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1화
뒷조사를 마친 옥호접은 장서양이 아닌, 동생 장서목에게 손을 댔다.
그 무렵 혼기가 찬 장서목은 주색에 빠져 있었다. 집에서는 혼처를 정하려 했으나, 살면서 부잣집 여식들만 보아 왔던 장서목에게 가난한 집안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장서목의 약점을 찾아낸 옥호접은 직접 복수에 나섰다.
처음 장서목과 옥호접의 만남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가 생각보다 순진한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옥호접이 단순히 뛰어난 기녀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꼬여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남자를 기방에만 빠져 있게 하는 건 아무리 옥호접이라도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틀 후, 장서전은 하릴없이 허풍을 떠는 부하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옥호접은 생각보다 그리 온화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장서목을 그야말로 시궁창에 빠뜨렸다.
옥호접은 부잣집 딸인 척 장서목에게 접근했다. 그녀는 멋진 영웅이 가련한 미인을 구하는 연극을 꾸민 후, 스스로 응석받이 아가씨를 자처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척 궁상맞은 공자를 꼬여 냈다.
장서목에게 옥호접은 부잣집 아가씨였고, 그는 명문가 귀공자였다.
엄밀히 말하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옥호접에게는 돈이 있었고, 장서목의 아버지는 관직에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옥호접의 꾐에 넘어간 장서목은 시간이 지나자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그녀가 자신을 얕보게 될까 봐 두려워졌다.
부잣집 아가씨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눈물을 흘렸다. 귀공자는 가난한 현실에 고민하며 괴로워했다.
옥호접은 장서목이 영웅 심리를 내세우며 우쭐거릴 수 있도록 교묘히 그를 부추겼다. 결국 장서목은 아직 양심이 남아있을 때, 사실 그의 가문이 어느 정도로 망가져 있는지 솔직히 털어놓았다. 덧붙여 부유한 옥씨 가문에서 설령 자신을 내친다 해도 결코 옥호접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옥호접은 남자를 다루는 데 정통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장서목이 양심을 버리고 조금씩 나쁜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자신을 받아 준 옥호접에게 감동한 장서목은 이후 미인을 웃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형님에게 은자를 받아 호접 아가씨가 좋아하는 간식이나 그릇을 사는 데 몽땅 탕진하기 시작했다.
장서양이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장서목은 이미 도둑이 되어 있었다. 그는 태산 같은 은혜를 베푼 형님의 것을 빼돌리고 아버지의 금고에 남몰래 손을 댄 것도 모자라, 급기야 이랑들이 감춰둔 은자까지 훔쳤다.
옥호접은 장서양 때문에 손해를 본 은자를 조금씩 계산해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다.
장서목이 자신에게 목을 매기 시작하자 어느 날 옥호접은 사당에 들어가 복을 빌어야 한다는 핑계로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그녀는 자신을 쫓아 나온 장서목과 애절한 밤을 보냈다. 침대 위에서의 기교는 예상대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옥호접은 그렇게 보름 만에 장서목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부잣집 아가씨가 어찌 매일 같이 바깥출입을 할 수 있는지 이상하다 느낄 새도 없이 장서목은 이미 몸과 마음을 모두 그녀에게 바친 상태였다.
드디어 목표를 달성한 옥호접은 이후 시녀 두 명에게 장서목의 시중을 들게 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된 그들의 관계는 어느 순간부터 옥호접이 자리를 비우는 날이면 내내 밤을 보내는 관계로 발전했다. 장서목은 자연스레 잠자리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두 명에서 시작한 여인은 차츰 네다섯 명까지 늘어났다. 여인들은 다들 부드럽게 순종하는 자세로 장서목을 지극히 받들어 모시고 달래는 등 그를 쥐락펴락했다. 주색에 탐닉한 장서목은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못했다.
이를 알아차린 장서양이 거무튀튀한 아우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는 제2군에서 퇴출당한 아우의 손을 끌고 옥 화방을 찾아가 옥호접의 진면목을 폭로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쾌락에 빠져든 장서목은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두 형제를 맞이한 옥호접은 화를 내지도, 거만하게 굴지도 않았다. 그녀는 화방 밖 난간에 살짝 기댄 채 장서목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매혹적인 눈길에 장서목은 그대로 이성을 잃었다. 그는 이미 며칠 동안 그녀를 안지 못한 상태였다.
옥호접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볍게 나삼羅衫(얇고 가벼운 비단으로 만든 적삼)을 풀었다. 그 모습을 본 장서목은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옷을 벗으려다 장서양에게 뺨을 맞고 물에 빠졌다.
아우는 시정잡배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타락하다니 앞으로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진 장서양이 옥호접에게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이 미천한 것! 제명에 죽지 못 할 년! 내 아우를 건드리다니! 감히 내……!”
옥호접이 다급히 한 걸음 물러섰다. 일렬로 늘어선 하인들은 신속히 그녀를 보호하며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장서양을 막아섰다.
옥호접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웃음 띤 그녀의 얼굴은 찬란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연경의 이름난 규수보다도 더욱 자부심 넘치는 모습이었다.
“장 공자,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하셔요. 지금 배 안에는 옥 노야께서 와 계십니다. 어르신을 놀라게 하면 좋을 일이 없을 텐데요? 그때는 저도 공자를 지켜드리지 못 합니다.”
말을 마친 옥호접은 방자한 웃음소리를 남긴 채 나는 듯이 자리를 떠났다.
옥호접이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녀는 이번 계획에 옥씨 가문을 끌어들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옥씨 가문의 대문은 무려 이틀이나 계집종으로 심부름을 하고나서야 겨우 열 수 있었다.
옥호접은 충성심을 보이기 위하여 처음부터 솔직하게 모든 계획을 털어 놓았다. 그녀는 빈틈없는 일처리로 결코 옥씨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을 것이지만, 혹시라도 실수가 있을 경우 옥 노야에게 뒷배가 되어 달라고 청했다. 쥐똥처럼 별것도 아닌 자신이 조금이라도 옥씨 가문의 물을 흐리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에 옥호접은 옥 노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옥씨 가문을 포섭하지 못 할 경우 그녀는 정원 하나를 빌려 이제 막 연경에 도착한 졸부의 딸로 신분을 위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연경 토박이인 장서목에게 탄로 날 위험이 컸다.
옥호접의 제안에 처음 옥 노야는 소매를 뿌리치고 떠났다. 그런데 하루 뒤, 놀랍게도 승낙이 떨어졌다. 물론 그 대가로 옥 노야는 옥호접을 적지 않게 괴롭혔지만, 어찌 되었든 덕분에 완벽한 계획이 되었으니 그녀로서는 최고의 결과를 낳은 셈이었다.
모든 게 탄로 났음에도 불구하고 장서목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심지어 도박에 계집질까지 할 기세인 그를 보며 옥호접은 자신의 계획이 완벽히 성공했음을 알았다.
미인이 돌아오자 옥 노야는 손을 내밀어 불뚝 튀어나온 배 위로 끌어안았다. 그가 나이든 손으로 옥호접의 부드러운 얼굴을 주물럭거리며 애정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치 스스로를 멋들어진 풍류객으로 아는 듯했다.
“어린 것이 아주 배짱이 두둑하구만. 이러다 장 대인이 노할까 두렵지도 않아? 장 대인이 와서 나삼을 벗기면 어쩌려고.”
“아이.”
요염하게 남자의 손을 뿌리친 옥호접이 부드럽게 그의 몸에 기댄 채 난초처럼 향기로운 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무섭지요.”
물론 옥 노야가 무서워하지 않으니 그녀라고 무서울 리 없었다.
“천첩賤妾, 참으로 무섭습니다. 행여라도 옷을 꽉 여미지 못해 노야를 위해 순결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요.”
옥호접은 유혹하는 시선으로 하얀 손을 옥 노야의 옷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옥 노야는 즉시 반응했다. 입으로는 요물이라고 욕을 했으나 행동은 말과 달랐다.
그 후, 옥호접은 찻집 거리에서 소문을 퍼뜨리는 노인에게 이 일을 팔았다. 상세하지만 교묘히 거짓이 섞인 이야기에서 실존 인물은 ‘붉은 비단으로 뛰어든 병사’가 되었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졌고, 심지어 호사가들은 공개 석상에서까지 이 일을 언급했다. 그렇게 장서목은 만인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한편, 장서전은 권세와 재력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바로잡고 가장 완벽한 결과를 얻었다. 그는 옥호접의 잔혹한 수법에 경악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 못할 바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녀란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어쨌든 옥호접은 분수도 모르고 여기저기서 빚을 질 뿐만 아니라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는 무관을 처리했다. 그녀는 귀족은 건드릴지언정 평민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특히 여러 방면에서 지혜롭고 훌륭한 활동을 이어가는 평민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따지고 보면 옥호접이 한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기에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다. 그러나 아무리 콧대 높은 그녀라도 평생 발 딛지 못할 세상이 존재했기에 아쉬움이 남는 건 당연했다.
사람들이 소문의 중심에 선 옥호접을 궁금해할 때, 이미 그녀는 화방과 함께 떠나고 없었다. 그녀는 닻을 올리고, 부평초처럼 다른 길목으로 흘러갔다.
만약 연이 닿아 옥호접이 다시 연경에 온다 해도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다시 옥호접이라는 이름을 걸고 완벽한 불여우가 되어 전도유망한 청년을 쥐락펴락하는 명성을 이어갈 터였다. 만에 하나 순탄하지 못하다면 이름을 바꾸고 화방을 버리면 그만이었다. 기녀란 그런 존재였다.
* * *
토굴에 숨겨 둔 은자 이백 냥이 사라진 걸 발견한 장서양은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뾰족한 무언가가 사정없이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비틀거리며 토굴에서 올라온 그의 눈에 지난날 생기 넘치던 아우가 겁먹은 얼굴로 문 뒤에 숨는 모습이 보였다. 장서양과 눈이 마주친 장서목은 나는 듯이 도망쳤다.
장서양은 겨울에 들어선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으스스했다. 그는 최근 몇 해 동안 방탕하게도 생활해 보고, 열심히도 살았으며 공짜로 은자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 년을 꼬박 고생했지만 아우는 타락했고, 지금 가진 은자로는 땔감을 사는 것조차 사치였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겨울 앞에 버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권력도, 의지할 곳도 없는 장서양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장씨 가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많은 일을 겪을수록 그는 과거 아버지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만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버지는 맨몸으로 조국공의 딸을 아내로 맞았고, 이에 기대어 조정에서 순조롭게 좌상의 지위에 올랐다. 심지어 아버지에게는 검은 속내를 품은 남편을 위해 기꺼이 첩을 두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인이 있었다.
장서양은 돌연 웃었다. 크지만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