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384)화 (384/449)
  • 외전 구염상 2-7

    구염상은 자기도 모르게 소 미인을 보고 웃어 보였다. 깜박 잊었다. 만약 자신이 울기라도 한다면 여기 모인 후궁들은 전부 신형사에 끌려가야 했다. 이게 어디 노는 행위란 말인가? 후궁들은 아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내게 무슨 자격이 있다고 이렇게 한창 때인 여인들에게 이토록 과분한 대우를 받는 걸까? 후궁들을 정말 이대로 여기에 가두어 두어도 괜찮은 걸까?’

    그러나 소청청은 한 번도 이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황궁이 좋았다. 풍족한 음식에 신나게 놀기도 하다가, 일이 없을 때면 본가에 돌아갈 수도 있었다.

    누군가가 감히 사가의 어머니를 화나게 하면 소청청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마음껏 때렸다. 그러다 손이 아프면 황궁에서 따라나온 마마들이 즉시 나섰다. 마마들은 힘이 셌기에 특히나 아주 유용했다.

    소청청이 매번 집에 들렀다 환궁할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반드시 착실하게 황제 폐하를 잘 모셔야 한다고 재삼 당부했다. 소청청 역시 어머니 말씀을 새겨듣고 아우와 어머니의 평안을 위해 황후와 공주, 태자를 잘 모시는 데 최선을 다했다.

    부끄럽게도 사실 소청청이 공주에게 헌신하는 건 결코 순수한 의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야만 큰오라버니에게 작은 직위라도 내려 주십사 황후께 청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는 큰오라버니가 가문에서 조금이나마 쓸모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주에게 잘 보이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기에 소청청은 실망하여 고개를 숙인 채, 곧 오빈의 처소를 찾을 상 공주의 명을 기다렸다.

    구염상이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금 연주가 듣고 싶은데, 할 수 있나요?”

    일순간 얼굴에 찬란한 웃음꽃을 피운 소청청이 흥분하며 말했다.

    “당연하지요! 당장 공주 전하를 위해 준비하겠습니다.”

    구염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그녀는 지금까지도 아첨하는 사람을 대할 때 구염황처럼 태연하고 거만한 표정을 짓지 못했다.

    구염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승격된 적이 없는 이 소 미인이 특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지나치게 깨끗한 것을 제외하면 다른 부족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오라버니의 말처럼, 너무 텅 빈 탓에 눈치가 하나도 없다 보니 오래 보면 식상해질 수도 있었다.

    그나마 황궁이 지금의 체계를 갖추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소 미인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구염상과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놀다 지친 구염상은 유모에게 안겨 조로전으로 돌아왔다. 대문에 들어서자 멀리서 딸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구염락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우리 공주가 또 여위었구나.”

    딸의 얼굴을 꼬집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보기 드문 자애로움이 넘쳤다.

    “짐이 주방 사람들에게 벌을 내려야겠다. 짐의 공주를 이렇게 여위게 하다니.”

    구염상이 굳은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녀는 어색하게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감히 그 말에 대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특히나 농담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아무 말이나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다.

    구염락은 자애롭게 딸의 등을 두드리며 전각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하, 우리 딸이 또 마음이 약해졌구나!”

    구염상은 얌전히 체념했다. 이 품에 안길 때는 어머니도 떠는데, 하물며 자신이야 오죽하겠는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기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 뿐, 자신이 천성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딸은 아니었다.

    딸이 어색해 하는 것과 관계없이 구염락은 무조건 많이 안아 주는 게 좋은 거라 생각했다. 특히 상아는 황아보다 더 귀여웠다. 그의 품에서 황아는 군인보다도 더욱 바르고 뻣뻣한 자세를 유지했기에 어떤 따뜻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열아, 우리 왔어.”

    짧게 대답을 마친 장서열은 계속 수를 놓았다. 삼 척쯤 되는 작품은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넘쳤다. 꽃을 그리는 나비는 구염상이 내년에 입을 춘삼春衫(봄에 입는 홑옷)으로, 장서열은 결코 옷을 짓는 데 소홀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품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후에야 비로소 구염상은 한숨을 돌렸다.

    “저는 옷을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구염상이 다시 돌아왔을 때, 구염락은 장서열에게 무엇을 하고 있냐고 귀찮게 굴고 있었다. 기분이 언짢아진 장서열은 구염락을 걷어찬 후,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

    이를 못 본 척한 구염상이 기쁘게 달려가 어머니의 뒤에 섰다. 고개를 숙인 그녀가 자수를 구경했다.

    “어마마마는 정말 솜씨가 좋아요. 저도 나중에 크면 배우고 싶어요.”

    사실 구염상은 손재주가 좋았다. 본래는 장서열에게 소질이 없었기에 그녀가 어머니의 속옷을 직접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저녁 식사 전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제 막 서책 한 권을 꺼내 들던 구염락은 딸의 말에 즉시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듯 말했다.

    “네가 그런 걸 배워서 뭐하려고. 꽃 구경을 하든 책을 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거라. 남 좋은 일은 절대 배울 필요 없다!”

    장서열이 눈을 크게 뜨고 구염락을 노려보았으나 구염락은 못 본 척 엄숙하게 구염상을 바라보았다.

    “알겠느냐?”

    구염락의 딸이 어찌 하찮은 남자 따위에게 옷을 만들어 주겠는가. 구염락에게는 세상에서 수를 놓는 일이 가장 쓸모가 없었다. 이는 그저 여인이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일일 뿐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서열이는 일 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옷을 만들어 주는 데 쓰고 있었다.

    구염락은 귀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딸이 장래에 웬 비루한 놈팽이를 위해 바느질하는 모습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딸에게 패기를 길러 주기 위해서라도 절대 배우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순간 중압감을 느낀 구염상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할 줄 모르는 것도 아니니 안 배우면 그만이었다.

    “아바마마, 오라버니는요?”

    ‘오라버니도 아바마마와 함께 와 있어야 할 텐데?’

    구염락이 조심스럽게 장서열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황아는 오늘 상소문을 하나 빠뜨린 데다 글자 다섯 개를 잘못 읽은 탓에 지금 기요처에서 상소문을 베끼고 있단다. 전부 다 베껴 쓴 후에야 돌아올 것이다.”

    놀란 구염상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아버지의 의아한 눈초리에 그녀는 즉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오라버니가 가여웠다.

    ‘상소문 전체를? 오라버니는 오늘 밤에도 못 오겠구나.’

    이럴 때마다 구염상은 아들로 태어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 몰랐다.

    * * *

    주씨 가문으로 향한 헌원상은 장인어른이 사당에 가둔 아내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딸과 연을 끊으라 말하는 장인어른의 뜻을 단칼에 거절하며, 자신에게 처는 오로지 사저 한 명뿐임을 분명히 밝혔다.

    깊이 한숨을 내쉰 주 태부는 사당에 갇힌 딸을 데리고 나와 헌원상에게 보내 주었다. 그는 한 번만 다시 가문을 욕보인다면 주씨 가문에 이런 딸은 없는 셈 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돌아가는 마차 안, 주소유는 헌원상의 품에 안겨 슬프게 울었다.

    “상공, 드디어 오셨군요. 나는… 나는 상공이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 줄 알았어요…….”

    주소유를 안은 헌원상이 한숨을 쉬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고생 많았소.”

    주 태부는 가문의 규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본가로 돌아간 아내는 이틀 동안 분명 많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으…….”

    주소유가 숨을 몰아쉬며 다급히 헌원상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쿡쿡 쑤시는 팔뚝을 감싼 그녀가 갑자기 더 크게 울었다.

    헌원상이 곧장 아내의 손을 잡아당겼다. 옷을 들어올리자 매를 맞아 팔뚝의 살이 터진 흔적이 드러났다.

    가슴이 철렁한 헌원상은 살며시 소매를 내려놓은 후, 혹시라도 아내의 몸에 있을지 모르는 상처를 피해 다시 그녀를 안아 주었다.

    “돌아가면 약을 발라 주겠소.”

    상공의 품속에서 주소유는 온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멀리서 아버지의 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헌원사사와 헌원사책은 감히 다가가지 못한 채 하인들과 함께 공손히 아버지를 기다렸다.

    올해 세 살이 된 장남 헌원사사는 마차에서 내리는 어머니를 보며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돌렸다. 비록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그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어머니가 떠난 지난 며칠 동안, 사람들은 더 이상 그가 가문을 이어받을 적장자가 아니라고 수군거렸다. 어린 주인이 더는 자신들을 부리지 못 하게 될 거라 여긴 이들은 헌원사책을 소홀히 대했고, 이로 인해 결국 헌원사책은 감기에 걸렸다. 헌원사사는 의원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지만 하인들은 입으로만 대답할 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헌원사사는 유모와 함께 과거에 쓰던 처방을 배워 아우의 열을 떨어뜨렸다. 다행히 아우의 명은 길었고, 무탈히 회복했다.

    두 아들의 얼굴을 본 주소유는 울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큰아들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준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안아 달라고 소리치는 둘째를 바라보았다. 순간 뭉클해진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잘해 보리라 다짐했다.

    주소유가 막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다짐도 잠시,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냘픈 여인을 목격한 후 평온했던 마음에 순식간에 사나운 파도가 몰아치는 걸 느꼈다. 주소유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저 여자가 어찌 여기 있는 것이냐!”

    놀라지 않은 헌원사사와 달리 헌원사책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가 전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아우를 달래주실 거라 믿었던 헌원사사는 평소와 달리 무서운 눈으로 금 이랑을 노려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엉엉 울고 있는 아우를 다급히 품에 안아 주었지만 그 역시 아직 어린 탓에 아우를 안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헌원사사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안달복달했다.

    잠시 뒤, 헌원상의 지시를 받은 유모가 다급히 두 아이를 안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미 주소유는 조금 전 스스로에게 다짐한 맹세조차 잊은 채였다. 그녀의 눈에는 오로지 멀지 않은 곳에서 불쌍한 척하는, 그리하여 곧장 물어 죽이고 싶은 여인만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겨우 다시 집에 돌아왔는데, 상공은 어찌하여 저 계집을 보게 하는 것인가! 대체 왜!’

    순간 헌원상의 차가운 눈빛이 금용을 향했다. 금용은 속으로 뜨끔했으나 어차피 목적을 달성했기에 가냘픈 자태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주소유는 남편의 눈빛은 미처 발견하지 못 한 채, 그저 몸을 돌리는 금용이 자신을 향해 입가에 아니꼬운 미소를 드러내는 모습만 보았다.

    가까운 곳에 있던 이 고고가 극도로 흥분하여 달려들려는 주소유를 즉시 막아섰다. 이 고고는 나리와 함께 부인을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막 집으로 돌아왔으니 부인은 절대 어떠한 문제도 일으켜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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