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후중생계 (173)화 (173/449)

제173화

옷을 꿰매던 송 마마는 대답 없이 너그러운 시선으로 금용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금용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자복궁에 새로 안주인이 들어온 뒤부터 금용은 줄곧 이상했다. 모든 게 눈에 거슬리는지 최근에는 시녀들까지 연거푸 벌할 정도였다.

금용은 자복궁에 새로 들어온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저 거북했고 특히 높은 자리에 앉아 잘난 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온몸이 욱신거릴 지경이었다.

송 마마가 금용의 심정을 모를 리 없었다. 이전까지 저군전에서 태자의 측근은 오직 금용뿐이었다. 처소의 모든 궁녀와 노마마(老嬷嬷)들은 하루빨리 저군전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그간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게 구는 금용의 비위를 맞춰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저군전에는 정식으로 안주인이 들어왔고, 그녀는 음식부터 각종 물건들까지 주인만이 가능한 모든 것들을 완벽히 누렸다. 그러니 금용이 부러워 어쩔 줄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자복궁에 그녀가 들어오기 전 금용은 시녀들 앞에 하인들이 바친 진주와 연지를 늘어놓고 자랑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즐거움도 없었다. 좋은 물건이라면 이미 자복궁에 넘쳐났고, 특히 새로 온 주인은 기분이 좋을 때면 시중드는 이들에게 온갖 사치품을 한 꾸러미씩 상으로 내렸다.

어제는 비취 비녀를 상으로 받은 시녀가 있었다. 이는 실제로 주인들이 사용하는 장신구였기에 궁의 어린 시녀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한참동안 비녀를 구경했다. 하지만 그들은 금용은 부르지 않았다. 이러니 금용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송 마마의 눈에 최근 금용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건 저군전의 태감들이었다. 그들은 예전만큼 금용의 눈에 들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친절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금용을 마치 태자의 여인인 양 추켜세워 주지 않았다.

송 마마와 같이 세상 물정에 밝은 궁녀가 이러한 이치를 모를 리 없었다. 궁녀들 사이에서 금용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예쁘장한 외모와 오랜 시간 태자의 곁에서 시중을 들어온 세월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에 노련한 하인들에 의해 제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금용은 영리했기에 미움을 사지 말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금용이 향로를 들쑤시던 막대를 내려놓았다. 작은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고작 4품 양원일 뿐인데 왜들 그렇게 유난인 거죠? 권여아가 왔을 때는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지 않았잖아요.”

송 마마가 무심한 척 입을 열었다.

“같을 리가 없지 않느냐. 여아 아가씨는 정식 주인이 아니었지만 자복궁에 계신 분은 진짜 주인이다.”

‘주인?’

금용의 얼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그놈의 주인이라는 단어는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단지 자신보다 신분이 좀 좋다는 이유로 머리 위에 눌러 앉으려 하다니!

‘별로 대단하지도 않으면서!’

그간 금용은 궁에서 이름만 그러할 뿐 힘없는 주인들이 아랫사람에게 농락당해 쩔쩔매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그래… 바로 그거야!’

순간 금용의 눈이 반짝였다. 보고 배운 걸 써먹을 때가 왔다.

송 마마는 금용의 눈에 생기가 돌자 그제야 안심했다. 젊은이라면 응당 패기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자복궁의 안주인이 고귀한 생활을 누린다면 이에 자극을 받은 금용 역시 얼른 태자를 움직여 마땅한 자리를 요구해야 했다. 그러지 못한 채 태자가 황제가 된다면 그때는 금용이 아무리 애를 써도 기껏해야 귀인(贵人, 비빈의 지위 중 하나) 정도가 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여태껏 송 마마가 들인 공도 모두 허사였다.

* * *

다음날, 각 궁의 주인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자 이를 지키고 서있던 궁인들 역시 근무를 교대했다. 아침 햇살을 받은 꽃이 향기를 뿜었고 새들이 맑은 소리를 냈다. 여유로운 비빈들은 하릴없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어화원(御花园)을 거닐었다.

장서열은 아직 침대에 있었다. 게으름을 피우는 게 아니라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탓이었다. 어젯밤 늦게 잠든 그녀를 깨우지 않기 위해 자복궁의 침실은 여전히 어두운 밤처럼 조용했다. 창가에는 두꺼운 발이 쳐져 있었고, 방에는 얼음물이 놓여 있어 모든 게 안락하고 쾌적했다.

화 마마는 아직 낯선 주인을 더더욱 깨울 수 없었다. 현재 저군전에는 태자가 없으므로 안주인인 장서열이 자고 싶으면 그대로 두는 것이 순리였다. 화 마마는 그녀가 잠에서 깨면 들어가 시중을 들기로 했다.

침실 앞에는 방을 지키는 궁녀 두 명만이 남아 있을 뿐, 장서열의 휴식을 위해 자복궁의 모든 이가 살금살금 조용히 움직였다.

해가 중천에 걸리고, 점심시간을 놓치고 나서야 장서열은 느릿느릿 잠에서 깼다. 흑단처럼 까맣고 긴 머리카락이 붉은색 이부자리 위에 늘어졌다. 화 마마가 침대 휘장을 올리자 부드러운 비단 옷이 매력적인 광택을 발했다. 몽롱한 큰 눈이 화 마마를 응시했다.

화 마마는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장서열이 절로 좋았다. 그녀는 장서열의 지위와 앞날을 바라보며 성심껏 시중을 드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여인인 자신도 이러할진대 남자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장서열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화 마마는 이미 장서열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그녀가 완전히 깰 때까지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조금 기다렸다가 온 것이었다. 휘장 밖에는 사등(四等) 궁녀의 녹색 복식을 차려 입은 농교와 완정, 농일(弄一), 완일(婉一)이 세숫물을 준비하여 공손히 대기하고 있었다.

농교는 장서열의 시선에 얼른 수건을 내려놓고 그녀를 부축했다.

“주인님, 어젯밤에 화원에 꽃이 피었는데 정말 보기 좋아요. 이따 노비가 주인님을 모시고 가서 보여드릴게요.”

화 마마가 즉시 말했다.

“날이 이리도 더운데 너희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구나. 햇빛에 주인님의 살이 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 말에 농교가 장서열을 향해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실로 몇 달 만에 장서열의 얼굴에도 모처럼 미소가 피었다. 순간 농교는 눈물이 핑 돌았지만 감히 내색하지 못하고 얼른 그녀의 몸단장을 도왔다.

목욕 후, 윤이 나는 장서열의 피부에 화려한 비단옷이 걸쳐졌다. 큰 목단이 수놓아진 고급스러운 소매가 교차된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우아했다. 얇고 하늘거리는 비단을 걸친 모습은 천상의 선녀가 따로 없었다.

화 마마는 손수 장서열의 단장을 도왔다. 처음 장서열의 시중을 들던 날, 화 마마는 장서열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새로운 치장을 알려 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다른 방법을 추천하지 못했다.

장서열의 머리카락은 이미 궁의 어떤 비법도 필요 없을 만큼 부드럽고 윤기가 가득했다. 그녀가 입는 옷은 품질과 솜씨 면에서 궁의 것과 우열을 가릴 수 없었고, 특히 그녀의 전신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는 화 마마가 무슨 수를 써도 흉내 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동시에 화 마마는 외부에 떠돌던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황제는 일찍이 태자비로 점찍은 장서열을 몹시도 아꼈다. 만일 예전의 태자였던 구염단신에게 불미스러운 사고만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태자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전에 다른 사람과 정혼을 맺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화 마마 역시 다른 궁녀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궁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단편적인 말만 전해 들었을 뿐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황급히 생각을 접은 화 마마는 미소를 머금고 장서열에게 앳되어 보이는 머리 모양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나비 날개로 된 비녀 두 개를 꽂아 조용한 주인에게 소녀의 발랄함과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정말 예쁘십니다.”

장서열은 화 마마의 솜씨에 딱히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농교가 대꾸했다.

“우리 아가씨는 몸단장을 매우 중시하세요. 예전이었다면 아가씨는 머리에 비녀를 두 개나 꽂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말을 마친 농교가 순간 입을 꽉 다물고 송구스러운 듯 고개를 떨궜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으나 마치 화 마마가 꾸민 머리가 별로라고 들릴 듯했다.

농교의 말에 멈칫한 화 마마가 다시 황급히 비녀 하나를 빼낸 후 무릎을 꿇으며 사죄했다.

“노비는 주인님께서 무얼 싫어하시는지 몰랐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깜짝 놀란 농교가 화 마마를 따라 얼른 무릎을 꿇었다. 장서열과 함께 입궁하기 전 조옥언은 농교에게 궁에서는 반드시 말을 삼가야 하며 특히 나이든 마마들에게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이들은 미리 자복궁의 마마들에게 선물을 안겨 주며 지금까지 잘 지내 왔으나 방금 잠시 방심하는 바람에 아가씨께 폐를 끼친 듯했다.

뒤를 이어 완정도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눈 깜짝할 새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장서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녀는 당황한 하인들을 보며 덩달아 당황하지도, 그렇다고 화 마마를 위로하지도 않았다. 마치 익숙한 상황인 양 그녀는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식사를 가져와.”

순간 법도를 잊을 정도로 놀란 화 마마가 잠시 장서열을 쳐다보다 이내 공손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화 마마는 상냥한 태도로 농교를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사를 가지러 갔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서열은 한가한 틈을 타 창가의 책장으로 갔다. 손이 가는 대로 책을 꺼낸 그녀는 귀비탑(평상 모양의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 모든 움직임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능숙했다.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장서열의 주변으로 그윽한 풍취가 감돌았다.

화 마마는 담당 태감에게 식사를 가져오라 명한 뒤 농교를 데리고 탕비실로 갔다.

“주인님께서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확히 알려줄 수 있겠느냐? 이 늙은이가 실수로 주인님께 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농교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마님의 손재주는 매우 좋으세요.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습니다. 아까 아가씨 머리에 비녀 두 개를 꽂은 것은 하나를 꽂은 것보다 예뻤습니다…….”

화 마마가 일부러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굳혔다.

“거짓말을 하는구나. 우리가 같은 주인을 모시고 있다는 걸 잊은 게냐? 난 주인님을 위해서 묻는 것이지 너희에게서 아가씨를 빼앗으려는 게 아니다. 내 지금은 주인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주인님께서 꺼리고 싫어하는 게 있다면 반드시 내게도 일러주거라. 혹여나 내가 주인님의 기분을 불쾌하게 하여 내쫓기기 전에 말이다.”

농교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다. 주인님께서 요즘 기분이 좋지 않아 다소 까다로운 점이 있을지는 몰라도 평소 주인님은 하인들에게 매우 잘해 주세요. 시중을 들면서 크게 주의해야 할 점은 정말로 없습니다. 심지어 주인님은 저희가 잘못을 저질러도 벌을 내리지 않는 분이세요.”

“…….”

“저… 아까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인님께서 평소에 옷차림과 몸단장을 몹시 중시하셔서 저도 모르게 무심코 말이 튀어 나왔어요.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마마님, 노비 말을 믿어 주세요. 전 정말 마마님의 솜씨를 무시하고자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화 마마는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농교와 곁에서 침묵하는 완정을 바라보며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이토록 멍청한 아이들이 한 눈에 보아도 총명한 양원의 곁에서 수년간 시중을 들었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