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구염상 2-10
경악하여 주위를 한 번 훑어본 구염상이 즉시 등 뒤에 선 무표정한 시위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두 시위가 여전히 같은 얼굴로 미동도 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더욱 경악스러웠다.
시위들은 마마에게 시시비비도 배우지 않은 게 분명했다. 평소 궁에서 극도로 긴장을 유지하는 오라버니가 궁 밖에서 이렇게 사나운 사람이 될 줄이야.
구염상은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했다. 그녀는 얼른 오라버니를 뜯어말려야 할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지려면 은자를 지불해야 한다는 걸 알려 줘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지나치게 성숙해 보이지 않을까? 만일 오라버니가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고민에 휩싸인 구염상은 총명하던 자신이 언제부터 이런 문제도 하나 해결하지 못 하게 되었는지 몰라 우스웠다.
‘오라버니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불량배’라고 부르는 거라고, 볼썽사납다고 알려 줘야 하나?’
노인 역시 깜짝 놀랐다. 어린아이 둘과 그들 뒤에 선 시위들을 번갈아 바라본 노인이 두 손으로 토끼 가면을 받쳐 들고 시원한 기세로 통통한 손님에게 내밀었다.
“도련님께서 좋아해 주시니 저의 영광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오라버니가 내민 토끼 가면을 바라본 구염상은 자신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노인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노인은 이런 일에 정통한 늙은 여우였다. 구염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태자가 호방한 기세로 손을 흔들었다.
“가자! 하여튼 여자아이들은 귀찮다니까. 걷다가 쉬다가, 보이는 건 다 좋아하고.”
구염상은 억울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토끼 가면을 쳐다본 건 그저 가면을 파는 가판대가 다른 노점의 것과 다르기에 쳐다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오라버니가 가서 거드름을 피운 게 결국에는 토끼 한 마리 때문이었다니!
‘귀찮은 건 나라고! 걷다가 쉬다가 하는 것도 내가 아니고!’
게다가 구염상은 창피해서라도 이 토끼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오라버니가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구염상은 자신이 미래의 저군을 교육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음을 깨달았다. 만일 오라버니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작고 하얀 손을 내밀어 오라버니의 소매를 잡아당긴 구염상이 쭈뼛쭈뼛하며 말했다.
“오라버니… 조금 전 오라버니의 행동이 꼭 연극에서 권력을 믿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던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
누이동생의 말에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있던 구염황이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아, 몰랐는데 너 관찰력이 좋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니! 맞다 맞아, 역시 내 누이동생이야.”
구염상은 부끄러워 얼굴에 진땀이 났다.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잡혔잖아요. 만약 우리도 잡히면요?”
“그럴 리가 없잖아.”
구염상은 구염황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말 속에 숨은 뜻조차 헤아리지 못하자 당장이라도 오라버니를 아버지 앞에 끌고 가지 못 하는 게 한스러웠다. 그때도 감히 날뛸 수 있는지 봐야 하는데!
구염상은 다시 한 번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오라버니를 올려다보았다. 더 열심히 가르치는 수밖에 없었다.
“연극에서 그런 짓은 속이고 빼앗는 거라고, 아주 나쁜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어요.”
“응, 우리는 지금 나쁜 사람이야.”
구염황은 이제야 겨우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누이동생을 동정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진 구염상이 아예 길에 멈춰선 채 아주 강경하게 말했다.
“저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어마마마께서 저는 귀여운 보배라고 했어요! 저는 보배예요, 보배가 될 거라고요! 하지만 나쁜 짓을 하면 잡혀 갈 텐데……. 잡혀 가면 오라버니랑 어마마마도 보지 못한다고요……. 흑흑, 저는 싫어요. 싫어요…….”
구염황은 누이동생의 눈물에 매우 마음이 아팠다. 그는 동생에게 다가가 끈기 있게 타이르려 했지만 구염상은 듣지 않았고, 그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만 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울지 마!”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구염황이 동생의 토끼를 빼앗았다.
“나만 나쁜 사람이 되면 될 거 아니야!”
구염상은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생각한 대답은 ‘그럼 토끼를 다시 돌려주고, 지금부터 귀여운 보배가 되자!’였다.
‘구염황! 그동안 책은 다 어디로 읽은 거야? 권서함은 대체 태자를 어떻게 가르친 거냐고!’
“하지만 상아는 오라버니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싫어요…….”
구염상은 정말이지 피곤했다.
구염황은 아무 말 없이 눈물을 글썽이는 누이동생과, 마음에 쏙 든 토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입을 오므리던 그는 결국 토끼를 노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노인은 어린 두 녀석이 다시 뒤에 무표정한 시위들까지 데리고 돌아오자 순간 깜짝 놀랐다.
“맘에 들지 않으신다면 소인이 한 개를 더 드리겠습니다.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이건 모두 도련님께 드리려고 둔 것입니다요.”
구염황이 희망에 찬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안타깝게도 그의 눈은 아무리 크게 떠도 가느다란 선일 뿐이었다.
노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정말이고말고요! 도련님께 이것들을 다 드릴 수 있는 건 소인의 영광입니다. 아주 크나큰 영광이니 도련님께서 꼭 소인을 도와주십시오. 소인이 이 영광을 자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워진 구염황이 난처하다는 듯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누이동생을 보았다. 마치 꼭 주겠다고 하니,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양.
노인을 한 번 쳐다본 구염상이 곧이어 말했다.
“오라버니, 우리 저쪽으로 가서 놀아요.”
구염황은 누이동생이 더는 토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자 즉시 가면을 허리에 찔러 넣은 채 누이동생의 발걸음을 쫓았다.
마침내 네 사람이 사라지자 비로소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노인은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구염상은 그리 올곧지도,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입바른 말을 고집할 생각도 없었다. 노인이 저렇게 나온다면 그녀 역시 괜한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에 다시 나오면 은자를 주자.’
“그런데 오라버니, 대체 왜 그런 방식을 쓰는 거예요?”
‘대체 누가 이렇게 가르친 건지 알아내서 목이라도 베어야겠어!’
구염황이 거만하게 답했다.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사내란 원래 이렇게 물건을 얻는 거야.”
“그런데 저는 아바마마께서 이렇게 하시는 걸 본 적이 없는데요?”
이쯤 되면 구염황의 스승은 권서함이 아니라 도적떼여야 했다.
구염황이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니 정말로 아바마마는 이런 적이 없었다.
갑자기 토끼를 꺼내든 구염황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를 뒤쪽에 있는 시위에게 건넸다.
‘이러면 괜찮겠지? 아바마마도 이렇게 하시니까.’
뒤에 선 시위들을 바라본 구염상은 다시 말없이 고개를 돌린 채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며 걸었다.
* * *
“어이! 꼬마 아가씨, 길을 잃은 거야? 삼촌이 가족을 찾아줄까?”
구염황은 인파 속을 뚫고 들어간 도박판 앞에서 ‘대장군 필승!’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구염상은 멀지 않은 곳에서 오라버니를 보호하는 동시에 줄곧 자신을 지켜보는 시위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꼬마 아가씨, 꼬마 아가씨! 내가 한 말 들었지?”
옹졸한 얼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죄다 귀뚜라미 싸움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몰래 이 귀여운 여자아이를 골목 뒤쪽으로 데리고 갈 속셈이었다.
구염상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쉰 그녀가 그의 슬픈 운명을 가엾게 여기며, 하루 한 번 선행을 실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고맙지만 저희 집 하인이 왔으니 그냥 가셔도 됩니다.”
구염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즉시 그녀의 팔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막 손을 펼치던 순간, 갑자기 팔이 빠지는 느낌에 그는 공포에 질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 했다. 순식간에 눈앞이 깜깜해졌고,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위는 무표정한 얼굴로 재빠르게 끊어진 팔과 시체를 들어 올려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이 모든 과정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구염상은 온몸이 경직된 채로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녀의 흐리멍덩한 눈은 무표정한 시위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태자 옆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그대로였다. 시위는 계속해 등으로 주위 인파들을 막은 채, 여전히 구염상 주변의 동태를 뚫어지게 살피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린 구염상이 쪼그리고 앉아 개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입가가 떨리는 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러다 기절을 한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버지는 두 아이들에게 잘했다. 응석받이로 키우지도, 방관하지도 않으면서 또 너무 엄격하게 가르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그저 자식들을 자신의 보호 아래 두고, 자신이 다스리는 천태만상을 보여 주며 가장 못난 황자와 공주로 자라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구염상은 갑자기 울고 싶었다. 네 살 먹은 아이에게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보게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것이 맞나? 이렇게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굴면 자신 역시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아이의 정신만 이상해지지 않겠는가!
구염상은 답답한 기분으로 오래도록 생각했다. 개미가 아주 조금 걸음을 뗄 때까지도 그녀는 아버지의 이런 과보호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박판을 보다 지겨워진 구염황은 그제야 한쪽에 내팽개쳐 둔 누이동생이 떠올랐다. 아이는 동생을 끌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걸으며 흥분한 목소리로 조금 전 보았던 ‘대장군’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했다.
“대장군 다리가 얼마나 힘이 센지 못 봤지? 한 번에 다리를 걸고 올라가서 상대방을 뒤집어 버려! 정말 대단해! 나도 어마마마께 한 마리 사달라고 할 거야!”
“지금 사서 돌아가면 되잖아요.”
구염상은 미심쩍은 눈으로 뒤에 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태자가 좋아하면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빼앗아 와야 하는 것 아닌가?
의기소침해진 구염황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헤헤, 오늘은 급하게 나와서 은자를 가지고 오는 걸 깜박했지 뭐야.”
구염상은 문득 깨달았다.
‘왜 건달처럼 구나 했더니, 다 은자가 없어서 그랬던 거군. 아무리 그래도…….’
구염상의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다시 두 시위에게로 향했다.
‘저들은 있겠지?’
구염상이 망설임 없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가서 만두를 사 와.”
“예.”
잠시 후, 따끈한 찐만두 한 통이 공손하게 그녀의 손에 놓였다. 남자는 두 손으로 뜨거운 대나무 찜통을 받친 채 한쪽 무릎을 땅에 꿇고 주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 숙인 그의 얼굴에는 마치 아주 평범한 예를 갖춘다는 듯,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