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367)화 (367/449)

외전 구염상 1-16

최근 들어 봉 어사御史는 따로 사람을 시켜 지켜볼 정도로 아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한 봉 부인은 남편의 태도에 의혹을 품었다.

봉 부인은 마침내 남편이 방에 들어온 틈을 타 이유를 물었다.

“익이에게 요즘 무슨 일이 있어요? 줄곧 아들을 감시하며 뭘 하시는 겁니까?”

봉 부인이 보기에 아들은 요즘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연경에서 일어난 큰 사건도 해결했고, 국경에 침입한 호국의 첩자도 잡았다. 특히 하천 운수와 관련된 큰 사건까지 해결한 뒤였기에 이상한 느낌은 전혀 받지 못 했다.

봉 어사는 부인을 쳐다보며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몰라서 그렇소.”

봉 어사는 많은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저 아들의 마음이 괴로울까 염려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표현한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모처럼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며 상 공주와 혼인할 수 있도록 폐하께 주청을 드려 달라 청했다. 그러나…….

봉 어사에게는 아들을 위해 일을 처리할 기회조차 없었다. 심지어 요 며칠은 아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날, 궁에서 나온 봉 어사는 좀처럼 집에서 보기 힘든 아들이 더더욱 보기 드문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계면쩍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았다. 놀란 봉 어사는 그저 도망치고만 싶었다. 그는 차마 아들에게 일을 그르쳤다고, 상 공주가 이미 정혼을 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찌 아들을 위해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즘 연경 바닥에는 헌원 장원狀元(과거 최고 시험인 전시에서 일등으로 합격한 사람)이 보물을 얻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상 공주는 온유하고 단정한 성격으로, 모후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했다. 봉 어사 역시 이 소문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봉 어사에게는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었다. 아들이 마음에 들어 한 아가씨라면 마땅히 훌륭할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이미 혼인을 했으니 아무리 좋은 여인이라 해도 어차피 아들의 인연은 아니었다.

아들이 걱정된 봉 어사는 무려 반년 동안이나 사람을 보내어 아들을 지켜보았다. 특히 상 공주의 혼례 직후에는 더욱 빈번하게 아들을 쫓아다녔다.

요 며칠 봉 어사는 아들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 품위를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봉 어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예법을 거스르면서까지 누군가 헤어지기를 기도했다. 만약 정말로 헤어진다면 아들의 인연으로 만들어 줄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휴…….’

남편을 쳐다보던 봉 부인은 영문 모를 상황에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그녀 역시 물어볼 기분이 나지 않았다. 마치 국가 대사에 부인은 끼어들 일이 없다는 듯한 모습이니 그녀 역시 상대하고 싶을 리 없었다.

* * *

구염상은 첫 달부터 보고를 잘못한 관리인을 엄격하면서도 신속하게 처리했다. 처리 방식은 간단했다. 관리인을 황제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뒤를 이은 황제의 처리 방법은 더욱 간단했다. 관리인은 곧장 목이 날아갔다.

같은 방식으로 구염상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자신의 방대한 혼수를 성공적으로 지켜 냈다. 국고를 한 번 훑어본 구염상은 자신의 자산을 바라보며 활짝 웃음꽃을 피웠다.

구염상은 이렇게 행동하는 자신이 안주인으로서 합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위로는 시부모님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시동생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삶. 물론 그녀는 중간에 있는 남편에게도 잘해 주었다.

‘그래, 아름다운 날들이 멀지 않았어.’

구염상은 언젠가 궁에 돌아가 어머니를 도와 숨어 있는 정탐꾼들만 처리한다면 모든 게 완벽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소유는 기쁘지 않았다. 공주는 보름에 한 번씩 시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나 딱히 시어머니를 잘 섬긴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주는 주소유를 찾아올 때마다 직접 수를 놓은 수건이나 직접 베낀 경서를 선물로 주었다. 주소유는 이를 악문 채로 효성이 지극하다고 공주를 칭찬했다.

그러나 주소유가 바라는 것은 고작 수건이나 경서 따위가 아닌, 공주가 소유한 방대한 혼수였다. 눈을 어지럽게 할 정도로 광활한 토지와 상점들!

‘어디에 있는 거지?’

구염상으로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그녀는 시어머니라면 마땅히 며느리가 직접 공경의 뜻으로 드리는 선물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주 씨는 주 태부의 딸이자 학자 가문 출신이었기에 효심의 마지막 글자인 ‘심’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리라 믿었다. 구염상은 시어머니와의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안타깝게도 주소유의 마음은 구염상과 같지 않았다. 주소유는 귀한 선물보다 더 알찬 것들을 바랐다.

기대하던 것을 손에 넣지 못하게 된 주소유는 신경질이 났다. 게다가 큰아들은 최근 한 달간 서방에서 단 하루만 쉬었다고 했다.

주소유의 얼굴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가서 공주의 시중을 드는 대마마를 불러오너라.”

주소유는 먼저 며느리의 주변 인물 중 가장 유능한 이에게 알아듣게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이 어린 공주가 뭘 알겠는가. 어쩌면 그런 늙은이들에게 기만당해 혼수 전부를 그들의 손에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소유는 궁에서 나온 사람들을 아주 싫어했다. 그들은 스스로 잘난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알아듣게 일러주지 않는다면 늙은이들은 지금 그들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누가 진정한 가문의 안주인인지도 모를 것이다.

공주를 모시는 대마마는 빠르게 도착했다. 공손하면서도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주소유는 더더욱 대마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공주가 남편을 너무 유혹하는 것이 아니냐며 온갖 원망을 늘어놓았다. 공주야 나이가 어려서 아직 철이 안 들었다 쳐도, 곁에서 공주를 모시는 나이 지긋한 사람까지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대마마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부인께서 훈계하신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서방 안에는 이미 모든 침구가 갖춰져 있는 데다 노비가 따로 자단목으로 만든 침상까지 넣어두었습니다. 이부자리 역시 모두 부마께서 좋아하시는 것들이지요.”

주소유가 무슨 말을 하든 대마마는 이 말만을 되풀이했다. 처음에는 대마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던 주소유는 여러 차례 얘기한 끝에 비로소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 대마마는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주소유의 아들이 제 뜻대로 서방을 등한시하고 주도적으로 부인을 찾는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화가 난 주소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내 아들을 내가 모르겠는가?’

사사는 절대 그런 사내가 아니었다. 상 공주 주변의 천한 노비들이 비열한 수단으로 사사를 계략에 빠뜨린 게 분명했다.

‘정말 가증스럽군!’

하지만 대마마는 궁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주소유가 아무리 화가 나서 노발대발한다 한들, 황후를 대신해 공주를 돌보는 마마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

더욱 분노가 폭발한 주소유는 대마마를 쫓아냈다. 그녀는 즉시 시녀에게 문밖으로 나가 큰 도련님을 막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자신에게 모셔오라고 일렀다.

대단히 송구해진 대마마는 공주에게 잘못을 시인했다. 잘 해결해 보려다 오히려 일을 망치지 않았는가. 마치 공주가 시어머니와 평생 화목하게 지내보려던 계획을 자신이 방해한 것만 같았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구염상이 엄숙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마마 탓이 아니야. 어떤 사람들의 경우, 우리가 양보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를 주지는 않아.”

대마마 역시 자신이 그리 큰 사고를 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과를 하는 건 그저 습관이었다. 벌써 헌원씨 가문에 들어온 지도 두 달이었다. 아직도 주소유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이제껏 궁에서 무사태평하게 지내 온 대마마일 리 없었다. 구염상은 유모를 탓하지 않았고, 덕분에 대마마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구염상이 깨달은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시어머니가 자신의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선물을 안겨 주고 한 달이 지난 뒤 비로소 구염상은 시어머니가 자신의 선물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다.

구염상은 주소유가 단순히 몇 가지 희귀한 노리개 정도로 기뻐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구염상은 주 씨의 욕심을 받아 줄 수 없었다.

그날 밤, 헌원사사는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한 상태로 본채에 불려갔다. 하루 종일 화를 참은 주소유는 애써 화를 가라앉히며 암암리에 며느리를 비방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을 다독였다.

“너는 아직 어리고 여인들도 많이 만나보지 못했지. 어떤 이들은 하는 짓이 아주 음흉하니 반드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속지 말거라. 남자라면 모름지기 대업을 중시하고…….”

헌원사사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는 그날 밤 서방에서 잤다.

다음날, 헌원사사는 아침 일찍 공주에게로 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는 공주가 무엇인가 물어볼 거라 생각했으나 공주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고, 그를 배웅하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하인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틈을 타 그의 뺨에 빠르게 입을 맞추었다.

헌원사사는 웃으며 구염상의 작은 코를 톡톡 건드렸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고만장해진 주소유는 역시 아들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아들을 본채로 불러낸 주소유는 궁에 사는 여인들이 총애를 얻기 위해 어떻게 싸우는지, 얼마나 추한 방법을 이용하는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알겠지? 너는 아무것도 몰라서 이런 방법들에 속기 쉬우니, 절대 그런 수법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말을 듣던 헌원사사는 마음이 답답해졌다. 상 공주는 절대 그런 여인이 아니었다. 아침에 집을 떠나는 남편에게 달콤한 마음을 전하는 것 외에, 그녀는 밤이면 더욱 철저히 예의를 지키며 조금도 그릇된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굳이 어머니를 자극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헌원사사는 그날 밤에도 공주의 침실로 가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상 공주에 대한 경계를 풀고, 아들의 태도를 보며 상 공주에게 잘해 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닷새가 지난 후, 대마마는 부마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본채 쪽은 더욱 심상치 않았다.

‘주 씨가 공주 전하를 냉대하는 것이 분명해!’

그러나 대마마는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얼굴에만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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