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352)화 (352/449)

외전 구염상 1-1

구염상은 홀로 정원의 제방 위에 앉아 이리저리 헤엄치는 호수 속 물고기들을 보고 있었다. 물고기를 구경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이것은 그녀의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어떤 때는 책 한 권, 금 하나를 들고 가 제방 위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구염상은 이러한 일상이 좋았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리도, 어머니의 분노와 아버지의 냉담함도 없는 나날들.

구염상은 이따금씩 어머니가 너무 제멋대로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놓아 주는 방법을 몰랐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어머니는 줄곧 원망을 늘어놓으며 가시를 세운 채 아버지와 다퉜다.

어머니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자신의 뜻을 굽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눈치껏 아버지의 은혜를 얻고자 살가운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순전히 당신 자신을 위해 아버지를 원했고 단순히 아버지만을 위해 살고 싶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누군가 구염상에게 말했었다.

“황후마마께서는 참으로 고집스런 분입니다. 당신이 누릴 권리를 위해 따님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으시니까요. 공주 전하의 장래를 위해 노력하시지도 않고, 심지어 정식으로 공주 책봉을 해 주시지도 않으니, 엄밀히 말해 어머니라고 할 수도 없지요.”

주변의 마마들이 이런 말을 떠들 때마다 구염상은 그저 담담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알아들은 척 마냥 혼자 놀았다.

누구도 알지 못 했으나, 사실 구염상은 자신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의 은밀한 말 이면에 숨겨진 저의 또한 충분히 알아차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바마마가 절대 어마마마를 좋아할 리가 없다든지, 혹은 자신의 신분에 관한 문제라든지…….

구염상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해 주지 않으면, 자신은 정말 공주가 아닌가?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구염상은 주인이었다. 벽지원碧池苑의 주인. 그녀는 맘에 들지 않는 하인이 생기면 내보내 버리거나, 혹은 태연한 표정으로 어머니의 손에 넘겨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면 누군가 속으로 딴 마음을 품고 있다해도 자연스레 겉으로는 내색할 수 없을 것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절대 복종할 것이다.

그럼 어머니가 자신에게 잘해 주지 않는다는 건?

물론 이 또한 구염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플 때 세상에서 가장 걱정해 주는 사람은 어머니였고, 넘어지면 받쳐 주러 달려오는 유일한 사람 역시 어머니였다. 그와 달리 언제나 자신을 애지중지하는 척, 귀에 대고 괜한 말을 소곤대는 것들은 겉으로만 자신을 아끼는 척할 뿐이었다.

구염상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모를 거라 생각하면서 앞에서는 입에 발린 말을 하고, 뒤에서는 성격이 괴팍하다며 흉을 보았다.

구염상은 올해로 여덟 살이었다. 그녀가 유감스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은데, 그들은 왜 모르는 걸까?’

* * *

“구염락! 조로전 밖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가기만 해 봐! 당신이 애지중지하는 계집은 제 명에 죽지 못 할 거야!”

매혹적인 외모의 장서열은 연약한 몸으로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자신이 지닌 유일한 무기를 드러냈다. 그녀의 눈 속에는 누구든 알아채지 않을 수 없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살그머니 병풍 뒤로 물러난 구염상은 때를 잘못 맞춰 온 스스로를 원망했다. 방금 전 자신을 조로전으로 안내한 이는 딸이 악다구니를 쓰는 어머니를 감상하길 바란 걸까, 아니면 무정한 아버지를 목격하길 바란 걸까. 어쨌든 구염상은 후자일 거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소매를 뿌리치며 나가 버렸다. 아버지의 크고 듬직한 등은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하는 나라의 근간이었다.

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염락! 당신의 황후는 나야! 내가 당신의 황후라고…….”

병풍 뒤에 숨어 있던 구염상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빠르게 평온을 되찾았다. 어머니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들을 빠르게 때려 부수고 있었다. 부술 수 있는 물건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구염상이 그대로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주도면밀하게 숨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채 숨을 만한 곳을 찾기도 전에 이미 사람 키만 한 꽃병을 두 개나 부순 어머니가 그녀를 발견했다.

구염상은 다급히 웃는 낯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순간에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 자못 죄송스러웠다.

장서열은 오랫동안 기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노와 차분함, 난처함과 수치 사이에서 오랜 시간 발버둥을 치던 그녀가 결국 악에 받쳐 호통을 쳤다.

“감히 누가 너를 들여보낸 것이냐? 당장 나가거라!”

발끝까지 내려오는 분홍 치맛자락을 든 구염상이 즉시 몸을 돌려 밖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입구에 도착한 뒤, 어머니의 질문을 떠올린 그녀는 고개를 돌려 누가 자신을 들여보냈는지를 고한 후, 다시 빠르게 뛰어나갔다.

* * *

구염상은 언제나 거만하기 짝이 없는 구염예락九炎禮樂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마땅히 거만하고 우쭐대는 사람을 싫어할 거라 생각했다. 구염상은 구염예락을 싫어하는 자신이 정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구염예락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이 항상 잘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감사히 여기지 않는 구염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쪽은 구염상이었다. 세상에 항상 고자세를 유지하는 사람을 고마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자신은 그렇게 사람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친구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구염예락은 오늘도 어김없이 구염상을 찾아왔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거만한 얼굴을 든 채 궁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아름답게 장식한 머리를 살짝 치켜든 구염예락이 오만하고 고상한 표정을 지었다.

“야! 네 금 소리가 귀에 거슬리니 그렇게 타지 말라고 몇 번이나 일렀는데, 어째서 들을 생각이 없는 거야?”

구염상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너그럽고 온화한 말투였다.

“언니, 저는 그저 제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에요.”

‘이만하면 알아들었겠지.’

그러나 구염예락은 들어도 모르겠다는 듯, 진지하게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그… 그래? 그럼 이제 그만 타도록 해. 호수의 물고기를 놀라게 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이렇게 좋은 핑계를 대다니, 참으로 총명하기 그지없었다.

구염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구염예락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러 차례 타일러 봐야 어차피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구염상은 대답은 잘했지만 돌아서면 또 바보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다. 최근 여자의 일생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구염예락은 구염상을 깜짝 놀라게 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구염예락은 구염상에게 어떤 색 옷을 입으라고 강요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일단 구염상에게 홍색, 분홍색, 남색, 녹색, 주황색, 연한 살구색, 연한 자색 등등은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이런 옷은 구염예락 자신보다 구염상을 더 예뻐 보이게 했다.

‘세상에 색깔은 왜 이리도 많은 거야? 내가 몇 가지나 말해야 하는지 헷갈리잖아!’

구염예락은 남몰래 고민했다.

‘차라리 아예 검은색과 회색 옷만 입으라고 할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구염예락이 흡족한 얼굴로 총명한 스스로를 자화자찬했다.

“너 그거 알아? 우리도 이제 나이가 찼으니 곧 신랑감을 골라야 한다고 하더라.”

아무리 뻔뻔스러운 구염예락이라도 ‘신랑감’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침착한 성격의 구염상은 잠시 양미간을 살짝 움직였지만, 금세 사라져 아무도 보지 못 했다.

구염예락은 고개를 치켜든 채 아무런 거리낌없이 말했다.

“앞으로 네가 밝은 빛깔의 옷을 입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조정에서 네 신랑감으로 누구를 거론하고 있는지 내가 알려 주지.”

구염예락은 말을 하는 내내 고개를 높이 치켜든 채, 구염상이 자신에게 사정하기를 기다렸다. 구염예락은 분명 이 말을 들은 구염상의 마음이 움직일 거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구염상의 머리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대체 금비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였다. 딸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떠벌리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보면 필시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의 명성을 더럽히려고? 아니면 자신의 두 딸을 위해 적공주인 내 위신을 떨어뜨리려고?’

“웃전의 뜻과 조정에서 논하는 중신에 대해 저는 감히 경솔하게 행동할 수 없고, 더 물어볼 수도 없어요. 언니도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공주를 옆에서 모시는 대마마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돌아가면 이 일을 반드시 황후 마마께 알려야 한다. 누가 감히 공주에게 쓸데없는 말을 한단 말인가!

* * *

결국 장서열은 또 금용과 맞붙었다.

구염상은 중재하려 했으나, 곧 어머니가 구염예락과 마찬가지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임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비호로 인하여 결국 이번 싸움 역시 어머니의 실패로 끝이 났다.

구염상은 더욱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앞으로 외출을 삼가고 다른 사람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다른 이의 목적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머니가 누군가와 원한을 맺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직 어린 나이였다. 당시 구염상은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 결국 상대에게 발을 뻗을 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걸 알지 못 했다.

비가 내리고 가을바람이 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덕스러운 하늘처럼 내명부는 끊임없이 거센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른 아침, 구염상을 공들여 단장시킨 대마마는 기쁘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한참이나 공주를 바라보았다. 공주는 날이 갈수록 더 예뻐지고 있었다. 이는 황후마마의 감출 수 없는 아름다움과 비교했을 때 침착하고 진중한 내면 덕분에 더욱 부드럽고 매혹적이었다.

“공주 전하, 오늘도 금을 타러 가십니까?”

“응.”

또 멍하니 서 있는 마마를 본 구염상이 손에 잡히는 대로 나무 비녀를 집어 든 후 머리카락 사이로 밀어 넣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녀가 일어나서 자리를 떠났다.

이를 본 대마마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떠들었던 잔소리를 다시 늘어놓기 시작했다.

“공주 전하, 또 어찌 이러십니까? 이제 얼굴을 아끼고, 단장하는 것도 배우실 나이인데…….”

구염상은 대마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제방에 가져갈 물건들을 정리했다. 금로琴爐(금을 탈 때 사용하는 작은 향로)에 쓰는 향이 떨어진 탓에 새것으로 바꿔야 했다. 구염상은 어머니께서 어째서 그리 외모를 치장하는 데 공을 들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몇 권 더 보고, 금을 연습하는 것이 나았다.

구염상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외모를 등한시한 이유가 어머니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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