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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373)화 (373/449)

외전 구염상 1-22

구염상의 기이한 눈빛에 주소유는 일순간 온몸의 피가 굳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 너, 뭔가를 알고 있는…….”

구염상의 미소가 더욱 부드러워졌다. 마치 죽은 물건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주소유의 질문을 무시한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헌원 부인, 아들이 부인의 뜻을 거역하니 심정이 어떠신지요? 열 달을 품어 낳은 착한 아들이 지금은 아내의 말만 들으니 슬퍼서 미칠 지경이겠지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니, 굳이 직접 낳을 필요 없이 부인께서 낳은 아들을 손쉽게 넘겨받아 저도 참으로 편하고 좋습니다. 그렇지요, 부인?”

“나는 알고 있었다! 악랄한 마음씨를 가진 너 같은 계집이 일부러 꾸민 짓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 내 아들을 이용해서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내 경고하는데, 어림없다!”

구염상의 웃음이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간단하게 매만진 얼굴은 마치 어둠 속 야명주夜明珠처럼 사람을 황홀하게 할 만치 반짝이는 빛을 내고 있었다.

“부인, 저를 자꾸 놀라게 하지 않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 만일 본 공주가 놀라 건강이 나빠지기라도 한다면 저 멀리 남쪽 지방으로 떠나 안정을 취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부마는 기필코 아내를 따라오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며느리가 너무 죄송스럽지 않겠습니까.”

주소유는 마침내 구염상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깨달았다.

“네가 퍽이나 대단한 사람인 줄 아나 본데, 연경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 건 사사가 평생을 바라온 일이다. 네까짓 게 뭐라고 그걸 포기하겠느냐?”

구염상이 대단히 송구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물론 그렇겠지요. 허나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잘 모르시나 봅니다. 아드님은 이 며느리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데다 특히 저와 함께 보내는 밤에 가장 미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요.

아드님이 저를 얼마나 귀히 여기는지 모르시지요? 매일 달라붙어 있으려 하는 통에 아주 귀찮을 지경입니다. 부인께서 그리 능력이 출중하시다면 하루 속히 아들을 좀 곁에 붙잡아 두십시오. 제가 며칠이라도 좀 쉴 수 있게 말입니다!”

말을 잇는 구염상은 수줍다는 듯 머리칼을 매만지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알랑거리며 사람을 홀리는 구염상의 모습에 주소유는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점점 상기되는 얼굴과 함께 허약한 몸이 마구 떨렸다.

“네… 네 이년…….”

“참, 부인의 소중한 두 아드님께서 어머니가 한 짓을 어찌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구염상이 부드럽게 스스로를 가리켰다.

“물론 제가 도왔지요……. 그들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해 머리를 좀 썼습니다. 대체 사책에게 어떻게 진실을 알려 줄까 고민했는데, 마침 셋째가 어머니가 한 짓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는 바람에 서둘러 진상을 알리지 못 했답니다.

아,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저를 동정하다 보니 참으로 부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부인께 무슨 좋은 방법이 있다면 부디 그들에게 굳이 저를 동정하거나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말씀이라도 좀 해 주십시오.

특히 둘째 도련님은 저를 궁에 데려다 준 후로 언제나 저에게 지극정성이지요. 요즘엔 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꾸만 제 처소로 좋은 물건들을 보내 주고 있습니다. 마치 제가 충분히 먹지 못할까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정말 난처합니다. 만에 하나 시동생과 형수 사이에 무슨 듣기 거북한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저야 상관없으나 둘째 도련님에게는 좋지 않을 텐데요… 아니 그렇습니까, 헌원 부인?”

“이, 이 뻔뻔한 것!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분노하는 주소유의 얼굴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드러났다.

“절대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구염상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손에 든 약을 휘저었다. 이윽고 갑자기 소맷부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든 그녀가 종이를 펼친 후 우아하게 가루를 털어 넣었다.

“아니요, 이번에는 어머니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이렇게 며느리의 약 안에 독을 넣으신 거지요……?”

구염상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다가갔다. 주소유의 목을 조른 구염상은 그녀의 입에 억지로 약을 넣으려 했다.

놀란 주소유가 종잇장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힘껏 발버둥을 쳤다. 기다란 손톱이 구염상의 흰 손목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놓아라! 나는 안 마신다! 안 마셔!”

구염상은 긁힌 고통에도 아랑곳없이 목을 조르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녀의 손이 억지로 주소유의 입에 약을 들이부었다.

“어머니, 사리분별을 할 줄 아셔야지요! 제가 아량을 베풀어 부인을 가만히 죽도록 놔두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니면 가문이 망하는 걸 똑똑히 지켜보도록 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까?”

주소유는 구염상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목구멍을 통해 무엇인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주소유는 더욱 격렬하게 발버둥을 쳤다.

“밖, 밖에 누구… 누구 없느냐! 컥컥, 누구……!”

퍽!

약사발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주소유가 구염상을 힘껏 밀쳤다. 욱신거리는 목의 고통도 잊은 채 그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게 누구 없느냐! 여봐라!”

구염상은 눈물 고인 눈으로 꿋꿋하게 한쪽에 선 채 자신의 손목을 누르고 있었다. 하인들이 들어오는 순간, 그녀는 마치 큰 모욕을 당한 것처럼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통스럽게 침대 머리맡에 엎드린 주소유가 허약하게 소리를 질렀다.

“자, 잡아라… 저… 저 년이 나를 죽이려… 나를 죽이려 했…….”

뱃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액체를 뱉기 위해 주소유가 스스로 목을 졸랐다.

“어서… 어서 저…….”

그러나 미처 말을 마치지 못한 주소유는 시야가 흐려지는 걸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헌원 씨 가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대청에 모여 방에서 진맥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사람들 속에 앉은 구염상은 아득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과거 생기발랄하게 미소 짓던 얼굴은 지금 이 순간 지치고 초췌했다. 활짝 피었어야 할 꽃송이가 순식간에 생기를 빼앗긴 듯, 홀로 살아남기 위해 힘겹게 버티는 모양새였다.

헌원사사는 초조하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구염상 옆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구염상이 당신을 죽이기 위해 약에 독을 탔다고 악을 썼다. 깨진 약사발은 조사에 들어갔고, 지금은 태의가 어머니를 진맥하고 있었다.

대청에 선 사람들은 경쟁하듯 침묵을 유지했다. 헌원사책은 큰 몸집을 이끌고 머리를 긁적이며 초조하게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셋째는 조용하게 한쪽에 앉아 있었다.

주소유의 어린 두 아들은 때때로 창가 앞에 앉아 있는 큰형님 내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은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또 감히 입을 열지 못 한 채 그저 머리를 숙이고 침묵을 유지했다.

여섯째는 나비 한 쌍이 수놓아진 손수건을 있는 힘껏 틀어쥐고 있었다. 나어린 얼굴은 분노에 뒤틀려 있었고, 구염상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모두가 조용히 기다리는 가운데 모래시계 소리만이 드문드문 울렸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엄숙하게 흘러갔다.

한참이 지난 뒤, 태의가 방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채 다가가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인께서는 무탈하십니다. 그저 분을 참지 못하여 기력이 쇠했을 뿐입니다.”

곧이어 약사발을 조사한 의원도 도착했다.

“약사발에서는 어떠한 성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부인께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두 의원은 각자의 약동藥童을 데리고 저택을 떠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구염상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헌원사사는 차마 부인을 잡지 못한 채 그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심신이 더욱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점점 더 구염상을 눈엣가시처럼 취급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몸져누운 상황에서까지 그녀를 모함했다.

헌원사사는 어머니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예를 갖추고 양보해도 어머니는 결코 아내를 너그럽게 품어 주지 않았다.

구염상의 손목에는 긴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픈 상처보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건 바로 그녀의 가슴에 맺힌 억울함일 터였다.

‘나의 우유부단함이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으니,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구나.’

헌원사사가 텅 빈 대청을 바라보았다. 그는 형제들을 따라 들어가지 않고 대청 밖으로 몸을 돌려 나갔다.

* * *

최근 헌원사책은 너무나 피곤했다. 그는 매일 같이 어머니가 외치는 악다구니를 듣고 있었다. 어머니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독한 말을 끌어 모아 구염상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뱃속에 있는 화근을 죽였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헌원씨 가문에 어찌 편안한 날이 있었겠느냐!’라는 망발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헌원사책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동시에 뜨끔한 듯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는 어머니의 눈빛과, 선량한 척 반박을 시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든 약사발을 깨뜨린 그는 뒤에서 고함치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며칠 전 셋째가 보여 준 태도를 떠올린 헌원사책은 큰형님이 아닌 셋째의 처소로 갔다. 두 형제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뒤, 다시 밖으로 나온 헌원사책은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미칠 것 같은 분노가 올라왔지만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다. 헌원사책은 어떠한 원망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 * *

이듬해 초, 헌원씨 가문에 큰일이 일어났다. 누구보다도 전도유망하던 가문의 장자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관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헌원상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헌원사사가 모든 인계를 마치고 황제의 허가를 받아 냈을 때였다. 그는 곧 남쪽 지역의 외딴 마을로 내려가 영원히 연경으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상황을 전해들은 주소유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원의 권고를 무시한 채 미친 듯이 구염상의 처소로 돌진했다. 구염상을 붙잡은 주소유가 몸싸움을 벌일 기세로 달려들었다.

“어서 둘째 공자와 셋째 공자를 모셔와라!”

비명을 지르던 시녀는 주소유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급히 안으로 쫓아 들어갔다.

주소유는 당장 구염상을 죽이고만 싶었다. 가문을 발칵 뒤집어 놓고 감히 내 집 의자에 고상하게 앉아 있다니!

주소유는 마지막 이성이 끊어지는 걸 느꼈다.

“이 화근 덩어리! 능구렁이 같은 년! 감히 내 아들을 부추겨서 관직에서 물러나게 해? 네 년이 뭔데! 대관절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아들의 앞길을 망치는 것이냐! 네가 뭐라고 내 아들에게 해를 끼치냔 말이다! 내 아들… 내 아들이…….”

주소유는 상심에 못 이겨 울었다. 헌원사사는 그녀의 희망이자 가문의 등불이었다. 다섯 아들 중 유일하게 재상에 오를 만한 재목이었던 아들이 어찌 관직에서 물러났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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