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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99)화 (299/449)

제299화

의아하게 여긴 왕 마마가 황후의 시선을 쫓았다.

‘대태감 둘이 문을 지키고 있을 뿐, 주위에 어떤 이상한 기색도 없지 않은가.’

장서열은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왕 마마를 바라보았다.

“대태감 복식을 한 자를 아느냐?”

왕 마마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황후마마. 저자는 진 공공이 새로 발탁한 어화원의 총관總管이옵니다.”

장서열은 다시 한번 의아해졌다.

“그가……?”

왕 마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마. 노비도 명 공공과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충분히 발탁될 만한 젊은이입니다. 진 공공이 신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궁녀들 때문에 노비도 중시하고 있습니다.”

장서열은 약간 얼떨떨했다. 깊게 생각에 빠진 대태감의 모습은 그녀의 기억 속 성실하고 정직했던 그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가 성실하다는 건 장서열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기꺼이 고생을 감수했고 손재주도 많았으며 사람들에게 적의가 없었다. 심지어 그리 많이 깨우치지는 않았지만 글자도 알았다.

그는 분명 성취욕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젊어서는 줄곧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회가 있을 법한 곳을 여러 군데 갔지만 성과가 없었고, 결국 나이가 들자 냉궁으로 내쫓겨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 대태감이 되었다.

기억 속 그는 늘 밝은 달처럼 웃고 있었으며 특히 그녀를 대할 때면 조금 더 참을성을 보여 주었다. 그가 입을 열 때면 냉궁의 하늘마저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감색 옷을 입은 그를 보며, 장서열은 마침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 * *

냉궁은 춥고, 여기저기 쥐와 벼룩이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장서열은 냉궁을 싫어했다. 문과 창문은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처음 냉궁에 갇히던 날, 장서열은 황후가 입는 중의中衣를 걸친 채 아름다운 외모와 거들먹거리는 입가, 그리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얼굴로 자신을 향해 기어오르는 미치광이들을 노려보았다.

“본궁은 이 나라의 황후다! 누가 감히 방자하게 구느냐? 본궁이 너희의 구족을 멸할 것이다!”

서른다섯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의 이목을 끌 만큼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녀는 거만한 모습으로 굳게 닫힌 냉문 앞에 선 채 도도한 위엄을 드러내며 성질을 부렸다.

“본궁의 사위는 이 나라의 형부상서다!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전부 사형에 처할 것이다!”

‘감히’, ‘방자하다’라는 말은 장서열에게 무한한 안전감을 주었다.

너무 빨아서 하얗게 바래진 대태감복을 입은 명정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는 도망치기 위해 문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주인들을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고픈 이리처럼 날뛰던 미치광이들이 기적처럼 조용해졌다. 이들은 음산한 미소를 띤 채 천천히 멀어져 갔다.

명정은 그때 처음으로 폐후를 보았다. 그녀를 훑고 지나가는 시선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처음 이곳에 온 여인들은 모두가 이토록 거만했다. 그저 뜻대로 되지 않아 잠시 이곳에 머물 뿐이라고 여기던 여인들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말이 없어지다 결국에는 미쳐 버렸다.

벼룩과 벌레를 잡는 것도 정신이 온전할 때의 얘기였다. 자학을 일삼던 이들이 끝내 담을 넘고 강물에 투신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목을 매 죽는 일은 없었다. 한때 잘나가던 주인들이 사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없게 긴 밧줄과 침구가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정은 냉궁 외에도 여러 궁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더 많은 자원을 얻기 위해 힘썼다. 힘겨운 일이었지만 오랜 세월 그는 한결같았다. 최소한 그는 냉궁에 갇힌 이들이 죽든 살든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양심 있는 사람처럼 보인 그가 냉궁에 갇힌 이들에게 친절했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바쁘게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미래가 있든 없든, 그는 습관적으로 책임을 다했다.

장서열이 오자 냉궁은 관례대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원수 한두 명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곤경에 처했을 때 원수가 와서 비아냥거리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신기한 일이다.

폐후에게 굴욕을 당했던 이들에게 그녀는 마침내 나무에서 따낸 유일한 과일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미친 듯이 영양이 풍부한 과육을 뽑아내려 했다. 그녀의 정신을 짓밟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씨조차 그냥 버리지 않고 갈아서 바람에 날려버려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명정은 그저 폐후가 다른 사람들보다 원수가 많아 더 처절히 당한다고만 생각했다. 그 밖에 다른 것은 다른 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명정은 손을 대지 않았다. 귀인이 올 때마다 문을 열어 주는 것만으로 본분을 다한 셈이었다. 그의 손에 떨어지는 은자는 폐후를 괴롭혀 달라는 암시였다. 그는 시원시원하게 응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길지의 여부는 그에게 시간이 충분한지 아닌지에 달려 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주 바빴기에 딱히 그녀를 괴롭힐 시간이 없었다.

장장 한 달여간의 보복 기간이 지나자 중년의 명정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그는 오랫동안 숨통이 막혔을 폐후가 햇빛을 쬘 수 있도록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여인들을 가두어 놓는 건 그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여인들이 공연히 미친 듯 지껄이는 말들이 귀인들의 귀에 들어가 행여나 매를 맞기라도 한다면 이들은 의사도 보지 못한 채 죽을 게 분명했다.

때로 명정은 어쩌면 죽음이 여인들에게는 일종의 해탈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이 맑을 때 죽지 않는 걸 보면 그들 모두 삶에 미련이 남아있는 게 분명했다. 따라서 그는 힘이 닿는 데까지는 그녀들을 보호하고자 노력했다.

어느 날, 명정이 규율에 따라 폐후에게 생활용품들을 채워 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옷차림이 단정한 여자가 달려오며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꺼져! 네까짓 게 뭐라고 감히 본궁의 침소에 나타나다니!”

명정의 뒤를 따라오던 밝은 흰옷이 뛰쳐나가 폐후를 긁으려 했다. 놀란 폐후가 얼굴을 가렸다.

명정은 폐후의 열 손가락이 처음처럼 매끄럽게 손질되어 있는 데다 손톱에서 분홍빛이 난다는 사실에 놀랐다. 냉궁에 온 지 한 달이 다 된 여인 중 이렇게 예쁜 손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성난 눈으로 노려보던 손의 주인은 악독한 눈빛을 내뿜으며 즉시 달려들어 보복하려 했다. 하지만 셋째 부인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 십 년간의 냉궁 생활 끝에 충분히 체력이 단련되어 있었다. 그녀는 즉시 폐후를 넘어뜨렸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한데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부하를 불러 무언가를 지시한 명정은 배급하려던 솜이불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즉시 싸움을 중단한 셋째 부인은 새로 온 사람을 발로 한 번 차고는 다시 명정의 뒤를 따라갔다. 반짝이는 눈빛이 물처럼 부드럽게 흘렀다.

냉궁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연장자로 올해 마흔 남짓이 된 셋째 부인은 폐후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녀가 입궁하여 총애를 받다가 폐위된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된 지 오래였다.

장서열은 피가 흐르는 얼굴을 가린 채 분노하여 욕을 했다.

“비명횡사할 것! 제 명에 못 죽을 것! 감히 본궁의 얼굴을 너희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냐? 아, 왕 마마! 왕 마마! 이 능글맞은 노비 같으니! 또 어디 가서 게으름을 부리는 게야! 본궁이 죽으면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막 정원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명정은 무언가에 홀린 듯 뒤를 돌아보다 노기가 등등한 얼굴을 보았다. 단조롭고 적막한 정원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활짝 피어난 빛깔처럼 순식간에 주위의 어둠을 환히 밝혀 놓았다. 화를 내는 모습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시선을 거둔 명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저러한 미색으로도 존귀한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은 정말 안타까웠다.

세월은 덧없이 흘렀다.

폐후의 몸은 빠르게 여위어 갔다. 하지만 성미는 여전히 드셌다. 그녀는 냉궁 사람들이 아까워 부수지 못하는 탁자와 의자를 때려 부쉈고, 다른 사람들은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는 음식을 내던졌다.

명정은 이런 좋은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디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라고 그녀를 일깨워 주었다. 가을 동안 바람에 말릴 것들은 말리고, 겨울을 위해 먹을 것을 남겨 두어야 현명했다.

폐후는 명정의 뒤에 미친 여자가 없는 걸 확인한 뒤 욕을 했다.

“꺼져! 개도 안 먹을 음식을 감히 본궁에게 들이밀다니!”

도도한 얼굴은 처음 왔을 때와 똑같았지만, 눈에서부터 아래턱까지 이어진 옅은 분홍빛 흔적은 부드럽고 깨끗한 얼굴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꺼지라는 말을 못 들은 게냐?”

명정은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얼굴을 보며 황제가 황후를 냉궁에 던져 넣은 건 순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악랄하고 천지분간을 못 하다니. 냉궁에 오지 않았다면 오히려 순리에 어긋날 정도로 황제의 눈이 멀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건을 나른 명정은 자리를 떠나며 다른 태감들에게 앞으로 이곳에는 자주 나타나지 말라고 분부했다.

냉궁은 대전大殿이었다. 비록 사시사철 황폐하고 초목이 무성했지만 조로전의 세 배 크기에, 여섯 개의 큰 원과 셀 수 없는 누각들을 지닌 곳이었다. 심지어 작은 화원도 일곱 개나 있었다. 화초의 진귀함을 떠나 냉궁은 인간 세계의 선경이었다. 단지 뱀과 쥐, 벌레가 너무 많았을 뿐.

반년 동안은 공응사供應司의 마지막 관찰 기간이었다. 폐후가 회생할 수 없음을 확실히 깨달은 후, 태감들은 다른 폐서인들과 동일하게 그녀에게 가는 보급품을 점차 줄여 나갔다. 명정은 수차례 재촉했으나 아무리 요청해도 물품은 반년에 한 번도 공급되지 않았다.

명정은 평소처럼 바빴기에 내원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폐후의 여파는 이미 가라앉았고, 그녀에 대한 소문과 원한들도 잠잠해진 상태였다.

당시 궁은 금 귀인의 손아귀에 있었고, 그녀는 함께 품계가 오른 데다 친정 세력이 든든한 장비章妃를 상대하느라 패배한 상대는 이미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명정조차도 폐후를 떠올리지 못했다.

봄이 온 후 세 번째 달, 명정은 규율에 따라 순시를 시작했다. 막 내원에 들어선 그는 가냘픈 여인이 둘째 부인을 짓누른 채 사정없이 때리는 모습을 보았다.

두 여인 옆에는 마른 과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주위를 가득 둘러싼 구경꾼들은 갈채를 보내며 야유를 하고, 제멋대로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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