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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161)화 (161/449)

제161화

“나무아미타불… 보살님, 이제 하산하셔도 됩니다. 앞으로 선한 행동으로 부처님의 자비를 세상에 널리 알리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고된 노동과 생활고로 쇠한 기 씨의 얼굴에 실로 오랜만에 화색이 돌았다.

“지… 지금 저보고 떠나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좌상 어른께서 저를 데리러 오셨나요? 데리러 오셨군요!”

황급히 옷매무새를 바로 한 기 씨가 귀밑머리를 정리하며 무의식적으로 거울을 찾았다. 물론 거울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그녀는 흥분한 채로 마구 웃었다.

‘드디어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은 이 골방에서 나가는구나!’

기 씨가 하늘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역시 하늘이 자신을 버리지 않은 듯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밖으로 뛰쳐나온 기 씨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급하게 뜰로 뛰어 들어갔다. 뜰 안에는 수척하지만 누구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여인 한 명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수수한 모습으로 옷자락을 휘날리며 소나무 아래에 앉아 염불을 외었다.

“언니, 언니! 저 이제 나가게 됐어요! 앞으로 자주 찾아올게요. 제가 언니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갈게요. 제 남편은 좌상이니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절 기다리세요, 언니!”

말을 마친 기 씨는 그 즉시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녀는 악몽 같았던 이곳에 다시는 발걸음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드디어 나가는구나! 드디어!’

흥분한 기 씨가 산문으로 달려가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문 뒤에는 처음 국사에 오던 날 가져온 작은 보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어린 비구니가 안쪽에서 문을 닫아걸었다. 그녀는 홀로 외롭게 산문 밖에 서 있었다. 달려오며 상상했던 마차나 환호하며 달려오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문 밖으로 밀려나온 기 씨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텅 빈 산길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노야가 없는 거지? 아이들은? 설마 내가 나오는 걸 모르는 건가?’

모두들 그녀가 나오는 걸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기 씨는 보따리를 내팽개치고 다시 기분 좋게 산 아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떠나자… 얼른 이곳을 떠나자!’

이제 밑도 끝도 없는 허드렛일과 지독한 향냄새에서 해방이었다.

기 씨는 좌상부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 신발이 망가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지금 이 순간 국암사를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정오부터 저녁까지 그녀는 계속 달렸다. 중간에 마음씨 좋은 사람을 만나 마차를 얻어 타기도 했지만 어쨌든 하루 종일을 달린 셈이었다.

마침내 저택에 도착했을 때, 기 씨는 조부(赵府)라고 쓰여진 글자에 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째서 장부(章府)가 아니지? 내가 잘못 찾아왔나?’

기 씨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난 몇 년간 국암사에서의 생활이 가르쳐 준 습관이었다. 잠시 뒤, 이곳이 목적지가 맞다는 걸 확신한 그녀가 문을 두드렸다.

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 상 집사가 이내 다시 문을 닫았다. 기 씨가 다시 문을 두드렸고, 또 다시 머리를 내민 상 집사가 다시 문을 닫는 행동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결국 상 집사가 입을 열었다.

“허드렛일을 찾는 거라면 아파를 찾아가시오. 조 씨 가문은 직접 사람을 고용하지 않소.”

집사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진 기 씨가 그제야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몇 번을 기워 입은 옷은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신분을 밝히는 순간 곧 그녀는 다시 노야에게 가장 사랑받는 첩실이자 상부의 숨은 권력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자녀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터였다. 그녀야말로 장신성의 진짜 부인이었다.

다시 문을 두드린 기 씨가 이번에는 지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나 대 이랑 기 씨일세. 나는…….”

“여기는 조부(赵府)요!”

쿵 소리와 함께 다시 문이 닫혔다. 인내심이 극에 달한 상 집사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최근 며칠간 문을 두드리는 자가 너무 많았던 탓에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심지어 조 부인에게 재가를 부추기고자 찾아온 여인들까지 있었다. 정말이지 교양머리 없는 위인들이었다.

그대로 밖에서 덜덜 떨며 하룻밤을 보낸 기 씨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장신성이 조옥언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신성은 이미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기 씨가 미친 듯이 기뻐하며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이 이혼했다면 이제 그녀가 장신성의 정실부인이었다. 새벽빛이 내린 거리에서 그녀는 이제 모든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좌상 부인의 자리가 마침내 자신의 것이 되었으니 훗날 궁에 들어간 그녀의 딸은 더욱 높은 지위를 얻게 되리라.

장 씨 가문의 대문이 열렸다. 기 씨의 눈에 스산하고 초라한 뜰이 눈에 들어왔다. 기 씨는 당연히 이곳이 임시 거처일 거라 생각했다. 곧 조정에서 노야를 위한 저택을 마련해 줄 것이다.

막 저택으로 들어가려던 기 씨는 아침 일찍 일어난 여인들과 마주쳤다. 그녀는 하마터면 그들을 못 알아볼 뻔했다. 비단옷을 입고 부채를 들고 있어야 할 첩실들은 무명옷을 입은 채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첩실들 또한 기 씨를 쳐다보며 외쳤다.

“이리 오너라! 새로 온 하녀지? 가서 물부터 좀 떠오거라. 목이 말라 죽겠구나.”

기 씨는 십이 이랑과 나머지 여인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이상한 건 첩실들의 머리에 당연히 꽂혀 있어야 할 비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날세, 나 대 이랑 기 씨라네. 다들 날 알지 않는가.”

헤진 옷을 깁던 십이 이랑이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기 씨를 쳐다본 그녀가 곧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기 씨라고? 당신이 기 씨면 난 조 부인일세! 빨리 가서 일이나 하거라. 일하지 않으면 굶길 것이다!”

기 씨가 무시하듯 십이 이랑을 힐끔 쳐다보았다. 상대하기도 귀찮은 여인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곧 정실부인이 될 테니 그때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들을 무시한 기 씨가 서둘러 정방으로 뛰어갔다.

“노야! 노야! 저예요! 제가 돌아왔습니다!”

십이 이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엄하다! 감히 하녀 따위가 소란을 피우다니!”

막 어린 첩실의 방에서 나오던 장신성은 큰소리를 내는 기 씨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누구냐! 대체 누구길래 감히 남의 집에 난입한 게냐!”

장신성의 뒤에 선 어여쁜 여인을 보며 기 씨가 눈을 부릅떴다. 보아하니 자신이 없는 사이에 새로 들인 첩실 같았다. 기 씨는 우선 불쾌한 기색을 감춘 채 눈물을 머금고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야…….”

말을 마친 기 씨가 장신성에게 달려들었다.

장신성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눈앞의 여인은 마구 헝클어진 머리에 덕지덕지 헝겊을 기운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누렇게 뜬 피부와 움푹 들어간 눈으로 가련한 자태를 흉내 내는 모습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장신성을 껴안는 데 실패한 기 씨가 더욱 가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언제나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 주던 그가 어째서 자신을 위로해 주지 않는지 의아했다.

소란을 듣고 나온 첩실들은 기 씨의 초라한 모습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어느 남자가 저런 여인을 사랑하겠는가.

‘자기 꼴이 어떤 줄도 모르고 노야를 홀리려 하다니.’

비밀이 없는 뜰 안은 순식간에 조롱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장신성이 돌아온 기 씨를 불쾌한 눈으로 피하자 여인들은 대 이랑 또한 완전히 끝장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서양과 장서목, 장서영이 급히 달려왔다. 어머니 없이 여의치 않은 생활을 하고 있던 세 남매는 이제 모든 희망을 친모에게 걸고 있었다. 세 남매는 지난 며칠 동안 보아온 배다른 형제들처럼 서둘러 어머니를 껴안고 위로 받고 싶었다.

그러나 기 씨를 마주한 세 남매는 모두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셋 중 가장 철이 든 장서양조차 선뜻 어머니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심지어 장서영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어머니는 조 부인보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앞에는 체통을 버리고 어린 첩실과 물고 뜯고 싸우는 늙은 여인이 있었다. 하얗게 머리가 세고, 얼굴마다 세월의 풍파가 가득한 이 여인은 심지어 집안에 새로 들인 하녀보다 더 늙고 찌들어 보였다.

‘저 여인이 정말 어머니란 말인가…!’

장서목도 겁에 질렸다. 그의 어머니는 다른 첩실과 싸우는 분이 아니었다.

심호흡을 한 장서양이 구경하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막 앞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갑자기 원 씨가 나타났다.

“멈춰라! 팔려 나가고 싶은 게냐?”

어린 첩실이 장신성을 꼬드기는 바람에 그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기 씨는 지난 몇 년 동안 쌓아온 원한을 모조리 그녀에게 쏟아부었다. 기 씨는 장신성의 뒤에서 웃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할퀴었다. 다시는 노야의 뒤에서 자신을 비웃을 수 없도록!

“꺄! 내 얼굴! 피… 내 얼굴에서 피가 나요!”

어린 첩실은 멈추라는 원 씨의 말에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식이 없는 그녀는 원 씨가 혹시라도 자신을 팔아 생활비를 메우려 할까 두려워 얼른 손을 거둔 채였다. 그와 동시에 기 씨의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악!”

장신성은 아름다운 첩실의 얼굴에 상처가 나자 분노하여 즉시 기 씨를 밀쳤다.

“뭐하는 게요! 완전히 정신이 나갔군! 이랑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때리오? 당신이 정녕 기 씨가 맞소? 그녀는 이렇게 돼먹지 못한 사람이 아니오!”

기 씨가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펄쩍 뛰며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돼먹지 못하다고요? 저 천한 년이 먼저 날 비웃었잖아요! 장신성! 난 당신의 부인이에요! 내가 당신의 진짜 부인이라고요!”

악을 쓰던 기 씨가 돌연 애절한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했다.

“노야, 노야… 제가 돌아왔어요. 제가 보고 싶으셨지요?”

장신성은 폭삭 늙은 여인이 어린 여인을 흉내 내며 교태를 부리자 당혹스러웠다. 특히 그의 품에서 울고 있는 아리따운 첩실과 지나치게 비교가 되었다.

결국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기로 한 장신성이 흐느끼는 첩실을 껴안은 채 소리쳤다.

“닥치시오! 정녕 집안을 시끄럽게 만들 셈이오? 당신이 정말로 기 씨라면 대체 누가 당신을 돌려보냈소? 기 씨는 분명 국암사에 있단 말이오!”

장신성에게 기 씨는 국암사에서 자신을 위해 마지막 기회를 엿보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상황을 지켜보던 원 씨는 눈앞의 폭삭 늙은 저 여인이 과거 노야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조옥언조차 건드리지 않던 그 기 씨가 맞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원 씨는 조옥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반드시 기 씨의 콧대를 꺾어 놔야 자신이 정실부인으로서 위신을 세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여봐라! 감히 첩실의 몸에 상처를 낸 저 여인을 끌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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