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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302)화 (302/449)

제302화

명정은 여전히 거만하기 짝이 없는 그녀를 보며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어딘가에 내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제정신일 때가 오히려 더 미치광이 같았다. 줄곧 이런 식으로 행동해 왔다면 이제야 냉궁에 갇힌 것도 천운이 따른 결과였다.

냉궁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명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전처럼 누군가 자신의 기에 눌렸다 여긴 장서열이 즉시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오만하고 무례한 모습이었다.

명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이제껏 누구를, 얼마나 괴롭혀 온 거지?”

폐후에게는 냉궁에 들어온 사람이 적응을 거친 후 보여 주는 야심 같은 것이 없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생사를 갖고 논 냉정한 황후였다기보다 오히려 발톱을 훤히 드러내고 우쭐거리는 금수에 가까웠다. 심지어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능력을 몰라줄까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장서열이 생각에 잠겼다. 머리를 치켜들고 생각에 빠진 얼굴은 마치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많지요… 서영, 한비, 금용은 모두 나를 두려워했어요… 내게 복종하지 않은 사람은 다 죽었어요. 복종한 사람만 살아남았죠… 하하… 하하! 다 죽었어요! 다 죽었어…….”

장서열은 망연자실해 있었다. 그녀는 정신조차 오락가락했다.

그때, 대년과 이년이 다가왔다. 그들은 명정에게 삼원의 점검을 마쳤으며, 21번이 숨겨둔 모든 불씨는 몰수했다고 보고했다.

“명정 형님, 일원에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명정은 득의양양한 폐후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가 보거라. 나는 잠시 여기 있겠다.”

대년과 이년의 얼굴에 즉시 놀란 표정이 드러났다. 이들은 한쪽에서 바보처럼 열을 내고 있는 21번을 본 후 순간적으로 몸이 흠칫 떨리는 걸 느꼈다.

‘예쁘다! 더 예뻐졌어! 과연 오랫동안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살던 명정 형님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만하구나!’

순간 좋은 방법을 떠올린 두 사람이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앞으로 21번이 미색으로 명정 형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좋은 물건을 많이 갖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명정 형님은 좋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을 형제같이 대해 준 형님이 어렵게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았으니 정성껏 모시는 건 당연했다.

두 사람은 회심의 미소를 보이며 명정에게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더 머물다 나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쿡쿡 찌르며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문을 나선 대년이 즉시 이년의 어깨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명정 형님도 눈이 참 높아. 미색이 저 정도는 되어야 하나 보군. 그나저나 저 계집이 전에 뭐였다더라… 비?”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던 이년이 대년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황후요.”

대년은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뜻밖이군…….”

황후였다는 말에 순간 만약의 가능성을 떠올린 대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혹시 명정 형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

이년이 대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걱정이에요. 벌써 삼 년이나 지났는데 재기하기는 글렀죠. 게다가 제가 알아봤는데, 얼굴이 예쁜 걸 빼면 이미 다른 길은…….”

이년이 비웃었다.

“어쨌든 절대로 못 뒤집어요. 지금 저 여자 어머니는 속수무책이고, 친오라비도 좌절해서 체념했대요. 그런데 누가 저 악마 같은 여자를 복위시켜 주겠어요. 어림도 없죠.”

* * *

한편, 명정은 폐후를 보며 조롱 섞인 말을 하고 있었다.

“당신을 두려워했다던 그 사람들은 지금 떵떵거리면서 높은 지위에 올라 있어. 그리고 당신은 사람도, 귀신도 아닌 모습으로 여기에 갇혀 있지.”

“뭐라고?”

장서열은 격분했다.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가 드러난 것만 같았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감히 자신을 거역한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찢어 놓아야만 분이 풀릴 것 같았다.

달려드는 그녀를 가볍게 피한 명정이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두르는 폐후를 제압했다.

“왜, 아픈 곳을 찔렸어? 지금 당신이 어떤 모습인지 봐! 다들 당신보다 너무나 잘 살고 있어! 아직도 실패했다는 게 인정이 안 돼? 그럼 내가 알려 주지. 지금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마도 운이 좋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물어 뜯겨서 그대로 비명횡사했을 거라고!”

“…….”

“당신 같은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니, 그야말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흰둥이가 뭐라고 당신을 힘들게 했겠어. 당신이 괴롭혀서 저 모양이 되었는데! 강아지가 싫은 거지? 눈에 거슬린다는 거잖아! 좋아, 그럼 내가 데리고 가지. 당신 눈에 띄지 않도록!”

말을 마친 명정이 돌연 손을 놓았다. 발버둥치던 장서열은 순식간에 땅으로 굴러 떨어져 온통 풀투성이가 되었다. 그녀는 풀이 뒤덮인 얼굴에도 아랑곳없이 필사적으로 명정에게 달려들었다.

“흰둥이는 내 거야! 내 거라고! 절대로 못 줘!”

“저 여자를 막아라!”

건장한 소태감 둘이 발버둥치는 그녀를 힘으로 제압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자 이들은 두툼하고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머리를 내리쳤다. 눈에 별이 보일 정도였다.

폐후는 여전히 단념하지 않았다. 그녀는 휘청거리면서도 명정에게 다가가는 흰둥이를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못 가! 너는 내 거야!”

흰둥이는 고분고분하게 명정의 손을 핥다가 명정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폐후의 눈에서 모든 것을 삼킬 듯한 불꽃이 튀었다. 그녀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필사적으로 명정의 손을 향해 달려들며 장서열이 미친 듯이 외쳤다.

“배은망덕한 것! 죽어! 죽어 버려! 죽더라도 내 손에서 죽어!”

소태감 둘은 명정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즉시 폐후의 등을 밟고 다리를 잡아당겼다.

명정은 경멸하는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본 후 생쥐 같이 마른 흰둥이를 쓰다듬었다. 그는 강아지가 편히 자신의 팔에 기댈 수 있게 해 준 후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소태감들은 그제야 힘이 빠진 21번을 놓아주었다. 그녀를 한 번 더 걷어찬 소태감은 또 다시 명 총관을 거역하면 옆방의 미치광이와 가둬 버리겠다고 경고한 뒤 분노하며 떠났다.

고요한 마당은 적막하고 쓸쓸했다. 사방에서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치스런 강아지 소리가 사라진 마당에는 그 흔한 귀뚜라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적막한 밤공기는 마치 보이지 않는 칼처럼 구석에 숨어 미친 듯이 웃다 흐느끼는 그녀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었다.

장서열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그리웠다. 그리워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를 배반하고 떠난 강아지는 그녀로 하여금 미움받고 버림받았던 마음속 깊은 곳의 괴로운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황제에게 버림받던 그 순간, 금용은 과장되게 비웃었고 장서영은 그녀를 외면했다. 장서열은 구석에서 움츠린 채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다.

장서열은 간절히 바랐다. 만약 흰둥이가 돌아온다면, 이곳에서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정말 다시는 흰둥이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흰둥이가 돌아왔다. 두 달을 떨어져 지내니 듬성듬성하던 털은 다시 풍성해졌고 멍멍 짖는 소리는 활력이 넘쳤다. 흰둥이는 명정의 다리를 빙글빙글 돌며 차마 떠나지 못했다.

장서열은 마른 풀 같은 머리카락에 볏짚 따위를 아무렇게나 꽂은 채였다. 구멍이 뚫리고 심하게 오염된 옷은 마치 쓰레기 같았다.

흰둥이를 본 순간, 장서열은 묶인 시간에서 풀려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서열은 흰둥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미친 여인과의 괴로운 기억이 남아 있는 듯 시간이 지났음에도 흰둥이는 놀란 채 명정을 맴돌며 도망치려 했다.

장서열은 기적처럼 억지로 쫓아가지 않았다. 대신 기꺼운 마음으로 품속에 오래도록 간직한 만두와 찐빵을 흰둥이 앞에 밀어 놓았다. 눈빛은 부드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먹어 봐. 먹으라니까…….”

적이 걸음을 멈추자 흰둥이도 멈춰 섰다. 낯익은 얼굴을 보고 장난을 치려 한 건지, 아니면 정말 배가 고팠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흰둥이는 산발을 한 여인에게 천천히 떠보듯 다가갔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간 강아지가 작고 새빨간 코로 이미 말라 버린 만두와 찐빵의 냄새를 맡았다. 이내 강아지는 싫은 듯 머리를 돌리고는 먹지 않았다.

그래도 장서열은 웃었다. 흰둥이는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활력 넘치는 소리로 짖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린 조카 같았다.

명정은 폐후가 멍하니 바닥에 앉아 있자 침착한 얼굴로 옆에 와서 앉으라고 손짓 했다. 옷을 여민 명정은 그녀와 함께 늦가을의 마른 풀 위에 앉았다. 곁에는 하얀 강아지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명정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알았지? 무언가 갖고 싶다면 그전에 먼저 줄 줄도 알아야 해. 만약 당신이 정말로 흰둥이를 죽였다면 당신이 원하는 목적은 끝내 달성하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구태여 스스로를 화나게 할 필요가 있을까?”

“…….”

“봐, 얼마나 좋아. 당신이 먹다 남긴 것을 조금만 양보하고 흰둥이와 놀 시간을 내어 준다면 녀석은 자연스럽게 당신 주위를 맴돌게 될 거야. 당신이 바라던 그 모습 그대로 당신을 돌봐 줄 거라고.”

말을 하던 명정은 순간 어깨가 무거워졌음을 느꼈다. 코를 찌르는 시금털털한 냄새는 비록 좋지 않았지만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만큼은 촉촉이 적시는 가을비처럼 가슴에 스며들었다.

“흰둥이를 데려와 줘서…….”

목소리는 오랫동안 멈췄다 다시 울렸다.

“…고마워요.”

명정의 입가가 의식적으로 부드러워졌다.

“흰둥이에게 잘해 줘. 당신을 믿어.”

* * *

“명정! 예뻐요?”

폐후는 겨울철에 새로 배급된 솜옷을 입고 있었다. 거친 회색 옷감 안에 두꺼운 면을 집어넣은 헐렁헐렁한 옷이었다. 바느질이 서투른 탓에 체형에 맞지 않아 예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폐후에게는 타고난 미모가 있었다. 사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희고 매끄러운 피부는 마치 선녀처럼 사랑스러웠다.

석탄을 배급하러 뒤따라오던 하인들이 야유하는 웃음을 보였다.

“명정 형님, 아름답나요?”

“그러게요! 명정 형님, 아름답죠?”

명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네.”

주위 사람들은 요란하게 웃으며 21번의 정원에 가장 좋은 석탄을 가장 많이 들여 놓았다.

어색하게 고개를 숙인 폐후의 뺨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그녀는 눈치를 보며 명정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고 넓은 가슴에 머리를 기대 보았다.

“흰둥이가 요즘 말을 잘 들어요. 나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요.”

손을 내민 명정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하늘이 돌보는 것인지 지난달만 해도 마른 풀 같던 머리카락이 오늘은 비단처럼 매끄러워 의아할 정도였다. 명정은 혹시라도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머리칼을 한 올이라도 상하게 할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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