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병부(兵部)에서 올린 상서를 들어 올린 황제가 불같이 화를 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이냐! 네가 정녕 나라를 망칠 셈이냐? 농병(農兵, 농부와 병사)을 합치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이냐! 지금까지 이어온 정책이고 덕분에 국력은 나날이 상승하였다!”
“…….”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킨 정책이다! 생산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으며 군비 지출도 줄었다! 고위 무관이 멋대로 사병을 보유하는 걸 방지하고 중앙 집권을 유리하게 한 데다 조정의 지출까지 줄였거늘, 넌 책도 읽지 않는 게냐? 어찌 이리 나랏일을 모르느냐!”
그의 능력을 무시하는 강한 질책이었다. 그러나 구염락은 이에 아랑곳없이 냉담하게 답했다.
“그것이 아바바마께서 생각하는 저희 대주국의 국력입니까? 그 정도 지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국고가 비어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군사를 양성할 은자에 벌벌 떨 정도로 궁핍한 것입니까?”
황제는 분노로 말을 잇지 못했다.
“군사는 군사이고 농부는 농부입니다. 폐하께서 매일 호미로 밭을 고르고 김을 매던 이들을 뜻밖에 전장에 내보내려 하시니… 소자, 전장에서 가장 먼저 죽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
황제가 화를 삭이지 못하며 마침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것은 이미 입증된 군사 전략이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손바닥만 한 토지를 지키며 오늘날 나무 한 그루도 심지 못하셨군요. 그동안 대주국이 휴양생식(休養生息,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제력을 키우며 회복기를 가지는 정책)에 힘쓴 이유가 고작 썩은 양식을 축적하기 위함이었습니까?”
“…….”
“적국과 내통하여 나라를 파는 데 동의하신 폐하께서 설마 야심에 부푼 상대의 반격에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 보지 않으신 거라고는 믿지 않겠습니다.”
“…….”
“병사는 종신제(終身制, 죽거나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직무를 맡게 하는 제도)를 통해 전장에서 살고 전장에서 죽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말을 타고 있어야 하며, 손에서 무기를 놓지 않아야 합니다. 수만 리의 산과 강을 나는 듯이 건널 수 있어야 합니다. 훈련된 병사의 포부란 무릇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인데, 폐하께서는 어찌 그들에게 밭을 갈고 김을 매라 하십니까?”
“…….”
“강성한 민족에게는 반드시 정예병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군사를 양성한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입니다.”
“넌 대체 얼마나 전쟁을 좋아하기에 그런 지독한 양병법(養兵法, 군사를 양성하는 제도)을 생각해낸 것이냐?”
“전 그저 전장에 나가는 군인들을 책임지고 싶을 뿐입니다.”
“그들을 책임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평화로운 대주국에서 늙어 죽게 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비빈들이 모두 궁에서 늙어 죽는 것처럼 말이지요.”
구염락이 반항심이 깃든 눈으로 황제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대주국의 사내들은 모두 성별을 바꿔야겠군요. 저부터 성별을 바꾸겠습니다.”
그의 비꼬는 말에 황제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궁의 비빈들을 모욕하지 마라. 너를 낳고 키운 여인들이다!”
구염락은 황제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차라리 존귀한 후궁보다 논밭에서 일하는 아낙네들이 나았다. 그들은 최소한 노동에 대한 대가라도 받지 않는가. 하지만 후궁은 제왕의 애완동물에 불과했고, 한 번 궁에 들어오면 늙어 죽을 때까지 궁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어찌 그리 불손한 얼굴을 하는 것이냐! 너라고 후궁을 들이지 않을 성싶으냐? 배짱이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보거라!”
구염락은 황제와 따분한 문제를 논할 생각이 없었다. 천하를 아우르려면 탁상공론은 버려야 했다. 지금 대주국에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것은 더욱 날카롭게, 무딘 것은 더욱 무디게 하여 각자의 소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면 모든 걸 잃을 것이다.
“폐하께서 단지 후궁의 일을 논하고 싶으신 거라면 소자, 더 말씀드릴 게 없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무엄하다!”
눈을 부릅뜬 황제가 구염락을 노려보았다. 겁이 없고 고집스럽기 그지없는 젊은 태자를 보며 황제는 점점 약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물론 거칠 것 없는 막강한 군대는 권력자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바였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었다. 그는 일평생 전쟁의 고통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대주국의 미래가 전장의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짐에게 약속해라. 대호국(大胡國)만큼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대호국과 전쟁을 일으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대호국이 친척은 아니잖습니까.”
황제가 눈을 부라렸다.
“꼭 그리 말해야 직성이 풀리느냐? 짐이 과거에 네게 잘못한 건 안다. 허나 태자 자리로 그 빚은 이미 다 갚지 않았느냐. 대체 또 무얼 원하는 게냐? 짐이 끝까지 네 모든 걸 용인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순간 구염락의 눈이 마치 모든 것을 불사를 듯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놀란 황제가 자신도 모르게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게야?”
‘빚을 다 갚았다니요?’
황제가 그에게 저지른 잘못은 너무나 많았다. 처음 그를 교양 없는 모습으로 장서열 앞에 내보낸 것, 그녀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되게 한 것, 서풍엽처럼 그녀와 동등하게 만날 기회를 주지 않은 것…….
그 빚을 다 갚았다고?
구염락은 구태여 원망을 늘어놓지 않기로 했다. 고귀한 권력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시간 낭비였다. 과거는 과거일 뿐 어차피 아무리 곱씹어도 돌이킬 수 없었다.
“대호국의 일이라면 죄송하지만 소자에게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황제는 구염락의 눈 속에서 차츰 불길이 사그라들자 왠지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불가사의한 느낌이었다. 그가 조금 전보다 점잖아진 어투로 말했다.
“대호국은 용맹하여 전쟁에 능하고, 광활한 국토에 풍족한 물자를 지닌 나라다. 그들은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 이런 국가와 싸운다면 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대주국의 기틀은 무너지겠지.”
구염락이 차갑게 웃었다.
“대호국 하나로 대주국의 기틀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소자, 사실을 말하는 데 능한 점 용서해 주십시오.”
황제는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구염락의 원한은 쉽게 지워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구염락과 더는 입씨름할 생각이 없었지만 일국의 군주로서 다음 대의 제왕에게 반드시 군주의 도를 가르쳐야 했다.
“대호국에도 그들만의 입장이 있다.”
“맞습니다. 그래서 폐하와 선황제, 그리고 그 윗대의 황제께선 참으로 현명하게도 대호국과 화친을 맺고 또 화친을 맺고 그 다음에도 또 화친을 맺으셨지요. 주위의 다른 나라까지 이를 본받을 정도로 말입니다. 화친을 맺어 물자를 제공한 것도 모자라 중행(中行)의 환관들까지 보내셨으니, 과연 영명하고 뛰어난 제왕이십니다. 대호국이 만족하지 못할까 두려워 모든 걸 다 내어 주셨지요.”
“무슨 뜻이냐?”
“중행의 환관들이 어떤 자들이었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폐하. 그들은 주인의 뜻을 세심하게 헤아릴 줄 알고 해박한 지식을 갖췄으며, 모든 일에 빈틈이 없고 치밀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남에게 아첨하고 빌붙기를 잘하며 책략에 능한 자들이란 뜻이지요.”
“…….”
“폐하께서는 이런 자들을 대호국에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새로운 주인에게 아첨하게 하셨습니다. 대호국이 자랑하는 두 가지 기술은 모두 저희 대주국에서 넘어간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러니 대호국이 어찌 강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폐하, 저는 가끔씩 참으로 의문이 듭니다. 대주국이 지난 삼십 년 동안 무탈했던 것은 가히 천운이었습니다.”
멍하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황제가 순간 폭발했다.
“어디서 함부로 지껄이느냐! 그들은 한낱 하인이었을 뿐이다!”
황제는 자신을 질책하는 구염락을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썩 꺼지거라!”
구염락은 기다렸다는 듯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 뒤 물러났다.
환관을 단순히 하인이라 무시하는 건 위험한 생각이었다. 조금만 관찰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이들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수사자 곁에서 단잠을 청할 수 있는 이들이 어찌 한낱 하인이겠는가.
책상을 붙잡은 황제가 바로 섰다. 머릿속에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일렁거렸다. 그는 은연중에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구염락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대호국이 존재감을 드러낸 건 고작 백여 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새 대국이 되어 대주국을 놀라게 했고, 결국 황제 또한 싸움 대신 번번이 양보와 화친을 택해야 했다.
황제는 이 부분에서 자신이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저 매년 공주의 기분 전환을 위해 중행(中行)에서 사람을 선발하고 수많은 관리들을 붙여 주었을 뿐이었다.
‘설마 그들이 정말 배신을 했단 말인가?’
답답해진 황제는 몸을 움직이다 실수로 구염락이 비판한 상소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는 굳세고 강직한 필체로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고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세대가 지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전쟁의 필요성을 인지해본 적이 없었다.
조용히 자리에 앉은 황제가 구염락의 손을 거친 상소들을 진지하게 하나씩 훑어보았다. 잠시 뒤, 그는 정사에 임하는 구염락의 능력이 아이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문장은 몹시도 신랄하고 사나웠다.
그러나 다행히 구염락의 청사진은 현재 국가에서 운영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진 공공.”
“예, 폐하.”
“지난번 태자가 올린 ‘병론(兵論)’을 가져오라.”
“예.”
구염락이 올린 병론은 세 장으로 이루어진 상소였다. 처음 상소를 읽었을 때 황제는 이것이 비현실적인 신선놀음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상소를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본 후, 그는 구염락의 병론이 세심하게 짜여진 7대 병종(兵種, 보병, 포병, 공병 따위로 군부대를 임무에 따라 나누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제7병단은 얼핏 보기에 허무맹랑한 계획 같았지만 제대로 활용한다면 적의 성벽을 부수고 승리를 거머쥐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병론의 7단계 전술을 차례로 보노라면 실전에서 어렵지 않게 모든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장기적이고 막대한 전략으로 한 번 시작한 이상 돌이킬 수 없었으며 자칫 잘못하면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었다.
황제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병론대로 나라를 움직인다 해도 이는 반드시 자신의 뜻이어야 했다. 선봉에 서는 것이 태자여서는 안 된다. 그가 전면에 나선다면 중용파(中庸派)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한참을 조용히 생각하던 황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현일(玄一)을 들라 하라.”
잠시 뒤, 현일이 현천기를 데리고 입궁했다.
황제는 한참 뒤에야 겨우 현일의 곁에 선 그의 아들을 발견했다. 그 아이는 아무리 봐도 눈에 띄지 않아 마치 현일의 신체 중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이 병론을 현일에게 보여줘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