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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124)화 (124/449)

제124화

송 마마가 금용의 옷을 열어젖혔다. 그녀는 상처를 보자마자 신형사에서 사정을 봐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공포스러운 상처였지만 뼈는 무사했고 단지 피부만 상했을 뿐이었다. 만일 신형사에서 모질게 손을 썼다면 금용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억울하냐?”

금용이 베개 위에 엎드려 더욱 서럽게 울었다.

“제가 뭘 잘못했다고요……. 전하께서는 여태까지 제가 곤장을 맞아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따라서 금용은 문회에서의 일도 당연히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독한 술을 꺼낸 송 마마가 그녀의 상처를 닦아냈다. 송 마마와 금용은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였으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송 마마는 금용의 일이라면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송 마마가 평온하게 말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도, 많은 걸 바라지도 말거라. 네게 좋을 것이 없다.”

금용은 윽, 소리를 내며 통증을 참으면서도 송 마마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제게 기회가 있을 거라고 얘기한 건 마마십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제게 바라는 게 많다고 하세요? 제 어디가 부족해서요? 전 전하와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고 전하의 목숨을 구한 적도 있습니다.”

송 마마가 즉시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 일은 다시는 거론하지 말거라! 이미 전하께서 네 가족에게 상을 내리고 끝난 일이다.”

물론 그녀가 금용에게 그리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송 마마는 혹시 모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금용과 친분을 쌓기 위해 살짝 부추긴 것뿐이었다. 허나 이처럼 금용이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어리석게 군다면, 언젠가 화근이 될지 모르는 그녀와 계속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고개를 떨군 금용은 더는 버릇없이 굴지 않았다. 그녀는 제자전에 있는 한, 많은 방면에서 송 마마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 저는 단지 너무…….”

“억울하다 느껴도 입 밖에 내지 말거라. 전하께서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든 지금은 귀한 네 상전이다. 상전은 반항하는 하인을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특히나 옛정을 운운하며 본분을 잃는 하인을 가장 싫어하지.”

“…….”

“뭘 두려워하는 게냐. 넌 전하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측근이고 용모 또한 단정하니 때가 되면 자연히 전하의 시침을 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네가 다른 어떤 비빈들보다도 우선이 될 것이라는 걸 왜 몰라. 제 복을 발로 차는 짓은 하지 말거라.”

금용은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화를 삭이지 못하는 성미를 갖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황후마마께서 저를 선택하실까요?”

송 마마는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계속해 그녀의 상처를 돌봤다. 여린 피부에 흉터가 남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황후마마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네가 지금 전하의 곁에 있다는 것이다. 넌 용모가 출중하니 전하께서 남녀의 정을 아는 날이 오면 널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으실 것이다.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단정히 하고 섣부르게 굴지 않는 것이다.”

“…….”

“먼저 전하의 마음부터 녹이거라. 전하께서 네 세심함과 상냥함을 알게 하고, 천천히 너에게서 떠날 수 없게 만들어라. 내 말 이해하겠느냐?”

금용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송 마마는 짜증내지 않고 계속 말했다.

“아직 어린데 뭘 그리 조급하게 구느냐. 정작 지금 조급해야 할 사람은 동쪽의 그 아가씨다.”

금용은 권여아를 떠올리며 더욱 화를 냈다.

“전하께서는 그녀에게……!”

“새로운 것에 잠깐 끌리는 것뿐이다.”

송 마마는 담담했다. 궁에서의 생활에 잔뼈가 굵은 송 마마는 금용보다 감정을 조절하는 데 능숙했다. 현재 권여아가 빈번하게 제자전을 드나드는 것은 분명 그녀 곁에 있는 방 마마의 공이 클 터였다. 이는 윗전에서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방 마마가 굳이 권여아의 비위를 맞춰 주고 있을 리 없었다.

“정말 그럴까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걱정할 필요 없다. 너와 전하 사이에는 옛정이 있으니 너를 더 어여삐 여기실 게다.”

설령 총애를 잃게 된다 해도 마음에 후회는 남지 않을 거라는 마지막 한 마디를, 송 마마는 끝끝내 하지 않았다.

* * *

무더위가 찾아오며 각지에서 피서가 시작되었다. 구염락은 황제의 동행으로 피서를 떠났다. 뭇 관원들은 돌연 급부상한 십삼황자에게 더욱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서풍엽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남방을 순시하며 가뭄을 살폈다.

연경은 매우 조용했다. 부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잡담은 모두 부드러웠고 첩실들 역시 무의미한 총애 다툼을 자제했다. 연경을 떠나 있는 남자들 덕분에 풍파를 일으키는 것도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연경의 부인들은 여름날의 나태함과 흥취을 한껏 즐겼다.

장서열은 몹시 바빴다. 미리 수놓은 혼례복이 너무 컸던 탓에 서둘러 고쳐야 했다. 물론 방에 충분한 얼음을 놓아 둔 그녀에게 바깥의 더위는 그리 방해가 되지 않았다.

조옥언도 매우 바빴다. 딸의 혼삿날이 정해졌으니 아들의 혼처 또한 서둘러 물색해야 했다. 오라비보다 누이동생이 먼저 혼인을 할 수는 없었다.

조옥언은 연경에 있는 매파 절반을 초대해 많은 아가씨들의 사주를 받았다. 그러나 조옥언의 마음에 드는 아가씨는 장 씨 가문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장 씨 가문에 호감을 갖고 있는 아가씨는 반대로 조옥언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이리저리 찾아봐도 적합한 상대가 없었다. 조옥언은 스스로 며느리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그중 한림원 3품 원사의 딸이 교양과 학식을 갖추고 있어 혼담을 꺼내 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올해 딸의 운세가 불길하여 혼사를 논하기에 적절치 않다’였다.

‘그냥 싫다는 소리로구나! 대체 내 아들이 어디가 부족하여 제 여식의 운세가 ‘불길’하다는 핑계까지 대는 것이냐!’

매파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장 씨 가문의 혼사는 매파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중대사였다. 장 부인에게서 나오는 은자가 적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평소 이야기가 잘 통하던 가문도 ‘장 씨 가문의 적자’라는 말만 들으면 다들 어두운 얼굴이 되어 말 한마디 덧붙일 새 없이 이들을 쫓아냈다. 장서전의 혼담을 꺼낸 매파들은 어느 집에서든 모두 역귀(疫鬼, 역병을 일으킨다는 귀신) 취급을 당했다. 그들은 매파가 자기 딸을 눈여겨볼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조옥언은 어쩔 수 없이 요구 조건을 낮췄으나, 이로 인해 더욱 화가 나는 일을 겪었다. 듣도 보도 못한 가문에서까지 혼담을 청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아예 서녀의 명부를 보내오기도 했다. 조옥언은 분노했다. 그래도 자신의 아들은 종1품 가문의 적자였다!

조국공 노부인이 도착했다. 그녀는 방문을 닫자마자 다짜고짜 조옥언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어머니!”

조옥언은 딸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노쇠한 조 노부인이 지팡이로 바닥을 탕탕 두드리며 숨을 헐떡였다.

“넌 이 어미를 기가 차 죽게 만들 작정이냐? 그런 게야?”

조옥언은 무척 억울했다.

“어머니, 우선 진정하십시오. 대체 왜 그러십니까?”

조 노부인이 지팡이를 바닥에 내던졌다.

“이 불효막심한 것 같으니! 그런 식으로 서전이의 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느냐? 설마 네 아들이 네 사위 서풍엽과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한 게야? 세도가에서 모두 탐내는 사윗감이라도 되는 줄 알았냔 말이다!”

내동댕이쳐진 지팡이를 주워 들며 조옥언은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철이 든 서전이는 맡은 바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화가 난 조 노부인은 귀밑머리를 들썩이며 의자에 앉았다. 평생 속만 썩이는 딸과 말싸움하는 것도 이제는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모친이 화를 가라앉힌 모습을 본 조옥언이 얼른 지팡이를 건네며 물었다.

“어머니, 대체 왜 그러십니까?”

조옥언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조 노부인은 집 밖 출입을 하지 않는 딸이 소문을 듣지 못한 듯하자 탄식을 금치 못했다.

“넌 너희 집 골칫거리를 정말 모르는 게냐, 모르는 척하는 게냐? 서전이의 혼담을 넣었다고? 네 명성과 너의 잘난 사위 때문에 그나마 예의를 갖춘 게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들은 매파를 들여보내기는커녕 모두 대문부터 걸어 잠갔을 것이다.”

조옥언은 깜짝 놀란 눈으로 모친을 바라보았다. 조 노부인은 딸의 집안 사정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장신성이 서출만 싸고도는 것과 서전이가 과거 초혜전에서 십삼황자를 괴롭힌 사실까지는 제쳐둔다고 치자. 지난 몇 년간 대체 서전이가 이룬 것이 무엇이냐? 외지에서 돌아와 금위군의 하찮은 시위가 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십삼황자의 친위대조차 들어가질 못했잖느냐!”

“…….”

“남들이 뭐라고 떠드는 줄 아느냐? 네가 죽고 나면 장 씨 가문의 주인이 바뀔 거라고들 하더구나. 허면 적출 소생이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딸의 앞길을 어떻게 망칠지 모르는 사내에게 누가 딸을 보내겠냔 말이다!”

순간 탁자를 내리친 조옥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찌 그런 일이!”

조 노부인이 다시 조옥언을 자리에 앉게 했다.

“그만하거라! 남들이 비웃는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 매파를 보내다니. 대체 서전이의 체면을 어디까지 구길 셈이냐. 그 아이의 혼사만큼은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 안 되겠으면 내 국공부에서 한 명 골라 주마.”

조옥언이 즉시 거절했다.

“싫습니다. 한 명뿐인 조카딸은 서전이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데다 이미 혼인한 몸이잖습니까. 설마 큰 올케 아래의 서출 자녀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조 노부인이 그 말에 지팡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홍촉이 돌연 밖에서 고했다.

“부인, 서열 아가씨가 왔습니다.”

홍촉이 고하기가 무섭게 장서열이 바람처럼 뛰어들었다.

“할머니! 제가 마중도 못 나가게 왜 기별도 없이 오셨어요.”

말을 마친 장서열이 조 노부인의 품에 안겨 고개를 비볐다. 일순간 화가 눈 녹듯이 사라진 조 노부인이 자애롭게 웃으며 손녀를 맞이했다. 그녀는 장서열을 몹시 귀여워했다. 그녀의 눈에 손녀는 딸보다 똑똑하고 사리를 분별할 줄 알았다.

“내 강아지, 어디 얼굴 좀 보자. 곧 혼인을 앞두고 있어 그런지 어엿한 숙녀가 다 됐구나.”

장서열이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조 노부인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놀리지 마세요.”

이내 다시 고개를 든 그녀가 능청스레 눈을 깜빡이며 말을 이었다.

“들어오다가 두 분이서 나누시는 대화를 들었어요.”

장서열의 말에 조 노부인은 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조옥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딸아이에게 모친께 혼나는 모습을 들키다니, 다시 한번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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