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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55)화 (255/449)

제255화

조옥언은 딸이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달 네 올케의 해산일도 얼마 남지 않았단다. 그러니 혹시라도 올케를 앞지르지 않도록 해라.”

장서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케가 몸을 풀고 나면 함께 궁에 와 주세요.”

“그래. 다 큰 애가 올케를 다 보고 싶어 하는구나.”

조옥언은 짐짓 나무라듯 말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기뻤다. 유일무이한 딸이 하나뿐인 올케를 살뜰히 챙기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바라보던 장서열이 돌연 불쑥 물었다.

“어머니, 서 이랑徐姨娘(장서열의 오라버니인 장서전의 첩실)은 소식이 있나요?”

순간 무슨 말인지를 생각하던 조옥언이 잠시 후 서 이랑이 누구인지를 기억해 냈다. 그녀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시어머니가 아닌 탓에 아들의 집안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한 며느리의 체면을 위해 첩실인 서 이랑이 자신에게 문안인사를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딸이 서 이랑을 언급했을 때 하마터면 저택에 그런 여인이 있다는 것조차 떠올리지 못할 뻔했다.

조옥언이 언짢은 눈으로 장서열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떤 신분인데 서 이랑을 궁금해하는 게냐. 혹여나 첩실의 콧대가 높아질까 걱정되지도 않으냐?”

하지만 조옥언은 결국 딸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소식이랄 게 무엇이 있겠니. 네 오라버니가 전장에 나간 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 회임 소식이 들리면 그게 더 이상한 게지.

몸 관리 잘하고 태교에 힘쓰거라. 대주국을 위해 황장자皇长子(황제의 맏아들)를 낳아야지. 매일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지 말고.”

장서열은 안도했다. 올케가 장자를 낳으면 정실부인의 지위가 더욱 공고해질 테니, 미모의 서 이랑이 혹시라도 올케의 자리를 넘볼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장서열이 애교 있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알아요, 어머니. 오랜만에 어머니를 봬서 물어보는 것뿐이에요.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물색없는 것, 이제 어미가 될 아이가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다니.”

딸이 함께 살 때처럼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옥언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한편으로는 안심도 됐다.

“서열아, 어미를 걱정시키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몸조심해야 한다. 요즘에는 뭐가 먹고 싶니? 내 손자가 널 힘들게 하지는 않고?”

그 말에 장서열이 참지 못하고 눈을 흘겼다.

“어머니,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만일 공주라면 싫어하실 건가요?”

“그럴 리가. 물론 공주여도 어미는 좋단다. 다만…….”

바깥에는 전장에 나간 황제가 다쳤다거나 적진에 깊이 들어갔다는 불길한 소식이 가득했다. 연경의 백성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런 때 그녀의 딸이 황자를 낳는다면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조옥언은 아직 혈색이 좋지 못한 딸을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는 굳이 심란한 바깥소문은 꺼내지 않았다.

“황자든 공주든 상관없으니 네 몸을 우선으로 챙기거라.”

바깥의 하늘을 바라본 조옥언이 다시 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집안 이야기를 나눈 후, 조옥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조옥언은 몸이 좋지 않은 딸이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하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몸조심하라는 당부를 재차 남긴 뒤에야 조옥언은 겨우 자리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창백한 딸의 얼굴을 떠올린 조옥언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백국이 대체 얼마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기에 황제는 이런 시기에 그들을 정벌하러 떠났단 말인가. 조옥언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눈물을 닦은 조옥언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황제는 한 나라의 군주로 다른 사내들과는 달랐다. 그가 온전히 후궁을 돌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머리와는 달리 조옥언은 딸을 생각하며 여전히 억울함을 느꼈다.

홍촉은 한숨을 내쉬며 부인을 위해 차를 따라 주었다. 부인은 도련님과 아가씨가 줄지어 혼례를 올린 후 지난 일 년 동안 줄곧 울적해 했다.

그녀는 할 일이 없으면 무언가를 보며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 궁에서 나오자마자 울어 버렸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서열 아가씨가 궁에서 무슨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줄 알겠구나…….’

* * *

조옥언 외에 마음대로 황궁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현비의 복중 태아가 위험할 뻔했으며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무슨 일이냐고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황자를 음해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장서열은 조용하고 편안한 생활을 즐겼다. 안색은 점점 좋아졌고 기력도 차츰 회복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은 직접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심코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무언가 가슴을 찌르는 느낌에 장서열은 감히 그 기억을 마주할 수 없었다.

장서열은 다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궁의 악사들은 다시 바빠졌고, 조로전에서는 매일 노래와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려 왔다.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연주를 하는 일이 없도록 애쓰며 장서열의 비위를 맞추었다.

엿새 후, 장서열은 초조하게 안부를 묻는 구염락의 서신을 받았다. 허둥대며 다급하게 쓰인 서신은 그가 그녀의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얼마나 무기력하고 당황스러워하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구염락이 그녀의 상태를 알고 있는 건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었다. 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구염락의 심복이 아닌 자는 없었다.

장서열은 붓을 들어 자신은 이미 다 나았으니 전장에서 조급하게 굴지 말고 침착하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적었다. 또한 그날은 단지 점심에 음식을 잘못 먹은 것뿐이므로 앞으로 주의하겠다고도 적었다. 그녀는 구염락이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도록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화 마마는 서신을 쓰고 있는 현비에게 탕약을 받쳐 들고 다가갔다. 두 악관이 듣기 좋게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화 마마가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간덩이가 부은 놈들입니다. 감히 마마를 해하려 하다니요? 심지어 그것들은 필사적으로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인은 그들을 노무사劳务司에 보내어 매일 중노동을 시키고 오물통을 닦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주인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알게 되겠지요!”

그 말에 붓을 멈춘 장서열이 화 마마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화 마마가 곧장 답했다.

“예, 마마. 삼색 모란으로 마마와 복중의 아기씨를 해하려 했던 태감 두 명 말입니다. 무슨 호랑이 담력이라도 되는지 겁도 없이 황자를 모해하려 한 그 놈들이요!

그것들은 분명 요상한 술수를 써서 복중 아기씨를 해치려 한 게 분명합니다. 복중 아기씨께 액운을 미칠까 피를 보지는 않았지만 원래대로라면 그것들은 신형사로 보내져 처형당했을 거예요!”

화 마마는 역심을 품은 두 사람을 능지처참하여 죽이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하지만 복중 아기씨께 액운이 미칠 수도 있는 일은 포기하는 게 마땅했다. 화 마마가 불만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장서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쓰러지지 않은 건 서둘러 탁자를 붙잡은 덕분이었다.

“마마…?”

고개 숙인 장서열을 보며 어리둥절해진 화 마마가 입을 다물었다. 장서열은 들끓는 분노의 불길을 잠재우기 위해 애써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이를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화 마마에게 따귀를 내리치고 싶은 충동을 겨우 잠재웠다. 하지만 목소리는 싸늘했다.

“그들을 신형사로 보낸 지 얼마나 되었지?”

현비는 보통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비록 탕약 그릇을 두어 번 내던지기는 했지만 평소 감정을 매우 절제할 줄 알았다. 화 마마는 이번에도 별 생각 없이 여전히 그녀의 편을 들며 말했다.

“마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겁니다. 꽃으로 마마를 해하려 한 자들을 어찌 그냥 놔둘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날 바로 신형사에 잡혀 갔고, 신형사 대태감이 복중 황자 아기씨를 위해 직접 그들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손이 주먹을 불끈 쥐자 창백한 흰 손등에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장서열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감히 명정을 심문하다니!’

전생에서 명정이 없었다면 장서열은 일찌감치 죽은 목숨이었다. 그녀가 호수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유일하게 슬퍼해 준 사람도 명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명정이 신형사에 처박혀 고생을 하고 있다.

장서열은 순간 명정을 신형사에 처넣은 것들을 발로 차 죽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랬다. 이건 억누른다고 억누를 수 있는 한이 아니었다.

장서열은 명정에 대해 생각하기도, 그를 보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그건 오직 자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황궁에 감히 명정을 심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장서열이 음산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애써 분노를 참고 있던 탓에 들리는 목소리는 오히려 작고 가련했다.

“…그를 놓아 줘.”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화 마마가 선뜻 장서열에게 다가가 물었다.

“마마, 뭐라고 하셨습니까?”

순간 화 마마의 얼굴 위로 매서운 따귀가 떨어졌다. 평소 바늘 하나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유약한 현비에게서 그렇게 큰 힘이 나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따귀를 맞은 화 마마는 곧장 세 걸음 뒤로 밀려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두 악관이 놀라서 털썩 무릎을 꿇는 것과 동시에, 대전 안에서 시중을 들던 모든 하인들이 일제히 쿵쿵 무릎을 꿇고 현비에게 용서를 빌었다.

장서열은 손바닥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서둘러 옆에 높인 탕약 그릇을 단숨에 들이켠 그녀가 책상을 붙잡으며 조용히 숨을 헐떡거렸다. 입가에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장서열은 더는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자제하기 위해 애를 썼다. 더럽고 비천한 마음은 스스로 생각해도 역겨웠다.

‘이런 추악한 속내를 모두가 알게 할 셈이야? 그러면 구염락의 체면이 뭐가 돼!’

화 마마는 놀라서 바닥에 엎드렸다. 그녀는 멍한 한편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제일 먼저 걱정된 건 자신이 아닌 현비의 상태였다. 현비가 탕약을 마시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 화 마마는 다시 화들짝 놀랐다.

‘마마께서는 지금 괜찮으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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