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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13)화 (213/449)

제213화

장서전은 주사섬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그녀를 위해 싱긋 웃어 보였다. 주사섬의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혼인 후 장서전은 주사섬에게 매우 잘했다. 말수가 적고 용모가 아름답지 않은 그녀를 멀리하지 않았으며, 무슨 일이든 꼭 그녀와 상의했다. 또한 그는 부인에게 안심하고 안살림을 맡겼고, 그녀의 외출 여부나 다른 부인들과의 친목 여부 모두 간섭하지 않았다.

마음이 섬세한 주사섬은 더욱 감동했다. 오늘처럼 무슨 일이 있든 장서전은 꼭 사람들 틈에서 그녀를 찾아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덕분에 그녀는 남편의 첩실인 서 이랑을 더욱 친절하고 온화하게 대했다. 서 이랑이 자신과 힘을 모아 부족한 점을 보충해 주고, 부군이 무엇이든 뜻대로 이룰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두 사람은 함께 처소인 탐춘원(探春院)으로 돌아왔다. 주사섬은 장서전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왔다. 곁에는 그녀가 혼인할 때 어머니가 사위를 위해 골라 준 아름다운 노비들이 함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장서전의 시선은 한 번도 그들을 향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것도, 회임을 한 것도 아닌 주사섬은 차마 남편에게 그녀들을 취하라고 권할 수 없었다.

“상공,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혹 현비마마를 뵙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주사섬이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장서전을 바라보았다. 장서전이 주사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불안해 보이는 그녀를 보면서 장서전은 언제나 덤덤했던 누이동생을 떠올렸다.

“별일 아니오. 단지 지금 내명부에 여인이 누이동생 한 명뿐이고 폐하께서도 수녀 선발을 하지 않으시니 조금 걱정이 되어 그렇소.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곧 새로운 후궁이 궁에 들어갈 테니, 그때가 되면 현비마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사그라들 거요.”

일각에서는 장서열이 황제를 현혹시키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었다. 일개 비빈의 신분으로 조로전에 거처하는 속셈이 음흉하다는 것이었다.

장서전은 누이동생을 설득해 조로전에서 나오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이동생을 설득할 근거가 없었다.

오라버니로서 누이동생이 황후에 오를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가도, 누이동생이 정말로 나라를 도탄에 빠뜨릴 정도로 빼어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이동생이 설령 정말로 황제를 현혹시키려 한다 한들, 어차피 구염락은 다른 이에게 휘둘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릴 사람이 아니었다.

장서전은 황제라도 설득해 볼까 생각했다. 조금만 배려하시어 누이동생을 우선 다른 궁에서 기거하도록 해달라고 한다면… 하지만 그는 감히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구염락과 말이 잘 통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어렸을 때 툭하면 구염락을 두들겨 패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그를 한 번 알현하는 일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장서전이 미간을 문질렀다. 그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이 구염락은 훨씬 더 무서운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다. 아직까지 누이동생을 보호하기 어려운 지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은 더욱 노력해야 했다.

곧 입궁하게 될 권여아를 생각하며 장서전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는 모레에 누이동생을 만나면 그에 대한 대책이 있는지, 혹 아직까지 세자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었다.

주사섬은 남편이 자신의 처소에서 묵기로 하자 의아해하다가 곧 감동했다.

이틀 전 서 이랑을 맞이한 후 장서전은 예법에 따라 그녀의 처소에 머물렀다. 서 씨에게 차를 따라 준 하인에 의하면 그녀는 수줍은 모습이었고, 자태가 아름다워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고 했다.

남편이라고 그런 서 씨를 싫어할 리 없었다. 그래서 주사섬은 앞으로 그가 정방(正房)에서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미리 각오를 한 터였다.

“씻고 오겠습니다.”

장서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방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특히 주사섬의 유모는 주 씨 가문에서 좋은 사위를 맞아들였다는 생각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 *

화목한 부부가 있으면 그렇지 못한 부부도 있는 법이다. 황궁의 어린 부부는 이날 밤 온화하고 즐거운 분위기 대신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

장서열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이틀 내내 자신을 괴롭힌 구염락이 오늘 또 찾아온 것이다.

그녀가 궁등(宫灯, 추녀 끝에 걸어두는 육각형 또는 팔각형의 등)을 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녀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녹두패(绿头牌, 고대 황제가 함께 침소에 들 비빈을 결정할 때 사용하던 패)를 아예 빼 버린 것도 무시한 채 말이다.

이쯤 되자 굳게 마음을 먹은 장서열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처럼 그가 성큼성큼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장서열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반대로 구염락은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그는 장서열이 분노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녀가 수줍어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장서열에게 잘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조금 골을 내더라도 당연히 남자인 자신이 그녀를 품어 줘야 마땅했다.

자신의 삐진 얼굴에도 아랑곳없이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장서열은 숨이 막혔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구염락에게 첫날밤을 가르친 그녀의 평판 또한 장담할 수 없었다. 구염락은 확실히 너무 지나쳤다. 어젯밤 그는 또 한숨도 못 잤을 게 뻔했다.

‘그래 놓고 염치없이 점잖은 척을 해?’

장서열은 울화가 치밀었다. 밤이 되면 구염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점잖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이다.

“왜 그러지? 오늘 활이 잘 안 나가서 기분이 안 좋아?”

그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걱정 마. 활을 놓은 지 오래돼서 그래. 조금만 연습하면 백발백중이었던 옛 실력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장서열은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장군이 될 것도 아닌데 자신이 신궁이 되어 봐야 뭘 하겠는가.

‘정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은 못하는 거야?’

확실히 그랬다. 구염락은 언제나 장서열에게 잘했고 항상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게다가 그는 어제 장서열을 위해 서풍엽을 용서해 주기까지 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듣는다면 그녀가 감격하지 않을 리 없었다.

따라서 구염락은 오늘 장서열이 유난히 저조해 보이는 이유가 결코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간밤에 그는 잠자리에서도 뛰어났다. 그렇다면 그녀가 자신을 무능한 남자라고 생각할 리도 없었다.

구염락이 볼 때 오늘 장서열에게 기분이 나쁠 만한 일은 오직 화살의 명중률이 높지 않았던 일뿐이었다.

구염락은 화살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만일 화살이 살아있는 인간이었다면 그는 진작에 그들을 끌어내어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서열아, 화내지 마. 내 마음이 아프잖아.”

말을 마친 그가 장서열을 살짝 껴안았다가 놓아주었다.

“오늘은 공무가 바빠서 너와 함께 화를 낼 시간이 없어. 투정은 나중에 받아 줄게.”

구염락은 일국의 황제였다. 그녀는 이 상황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녀가 자신이 공무(公务)를 보는 시간까지 시샘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밤만 미뤄 둘까?’

마침 구염락도 장서열이 그립던 참이었다.

무심코 장서열의 목에 남은 흔적을 본 구염락의 머릿속으로 일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구염락은 당장 눈앞에 있는 장서열을 덮치고 싶었다.

장서열은 분노에 휩싸였다. 자신의 반응이 어떻게 불건전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구염락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구염락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궁등(宫灯)이 꺼져 있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른단 말이야?’

구염락은 장서열이 눈을 부릅뜨자 얼른 손에서 힘을 뺐다.

“짐은… 처리해야 할 공무가 남았으니 먼저 자. 만일 잠이 오지 않으면 전처럼 수를 놓고 있어도 좋고.”

말을 마친 구염락이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문득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그녀는 자신에게 화가 난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지? 설마… 그녀와 함께 활을 쏠 시간을 내지 않아서?’

그는 앞으로 어떻게든 오후에 짬을 내어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갑자기 새로운 목표가 생긴 구염락은 오늘밤부터 열심히 일을 하기로 했다. 당장 내일부터 시간을 낼 생각이었다. 장서열은 구염락이 전전(前殿)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책상에 앉아 상소문을 읽는 모습을 보았다.

고개를 떨군 장서열이 마음속에 가득한 화를 잠재웠다. 완정과 농교는 장서열의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더욱 조심스럽게 시중을 들었다. 두 사람은 걸을 때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조로전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포근하고 따스해야 할 분위기는 오늘밤 안주인의 기분이 나쁜 관계로 모두가 쩔쩔맬 정도로 살얼음판이었다.

이는 책상에 앉아있는 구염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상소문을 넘기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열심히 일에만 몰두했다. 혹여나 실수를 저질러서 줄곧 미동조차 않고 있는 장서열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웠다.

시간이 꽤 지난 뒤 향로의 불이 꺼졌다. 구염락이 여전히 자신의 뜻을 깨닫지 못하자 장서열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상소문에서 눈을 뗀 구염락은 장서열이 다가오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만약 그녀가 지금 침소에 들자고 한다면 어째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요구에 응하자니 내일 오후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고, 응하지 않자니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을 붉히던 구염락은 마음속 치열한 접전 끝에 그녀가 원한다면 기꺼이 요구에 응하기로 결심했다.

장서열이 엄숙한 얼굴로 구염락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온종일 잠을 보충할 새도 없이 깊은 밤까지 계속해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직도 자신과 더 뒹굴고 싶어 하는 걸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장서열은 심사숙고 끝에 입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구염락이 훗날 다른 비빈들과 멋대로 행동을 하든 말든, 일단 그녀가 있는 지금 이곳에서는 절대 어제처럼 폭주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폐하… 신첩 오늘은 몸이 불편합니다. 아무래도 전전(前殿)으로 가시는 게… 앗!”

순간 달려든 구염락이 초조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장서열은 눈앞이 빙글 도는 걸 느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염락이 그녀의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어디가 불편한 거지? 찬바람을 맞아서 감기에 걸린 거야?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여봐라! 어서 태의를 불러라!”

절박하게 입을 연 구염락이 장서열을 안아 들고 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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