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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158)화 (158/449)
  • 제158화

    한참 뒤, 장서목은 장서양이 빌려온 마차에 겨우 올라탈 수 있었다. 두 형제의 안색은 몹시 나빴다. 그들은 마차 내부에 튀어나온 나무를 꽉 붙든 채 마차에 진동하는 썩은내를 참았다. 목청이 높은 마부가 마차 안을 들여다보며 쉴 새 없이 소리쳤다.

    “얘들아! 듣자하니 큰 부인께 쫓겨났다며?”

    누런 이빨을 드러내는 마부의 입에서 악취가 풍겼다. 장서목은 아침에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떠들지 말고 마차나 모시오!”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장서양의 안색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사람들의 태도에 장서양은 당황했다. 익숙했던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에도 줄을 서야 했으며, 화장지도 예전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마부에게 윽박을 지른 장서목이 장서양을 바라보았다.

    “형님, 이건 기회입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우리를 적자로 올려 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이제 우리도 장서전과 동등해지는 거예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오늘 정실부인이 되는 원 씨가 어떻게든 우리가 적자가 되는 걸 막을 거예요. 네?”

    장서양은 흔들리는 마차에서 몸을 가누며 동생에게 더는 말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 역시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아버지는 귀찮다는 말 한마디를 남긴 채 집을 나가 버렸다. 아버지는 예전처럼 침착하지 않았고 이 틈을 타 그들을 대접해 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실제로 장신성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우선 조옥언을 달래기로 마음먹었다. 고생은 하룻밤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아직은 조옥언을 떠날 때가 아니라는 걸 똑똑히 깨달았다. 싫어도 그 역겨운 여인과 함께 해야 했다.

    아침 일찍 외전(外殿)에 도착한 장신성은 조례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조정 대신들은 이미 모두 도착해 있었다. 수많은 시선이 장신성에게로 향했다가 이내 다시 사라졌다. 말단 관리 한두 명 정도가 두 사람의 이혼에 대해 작게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조옥언이라면 가문이면 가문, 용모면 용모, 품성이면 품성, 무엇 하나 모자라는 곳 없는 여인이었다. 게다가 그 많은 첩실을 들이고도 원망 한 마디 하지 않는 아내였다. 그런데 그런 아내를 버리자마자 이혼 서류를 작성하다니, 과연 장신성은 패기가 남다르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장신성은 왠지 주변이 몹시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평소 그의 주위를 둘러싸던 사람들이 오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이던 내각(内阁)의 원로들 역시 곁을 지나가면서도 그를 못 본 척했다.

    장신성은 자신이 예민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아무도 상대하지 않고 그저 침묵을 지키겠다던 다짐을 깨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상상과 달리 누구도 그를 쳐다보거나 무언가 캐물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조정 대신들 대부분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그나마 아주 소수만이 그를 관찰하고 있을 뿐 아무도 그와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장신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들 이러는 거지? 설마 이들도 조옥언이 잠깐 짜증을 내는 것뿐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남의 가정사에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조정에 무슨 일이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런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공기처럼 무시당하는 걸 견디느니 차라리 그를 에워싼 이들이 이것저것 물어봐 주는 게 나았다. 설령 그들이 집안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 시끄럽게 군다 해도 상관없었다.

    장신성이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을 때였다. 예부상서 만 대인이 여러 번 망설이다가 결국 그에게 다가왔다. 장신성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얼굴로 신수가 훤한 만 대인을 맞이했다. 대체 조옥언과 다툰 일이 뭐 그리 대수라고 모두들 태도를 바꾼단 말인가.

    장신성이 웃음을 보일 거라고는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한 만 대인이 엄숙한 얼굴로 다가왔다. 조옥언과 사이가 틀어진 건 장신성이 저렇게나 멍청하기 때문이었다.

    “호부에서 확정된 문서를 받으셨지요? 이혼으로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사람은 앞날을 바라보고 살아야지요.”

    만 대인의 호의는 그나마 그의 딸이 장서열과 친구라는 것을 고려한 것이었다. 장신성이 급히 그를 붙잡았다.

    “뭐라고? 호부에서 내게 무슨 문서를 보냈다는 게요?”

    장신성은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지난밤 원 씨를 정실부인으로 올리겠다고 큰소리를 친 것은 말 그대로 허풍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어제는 단지 머리끝까지 화가 나 이성을 잃었을 뿐이었다. 이미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조옥언에게 사과하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만 대인이 황당한 얼굴로 장신성을 바라보았다.

    “모르셨습니까? 조 부인께서 호부를 독촉해 이혼을 확정짓지 않았습니까. 간밤에 대리시의 인장까지 찍힌 문서가 내려왔다고 들었습니다만.”

    순간 장신성의 눈앞이 흐려졌다.

    “이혼이… 성사되었다고……?”

    조옥언은 정말 그와 이혼하려는 것이었다.

    “조례 시작이오!”

    * * *

    국자감의 상황은 더욱 암담했다.

    장서양은 본래 보통의 학업 성적을 유지했을 뿐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아니었다. 게다가 국공부의 비호가 사라진 지금 그는 그저 일개 첩실의 소생일 뿐이었다. 특히 국가의 관직이 번잡하여 정리가 필요한 이때, 그의 아버지가 맡고 있는 좌상이라는 직책은 계륵(鸡肋,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갖고 있을 가치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국가를 통틀어 보아도 승상을 두 명이나 두는 조정은 없었다. 영명한 제왕이라면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조직을 오직 찹쌀처럼 무른 풍윤제만이 유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장서양은 달라진 학우들의 태도를 실감했다. 예전에는 그를 그저 외면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아예 그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들은 집안 어른들에게 조 부인이 무거운 짐을 몽땅 갖다 버렸다고 들은 것이다. 누구든 버려진 짐짝에 쏟아줄 애정 따위는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백계상학(百溪向学)이 몰래 장서양을 찾아갔다. 햇볕에 그을린 백계상학의 피부는 드물게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가 매우 쑥스러워하며 장서양에게 말했다.

    “형님이 곤경에 처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형님 생각에 저는 어떤가요? 제가 비록 부족하긴 하지만 형님의 누이동생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어요. 제게 누이동생을 준다면 살면서 어떤 억울함도 당하지 않게 반드시 잘 돌봐 줄게요. 물론 정실부인이 되는 것도 문제없어요. 제가 어머니를 설득하겠어요!”

    말을 마친 백계상학은 진지하고 수줍은 표정으로 장서양을 바라보았다. 백계상학은 모친에게 장 씨 가문 아가씨들이 앞으로 혼인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이미 맺은 혼사 역시 물러야 할 처지라고 전해 들은 터였다. 백계상학의 입장에서 이건 완벽한 제안이었다.

    얼마 전 청산의 일대천인 구각영월(九阁映月)에서 장서영을 만난 후, 그는 그녀가 괜찮은 아가씨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그녀가 남에게 흠을 잡히는 일이 없도록 아내로 맞이하여 잘 돌봐 주고 싶었다.

    장서양이 백계상학을 바라보았다. 그가 누이동생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몹시 불쾌했다.

    눈썹을 찡그리는 장서양의 모습에 백계상학은 그가 자신을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으로 여길까 두려워 재빨리 다짐하듯 말했다.

    “정말이에요. 꼭 정실부인으로 맞이할 겁니다. 물론… 저희 어머니는 반대하시겠지만 저를 믿어 주세요. 제가 계속 빈다면 가능성이 있어요.”

    장서양은 백계상학이 가소로웠다. 계속 빌면 가능성이 있다니? 자신의 누이동생은 객관적으로도 빼어난 규수였다. 그런 동생이, 고작 평민 출신 사내의 정실부인 자리 따위를 ‘빌어서’ 얻어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백계상학의 가문은 재산 하나 없는 집안이었다. 그의 누이 역시 어느 조정 대신의 측실에 불과하지 않던가.

    장서양에게 누이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부귀한 곳으로 시집갈 기회를 가진 아이였다. 백계상학처럼 신분이 비천한 사람에게 보낼 순 없었다.

    백계상학은 장서양의 눈에 분노의 기색이 어리자 속으로 어리둥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장 씨 가문의 가세가 기울었다고 떠들었다. 게다가 전쟁의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많은 이들의 추측처럼 황제께서 관직을 정리한다면 응당 승상부터 물러나야 했다.

    그때가 되면 장신성은 관직을 잃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연경 밖 지방으로 보내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백계상학으로선 어른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이제 장신성의 시대는 끝났으며, 그는 결국 조정에서 사라질 거라고 입을 모았다.

    백계상학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장서영을 정실부인으로 맞기 위해 서둘러 어머니의 동의를 얻으려 했다. 이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장서양은 평소 자신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던 백계상학이 오늘 뜻밖에도 시혜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며 당장이라도 그의 얼굴을 뭉개주고 싶었다. 자신의 누이동생은 미래에 황궁에 들어갈 몸이었다. 그런데 어찌 백계상학 따위에게 시집을 보내겠는가.

    장서양은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며 심호흡을 한 뒤 평이하게 대답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구나. 내 모친 장 부인께서는 이미 누이동생에게 호부의 족보에 오른 적장자 헌원상을 배필로 맺어 주겠다고 하셨다.”

    장서양은 이 정도 말했으면 백계상학도 말귀를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장서양은 이 일만 생각하면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헌원상은 그들 남매가 혼사를 거절한 뒤 꼭 이틀 만에 헌원 씨 가문의 족보에 올랐다. 그것도 명실공히 정실부인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아쉬움을 떨치려 했다. 국암사에 갇힌 그들의 친모로부터 전해 들은 희소식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서영이를 위한 포석을 깔아 놓았으니 머지않아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백계상학은 장서양의 말에도 여전히 굴하지 않았다.

    “예, 조 부인께서 좌상 어른과 이혼하셨다지요? 솔직히 형님도 아실 겁니다. 아버님이신 좌상께서 이제껏 조국공부에 의지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요. 아닌 말로 조국공부라는 뒷배를 잃으셨으니 좌상께선 이번 감사에서 분명 좌천되실 겁니다.”

    “…….”

    “어른들은 하나같이 이제 좌상 어른의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고 말하고 있어요. 아까 사람들이 형님을 없는 사람 취급하던 거 못 보셨어요? 왜 자꾸 고집을 피우세요. 누이동생을 제게 시집보내는 게 뭐가 나빠요? 전 그녀에게 진심으로 잘해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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