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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142)화 (142/449)
  • 제142화

    서풍엽의 품에 안긴 장서열은 서글픈 얼굴로 그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그녀가 찾아낸 유일한 평안이었다. 일평생 이 품 안에서 천진하게 웃으려 했으나… 그 꿈이 곧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 번민에 휩싸였다. 미련이 남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현천기에게 복수한 이후에도 서풍엽의 마음이 그대로일 거란 보장이 없었다. 어떤 사내라도 아내가 될 여인이 불쾌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달가워할 리 없었다.

    설령 서풍엽이 그런 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녀는 차마 뻔뻔하게 그와 혼인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절대로 그를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 속에 방치하고, 그의 사랑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없었다.

    ‘그거 알아요? 당신이 아까워 만지지도 못하는 날 다른 사람이 만졌다는 걸요. 당신은 내 곁에 있으면 안 돼요…….’

    서풍엽이 그윽한 눈길로 장서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제멋대로 굴 때면 그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고, 그녀를 달랠 때는 조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가 화를 낼 때는 한없이 너그럽게 감싸 주었다.

    그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서풍엽뿐이었다. 또한 그녀가 가장 놓칠 수 없는, 실망시키기 싫은 낭군 또한 서풍엽이 유일했다.

    그러나 장서열은 현천기를 죽여야 했다. 현천기가 그녀의 속옷을 내보이며 우쭐대기 전에 먼저 그를 죽여야 했다. 그녀는 그 쥐새끼 같은 작자를 만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려 죽일 작정이었다. 그가 가장 소름끼쳐 하는, 절대로 겪고 싶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잔인하게 괴롭혀 죽일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서풍엽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녀는 그를 못된 여인의 남편이라는 조롱거리로 만들 수 없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녀의 연인은 난무하는 유언비어 속에서 지금과 같은 다정함을 잃고 공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상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다. 이기적이지만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완벽한 그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마차는 새벽 시장을 피해 멀리 길을 돌아가며 장 씨 가문으로 향했다. 장서열은 쓸쓸한 눈으로 서풍엽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그는 자신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완벽하지 않았고 수치심도 몰랐다. 그에게 더는 소중히 여길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순간 장서열이 애절한 마음을 담아 서풍엽에게 입을 맞췄다. 그가 영원히 이 순간을 잊지 못하길 바랐다.

    “사랑해요.”

    비록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진심으로 그를 연모하게 되었다.

    놀란 서풍엽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입맞춤을 돌려주었다. 욕망을 배제한, 안쓰러움과 아픔, 애정이 깃든 몸짓이었다.

    그의 감정을 느낀 장서열의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서풍엽이 자신을 부정한 여인이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파오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이전에 그는 항상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지만 분명 열정적인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건조한 반응에 그녀는 공연히 화가 났다. 이렇게까지 소극적인 건 이미 그의 마음이 틀어졌다는 뜻이리라.

    돌연 장서열이 서풍엽을 쓰러뜨렸다. 그녀는 그의 자제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격렬하게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그의 몸이 굳었다. 이어 자신을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드는 그녀의 손길에 그가 마구 움직이는 손을 잡고 조용히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만해. 서열아. 우리 이러지 말자.”

    장서열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벌컥 화를 냈다.

    “왜요? 당신도 내가 납치를 당한 게 미심쩍은가요?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당신이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냐고요! 한 번 껴안는 게 뭐가 그리 어려워요?”

    서풍엽은 귀엽다는 듯 애정을 담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의 욕망이 그녀를 놀라게 만들까 두려워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바보야, 그럴 리가. 넌 여전히 너야. 내 마음 속에 있는 너.”

    그러나 장서열은 서풍엽의 손길을 거부하고 계속해 그를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요.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은 내가 싫어진 거잖아요!”

    “서열아, 함부로 말하지 마.”

    장서열은 굽히지 않았다.

    “아니! 당신은 날 싫어하고 있어요. 난 이제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데, 그런 내게서 벗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운 거죠?”

    “…….”

    “이 머리카락은 당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수많은 시간을 들여 부드럽게 만든 거예요. 피부는 또 어떻고요? 매끄러운 피부를 만들자고 내가 꽃밭에서 꿀벌에게 얼마나 많이 쏘였는지 알아요?”

    모든 게 서풍엽을 위해 노력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를 떠나보내야 했다.

    장서열은 고집스럽게 서풍엽을 누르며 그가 자신을 안도록 했다.

    ‘다 당신 거예요!’

    장서열은 울었다. 당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그리도 자신을 애지중지하던 서풍엽의 노고를 감히 현천기 따위가 가볍게 무시했다는 데 있었다. 대체 그가 무슨 자격으로 자신을 그렇게 대했단 말인가!

    억울함에 사무친 장서열이 서풍엽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나중에는 그녀조차 자신이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움, 혹은 억울함, 아니면 마침내 발견한 한줄기 희망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풍엽은 가만히 장서열의 등을 토닥였다. 그윽한 눈빛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그 자들이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했다 해도 어쨌든 그녀를 놀라게 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자못 심각했다.

    서풍엽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장서열은 억지로 울음을 멈췄다. 그녀는 이미 결심한 상태였다. 욕심일지라도 오늘 이 남자를 가질 것이다.

    일어나 앉은 장서열이 옷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기겁한 서풍엽이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눈 속에는 책망의 빛이 가득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미쳤어? 서열아, 네 존엄을 생각해! 후회할 일을 저지르지 마!”

    장서열이 크게 소리쳤다.

    “날 좋아하지 않는군요! 내가 싫어진 거예요!”

    그녀는 진심으로 두려워졌다. 용기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하자 그저 한없이 두려웠다. 정말로 그녀는 서풍엽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된 듯했다. 언제나 자신에 차 있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서풍엽의 마음이 그대로일 거라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장서열은 영원한 거절이 아닐 거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다시 한번 결단을 내린 그녀가 마구잡이로 그에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저돌적인 움직임에 서풍엽은 어쩔 줄을 몰랐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여인이 울고 있었고, 그는 목석이 아니었다.

    ‘그래도 안 돼!’

    그녀는 지금 정서가 불안정했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연인이 경솔한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서풍엽이 그녀의 공격을 막으며 말했다.

    “서열아, 정신 차려! 그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이제 내가 있잖아.”

    그녀를 꼭 껴안은 서풍엽이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화내지 마. 다 지난 일이야. 지난 일이야…….”

    그녀를 막는 건 결코 어렵지 않았다. 장서열은 있는 힘껏 발버둥쳤지만 힘에 부치자 갑자기 더 서글프게 울부짖었다.

    ‘버림받았구나. 정말 버림받았어……. 이렇게까지 했는데 소용이 없어!’

    “서열아… 왜 그러는 거야. 울지 마. 울지 말아 줘. 응?”

    서풍엽은 처음으로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를 원하지 않잖아요……. 날 믿지 않으니 나를 원하지 않는 거잖아요.”

    서풍엽은 그녀가 좌절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마치 온 세상에게 버림받은 사람 같았다.

    “아니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잊었어? 처음 혼담이 오갔을 때부터 난 네게 입을 맞췄고 하루라도 빨리 너와 혼인하고픈 마음뿐이었어. 솔직히 난 장모님과 한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어. 혼례를 올리고 나면 난 널 절대로 장 씨 가문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거야.”

    장서열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맑게 갠 눈을 들어 다시금 확답을 요구했다.

    “정말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서풍엽이 품에 안은 그녀를 달랬다.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은 가히 경국지색이라 할 만했다. 그의 두 눈이 황홀함에 젖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장서열은 다시 막무가내로 서풍엽의 옷깃을 풀어 헤쳤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상대하는 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날 거절하면 싫어한다는 뜻으로 알겠어요!”

    서풍엽은 대체 장서열이 무슨 이유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달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서열아, 제발…….”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최대한 다정하게 그녀를 안정시키려 했다. 장서열은 억울한 눈으로 서풍엽을 바라보았다. 눈 깜짝할 새 다시 자신감을 잃은 그녀의 눈빛은 버림받고 상처 받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나를 원하지 않는 군요…….”

    서풍엽의 마음이 욱신거렸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놔두었다. 비록 서투른 손짓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아끼는 마음과 슬픔, 설렘이 일시에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마차는 열정에 사로잡힌 두 사람을 태운 채 아직 다다르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렸다.

    * * *

    격정의 파도가 가라앉고 비바람이 멎었다. 서풍엽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눈빛은 그윽했지만 목소리에는 아직도 당황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왜 이런 행동을 한 건지 말해 줄 수 있어?”

    서풍엽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어 주며 어느 곳 하나 빠뜨리지 않고 세심하게 그녀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그의 품에 안긴 장서열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몽롱한 큰 눈을 깜빡이며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언젠가 나를 떠날 건가요?”

    서풍엽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럴 일은 없어.”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서풍엽은 그녀의 곁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장서열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은밀한 비밀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과 마침내 서풍엽을 항복시켰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이제 곧 집에 도착하는 거죠?”

    장서열은 마치 그의 말을 못 들은 사람처럼 변함없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서풍엽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아이 같았고, 자신에게 안긴 것 또한 그녀의 말처럼 정말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았다.

    ‘정말 괜한 걱정을 한 걸까?’

    서풍엽은 달아오른 장서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향기에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그는 때에 맞지 않는 충동을 억누르며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야 걱정이 돼? 걱정 마. 부하가 밖에 있으니 어떤 의심도 받지 않을 거야. 너는 여전히 너야.”

    장서열이 활짝 미소 지으며 서풍엽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다만 그가 앞으로의 일에 연루될까 그것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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