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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160)화 (160/449)

제160화

깜짝 놀란 장신성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좌상 장신성입니다. 제가 두 분 왕야를 저택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자 먼발치에서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장신성을 향해 조롱을 쏟아냈다.

“저자가 그 좌상이야?”

“웃기고 있네. 자기가 무슨 자격으로 저택에 모시겠다는 거야? 저자는 조옥언에게 이혼당했잖아. 게다가 조 부인을 두고 경쟁하는 두 왕야를 모시겠다니, 뭐 매파라도 하겠다는 건가? 멍청하긴.”

구경꾼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장신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저 둘이 과거에 조옥언을 좋아했다고? 그렇다면 그들이 온 건…….’

구경꾼들 사이에서 비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좌상 어르신! 어찌 들어가시려고요? 조 부인은 두 왕야 중 먼저 이혼하고 오는 분께 시집가겠다던데요!”

“이제 그만 포기하고 능력껏 열심히 사시지요! 조 부인은 이제 좌상 어른이 필요 없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순간 장신성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가장 놀라운 것은 정말로 두 왕야에게 조옥언과 혼인할 의사가 있다는 점이었다. 이혼한 여인을 원하는 사내가 있다니!

군중의 웅성거림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두 분 왕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거야. 듣자하니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는군.”

“구경거리가 더 늘겠네.”

사람들은 장신성은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다. 진작 이리 되었어야 할 일이었다.

장신성은 두렵고 당황스러웠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겹겹이 둘러싼 호위병으로 인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간신히 인파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 장서양이 장신성에게 다가왔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왜 들어가지 않으시고요?”

돌연 눈앞이 핑 도는 것을 느끼며 장신성이 기절했다. 놀란 장서양이 허둥대며 그를 부축했다.

일단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장서양은 아직 힘이 부족했기에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도우려 나서지 않았다. 갑옷으로 중무장한 호위병 역시 바닥에 쓰러진 장신성을 마치 하찮은 개미 대하듯 못 본 척했다.

장서양은 일순간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일국의 좌상이지 않은가. 이렇게 사람을 무시할 순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아무리 두 눈을 부릅떠 봤자 누구 하나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황실의 호위병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그들의 주인은 장신성과 원수지간이었다.

그렇게 장신성은 장서양의 등에 업힌 채 간신히 작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그를 에워싼 한 무리의 여인들이 흐느껴 울면서 그의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 짜증이 난 장서양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하세요! 누구든 빨리 모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아버지를 보러 오라고 하세요!”

그 말에 순간 동작을 멈춘 첩실들이 과거 노야가 지극히 총애하던 아들 장서양을 바라보았다.

“모친? 원 씨를 말하는 것이지?”

장서양이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아니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엄숙한 얼굴로 원 씨가 나타났다. 비단옷도, 보석도 없이 소박한 차림으로 나타난 그녀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지만 목소리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냉담했다.

“서양아, 방금 내가 아닌 조 부인을 모친이라 칭한 것이냐? 충고하는데 조 부인은 그만 잊는 게 좋을 것이다. 듣자 하니 조 부인은 친왕 두 명 중 한 명과 재가할 예정이라더구나. 이를 두고 두 왕야가 큰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폐하께서 향후 일 년 이내에 조 부인의 재가를 불허한다는 명을 내리셨다고 한다.”

“…….”

“게다가 이미 조 부인과 노야의 이혼서가 도착했다. 이제 두 사람은 남남이라는 뜻이지. 즉, 이제부터는 내가 이 집안의 정실부인이고 너의 적모(嫡母, 서자가 아버지의 정실을 이르는 말)가 되었단 말이다. 알겠느냐?”

장서양은 상황이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하찮은 원 씨 따위가 자신의 모친이라니. 그녀는 조옥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무슨 근거로 당신이 그 자리에 앉습니까? 당신이 장 씨 가문을 돌볼 수 있기나 해요?”

장서양의 말에 원 씨가 즉시 외쳤다.

“여봐라! 감히 모친에게 큰소리로 대든 저 불효자를 때려라!”

새로 사온 우람한 하녀가 군말 없이 앞으로 나와 장서양의 얼굴에 따귀 두 대를 날렸다.

원 씨는 먼저 장서양의 기부터 누를 생각이었다. 만일 그를 꺾어 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녀의 아들은 두각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서양만큼은 봐줄 수 없었다.

“참, 알려 주는 걸 잊었구나. 국자감에는 내 이미 자퇴서를 보내 놓았다. 이리도 집안이 어수선한데 네가 장 씨 가문의 아들로서 마땅히 가족을 부양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에 장서양의 분노가 솟구쳤다. 국자감은 그가 앞날을 기약할 수 있는 마지막 승부처였다. 그가 막 반격하려고 할 때였다.

“모친을 거역하는 게 불충이자 불효라는 건 잘 알고 있겠지?”

원 씨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때 어렴풋하게 정신을 차린 장신성이 그 말에 숨을 헐떡이다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누가 당신이 정실부인이라고 했소…….”

원 씨가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뒤를 돌아 여유롭게 말했다.

“방금 전 호부에서 문서를 갖고 왔습니다. 저는 이미 국가에서 인정한 장 씨 가문의 정실부인입니다. 믿지 못하시겠거든 관아에 가서 여쭤 보시지요.”

“…….”

“모두들 뭘 멍하니 보고 섰느냐! 누구도 공짜로 밥을 먹을 생각일랑 말거라! 게으름을 피우면 그 즉시 팔아 버리겠다!”

원 씨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 여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평소에 얌전한 줄만 알았던 사 이랑 원 씨가 이미 한 시진 전 첩실 한 명을 팔아 건장한 하녀 셋을 사 왔던 탓이었다.

정식으로 정실부인이 된 원 씨 앞에서 아무도 방자하게 굴지 못했다. 자식이 없는 첩실들은 원 씨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는 자식이 있는 첩실들도 마찬가지였다. 원 씨는 앓는 소리를 하는 여인은 그 자녀들을 팔아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장 씨 가문은 원 씨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녀는 조옥언만큼의 위엄은 없었지만 매우 무자비했기에 첩실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장 씨 부자가 남은 뜰을 바라보던 원 씨는 호기롭게 손을 휘휘 저어 하녀들에게 장신성을 방 안으로 모시라 명령했다.

원 씨는 장신성에게 달콤한 사랑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장신성의 곁을 지킨 그녀는 이미 그가 어떠한 사내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에게는 먼저 확실히 본때를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 부인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지 않을 것이다.

장서양이 고개를 숙였다. 난생 처음으로 맞아 본 따귀였다. 그것도 천하디천한 자에게! 그의 눈에 원망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원 씨가 이를 못 본 척하며 말했다.

“이만 방으로 돌아가거라. 노야는 내가 모시고 가겠다.”

장신성이 크게 발버둥쳤다. 저 독사 같은 여인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이거 놔라! 나 혼자서도 걸을 수 있다. 못 들었느냐?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이거 놓으라니까!”

원 씨와 장신성을 번갈아 바라보는 장서양의 눈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원 씨가 부드럽게 말했다.

“어서 들어가지 않고 뭘 하느냐?”

차갑게 코웃음을 친 장서양이 소매를 떨치며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잠시 후 아버지가 내쫓을 여인이었다. 그는 머지않아 원 씨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똑똑히 지켜보기로 했다.

세간 하나 없는 텅 빈 정방(正房)에서 장신성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수십 년을 함께 산 조옥언조차도 감히 자신을 이렇게 대한 적이 없었다. 그는 겉과 속이 다른 이 여인을 기필코 쫓아내기로 마음먹었다.

방문이 닫히고 방에 단 둘만이 남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기 이를 데 없던 원 씨가 돌연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노야, 부디 소첩을 탓하지 마십시오. 저라고 왜 자매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좋은 평판을 얻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소첩이 모질게 굴지 않으면 장 씨 가문은 필시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급변한 원 씨의 태도에 얼이 빠진 장신성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 울면서 고개를 숙였다.

“노야, 소첩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당장 솥에 안칠 쌀도 없는데 동생들은 도통 은자를 내놓으려 하지 않아요. 이러니 노야께서 외출할 때 탈 마차도 없는 형편이고요. 곧 조정에서 관원들을 감축한다지요? 상황이 이다지도 어려우니 소첩은 오직 노야를 위해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장신성의 태도가 한결 누그러졌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건 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장신성이 분노를 가라앉히는 듯 보이자 원 씨가 계속해 울며 하소연했다.

“노야께서는 소첩이 서양이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소첩이 왜 모르겠습니까. 서양이는 글재주가 뛰어나 어쩌면 장래에 큰 인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도 모친으로서 그 아이에게 거는 기대가 크고요.”

“…….”

“하지만 노야, 국자감이 어떤 곳입니까? 노야의 일 년 치 녹봉이 반년 치 학비일 정도로 비싼 곳이에요. 그렇다고 소첩이 어찌 노야께 싫은 소리를 하라고 등을 떠밀 수 있겠어요. 마땅히 소첩이 악역을 맡아야지요.

그러면 서양이도 노야는 원망하지 않을 테고 기껏해야 능력 없는 모친이 못되게 구는 것이라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장 씨 가문을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습니다.”

원 씨가 손수건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믿음을 주려는 듯 장신성의 손을 잡았다.

“노야와 이 집안의 번창을 위해서라면 소첩의 평판은 어찌 되든 좋아요!”

장신성이 원 씨를 바라보았다. 돌연 원 씨만이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다른 첩실들처럼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의 편에서 그를 위해 이 위기를 헤쳐 나가려 하고 있었다.

표정이 온화해진 장신성이 부드럽게 원 씨의 손을 잡았다. 그는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원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장신성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속에 감돌던 냉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선 장신성의 신임을 얻는 게 급선무였다. 물론 그녀는 장신성에게 다시 일어설 여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모든 힘을 잃기 전까지 어떻게든 아들에게 좋은 배필을 찾아 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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