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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318)화 (318/449)

제318화

그의 서열은 어디에 있든 모두가 염려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황제가 늙어 죽으면 황궁의 벽을 파서라도 그녀를 보려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하지만 장서열은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곁에 있을 것이다.

구염락이 강경한 손길로 두부를 하나 집어 들어 장서열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구염락을 한 번 바라본 그녀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입 안에서 녹은 두부가 생각지도 못한 고소한 맛을 남겼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마침 맛있었다.

“정말 맛있어요.”

그 말에 구염락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식사를 하는 그녀를 보는 것 역시 함께 밥을 먹는 재미 중 하나였다. 그의 몸을 맴돌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졌다. 장서열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드디어 위기가 지나갔다고 느꼈다.

하지만 장서열은 그래도 명정이 황궁을 떠나 별장이나 황릉을 지키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훗날 이 일을 떠올린 구염락이 언제 자신의 눈을 피해 명정을 괴롭힐지 모를 일이었다.

***

“들었어? 서 귀인이 어젯밤에 시침을 들었대. 조석궁에 두 번이나 물이 필요했고, 서 귀인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처소로 돌아갔다더라.”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물린 제운아가 의아하다는 듯 몽소우의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렸다. 부러우면서도 불가사의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황제 폐하가 후궁을 찾다니. 신과 같은 존재가 정말 여인을 불러 시침을 들라 했다니! 게다가 황제는 매우 흉포하다지 않던가.

몽소우는 친구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별안간 입을 열었다.

“그게 뭐 어때서. 폐하는 어젯밤 조로전에서 주무셨잖아. 너 괜히 어리석게 그런 일에 끼어들 생각하지 마!”

몽소우가 입궁할 때, 그녀의 아버지는 점을 치고 돌아와 딸아이의 생에 ‘붉은 별’은 없으나 높은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거라 말해 주었다.

점괘를 받은 몽소우의 부모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두 사람은 마음 아파했지만 결국엔 딸아이를 궁에 들여보냈다. 이들은 행여나 총애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자중하지 못하고 후궁들과 총애를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딸에게 신신당부했다.

몽소우는 지위가 높아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총애를 받든 못 받든 자신이 불쌍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슬피 탄식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왠지 너무 마음 편히 지내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몽소우는 이런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먹고 마시는 데 부족함이 없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삶. 게다가 엄격한 관리 체계가 생긴 이후로는 하인들 또한 어렵지 않게 신형사에 보낼 수 있었기에 노비를 부리기도 편한 게 사실이었다.

따라서 몽소우는 굳이 나쁠 게 없는 나날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제운아 역시 후궁 암투의 희생양이 되지 않길 바랐다.

제운아가 의아하다는 듯 친구를 바라보았다. 마치 주먹으로 솜을 친 양 밋밋한 반응이었다.

“재미있지 않아? 서 귀인은 병이 났고, 결국 폐하께서는 그녀를 찾으셨잖아. 역시 서 귀인이 그냥 병이 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몽소우는 마치 생선을 만난 고양이처럼 웃는 친구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제운아는 정말로 재밌다는 듯 킥킥 웃었다.

한편, 오휘미는 서 귀인이 시침을 들었다는 말에 왠지 모를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곧 고요한 조바심도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황제는 모든 후궁의 희로애락을 손에 쥔 사람이자, 승리한 대군大軍들 중 유일하게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눈빛을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정말로 후궁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걸까?’

오휘미는 문득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 위용 있는 남자가 철갑을 입고 달려와 자신의 하늘을 떠받쳐 주는 상상을 했다.

***

소청청은 아침 일찍 폴짝폴짝 뛰며 서풍화를 보러 왔다.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큰 눈을 반짝이며 장난기 많은 여우처럼 요리조리 냄새를 맡았다.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드러낸 그녀가 마치 밖에서 들은 소문이 진짜인 양 공손하게 말했다.

“서 귀인께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용안을 뵙고 성은을 입은 것을 축하드려요. 하루빨리 득남하세요.”

소청청을 보며 서 귀인은 마음속 걱정거리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장난은.”

서풍화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으려 했다.

소청청은 비록 총명하다 말할 수는 없었으나 이름처럼 성정이 맑고 깨끗했다. 때로 우둔해 보일 정도여서 처음에 서풍화는 소청청과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풍화는 많은 시간을 함께한 끝에 그저 타고난 본성이 순진할 뿐, 소청청이 음흉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해바라기씨를 하나 집어 든 소청청이 궁금한 듯 물었다.

“언니, 폐하는 정말 잘생겼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서풍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소청청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어볼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탓이었다.

서풍화를 본 소청청이 즉시 놀라 소리를 질렀다.

“사실이군요!”

잠시 멍해졌던 서풍화의 눈빛이 약간 뾰로통해졌다.

“나쁜 계집애,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니?”

“언니 얼굴이 빨개졌잖아요.”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소청청은 여전히 호기심 충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폐하께서 정말 그렇게나 잘생기셨어요?”

풍화 언니 같은 미인까지 그리 생각할 정도면 확실히 뛰어난 용모임이 분명했다.

“저도 뵙고 싶어요.”

서풍화가 애매한 눈으로 생기 넘치는 소청청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이야…….

‘헌데, 폐하께서 잘생기셨던가?’

서풍화는 어젯밤에 만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확실히 준수하고 비범했다. 그때 서풍화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토록 과감하고 살생에 능한 자의 용모가 그렇게 수려하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제왕은 제왕이었다. 잠시 스쳤을 뿐인 가벼운 눈빛에는 사람을 떨게 하는 냉기가 있었다. 서풍화는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서풍화는 여태껏 그렇게 잘생긴 사람도, 또 그만큼 두려운 사람도 본 적이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눈. 조석궁의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그녀 역시 바닥에 꿇어앉은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서풍화는 조석궁을 나오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다. 처음 봤을 때를 제외하고 그녀는 감히 황제를 두 번 다시 바라보지 못했다. 고개를 들면 그대로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전쟁에 능한 제왕답게 그는 보자마자 여인이 품고 있는 마음속 기대를 단념하게 해 주었다. 이건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는 느낌으로, 아직 다른 후궁들은 황제를 향한 기대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것인지 모를 터였다.

황제는 그녀처럼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아가씨가 감히 마주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서풍화는 이런 남자에게 시집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기뻤다.

서풍화는 기대에 부푼 소청청의 모습에도 조금도 질투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참으로 순진하다고 느꼈다.

만난 적이 없기에 기대하는 것이다. 황제를 직접 만난다면 이렇게 비현실적인 기대는 감히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는 진정 여인으로 하여금 반항할 수 없게 만드는 남자였다. 제왕이라는 후광이 없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해도 그는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리라.

***

황궁을 나온 구염황은 매우 조용했다. 아이는 꼼짝도 않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느라 바빴다. 무엇이든 새로웠고, 어디든 몇 번씩 더 돌아볼 가치가 있었다.

처음 집 밖으로 나온 꼬맹이에게는 당연한 모습이었다. 유모의 팔을 붙든 어린 얼굴은 엄숙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장서열은 줄곧 아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긴장해서 굳은 작은 얼굴과 달리 고집스럽게 주변을 살피는 눈짓은 너무나 귀여웠다.

구염락이 고개를 돌렸다. 인파로 왁자지껄한 거리에서 아들에게 장난을 치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긴장한 아들은 어머니가 앞을 막으면 머리를 돌려 다른 틈을 찾았고, 어머니가 또다시 막으면 작은 몸을 움츠리며 유모를 두 손으로 안은 채 또 다른 쪽을 열심히 보았다.

다시 고개를 돌린 구염락이 손에 든 먹빛 부채를 펼쳤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거리를 걷는 그의 얼굴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면포 장삼長衫을 입은 소리자는 약간 부은 얼굴로 황제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나빠진 주인이 혹시라도 다시 자신을 때릴까 두려워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거리를 걷는 선남선녀의 조합은 자주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먹빛 금의를 입은 남자는 새까만 물결무늬 허리띠를 매고, 머리에 옥관을 쓰고 있었다. 냉담한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비범해 보였다.

뒤를 따르는 부인은 배가 불룩 나와 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에 사람을 압도하는 눈망울은 마치 선녀처럼 뭇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여러 번 쳐다볼 수 없게 만들었다. 네다섯 명의 하인과 두 명의 계집종, 그리고 한 명의 유모를 거느린, 누가 봐도 부귀한 집안의 외출 풍경이었다.

구염락은 이번만큼은 장서열에게 억지로 갓을 씌우지 않았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자신의 부인에게 기웃거리겠는가. 꽃이 햇빛을 쬐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구염락은 그런 자들이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 셈이었다.

구염락이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훑어보았다. 아내에게 머물던 시선들이 곧장 줄어들었다.

장서열의 두 번째 회임은 아주 안정적이었다. 그녀는 조금 걷는 정도로 불편해하지 않았다. 게다가 밖에 나온 덕분에 구염락이 명정을 주시할 일이 없다는 건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만한 일이었다.

바깥 날씨는 쾌청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의 바람은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하는 법이다. 장서열은 유모의 어깨 위에서 빈번하게 몸을 움직이는 아들에게 끊임없이 장난을 쳤다. 그녀의 입가에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갑자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돌연 장서열의 안색이 굳어졌다. 온몸의 가시가 곤두서는 걸 느끼며 그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가까운 곳을 내다보았다.

옥기玉器를 파는 상점 앞에서 멀끔한 차림을 한 금용이 갑자기 구염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점점 커지는 울음과 달리 그녀의 우는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금용이 그대로 구염락의 발목을 덮치려 할 때였다.

완전히 굳어진 장서열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구염락! 그대로 두고 보면 가만두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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