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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41)화 (241/449)
  • 제241화

    그 말에 돌연 구염락의 눈이 불타올랐다. 그는 미친 듯이 장서열의 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를 한 입에 먹어치우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가슴이 터질 듯한 사랑을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자 구염락은 쉬지 않고 그녀의 몸에 머리를 비비며 어떻게든 이를 발산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곧 이렇게 파고들어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깨달은 구염락은 손 안의 눈송이에서 의연히 손을 놓았다. 이내 그는 토라진 아이처럼 손끝 하나 대지 않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며 변덕스럽게 말했다.

    “나도 금용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어. 물론 내쳤어. 너의 노여움을 사 놓고 다시 재기하려 하다니, 짐이 황제인 이상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구염락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칭찬을 바라듯 장서열을 바라보았다. 잠시 하려던 동작을 멈춘 그녀가 탐색하는 눈으로 구염락을 바라보았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거죠? 괜히 금용으로 화제를 돌릴 생각 말아요. 그 아이를 손봐 줄 방법은 내게도 많아요. 말해 봐요, 무슨 일이에요?”

    “아무 일 없는데?”

    구염락은 장서열이 말을 하지 못하도록 장난스레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렸다. 가늘게 뜬 눈으로 구염락을 바라보던 장서열은 문득 열이 올라오는 그의 은밀한 부위를 손으로 덮은 뒤 그를 내려다보았다. 장서열과 시선을 마주한 구염락이 인내하는 눈빛으로 뺨을 붉혔다.

    “자, 어서 말해요. 무슨 일이죠?”

    장서열이 짓궂게 손을 살짝 움직이자 구염락이 낮게 신음을 흘렸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느낌은 그를 부끄럽고 화나게 만들었다. 특히 멀쩡한 장서열의 앞에서 자신만 혼자 이런 모양이 되었을 때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음… 별거 아니야. 단지…….”

    구염락이 얼굴을 붉히며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서북왕이 국암사의 대필 서신을 보냈어.”

    전생에서 귀자태후가 되었던 구염락의 친모 약연과 서북왕을 차례로 떠올린 장서열은 불현듯 안 좋은 예감을 느꼈다. 이들은 태후가 실각한 틈을 타 구염락을 제압할 또 다른 태후를 세우려는 듯했다.

    만일 구염락이 태후를 쫓아낸 것도 모자라 친모에게까지 불경을 저지른다면, 그는 키워준 어머니와 낳아준 어머니를 모두 저버린 천하의 불효자가 되어 손가락질 당하게 될 것이다.

    약연이 보통 여인에 불과했다면 장서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약연은 머리가 비상한 여인이었다.

    장서열은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보아하니 구염락은 약연을 들일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머뭇거리며 입을 열지 않았을 리 없었다.

    ‘구염락은 정말로 친모를 입궁시킬 생각일까?’

    장서열은 상념에 빠졌다. 자신에게 닿아 있던 손이 사라지자 그녀를 슬쩍 쳐다본 구염락이 다시 그녀의 손을 원래의 위치에 갖다 대고 혼자 힘으로 즐거움을 만끽했다.

    장서열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구염락은 마치 나쁜 짓을 저지른 아이처럼 재빨리 모른 척했다. 그런 구염락을 보며 머릿속의 걱정을 훌훌 털어버린 그녀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칠 때의 구염락은 정말 귀여웠다.

    위축됐던 구염락의 마음이 순간 날아올랐다. 서열이가 화를 내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리하여 뻔뻔스럽게 다시 그녀에게 다가간 그가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웃지 마. 계속 웃으면 금용을 일등 궁녀로 승급시킬 거야.”

    장서열의 다리 사이에 누운 그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장서열은 구염락의 협박을 무시했다.

    “그러세요. 그렇다면 당신의 목도 무사하진 못해요.”

    구염락의 목을 꼬집는 시늉을 하던 장서열은 살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그의 몸에 속으로 감탄했다.

    “안 할 테니까 그만해. 간지러워.”

    “무서운 줄은 아는군요? 가서 옷이나 갈아입어요.”

    장서열의 말에 고개를 숙인 구염락이 날 듯이 도망쳤다. 대청을 뛰쳐나오기 전,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그녀를 일깨우는 걸 잊지 않았다.

    “약 마셔.”

    그때까지 완정은 두 사람에게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장서열은 구염락이 욕실 안으로 사라지자 농교에게 물을 가져오게 했다. 손을 씻고 홀짝홀짝 탕약을 마시던 장서열은 그제야 비로소 다시 약연을 떠올렸다.

    구염락은 분명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모를 궁으로 들일 생각이라서? 하지만 이를 자신이 말린다면…….

    귀자태후에게 보복 당할 거라고 생각하자 장서열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 당장 입궁한다 해도 그녀가 자신의 위협이 될 리 없는 태아를 해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기회를 노려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 할 것이다.

    장서열은 전생에서 대체 왜 귀자태후가 자신을 싫어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을 멀리하다 못해 소외시키던 느낌은 지금 생각해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다행히도 이번 생에서 장서열은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생에서 그토록 귀자태후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으나 결국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런 귀자태후를 냉담하게 대한다면 아마 이번 생에서는 더 큰 미움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장서열은 남은 탕약 한 모금을 전부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녀는 구염락의 뜻에 맡기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아무리 혼자 고민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구염락이 상쾌한 몸이 되어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장서열이 겉옷만 벗었을 뿐 원래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뜨는 걸 느꼈다.

    “식사를 차려라.”

    구염락의 지시에 잠시 그를 힐끗 쳐다본 장서열은 다시 찻잔 속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던 그는 목욕을 한 뒤 금세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이가 아니기는!’

    장서열은 또 다시 엉겨 붙는 구염락을 말리지 않고 말했다.

    “덥지도 않아요? 주변에 화로가 일곱 개나 있다고요!”

    구염락이 장서열의 어깨를 껴안으며 웃었다.

    “그럴 리가. 널 껴안고 있으면 하나도 덥지 않아.”

    “상의할 게 있어요. 금용도 이제 나이가 어리지 않잖아요. 제 생각에는 헌원가의 동생과 맺어 주는 게 괜찮을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금용, 재기하고 싶다 이거지? 널 주소유朱小游 그 성질 사나운 명문가 여인 곁으로 보내줄 테니 어디 한번 잘해 보거라. 네가 어떤 식으로 정실부인인 주소유의 머리꼭대기에 올라가는지 똑똑히 지켜봐 주마! 너의 그 총명한 머리는 너보다 한 수 위인 자와 겨뤄야 마땅하다.’

    구염락은 감히 반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호부상서户部尚书의 유일한 아들에게 시집가는 건 금용에게 있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금용은 헌원상보다 세 살이나 많잖아.”

    장서열이 구염락을 바라봤다.

    “그럼 어때서요?”

    구염락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두 살이 많은 여인이 지금 눈앞에 있지 않은가. 여기서 말을 잘못하면 못 볼 꼴을 볼 수도 있었다.

    “좋아. 설이 지나면 사람을 시켜 금용을 보내도록 할게.”

    장서열이 돌연 물었다.

    “헌원상은 주 태부의 딸과 정혼을 맺었나요?”

    구염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이 헌원상을 마음에 들어 할 줄은 몰랐어.”

    “훌륭한 학자께서 의외의 선택을 하셨네요.”

    구염락이 답했다.

    “비록 스승님 밑의 가장 우수한 제자만큼은 못하지만 헌원상도 학문이 뛰어난 편이야. 신분이나 학식 면에서 모두 훌륭하니, 스승님이 그를 선택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두 사람이 무사히 정혼을 했다는 사실에 장서열은 마음을 놓았다. 주소유가 금용을 제압한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독사 같은 여인은 전생에서처럼 헌원상과 혼인하여 반드시 예정대로 아들을 낳아야 했다. 그 아들의 가죽을 벗기고 힘줄을 뽑는다 한들 전생에서 쌓은 한이 다 풀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밥 먹자. 내가 먹여 줄게.”

    구염락이 장서열을 번쩍 안아 들었다. 마음에 켕기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기분이 좋은 덕분인지 오늘따라 그는 유난히 자상했다.

    장서열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구염락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기에 그의 생모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묻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약연을 성모圣母라고 높여 부르고 있었다. 이는 어느 정도 구염락의 뜻이 내포된 호칭일 터였다.

    “그거 말고 조림을 먹을래요.”

    “조리거나 찐 음식은 싫어하잖아.”

    “지금은 먹고 싶어요.”

    귀엽다는 듯 싱긋 웃은 구염락이 그녀의 뜻대로 해 주었다. 장서열은 그가 집어 준 감자조림을 한 입 베어 물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당신이 제 식사 시중을 들어 주는 게 참 오랜만이네요. 앞으로는 매일 당신의 시중을 받아 보려고요. 제가 내리는 은혜에 감사하시죠?”

    구염락이 민첩하게 소매를 털고 머리를 조아렸다.

    “노비, 현비마마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장서열이 얼른 구염락을 부축해 일으켰다. 부끄러움에 뺨을 붉힌 그녀가 원망하는 투로 말했다.

    “일국의 제왕이 무슨 그런 장난을 쳐요. 소문나서 비웃음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요.”

    “상관없어. 즐겁기만 한걸.”

    구염락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바라보던 장서열은 그런 그가 사랑스럽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좋아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 * *

    다음날 정오, 하인들이 거주하는 편전의 서쪽 방 한편에서 분노한 목소리가 울렸다.

    “난 출궁하지 않을 거예요! 시집가지 않을 거라고요!”

    금용이 소식을 알리러 온 소리자를 노려보았다.

    “폐하께서 내게 그런 말을 전하라고 하셨다고요? 지금 날 속이는 거죠?”

    금용은 소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난 그날 이후로 현비 앞에서 알짱거린 적도,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폐하께서도 저를 내쫓을 수 없어요!”

    소리자가 너그러운 표정으로 금용을 바라보았다.

    “널 내쫓는 게 아니야. 헌원 공자의 첩 자리는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좋은 혼처잖아.”

    금용이 소리자를 무섭게 몰아붙였다.

    “현비 생각이죠? 내가 죽거나 시집을 가지 않는 이상 그녀는 안심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죠?”

    “그렇게 말하지 마.”

    소리자라고 금용에게 이런 소식을 전하고 싶었을 리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금용을 마주한 소리자의 마음은 몹시 괴로웠다.

    “현비마마는 그런 분이 아니다.”

    금용이 무척 우습다는 듯 말했다.

    “현비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와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요. 왜요? 당신도 현비에게 넘어간 거예요? 권세와 지위를 얻기 위해 이제 현비의 편을 들기로 한 거냐고요! 현비가 당신을 지켜 줄 거라 착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폐하를 꼬드길까 봐 당신까지 시집보내려 할 여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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