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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04)화 (204/449)

제204화

장서영은 좀처럼 포기하지 못하는 큰오라비를 보며 마음이 재가 되는 걸 느꼈다. 조 부인은 어머니 기 씨와 다투면서까지 자신을 조부에 둘 필요가 없었다. 만일 어머니가 계속해 고집을 부린다면 조 부인은 분명 자신을 조부에서 내보낼 것이다.

장서영은 그들의 안위를 위해 어떻게든 자신을 희생시키려는 가족이 원망스러웠다.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에요? 어떻게 제게 이럴 수가 있어요!”

장서양도 벌컥 화를 냈다.

“관 씨 가문의 첩이 되는 게 뭐가 어때서?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해! 거기로 시집가면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높은 자리에 앉아 지금처럼 살 수 있어. 뭐가 그렇게 억울해? 뭐가 그렇게 서럽냔 말이야!”

당연히 억울하고 서러웠다. 조 부인과 혼담이 오간 집안에서도 이미 그녀에게 하녀 두 명을 붙여 주겠다고 약조한 상태였다. 상대는 비록 대부호는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가문의 자제였다.

그런 그녀에게 막무가내로 가족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라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그녀는 굶어 죽을 지경이 아닌 이상 자존심을 팔고 싶지 않았다.

“가세요, 오라버니. 전 할 만큼 했어요.”

장서영이 마차 휘장을 내렸다. 그녀의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가족이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데 어째서 자신이 가족을 배려해야 한단 말인가.

장서양은 장서영이 매정하게 나오자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순간 표정을 불쌍하게 누그러뜨렸다.

“난들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니? 나는 괜찮아. 하지만 어머니 생각을 해야지! 어머니는 지금 몸이 안 좋으셔. 이번 겨울에도 추위로 또 병이 나셨어. 의원 말이 만일… 만일…….”

결국 장서영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가 머리에 꽂은 진주 비녀를 뽑아 마차 밖으로 내던지며 소리쳤다.

“갈게요! 간다고요! 이제 됐죠? 오라버니는 집안을 일으킬 생각조차 없는 무능한 겁쟁이예요!”

장서영의 말은 독화살처럼 장서양의 마음에 꽂혔다. 오랫동안 누이동생이 흐느껴 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장서양도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달라진 현실을 견디지 못했다. 심지어 줄곧 우습게 여기던 장서전보다도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훔쳐 입은 옷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장서양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기회가 부족했을 뿐 그에게는 분명 능력이 있었다. 이제 관 씨 집안의 처남이 되기만 한다면 잃어버린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있으리라. 장서양은 주먹을 불끈 쥐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장서영이 떠나는 건 조부(赵府)에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조부(赵府)에는 그만큼 지출해야 할 비용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조 부인은 겉으로는 냉정해 보여도 실은 여인이 주저앉는 걸 가장 안쓰러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여자아이가 원하는 조건의 남편을 맞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겼기에 가능한 한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 했다.

친자식이 아닌 자녀에게까지 신경을 쓰는 조 부인의 인품은 마땅히 칭찬받을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부(赵府)의 입장에서 조 부인과 장서영의 인연이 다한 것은 잘 된 일이었다. 최근 조부(赵府)는 다른 사람이 떠나는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조 씨 가문은 코앞으로 다가온 경사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이가 분주했다. 가문의 유일한 아들인 장서전의 혼례를 앞두고 있었다. 조부(赵府)에서는 분위기를 해칠 만한 어떠한 일도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 전 태후가 승하하지만 않았다면 조옥언은 사흘 내내 잔치를 열었을 것이다.

비록 태후가 승하하기 전 이로 인해 백성들의 혼례를 금지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긴 했으나, 신하들은 효를 다하기 위해 태후의 사후 약 한 달 동안은 자진해서 혼례를 삼갔다. 장서전의 혼례가 미뤄진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조옥언은 홍촉과 함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혼사를 준비했다. 그녀의 기품 있는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했다. 특히 장신성이 사라진 후에는 매섭게 화낼 일이 없었기에 조옥언은 날마다 생기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곧 집안에 새 사람이 들어오고 머지않아 귀여운 손주들이 생길 것을 생각하면 조옥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최근 그녀는 자신의 삶에 매우 감사하고 있었다.

다만 밤이 깊어 조용한 시각이 되고 곁에 아무도 없을 때면 조옥언은 저택 가득한 붉은색을 바라보며 마음속 깊숙이 죄책감을 느꼈다.

‘서열이를 궁에 들여보낸 건 정말 서열이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가끔 그녀는 자신의 결정에 의문이 들었다. 딸은 아마 평생 혼례복을 입지 못하고 조용한 행복을 누릴 수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보다 낮은 신분의 여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었다.

조옥언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이 귀신에 홀렸던 게 아닐까 거듭 후회했다. 그러나 입궁 후 장서열의 궁중 생활은 모두 그녀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었기에 조옥언은 이내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조옥언은 궁에 심어 놓은 이가 정기적으로 전해주는 소식을 떠올리며 숨겨둔 야심을 되새겼다. 조옥언은 장서열이 자신보다 복이 많고 최후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언하기 어려웠지만 언젠가 태자가 황제로 등극하고, 또 머지않아 황후가 명을 달리한다면 서열이의 앞길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때가 되면 아무도 딸아이를 거스를 수 없으리라.

조옥언은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서열이는 황후가 되어 천하를 손에 넣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었다.

“부인, 주무십니까? 세자님이 사람을 시켜 부인께서 구하시던 호랑이 가죽 세 장을 보냈습니다. 부인께서 급하게 찾으시는 걸 알고 창고를 다 뒤졌다고 합니다. 번거롭게 해 드리지 않겠다고 사람들은 이미 떠났습니다.”

말을 마친 홍촉은 잠시 조용히 기다리다가 숙직을 서는 시녀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 뒤 다시 밖으로 나갔다.

조옥언은 서풍엽을 생각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서풍엽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자란 게 없는 사윗감이었다. 일이 틀어졌음에도 그는 여전히 장서전을 챙겨 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와 딸아이는 인연이 없었다.

* * *

깊은 밤, 인적이 드문 거리로 음산한 바람이 불었다. 밤길을 걷던 이는 얼어붙은 나뭇가지를 쓸어내리는 찬바람에 몸에 걸친 솜옷의 옷깃을 여몄다.

번화가에 위치한 저택에서 어수선한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팔려 나가게 된 이가 후문을 통해 끌려 나갔다.

장씨 가문에는 이제 형편에 맞춰 정실부인인 원 씨와 열 명의 첩실들이 남아 있었다. 손재주가 있는 첩실은 일감을 받아 일을 했다. 복식이 남다른 여인들은 대부분 조 부인과 친분을 유지한 덕분에 자녀의 혼처를 보장 받은 이들이었다. 따라서 원 씨는 감히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원 씨는 기 씨만큼은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기 씨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고 이제는 늙고 쇠약해져 장씨 가문에 어떠한 보탬도 되지 못했다. 덕분에 그녀는 예전처럼 흉포하게 날뛰지 못했다.

오늘 원 씨는 기 씨가 다시 장서영을 데리고 돌아와 창고에 가두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게다가 기 씨는 오늘 밤 몰래 장신성을 부른 상태였다.

‘네 속셈을 다들 모를 줄 알고?’

기 씨가 관씨 가문으로부터 은자 오만 냥을 받고 딸을 첩으로 팔기로 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사실 원래 받기로 한 돈은 오만 냥이 아닌 십만 냥이었다. 이때만 해도 관씨 가문은 몹시도 정중했으나, 이는 모두 장신성이 좌상이었을 때 이야기였다.

현재 장신성은 하찮은 6품 관원에 불과했고 앞으로 7품 관원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가 되면 정말 아무도 장신성의 체면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입궁한 장 양원과 장서전이 아니었다면 그 오만 냥조차도 없었을 터였다.

원 씨는 자신이 기 씨였다면 조금 더 기다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재 조정은 황제와 태자의 대립으로 혼란스러웠으나 어쨌든 떠오르는 태양은 태자였다. 후에 결론이 났을 때 장서영을 시집보내도 늦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얻을 수 있는 게 많을 텐데…….’

안타깝게도 기 씨는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할 뿐, 한 치 앞을 못 보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장서영은 추운 창고 안에서 불쌍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어르고 달래는 통에 입고 있던 솜옷까지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솜옷은 아마도 어머니가 벌써 은자와 맞바꿨을 것이다.

장서영은 울지 않았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된 다음에는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의 낮은 신분을 탓하지 않았다. 단지 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이었다.

똑같이 딸을 둔 어머니였지만 소 씨만 봐도 기 씨와는 전혀 달랐다. 소 이랑은 혹여나 자신의 신분이 두 딸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가능한 한 조부(赵府)에 들어간 두 딸을 찾아가지 않았고, 삯바느질을 하며 딸들의 혼수를 마련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기 씨의 딸인 그녀는 집에 돌아와서도 창고에 갇혀 있었다. 장서영은 이제 어머니가 조 부인에게 미움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했다. 딸아이를 팔아먹을 정도로 무정한 사람을 조 부인이 곱게 볼 리 만무했다.

인과응보였다. 장서영은 철이 없던 자신을 원망했다. 어린 그녀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 * *

풍윤 41년 여름, 풍윤제는 50세의 나이로 병환 끝에 숨을 거두었다. 반 년 동안 이어진 부자 간의 다툼은 한쪽의 죽음으로 마침내 종결되었다. 조정에서는 황실 최고 권력의 싸움이 끝났다는 데 안도했다.

그러나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신하들은 곧 새로운 황제의 냉혹한 치세에 익숙해져야 했다. 새 황제가 등극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신하들은 구염락의 위엄과 압도적인 기세에 눌렸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쓴 상소문을 소매 속에 깊이 감춘 채 더는 감히 선황의 사인(死因)과 관련한 의혹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천하를 얻기 위해 구염락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안 장서열은 용포(龙袍)에 훈향(熏香, 옷에 밴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을 쐬는 것)을 하느라 고달팠던 것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태평히 놀고먹는 일상을 보냈다.

이는 전생과도 비슷했다. 그녀는 좀처럼 정치에 신경 쓰지 않았고, 그건 이번 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정치에 관여한다면 그것은 곧 구염락이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서열이 온전히 정치에 무관심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황권을 지키기 위해 구염락이 혈육을 한 명씩 죽일 때마다 장서열은 그와 함께 기뻐하며 그들을 더 엄히 다스리지 못한 것을 애석해 했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이었다.

장서열은 이것이 바로 문관들이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새 황제는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을 해도 혈육을 제거한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황위를 지킨 스스로를 흡족히 여길 만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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