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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343)화 (343/449)

제343화

다음날, 후궁의 분위기는 묘했다. 주 재인은 조로전에 간 이후로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묘한 느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몇 달간 외출을 삼갔던 비빈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한가로이 궁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멸에 가까운 눈빛으로 주 재인의 처소가 비었는지를 알아본 후, 사이좋게 웃었다.

몇몇 이들이 소곤대는 것과 달리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들과 뜻을 함께하지 않았던 후궁들 중 진정으로 이들을 해치려는 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또 한 차례 지체 높은 집안의 후궁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생사의 시련을 겪은 아홉 후궁의 마음은 일순간 안정되었다. 폐하는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할 뿐만 아니라 상벌이 명확한 분이었다.

아홉 후궁들은 더 이상 안 좋을 일을 겪지 않을 방법을 터득했다. 황제는 누구에게도 승은을 내릴 의사가 없었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황제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사람이 죽고 집안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궁은 곳곳이 아름답고 굶주릴 걱정 따위도 없는 곳이었지만 말 한 마디 내뱉는 것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녀들은 더는 소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비위를 맞춰야 한다면, 군말 없이 그리하여 품계가 올라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황후와 똑같이 만인지상의 위치에 서는 건 더 이상 꿈도 꾸지 않았다.

오휘미는 아침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방 안에서도 밖에 있는 자매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하던 후궁이 갑자기 떠들썩했다.

“대청에 가서 어찌 된 일인지 좀 보고 오거라.”

잠시 후, 시녀가 돌아와 말했다.

“귀인마마, 주인들이 나와 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오휘미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시녀를 바라보았다.

“문밖 출입을 않던 후궁들이?”

“네.”

오휘미는 일이 더욱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다들 왜 갑자기 나온 거지?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아니면 잠을 자는 사이 내가 무언가를 놓친 거야?’

주인이 이해하지 못 하는 듯 보이자 시녀가 다시 한번 그녀를 일깨워 주었다.

“귀인마마, 주 재인마마께서 세상을 떠났답니다.”

오휘미의 몸이 순간 휘청했다. 옆에 있던 시녀가 서둘러 오휘미를 부축해 주었다.

“귀인마마, 괜찮으세요?”

오휘미가 텅 빈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괜찮다.”

그녀가 다급히 고개를 들며 물었다.

“주 재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쩌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냐?”

어린 시녀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귀인마마, 앞의 질문에 대해 답을 드리자면, 주 재인마마께서 폐하를 화나게 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오휘미의 마음이 돌연 얼어붙었다. 그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오휘미는 비록 주방비와 친하지는 않았으나 처소가 가까웠던 덕분에 같이 꽃구경을 하고 나비를 잡으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서로가 같은 유형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서로에게서 얻어 낼 것이 없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더 이상 왕래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 재인이 세상을 떠났다니!’

주방비의 가문과 인맥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있던 오휘미는 줄곧 그녀가 후궁에서 탄탄하게 자리를 잡을 거라고, 심지어는 지금의 답답한 분위기를 깨 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틀렸다. 주방비는 단지 황제를 화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바깥에 후궁들은 무서운 줄도 모르고 놀이를 즐기고 있다고?’

순간 오휘미는 자신의 머리를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대체 주 재인은 무슨 짓을 벌인 거지? 밖에 있는 후궁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고?’

주인의 안색이 좋지 않자 시녀가 다급히 말했다.

“귀인마마, 들어가서 조금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녀는 주인이 지나치게 생각이 많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긴장을 풀 줄도 알아야 했다. 어쨌든 후궁들 중 아직 황후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승은을 입은 사람이 없는데, 매일 고민해 봐야 좋을 게 없지 않은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마음 편히 쉬는 것이 나았다. 현재 후궁들은 가문이 좋든 아니든, 사실상 시녀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제 궁의 하인들은 결코 전대 왕조처럼 주인이 총애를 받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 영덕제 즉위 후, 궁녀와 태감에 대한 통제가 강화된 탓에 이들은 지위에 따라 그저 맡은 일에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주인이 총애를 받는다 해도 하인들은 천 한 필 더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마찬가지로 주인들이 총애를 받지 못한다 해도 하인들이 한 달치 돈을 적게 받는 일은 없었다.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주인을 잘 모시고, 주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나마 주인에게 의지해야만 비로소 높이 올라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 그러자.”

오휘미에게는 확실히 휴식이 필요했다. 그녀는 그간 후궁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의 배후에 주 재인이 있다고 의심해 왔다. 그러나 그렇듯 치밀하게 짠 계획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주 재인은 목숨을 잃었다.

오휘미는 경거망동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다시는 감히 몰래 조로전을 정탐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하면 영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후궁처럼 될 수 있었다.

한편, 제운아는 자신의 친구이자 의좋은 자매를 불러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놀란 마음을 표현할 수도, 탄식할 수도 없었다. 어린 소녀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주고받을 따름이었다.

몽소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주 재인과 가깝지도, 다른 여인들과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처소에 틀어박혀 조용히 생활하면 그만이었다.

* * *

조로전의 왕 마마는 자신만의 소식통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후궁과 관련하여 황후에게 괜한 말이 들어가지 않도록 소식을 원천봉쇄하는 데 힘을 썼고, 들어온 소식은 황후의 측근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좋은 평판을 활용해 왕 마마는 주 재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예상했던 일이다. 왕 마마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시 제 할 일을 하러 갔다. 그녀는 사람에게는 다 각자의 팔자가 있다고 믿었다. 상대방이 전부 눈치챌 만큼 간사하고 불쾌하게 굴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러한 말로는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었다. 특히 후궁이 된 이상 더더욱 행동거지를 조심했어야 했다. 물론 그토록 매몰찬 황제를 만난 것이 미인들에게는 불운이었겠지만.

* * *

가을이 떠나고 겨울이 왔다. 새하얀 눈이 강산을 장식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코는 코가 아니고, 눈은 입에 붙어 있는’ 여인을 받아들인 구염락은 혹여나 다른 집 남자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후원에 공주를 던져두었다.

이는 그나마 ‘뭐 하러 당신이 골머리를 앓느냐, 우리집은 땅도 넓으니 일단 들어오게 해라’라고 조언한 장서열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리하여 장서열은 운 좋게도 시원시원한 생김새의 호국 제일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순간 장서열은 구염락의 눈에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를 의심해야 했다. 혹은 겉과 속이 다른 걸까?

그러나 구염락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장서열은 그가 호국과 이 미인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구염락의 고질병이었다. 사람을 볼 때 구염락은 항상 사람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꼭 배후에 있는, 그리하여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는 어두운 이면을 보았다.

장서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미인을 방치해 두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니. 어차피 공주가 구염락의 눈에 미인으로 비쳤다 해도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테니, 미색은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구염락의 태도를 감안하여 호국에서 온 여인과 형식적으로만 인사를 나눈 장서열은 더 이상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한편, 구염락은 호국 공주를 기억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서풍엽의 혼처를 알아보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이, 초겨울에서 한겨울이 될 때까지 혼처를 정해 줄 때마다 여인 쪽에서는 놀라며 동의했다. 하지만 충왕은 황제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잠시 망설이다가 집에 돌아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끝내 거절했다.

무려 네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된 후, 딸을 가진 집안에서는 황제의 입에서 서풍엽의 혼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즉시 뱀이나 전갈을 본 것처럼 피해 버렸다. 서풍엽이 혼인을 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이상, 혼사의 성립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어떠한 가문도 딸이 모욕을 당하는 걸 원치 않았다.

결국 서풍엽은 황제의 뒤를 이어 수많은 장인어른들께 가장 크게 미움을 산 귀족이 되었다.

구염락은 버럭 화를 냈다.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서열이는 이미 서풍엽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도 그는 끝도 없이 구질구질하게 굴고 있었다. 이건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었다.

조회가 끝난 후, 서풍엽을 부른 구염락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자신과 황후는 그가 하루라도 빨리 혼인하길 바란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짐은 그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다. 혼인 후 그대가 부인을 죽여 박제한다 해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대는 짐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혼인을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구염락이 차갑게 웃었다.

“…짐이 충왕을 중용하여 백국으로 보낸다 해도 할 말이 없을 터, 그렇게 된다면 아마 백국에서는 그대에게 받은 커다란 은혜를 생각하여 그대의 아버지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하겠지.”

고양이를 괴롭히는 늙은 호랑이처럼, 구염락이 하하 웃어 보였다. 그는 황좌를 이용하여 가볍게 적을 물리치고 있었다.

검은색 조복을 입은 서풍엽은 머리에 쓴 조관을 채 떼지 않은 채, 표정 변화 없이 구염락을 바라보았다.

“폐하, 모든 일이 폐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 폐하께서는 소신이 백국의 어린 황자를 없애도록 유인하셨고, 선황께서는 이를 이용하여 소신의 정혼자를 핍박하였습니다. 아주 성공적인 계략이었지요.”

서풍엽의 웃는 얼굴은 덤덤했지만 구염락을 향한 시선은 후회막급인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과거에 서열이와 함께 아끼고 보호했던 아우는 뜻밖에도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치명타를 날렸다.

운명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과거 두 남자가 나누었던 형제애와 자신을 신뢰하는 듯 보였던 아우의 눈빛은 다 거짓이었다. 매번 두 연인의 미래를 축하한다 말하던 자는 뜻밖에도 가장 독한 뱀이었고, 줄곧 주변에서 똬리를 튼 채 자신을 쓰러뜨리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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