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259)화 (259/449)

제259화

얼른 앞으로 다가온 농교와 완정이 한쪽으로 황제를 부축해 옮겼다. 장서열은 몸이 허약해 그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한꺼번에 많은 말을 한 탓에 황제보다 더 많은 휴식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구염락의 손은 끝끝내 떨어지기를 거부했다. 완정이 난감한 시선을 던졌다. 구염락의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걷어낸 장서열은 그가 더 편히 누울 수 있도록 자세를 달리 했다.

“그냥 두거라. 본궁은 아직 괜찮다.”

잠든 구염락은 장서열의 손을 잡은 채 그녀에게 바짝 몸을 붙이고 있었다. 활짝 펴진 미간과 표정은 편안했다.

농교는 침대 위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보기라도 한다면 황제는 그야말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마마께서는 아직 산후조리 중이신데!’

요즘 겁을 먹은 화 마마는 도통 현비를 나무라지 못했다. 이런 때에 후궁이 많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현비는 꼼짝없이 군주를 미혹시켰다는 누명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장서열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구염락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았다. 조금만 몸을 구부리면 침대에 누운 구염락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이제 그녀의 키는 구염락의 어깨에 겨우 닿을 정도였다.

장서열은 구염락이 코를 찡그리는 모습을 보며 살짝 웃었다. 가끔씩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구염락은 갈수록 성숙하고 단단해졌다. 아마 이번 전쟁에서도 그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구염락의 머리카락을 놓아 준 장서열이 그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황아皇儿(구염황)와 구염락이 어디가 닮았는지 알 수 없었다. 굳이 닮은 곳을 꼽자면 높은 콧대와 앙다문 입꼬리 정도. 두 군데는 그나마 부친과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장서열의 시선이 문 밖에 있는 농교를 향했다. 농교가 서둘러 다가왔다.

“무슨 분부라도 있으십니까, 마마?”

“무관들이 참석하는 연회는 언제 시작된다더냐?”

“예, 마마. 연회는 오늘 저녁 조석궁에서 열립니다.”

장서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더 자게 놔둬도 괜찮을 것이다. 그 역시 서둘러 돌아오는 여정에 지쳤을 터였다.

동시에 살짝 졸린 걸 느낀 장서열은 황자의 상태를 묻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곧장 그와 함께 잠이 들었다.

* * *

구염락이 깨어났을 때는 막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장서열은 그의 품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다.

풍성한 속눈썹과 분홍빛이 도는 우윳빛 피부는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눈이 부셨다. 아이를 낳느라 고생한 탓에 입술이 살짝 창백해 보였지만, 그녀의 모든 것은 여전히 구염락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던 구염락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장서열을 품에 안은 채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장서열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에 일순간 깜짝 놀란 그녀는 구염락이 환궁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막 입을 떼려던 그녀는 위에 올라선 구염락이 갑자기 힘을 주자 자신도 모르게 약한 신음을 흘렸다.

“음…….”

장서열은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단지 구염락에게 눌려 소리가 흘러나왔을 뿐 별다른 뜻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욕망이 발동한 구염락은 곧장 그녀의 몸을 휘감고 어지럽게 호흡하기 시작했다.

“서열아… 서열아, 견디기 힘들어…….”

구염락의 변화를 느낀 장서열이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바짝 몸을 밀착시켰다.

“이러지 말아요…….”

장서열은 아직 산후조리 중이었기에 시침을 들 수 없었다. 물론 구염락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스스로 편해질 방법을 찾기 위해 사무치게 그리운 이에게 떼를 썼다.

그러면서도 구염락은 동시에 스스로를 꾸짖었다. 자고로 하늘이 만든 재난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난은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입을 맞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구염락은 눈앞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여인을 한입에 먹어치우고 싶었다.

“서열아…….”

오직 자신의 서열이라는 생각에 더욱 흥분하고 감격한 구염락이 엉키는 대로 장서열의 몸에 자신의 몸을 휘감았다. 마치 우람한 뱀이 가련한 먹이를 옥죄는 듯한 몸짓이었다.

장서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구염락에게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잔뜩 흥분한 모습을 보니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긴장으로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눈 속에서 찬란한 빛이 폭발하자 장서열은 그가 쏟아내는 빛에 마치 눈이 타들어 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간신히 본래의 안색을 되찾은 장서열이 사랑을 가득 담은 눈으로 자신의 몸 위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게으름 피우지 말아요. 저녁 연회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소리자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세요.”

장서열의 이마에 촘촘히 식은땀이 맺혔다. 그녀는 피곤했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서 가요. 그만 뒹굴거리고.”

구염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무척 훈훈했다. 구염락은 이대로 장서열의 곁에 머물며 정사를 돌보지 않는 폭군이 되고 싶었다. 그는 아이처럼 그녀의 몸 위에서 뭉그적거리며 계속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장서열이 구염락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다 큰 어른이 어린애처럼 왜 이래요. 어서 일어나요. 조정 대신들이 영명하고 위풍당당한 황제가 아니라 침대에서 꾸물거리는 황제라고 생각하길 바라는 거예요?”

“침대 위에 네가 있다면 지아비로서 기꺼이 그럴 거야.”

말을 마친 구염락은 장서열을 품에 단단히 껴안은 채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간지러워서 살짝 고개를 돌렸을 뿐 장서열 역시 그를 피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진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엄숙한 목소리로 그에게 경고했다.

“계속 이럴 거예요?”

그러나 구염락은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무섭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힘껏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자 장서열의 뺨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가라앉았던 구염락의 갈망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그가 장미처럼 어여쁜 입술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한편, 진 공공은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소리자와 혜령은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물어 가는 하늘과 함께 곧 축하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결국 황급히 조로전으로 달려온 진 공공은 용포를 받쳐든 소리자와 혜령이 고개를 숙이고 밖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거의 옷깃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있었다.

진 공공은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황제가 현비의 처소에 든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까지 늦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진 공공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현비를 향한 황제의 열정도, 예법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도 수긍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 공공은 어린 시절부터 황제를 모신 것이 아니었기에 특정 사안에 관해서는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특히 큰일을 다루는 데 있어 자신만의 원칙이 뚜렷한 황제에게 간언하는 건 더욱 곤란했다.

진 공공의 등장에 소리자와 혜령이 구원을 요청하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꾸지람을 듣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회가 시작될 때까지 폐하께서 나오지 않으신다면 결국 이들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면하기 힘들 것이다.

진 공공은 황제의 숨소리를 들으며 침착하게 휘장 앞으로 다가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신 그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기침 소리는 마치 정말로 참지 못해 한 것처럼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 소리자와 혜령은 진 공공의 실력에 감탄했다. 두 사람에게는 저렇게 진짜 같은 기침 소리를 내는 재주가 없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구염락은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신경 쓰지 않는 초라한 출신이었다. 그는 진 공공의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장서열을 괴롭혔다.

물론 장서열은 구염락처럼 얼굴이 두껍지 않았다. 진 공공이 재촉하듯 헛기침을 하자 장서열의 얼굴이 다시 한번 빨개졌다. 억지로 화를 참은 그녀가 못되게 굴고 있는 구염락을 있는 힘껏 발로 차 떨어뜨렸다.

“씻으러 가라니까요!”

순간 구염락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침대 밑으로 낙하하는 도중 불현듯 정신을 차린 그가 준수한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그가 학대라도 당한 사람처럼 장서열을 바라보았다.

장서열이 구염락을 향해 황아皇儿의 옷을 집어 던졌다.

“이래도 안 갈 거예요?”

휘장 밖에 있던 진 공공은 두려움에 몸을 떨며 과연 현비라고 생각했다. 감히 황제를 향해 호통을 치다니. 조정 대신들이 현비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런 성격의 여인을 총애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황제뿐이었다. 진 공공은 만일 황제가 정색한다면 현비 역시 감히 건방지게 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구염락은 자신이 지나쳤다는 걸 깨닫고 기가 죽은 얼굴로 방을 나섰다. 그러나 내전을 나온 즉시 그는 다시 자신을 엄히 다스리고 언행을 삼가는 제왕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분위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뼛속까지 한기를 느끼게 했다.

구염락은 용포를 차려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한 뒤 슬쩍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구염락이 머리를 들이밀던 순간, 물을 마시던 장서열이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항복한 구염락은 얼른 몸을 돌려 조로전을 나갔다.

저녁 연회는 황실에서 주최한 연회답게 사치스럽다기보다 자못 웅장했다. 구염락은 평소처럼 냉랭했으나 한편으론 또 평소와는 달랐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기고만장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처음 제위에 올랐을 당시 허세가 뒤섞여 있던 모습은 이제 완벽한 오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인들은 전보다 더욱 지극정성으로 시중을 들었다. 조금이라도 황제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자칫 끌려 나가 문책이라도 당할까 봐 두려웠다.

강자에게 승복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었으나 승복할 능력조차 없는 이들은 이를 아첨이라 폄하했다. 그러나 천하의 제왕이 될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대주국의 황좌는 천하의 복종을 받는 지존의 자리이자 만백성에게 추앙 받는 최고의 자리였다.

황제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권 노야는 충왕과 함께 반년간 나랏일을 맡았다. 두 사람의 손에는 도당 무리가 있었고, 각각의 세력은 막강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황제가 환궁하자마자 자신들의 세력이 와해되고 있음을 민감하게 감지했다.

구태여 황제가 조사할 필요도 없이 두 노신의 곁에는 이미 쓸 만한 수하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권력이었다. 황제가 우매하게 굴지 않는 한 누구도 무모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힘. 게다가 영덕제는 우매하지 않을 수준을 넘어 문무를 모두 겸비한 최고의 제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