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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26)화 (226/449)

제226화

장서열은 여전히 냉랭한 시선으로 그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태후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축축하게 젖은 기름종이가 한 장씩 얼굴에 붙여졌다. 콧구멍에는 이미 습기가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녀가 호흡에 매달릴수록 코에 붙은 종이는 더욱 바짝 달라붙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 할 때마다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은 더욱 거세졌다.

조금씩 죽음이 가까워졌다. 태후의 폐로 들어오는 공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녀의 동공이 확장될수록 눈빛은 차츰 꺼져갔다. 태후의 몸부림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권여아의 눈이 경악과 공포로 물들었다.

‘장서열이… 정말… 정말로… 그럼 나는?’

장서열이 그 모든 것을 목격한 권여아를 무사히 살려두리란 보장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권여아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버렸다.

‘싫어! 난 죽기 싫어!’

권여아는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도리어 그녀의 몸을 제압하는 힘만 더 강해질 뿐이었다.

‘살려 줘! 누구든 날 좀 살려 줘!’

갑자기 문이 열리며 바깥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진 공공을 본 권여아는 희망에 찬 얼굴로 더욱 크게 발버둥 쳤다.

‘폐하! 폐하!’

어깨뼈가 부러질 정도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잠시 모습을 드러낸 진 공공은 누군가를 던져 넣고 금세 다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마마, 노비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모든 것은 노비 혼자서 벌인 일입니다! 태후마마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현비마마, 부디 태후마마를 놓아주시고 노비를 죽여 주십시오. 다 노비가 벌인 일입니다. 노비가 죽음으로 사죄하겠습니다!”

궁녀가 죽기 살기로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궁녀를 알아본 장서열이 순간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태후의 최측근으로, 전생에서는 오히려 태후를 패배케 한 장본인이었다.

궁녀는 궁중의 지엄한 법도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태후가 사사로이 정을 통한 사실을 죽음으로써 폭로했다. 그 결과 태후는 실각했고, 이로써 구염락의 생모인 귀자태후의 마지막 적이 숙청되었다.

일순간 마음이 서늘해진 장서열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과연 뛰어난 능력이었다. 그녀는 귀자태후가 황궁 일에 제법 깊이 관여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번 일을 태후와 무관하다 볼 수는 없었다.

장서열은 애간장이 끊어질 듯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조차 죽여 버리고 싶었다.

장서열은 바닥에 꿇어 앉아있는 중년의 궁녀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정중앙에 쓰러진 태후를 노려보았다.

“태후를 놓아줘라.”

순간 몸부림치던 권여아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영문 모를 아쉬움에 권여아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장서열이 제자리에 앉았다.

“깨워라.”

태후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얬다. 실성한 사람처럼 눈을 뜬 그녀가 쇠약한 눈을 부릅뜨고 장서열을 노려보았다. 마치 피에 굶주린 늑대처럼 태후가 잠긴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제 명에 죽지 못할 년! 내 널 반드시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다!”

천천히 손으로 복부를 가린 장서열이 증오에 찬 시선으로 태후를 노려보았다. 태후의 눈 속에 쉽게 알아챌 수 없는 기쁨이 비쳤으나 이내 순식간에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인간으로 태어나 감히 어머니를 죽이려 하다니, 넌 하늘이 두렵지도 않…….”

“여봐라! 형벌을 계속하라. 태후를 죽여선 아니된다. 본궁은 천천히 지켜볼 것이다.”

이번 일에 관여된 이상 장서열은 태후를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다시 종이를 붙여라. 태후마마를 잘 모시거라!”

태후는 경악했다. 그녀는 장서열이 드디어 자신을 죽여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내가 아니다! 내가 한 게 아니야! 장서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네 복중 아이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이다!”

권여아는 깜짝 놀랐다.

‘아이? 장서열이 회임을 했어?’

장서열을 쳐다보는 권여아의 감정은 복잡했다.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가슴 깊이 감춰둔 달갑지 않은 마음까지 모두 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장서열도 권여아를 쳐다보았다. 권여아는 당황한 얼굴로 즉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감히 장서열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장서열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학자 집안의 고상한 따님들께서 왜 품위 있는 모습을 버리셨을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심사가 뒤틀리셨나?’

이건 그들이 그렇게나 주장해 온 욕심 없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서열은 권여아가 그리 깨끗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조소를 감추지 못했다.

장서열은 형벌을 계속하라고 손짓했다. 태후는 있는 힘껏 버둥거리며 울고 애원했지만 결국 다시 입이 봉해지자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장서열은 태후를 무시한 채 계속해 권여아를 쳐다보았다.

“감히 본궁을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냐, 아니면 동정하는 게냐? 권 비, 너 역시 한 달간 나와 같은 약을 복용한 주제에 참으로 아둔하구나. 본궁은 널 치료해 줄 생각이 없거늘, 그런 네가 감히 본궁을 동정하는 것이냐?”

장서열의 눈빛은 냉랭했다. 장서열의 말을 들은 권여아는 순간 광분했다.

‘나도 먹었다고? 한 달이나? 대체 무슨 약을 먹은 거야!’

장서열이 거의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보건대 필시 해로운 약인 게 분명했다. 권여아가 몸부림을 치며 무슨 약인지 물으려 하기 전, 장서열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여인에게 자손을 갖지 못하게 하는 약이다. 게다가 치료법도 없지. 억지로 해독을 한다 해도 겨우 몇 달 동안만 회임을 할 수 있을 뿐, 유산을 막을 수는 없다.”

장서열은 일부러 약효를 과장했다. 권여아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태후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고모가 한 짓이야… 고모가 나까지 해치려 했어! 어째서!’

장서열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본궁은 네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마땅히 감사히 여겨야겠지? 고귀한 권씨 가문의 적녀(嫡女)께서 감히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었을 테니까. 황손을 해친 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다. 장렬하게 죽을지언정 굴욕적인 모습은 삼가라!

여봐라! 저 미천한 노비에게 죄를 시인하는 화압(画押, 문서가 사실임을 증명하는 손도장)을 받아라! 태후는 권력을 남용하여 사리사욕을 도모하고 감히 황손을 해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

“마마, 궁녀 설 고고(薛姑姑)가 혀를 깨물고 자진했습니다! 입 속에서 독액이 발견되었다 하옵니다!”

장서열은 그들의 수법에 탄복했다. 만일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인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궁녀는 자진을 했다. 분명 배후에 더 큰 세력이 있거나, 누군가 태후를 더욱 궁지에 몰려는 수작이었다.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장서열은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든 그녀가 엄벌에 그치는 시늉만 하다 끝낼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었다. 그녀는 반드시 끝까지 캐낼 작정이었다. 연루된 자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장서열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죽으면 화압(画押)을 받지 못한다더냐?”

겁에 질린 하인들은 황급히 죽은 궁녀의 손에서 죄를 인정하는 화압(画押)을 받아내고 시체를 치우려 했다.

“잠깐! 그 좋은 걸 함부로 없앨 수는 없지. 죄인의 시체를 여기 그대로 두어라. 태후마마께서 충성스러운 부하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도록!”

두 번째로 찬물을 뒤집어쓴 태후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머리와 온몸이 흠뻑 젖은 모습에서 본래의 품위 있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말할 힘조차 남지 않은 태후가 공포와 경악이 뒤섞인 눈으로 장서열을 바라보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는 결코 죽고 싶지 않았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이리도 안 오시는가!’

권여아는 고모의 모습을 보며 허둥거렸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구염락이 오기를, 그리하여 그가 장서열이 얼마나 악독하고 음흉한 계집인지 깨우치기를 바랐다. 권여아는 몸부림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부딪힌 이마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장서열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냉랭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뱉었다.

“계속하라.”

같은 시각, 구염락은 권씨 가문의 부자를 불러들였다. 머리끝까지 분노한 구염락은 당장이라도 태후를 토막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음흉한 여인이 감히 나의 아이에게까지 손을 뻗다니, 서열이는… 서열이는…….’

구염락은 조로전을 나설 때 등 뒤에 꽂히던 장서열의 비통한 흐느낌을 차마 다시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는 그간 장서열이 지나치게 웃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장서열이 자신을 싫어하게 된대도 그저 전처럼 해맑은 모습이기만을 바랐다.

소리자와 혜령은 멀리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황제의 절망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리자는 황제가 분명 자책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황제의 비호 아래 발생한 변고이니, 황제의 심적 고통은 결코 현비보다 덜하지 않을 터였다. 황제로 인해 덩달아 소리자가 상심하고 있을 때, 혜령이 아뢰었다.

“폐하, 권 각로(閣老)와 권 한림이 알현을 청하옵니다.”

순간 비통함을 거둔 구염락이 맹렬한 사자의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

“들라 하라.”

권 노야와 권서함이 황공해 하며 들어왔다. 이들은 입궁 직후 궁에 심어 놓은 자에게 간단히 상황을 전해 들었을 뿐, 아직까지 부름을 받은 정확한 연유를 알 수 없어 불안에 떨었다.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오늘 궁에 벌어진 사건이 태후와 연관이 있고, 그녀의 측근 시녀인 자녕궁의 설 고고(薛姑姑)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격노한 황제는 줄곧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권 노야는 왠지 좋지 않은 예감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반평생 쌓아 온 명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태후는 생각 없이 가문에 해를 끼칠 인물이 아니었다. 권여아 역시 이제 막 입궁한 몸으로 황제에게 죄를 지었을 리 없었다.

권 노야는 괜히 겁먹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쩌면 여인들 간의 작은 싸움을 빌미로 황제가 괜히 권 씨 가문에 경고를 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황제는 등극 후 반 년 만에 전광석화처럼 맹렬한 기세로 대주국을 손아귀에 넣은 사람이었다. 야심 가득한 황제라면 이러한 술수를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권 노야는 다시 한번 경거망동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설령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해도 권씨 가문은 충분히 딸들을 지켜낼 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는 다시 표정을 굳히면서 권 씨 가문의 수장다운 자세를 취했다. 어떠한 사태라도 대처할 방법이 있을 테니 미리 주눅 들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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