즉시 난감했던 마음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등 뒤에서 줄곧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소나무처럼 우뚝 솟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흥분한 그녀가 오라버니의 손을 풀고, 팔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저 사람이 저를 어깨에 올린 채로 걸어갔음 좋겠어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염상은 편안히 사내의 어깨에 안착했다. 시야가 넓어진 그녀가 뭇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사람은 내 사람이야, 진정한 내 사람.’

    물론 과거에도 자신을 보필하는 암위暗衛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과 달리 그들은 한낱 암위일 뿐, 결코 아바마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일등공’이 아니었다.

    일등공 암위는 보통의 암위들과 달랐다. 이들과는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게 해 주고, 누구든 때리고 싶으면 때릴 수 있게 해 주는 존재. 그녀는 혹시라도 위험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신난다!’

    손을 높이 치켜든 구염상이 시위의 어깨 위에서 신나게 환호했다. 이를 본 구염황 역시 자신의 시위를 귀찮게 하면서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구염상이 즉시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안 돼요! 오라버니는 너무 뚱뚱해서 자칫 잘못하면……!”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염황은 이미 시위의 어깨에 올라가 있었다. 시위는 눈에 핏발을 세우기는커녕 숨 한 번 헐떡이지 않고 길을 걸었다.

    구염상은 눈을 깜박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오라버니, 우리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겨뤄 볼까요? 지는 사람이… 가서 아바마마께 붙어 있는 거예요! 어때요?”

    잠시 생각하던 구염황이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출발!”

    * * *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놀다 지친 구염상은 시위의 품 안에 웅크린 채, 졸려서 가물가물한 눈으로 집에 돌아왔다.

    구염황은 너무 뚱뚱한 데다 시위를 괴롭힐 만큼 바보는 아니었기에, 시위의 손을 잡은 채 궁으로 돌아오며 다 먹어치우지 못한 홍소육紅燒肉을 아쉬워할 따름이었다.

    ‘궁으로 돌아가면 먹을 수 없을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싸 가지고 올 걸.’

    막 황궁에서 나오던 현천기는 저 멀리 큰길에서 두 주인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잠시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쉰 그가 눈을 치켜 뜬 뒤, 몸을 돌려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한쪽에 무릎을 꿇은 채 어린 두 주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몹시 피곤했던 구염상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길 한 켠에 무릎을 꿇고 있는, 커다란 권력을 손에 쥔 남자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먼지가 되어서도 잊을 수 없는 자였다. 현씨 가문의 은밀하고도 자랑스러운 자손이자 부황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칼 한 자루. 현천기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일가견이 있었으며, 교활하고 수단이 악랄하여 일처리에 결코 여지를 남기지 않았고, 권력을 위해서면 무슨 일이든 했다.

    심지어 그는 과거 중병에 걸렸던 헌원가와 혼인했는데, 이는 모두 그의 계략이었으며 외부에 알려졌던 그의 부인만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 역시 꾸며 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구염상이 진짜로 잊을 수 없는 건 황후를 탄핵했던 그의 상소문 한 장과, 그 후에 낙정하석落井下石으로 자신에게 벌였던 악랄한 행동들이었다. 이는 현천기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철저하게 해치운 것이었다.

    금비와 영합한 현천기는 구염상을 제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문득 아득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아버지처럼 분장하여 자신을 속여 밖으로 나가게 했던 일. 만약 그때 갑자기 몸이 아프지만 않았다면 현천기의 미간을 스친 짜증스런 모습에 단박에 그가 가짜라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느낀 현천기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다가 인형처럼 귀여운 얼굴을 마주했다.

    구염상은 비록 아직 어렸으나 미인이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현천기는 자신을 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공주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입술을 올리며 웃어 보였다.

    갑자기 구염상이 입을 삐죽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예상치 못한 청천벽력에 현천기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렇게 보기 흉한가? 분명 오늘은 보기 좋은 가면을 쓰고 궁에 들어왔는데!

    게다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공주가 울었다는 걸 알면 분명 황제는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웃지 않았을 텐데…….

    누이동생이 울자 구염황이 그 즉시 원흉을 노려보았다. 돌연 허리띠를 푼 그가 현천기의 목을 조르기 위해 달려들었다.

    현천기는 쏜살같이 달아났다. 달아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태자는 바보 같은 얼굴과 달리 황제보다도 더욱 일처리가 매서웠다. 현천기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죽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어차피 죽어도 동정해 줄 사람이 없는 몸이었다.

    현천기는 과감하게 달아났다.

    구염상은 나는 것처럼 빠르게 달아나는 현천기를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역시나 현천기는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빠져나갈 틈새를 찾는 자였다.

    구염황은 부질없는 경쟁을 뒤로한 채 매서운 눈초리로 멀리 달아나는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곧장 시위에게 몸을 굽히라고 손짓한 그가 작은 목소리로 누이동생을 위로해 주었다.

    * * *

    구염락이 장서열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던 순간, 밤새 돌아오지 않아야 할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염락은 딸에게 어떠한 눈치도 주지 않고 곧장 아들을 노려보며 고고한 태도로 옆에 높인 차를 음미했다. 장서열은 아무 내색 없이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왕 마마에게 두 전하를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분부했다.

    “오늘은 어찌 이리 일찍 왔니?”

    아버지의 눈총에 잠시 움츠러들었던 구염황은 어머니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밖에서 누이동생을 잡아당기던 난폭한 기세가 사라진 아이는 영락없는 천덕꾸러기였다.

    “상아가 피곤해해서요.”

    몸을 숙인 장서열이 미소를 지으며 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피곤하지? 궁 밖은 재미있었고? 얼른 저녁 먹고 가서 자거라.”

    어머니의 말에 순간 조금 전 불쾌했던 일이 떠오른 구염황이 서둘러 동생을 대신해 일러바쳤다.

    “어마마마, 조금 전 밖에서 현 대인을 만났습니다. 현 대인이 상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바람에 상아가 울었어요.”

    순간 여유롭게 차를 마시던 구염락의 모든 세포가 사납게 곤두섰다.

    “현천기가 상아를 울렸다는 것이냐? 고의로?”

    구염황은 순간 본능적으로 위축되었지만, 곧 정의로운 태도로 꿋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바마마. 현 대인이 공연히 상아를 보고 웃는 바람에 상아가 울었습니다.”

    쿵!

    거칠게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은 구염락이 곧장 일어섰다.

    “할 일이 생각나서 전전에 가 있을 테니, 식사를 마치면 가서 자라고 해.”

    구염락은 곁눈질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굳이 상대하기 귀찮았던 장서열은 음식이 다 차려지자 두 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했다.

    가장 공포스러운 사람이 사라진 뒤, 두 아이는 지나치게 조심하던 태도를 버리고 활발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음식을 먹으며 시중을 드는 사람에게 이것을 집어 달라, 저것을 집어 달라 조르며 식사 예절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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