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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381)화 (381/449)
  • 외전 구염상 2-4

    두 사람 모두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상처가 심한 쪽은 금용이었다. 기세등등한 주소유에 의해 금용의 얼굴 반쪽은 손톱에 긁혀 더욱 심각해 보였다.

    그에 비해 주소유는 멀쩡한 축에 속했다. 비록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구겨진 옷에 흙이 묻어 있었지만 크게 불편한 곳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주소유는 분명 멍든 허리에 크게 통증을 느낄 게 분명했다.

    헌원 노부인은 분노에 찬 얼굴로 며느리를 노려보았다. 매섭게 주소유를 한 번 쳐다본 노부인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 누가 먼저 시작했든 부녀자의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한 건 주소유였다.

    놀란 주소유가 황급히 시어머니를 따라 나섰다.

    “어머니, 어머니! 제 말을 좀 들어 보십시오. 제 말을 좀…….”

    원으로 돌아온 헌원 노부인은 매섭게 주소유를 훈계했다. 심지어 그녀는 교양을 운운하며 며느리의 행실을 지적했다. 그나마 손가락질을 하며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것이냐 따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주소유는 모욕적인 상황에도 악착같이 견뎠다. 사람들은 모두 도량이 넓지 못한 부인의 잘못이라 말하며,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남몰래 손을 써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하지만 주소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상공은 자신만의 남자로, 그녀의 사제이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잘해 주겠다고 장담하며 응석을 부리고, 무엇이든 그녀의 말을 따라 주었다. 괴롭히면 괴롭히는 대로 당해 주기까지 하던 남편이 어찌 다른 여인과…….

    주소유는 조금도 참을 수 없었다. 헌원상은 주소유 자신만의 것이었다. 헌데 어찌 뻔뻔한 다른 계집이 더럽히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천한 계집이 더러운 수법으로 상공을 유혹한 것이다. 분명 금용의 더러운 계략이었다! 그런 계집은 반드시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야 마땅하다.

    헌원 노부인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 며느리의 표정을 보며 그녀가 자신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다. 노부인이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야, 어찌 됐든 황궁의 태감이 얼굴을 보였으니 우리 가문에서도 마땅히 그의 체면을 봐주어야 하는 것이다. 헌데 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연경 전체에 웃음거리가 되고 싶은 것이냐?

    그 아이는 단지 첩실일 뿐이다. 분풀이를 하고 싶은 거라면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 허나 지금처럼 행동하는 건 그저 네 체면을 깎아 먹는 일에 불과하다. 평소 총명한 아이가 첩실 얘기만 나오면 어찌 이리 어리석어지는 게냐.”

    갑자기 주소유가 고개를 들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럼 죽여도 됩니까?”

    “어허, 방자하구나! 조금 전까지 내가 한 말을 못 들은 게냐?”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린 주소유가 딱딱한 태도로 시어머니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택小宅(따로 살림하는 아들의 집)은 저희 부부의 공간이니, 앞으로는 어머니께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주소유는 하인들을 이끌고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며느리의 태도에 순간적으로 멍해진 노부인은 화가 난 나머지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녀가 지팡이를 두드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디서 저런… 이 시어머니는 안중에도 없구나!”

    한편, 헌원가는 이웃집 부인과 한담을 나누다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녀는 가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직감했으나 이미 이틀이나 지난 일이었기에 구태여 친정에서 쓸데없는 일을 벌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친정에서 의원을 불렀다는 얘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딸이 오자 사람들을 물린 헌원 노부인이 침대에 등을 기대고 무기력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늙으니 쓸모가 없어지는구나. 앞으로 이 집안에서 내가 나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웃는 얼굴로 침대 옆에 앉은 헌원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 집안에 쓸모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음 다들 어머니만 바라보고 있었겠어요?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도, 아랫사람 때문에 화내지도 마세요.”

    콧방귀를 뀌는 헌원 노부인의 기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내가 어찌 감히 그 아이에게 화를 내겠느냐? 이 늙은 몸뚱이가 화가 나서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헌원가는 어머니가 매우 분노했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이번 일로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어머니, 이 딸에게라도 말씀해 보세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그날 벌어진 일을 들려 준 헌원 노부인이 서글픈 목소리로 탄식했다.

    “친아들이 아니라 그런 것인지, 앞으로 나보고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자르더구나. 이 늙은이가 괜히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을 한 모양이다.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여도 유분수지.”

    어머니의 말을 들은 헌원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제야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되었다. 지금 올케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어머니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출가한 딸로서 헌원가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할 수 없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그리 하세요. 올케가 순간 당황해서 미처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걸 거예요. 조금 지나서 어머니가 다 본인을 생각해서 그러셨다는 걸 깨달으면 분명 예를 갖추고 사과할 거예요.”

    그러나 헌원가는 말과 달리 이미 주소유에 대해 어느 정도 직관적인 평가를 내린 상태였다. 과연 서열 언니의 예상대로 올케에게 삿된 마음이 생긴 것이다. 만약 동생이 이대로 집안을 맡아 처리하게 되면 올케는 어머니를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하리라.

    기분이 언짢아진 헌원가는 동생을 위해 황후에게 간청을 해 주자는 마음까지 흐려지는 걸 느꼈다. 장래에 동생의 지위가 높아질 수 있다 믿고 방자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우선은 주소유를 꺾어 놓아야 했다.

    딸의 말을 듣고도 헌원 노부인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었지만 예리한 눈빛은 더욱 확고했다.

    “됐다. 나는 그 아이가 내게 예를 갖추고 사과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한낱 첩실에게 끌려 다니는 수준인데 뭐 얼마나 대단한 짓을 하겠느냐! 그만하자. 그 아이의 일은 나도 관여하기 귀찮으니, 어디까지 난리를 칠지 두고 보련다.”

    헌원가는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정말로 어머니께서 손을 놓으면 더는 후원을 제압할 사람이 없으니, 아무래도 수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친정에는 더 이상 손상될 명성조차 없었다.

    ‘그래, 그냥 내버려 두자. 올케도 언젠가는 제 주제를 알게 되겠지.’

    * * *

    헌원상은 며칠 동안 줄곧 서방에 묵었다. 주소유가 금용에게 소란을 피운 것도 모자라 때렸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였다.

    주소유는 사흘 내내 물건들을 깨부숴도 헌원상이 보이지 않자 더욱 슬프게 울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다 상공을 사랑해서 그러는 건데 싫은 티를 내다니! 정실인 내가 일개 첩실도 때릴 수 없다는 거야?”

    이 고고가 자애롭게 아가씨의 등을 두드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남자들은 무릇 질투하고 다투는 여인을 싫어하는 법입니다. 정 그러시면…….”

    이 고고는 차마 먼저 고개를 숙이라는 말을 하지 못 했다.

    주소유가 벌컥 화를 냈다.

    “고고까지 내가 질투 때문에 싸웠다고 질책하는 거야? 내가 어떤 사람인데, 금용 그 계집이 뭐라고! 고작 쫓겨난 하녀일 뿐이잖아. 아무것도 아닌 천한 노비!”

    주소유의 이 말은 그 자리에 있던 하녀들을 모두 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고고 역시 입을 다물었다. 아가씨는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셌던 데다 평소 상공과 금슬이 좋았으니, 한동안 남편이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몇 년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다. 어차피 모든 부인들이 겪는 일 아니던가.

    주소유는 결코 금용이 희희낙락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녀가 표독스럽게 타고 있는 촛불을 노려보았다.

    ‘흥! 얼굴 하나 믿고 남자를 유혹한 주제에……! 그 잘난 얼굴이 없어지면 과연 어떻게 될까?’

    * * *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요! 불이에요, 불!”

    “어서 와 주세요! 불이 났어요! 불이야!”

    이른 아침부터 헌원씨 가문은 어수선했다. 이미 조정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탄 헌원오마는 불이 난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곧장 길을 재촉했다.

    저택 안에 갇힌 사람들은 모두 불안에 떨었다. 큰불의 기세에 시위와 하인들 모두 물통을 들고 날랐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천만다행히도 저택은 불이 옮겨 붙기 어려운 독립가옥이었다. 중간에는 각 가옥들을 분리하는 공터가 있었고, 불붙기 쉬운 물건도 없었다.

    불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진화가 어렵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첩실의 처소가 무너질 거라고 확신하고 최대한 불이 번지지 않도록 온 힘을 쏟았다.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난 주소유가 차가운 눈빛으로 불길이 치솟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안에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뛰쳐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이 너무나 통쾌했다.

    ‘금용, 너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 나와 싸우겠다는 것이냐?’

    불빛이 주소유의 얼굴을 비췄다. 그렇지 않아도 매서운 눈빛이 더욱 흉악해졌다.

    우연히 주인의 얼굴을 본 이 고고는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부인을 안타까워했다.

    ‘저렇게 대놓고 통쾌해하면 설령 부인께서 한 일이 아니더라도 고야는 그리 생각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주인의 얼굴을 마주하자 이 고고 역시 불이 난 게 결코 부인의 짓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처첩 간의 싸움은 결국 아름다운 첩실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모양이었다. 모두가 넋을 놓은 사이, 저 멀리 밝아오는 아침 햇빛 속에서 갑자기 하늘거리는 자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앞장선 사람은 뜻밖에도 불에 탄 원에서 죽었어야 할 여인이었다. 그녀의 뒤로 시중을 드는 하인 여섯 명이 따랐다.

    금용이 아쉽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불타오르는 얼굴에 어안이 벙벙해진 여인 옆에 멈춰 선 그녀가 일부러 요염한 자세를 취했다. 잘록한 허리 덕에 더욱 진한 교태가 느껴졌다.

    금용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리고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다 탔으면 뭐가 어때서요? 덕분에 물건을 정리할 필요도 없게 되었군요. 마침 상공께서 제게 처소를 바꿔 주겠다고 하는 걸 괜찮다고 거절했는데, 안 바꿀 수가 없게 되었네요? 잘됐습니다. 이 참에 물건들도 모두 새것으로 싹 바꿀까 해요. 어때요, 언니. 정말 잘됐죠?”

    발끈한 주소유가 즉시 손을 들어올렸으나, 놀랍게도 금용이 한발 앞서 주소유의 뺨을 갈겼다. 주소유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어서 올라간 반대편 손바닥이 다시 주소유의 다른 뺨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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