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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39)화 (239/449)
  • 제239화

    여인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장서영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요. 부유한 뜨내기가 아닐까요?”

    “아니야. 분명 연경 말투를 쓰고 있었어.”

    “어디 사람인지가 뭐가 중요해요. 허리에 찬 옥패 못 봤어요? 그건 돈이 있어도 못 사는 값진 물건이에요. 웬만한 귀족들은 살 수도 없는 진품이라고요. 제가 보기에 그는 상인이 아니에요. 상인으로 따지면 누가 관씨 가문을 능가할 수 있겠어요? 분명히 관원일 거예요!”

    “하지만 관원 치고는 너무 어렸어요. 그렇게 젊은 나이에 관 도련님에게 예를 차리게 만들다니. 연경에 언제 그렇게 젊고 준수한 젊은이가 있었죠?”

    곧이어 다른 여인이 수줍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젊고 준수한 젊은이로 말할 것 같으면 권씨 가문의 권 공자를 빼놓을 수 없죠. 전 권 공자의 눈에 들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쉿!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희 나리께서 그 말을 들으면 입을 찢어 놓으려 할 걸.”

    마차 안에 순간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여인들은 모처럼 남자가 곁에 없자 거리낌 없이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들은 가끔씩 침대 위에서 활용하는 비법을 논하다가 부끄러운 대목에서는 서로를 놀리며 또 깔깔 웃었다.

    쾅!

    “꺄!”

    마차 바깥으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장서영이 참지 못하고 마차 밖으로 뛰어내린 것이었다. 잡담을 나누고 있던 여인들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살려 주세요! 누가 마차에서 뛰어내렸어요!”

    그 후 장서영은 구조되어 관씨 가문으로 돌아왔다. 저택의 하인은 관지례의 부인에게 장 이랑(姨娘, 첩을 부르는 말)이 마차에서 뛰어내려 팔을 다쳤으며, 이미 의원을 불렀다고 고했다.

    관지례의 부인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장 이랑을 보러 갈 마음이 없었다.

    관지례의 부인은 몰락한 후부(侯府) 출신이었다. 그녀는 학자 집안의 명망 있는 귀족 출신이었으나 제아무리 후부 출신이라도 권세를 지닌 귀족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녀는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정식으로 매파를 통한 혼인이 불가능했으나, 상인 출신인 관씨 가문에서만큼은 매우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관지례의 부인은 평소 동서들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관씨 가문의 안방마님 행세를 자처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남편은 부친의 뜻에 따라 과거 재상이었던 이의 딸을 첩으로 맞이해 한동안 끔찍이 총애했고, 이에 관지례의 부인은 몹시 체면을 구겼다.

    ‘흥! 그래 봐야 이제는 고작 7품 관원에 불과한 자의 딸일 뿐인데 뭐가 대단하다고!’

    그녀는 남편인 관지례에게 새로운 첩실을 들여 주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남편은 오랫동안 장서영을 찾지 않았다.

    관지례의 부인은 결코 장서영을 신경 쓰지 않았으나, 그녀를 웃음거리로 삼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동서들은 사사건건 장서영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마치 과거 승상이었던 부친을 둔 장서영이 후부보다 더욱 가치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관지례의 부인은 동서들이 시아버지인 관 노야의 신임을 받는 관지례를 시기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하나같이 질투에 눈이 멀어서는!’

    관지례의 부인은 도도하게 고개를 들었다. 혼수도 가져오지 않은 첩실 따위를 신경 쓸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어차피 손님 접대에 내보내지는 처지로 전락한 장서영을 견제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덕분에 관지례의 부인은 남편 앞에서 장 이랑을 성심껏 배려할 수 있었다.

    “창고에서 좋은 약재를 찾아 보내 주거라. 상처가 다 나으면 문안을 들러 오라고 하고.”

    관지례의 부인은 즐거운 기분으로 몇 가지 장신구를 골라 단장을 했다. 이후 그녀는 기세 좋게 하인을 거느리고 바깥 대청에 나가 노부인을 모시고 마작을 하러 갔다.

    장서영은 옥석과 금, 은으로 장식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관씨 가문의 저택은 한껏 재력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그녀의 방은 특히 그 정도가 심했다. 특별히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거처는 마치 금과 은을 쌓아 놓은 듯 모든 게 눈이 부셨다. 심지어 그녀가 누운 침대는 절반이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장서영은 관지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침대 위에 드리워진 부귀의 상징 천층수(千层绣) 도안을 바라보며 장서영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고통을 느꼈다.

    ‘어째서 그대로 죽지 않은 걸까. 아직도 살아있다니! 살아서 이렇게 못 볼 꼴을 봐야 한다니!’

    눈물이 소리 없이 미끄러졌다. 장서영은 과거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근심 걱정은 우스운 것들이었다. 안간힘을 다해 벗어나려 했던 사람은 사실 그녀의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오늘에 이를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미리 알았더라면…….’

    흘러내린 눈물이 값비싼 옥침(玉枕, 옥으로 장식한 베개)을 적셨다. 옛집에 있던 누각과 그녀에게 수놓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봉 사부가 함께 떠올랐다.

    서열 언니가 초혜전을 나온 후 저택의 모든 것들이 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일, 그로 인해 속상해하던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까지 거품처럼 기억 위로 떠올랐다.

    당시 장서영은 장서열이 자신의 것을 빼앗는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스승이었던 봉 사부를 혼자 독차지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장서열은 만인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모든 건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다.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그곳은 장서열의 집이었고, 장서열은 명실공히 장씨 가문의 적녀였다. 서출들은 조 부인이 내리는 은혜를 감사히 여길 줄 알아야 했다. 그렇게 모든 걸 욕심 부려서는 안 되는 거였다.

    서출인 주제에 적자(嫡子)와 적녀(嫡女)의 것을 넘보다니. 장서영은 대체 자신이 왜 그리 사리분별을 못하고 염치없이 굴었는지 후회스러웠다. 오늘날 이토록 비참한 처지로 전락한 것은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낸 결과였다.

    장서영은 오라버니들의 탐욕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 그녀를 아껴 주었던 그들은 이제 그녀의 명을 재촉하는 원수가 되었다.

    관지례가 물었다. 너를 첩으로 맞이하면 네 가족까지 부수적으로 부양해야 하는 거냐고. 장서영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화가 난 관지례는 더 이상 장서영을 찾지 않았다. 어차피 첩실의 처지로 남편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장서영은 그가 다시 자신을 찾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어째서 이러한 수모를 주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얼굴을 베개에 묻은 장서영이 서럽게 흐느꼈다. 그저 평안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가족의 뜻에 따라 첩실이 되기로 결심한 뒤, 장서영은 더는 과거와 같은 영화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 지경까지 몰락했단 말인가.

    ‘설마 그동안 그가 나를 대하던 모든 행동이 거짓이었던 걸까? 진심이나 사랑은 조금도 없던 거야?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나를 접대하는 곳으로 보냈을까?’

    장서영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반드시 분수를 지키며 살리라. 다시는 거만하게 굴지도, 서열 언니의 것을 욕심내지도 않으리라. 설령 아직 족보에도 오르지 못한 자식일지라도 조 부인이 소개한 혼처라면 무조건 승낙하리라.

    * * *

    뒷짐을 진 구염락은 군부의 상소문이 흩어져 있는 책상 앞에서 흰 눈이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찬바람이 불어와 그의 황색 도포 자락과 얇은 종이 몇 장을 들썩이게 했다.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고?”

    차가운 바람을 타고 날아온 구염락의 목소리가 소리자의 귓가에 닿았다. 소리자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 폐하. 그렇다고 합니다.”

    “현비가 설득을 했는데도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듣는단 말이지.”

    구염락은 여전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대체 궁이 뭐가 좋다고 만정이 떠나려 하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리자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히 황제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없었다.

    “예, 폐하. 현비마마께서 충분히 설득을 하셨고, 심지어 두 마마께서 훗날 충돌하게 될 거라고까지 말씀하셨지만… 그런데도 만 귀인마마께서는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손 공공을 보내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제대로 교육시켜라.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면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가르쳐라. 배우지 않으면 밥을 줄 필요도 없다!”

    소리자가 즉시 답했다.

    “예.”

    소리자는 몸을 숙인 채 황급히 명을 전하러 나갔다. 그는 금용이 진작 현비의 노여움을 산 덕분에 이번 사건에 휘말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구염락은 창가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만정의 일에 신경을 쓸 시간은 없었다. 그는 줄곧 일등공의 상소문에 쓰인 백국(白国)의 동향을 생각하고 있었다.

    구염락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백국은 한 번 거래를 한 것을 빌미로 그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양국이 서로 우호를 다질 것을 요구한 것이다. 아무래도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구염락도 더는 도발할 빌미를 줄 수 없었다. 그는 백국을 다시 멋대로 날뛰게 한 뒤 이를 빌미로 서숭산을 서북 변경으로 내쫓을 생각이었다.

    다시 대전에 든 소리자가 조심스럽게 서신 한 통을 받쳐 들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황제에게 고했다.

    “폐하, 국암사에서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국암사라는 말에 모친을 떠올린 구염락이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서신을 잡았다. 뒤로 물러난 소리자는 공손하게 자리를 지켰다.

    서신을 펼친 구염락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서신을 쥔 손에 불끈 힘을 준 뒤, 마지막에는 다시 손에 힘을 풀었다. 서신을 내려놓았을 때 그는 이미 평정을 되찾은 후였다.

    다시 뒷짐을 진 구염락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서신이 들려 있었다.

    소리자는 감히 황제를 쳐다볼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서신까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몰래 빠른 속도로 문자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소리자는 어리둥절했다. 서신에는 폐하께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내용이 적혀 있었을 뿐 딱히 주목할 만한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

    ‘헌데 폐하께서는 어째서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짓고 계신 걸까?’

    순간 소리자의 머릿속에 서북왕이 떠올랐다. 얼마 전 황손을 해치려던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많은 궁인들이 조사를 받았고, 이 가운데 놀랍게도 서북왕의 자취가 포착되었다. 그리고 현재 국암사에 유폐된 황제의 생모는 서북왕과 각별한 사이였다. 이런 시기에 서북왕이 구태여 그녀의 병환을 알렸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추측케 했다.

    현재 태후는 황제에 의해 냉궁에 갇혀 있었다. 모두가 황제의 불효를 질책하고 있는데, 때마침 황제의 생모 소식이 날아든 의도는 명확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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