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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105)화 (105/449)
  • 제105화

    “생선은 어떠하냐? 아버지는 우리 서열이가 어렸을 적에 생선을 가장 좋아했다는 걸 기억한단다.”

    “…….”

    “아이쿠, 이렇게 큰 덩어리가 있구나. 우리 귀여운 서열이에게 주마.”

    그가 애지중지하듯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많이 먹고 건강에 유의하거라. 큰 병을 앓고 난 뒤로 더욱 말랐구나.”

    “…….”

    “말이 나왔으니 말이다, 위지 씨 가문은 응당 치러야 할 대가를 치른 것이다. 딸을 버릇없이 가르쳐서 우리 서열이를 괴롭혔으니 말이다. 이렇게 착하고 똑똑한 내 딸에게 감히 손을 대다니.”

    장서열은 기가 찼다. 어쩜 이렇게 얼굴을 바꿀 수가 있단 말인가. 그녀는 당시 위지 씨 가문에 빌붙으려 했던 아버지의 언행을 알고 있었다.

    “풍엽은 오늘 어째서 오지 않은 게야? 혼담이 오갔다고 일부러 방문을 삼갈 필요는 없다. 서전이처럼 그 아이가 장성하는 모습을 우리도 줄곧 지켜보았으니 말이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느냐. 이 아비는 그리 꽉 막힌 사람이 아니란다.”

    “…….”

    “풍엽은 꽤 바쁜 모양이구나. 요즘 무슨 일을 맡고 있는지 물어보고, 이 아비에게도 귀띔해 주거라. 그는 아직 젊고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요즘 같이 조정이 혼란스러운 때에는 자칫하면 길을 잘못 들 수 있단다. 아비가 사위를 위해 조언을 해 주마. 그럼 네가 내조를 잘하는 것처럼 보일 게다.”

    장서열은 계속해 못 들은 체했다.

    “자, 서열아, 이 갈비도 먹어 보거라. 생선은 어째서 먹지 않는 것이냐? 너무 뜨거워서 그런 게냐? 괜찮다. 이 아비가 불어 주마.”

    그가 작은 접시를 들어 딸에게 줄 생선을 호호 불었다.

    “풍엽의 일은 네가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정혼했다고 벌써부터 방심하면 안 돼. 항시 그를 염두에 두고 그가 출세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 아비는 아는 것이 많으니 너희를 위해 조언을 해줄 수가 있단다.”

    장신성은 생선 가시를 발라낸 뒤 조심스럽게 딸의 앞에 내밀었다.

    “자, 먹어 보거라.”

    조옥언을 위해 반찬을 집어 주던 홍촉이 잠시 우뚝 멈췄다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움직였다. 홍촉은 속으로 냉소했다.

    ‘까닭 없이 잘해줄 리가 없지. 바라는 바가 있으니까 저러는군. 간사한 소인배 같으니라고!’

    한편 장서전은 아버지가 비굴하게 아첨하는 듯한 모습에 짜증을 느꼈다.

    ‘대체 뭐하시는 거지? 세자의 업무가 계속 입에 올릴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아버지는 마치 누이동생이 서풍엽에게 어울리지 않는 상대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서열아, 이 아비에게 말해 보렴. 혹 풍엽이 네게 뭔가 언급하지 않았느냐?”

    결국 참다못한 장서전이 소리 내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는 비록 아버지의 총명함은 물려받지 못했지만 몇 년 동안 사람들과 부대끼며 꽤 눈치를 키운 상태였다. 그는 아버지의 지나친 태도가 실망스러웠다. 장신성이 즉시 아들을 쳐다보았다.

    “뭐하는 짓이냐. 어서 밥이나 먹거라!”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딸에게 웃어 보였다.

    “귀여운 것, 계속 말을 안 할 테냐? 아비가 네게 알려 주마. 혼인은 두 가문의 일이다. 세자가 네게 매우 잘해 주고 충왕부 역시 우리 집안을 박대하지 않으니 우리도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열흘 뒤 다시 매파가 오면 그때는 아예 혼삿날을 정하자꾸나. 괜히 격식을 차릴 필요가 뭐 있겠느냐. 아비가 흠천감에 알아보니 세 달 후에 길일이 있다고 하더구나.”

    장서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서열은 여전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아버지가 건네 준 생선을 씹었다. 가시가 그대로 씹히는 걸 보니 어지간히 마음이 급한 듯했다.

    “자, 서열아, 이것도 먹어 보렴. 네가 탕수갈비를 좋아한다고 풍엽이 이 요리를 가장 잘 만드는 요리사를 특별히 보내왔단다. 혼삿날은 세 달 후가 좋겠느냐, 아니면 네 달 후가 좋겠느냐? 흠천감에서 정확한 날을 받아올 테니 말해 보거라.”

    장서전이 다시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아버지, 서열이 밥 좀 먹도록 내버려 두시지요.”

    “고약한 놈, 네 밥이나 먹으라니까!”

    장신성도 화가 났다. 말하라는 자식은 곧 죽어도 말을 하지 않고, 말하지 말라는 자식은 함부로 끼어들고 있었다.

    그 소란에 조옥언이 반찬을 집던 손을 멈추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장신성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움츠렸다.

    “일단 밥 먹자. 어서 먹거라. 다 먹고 얘기하자.”

    장서전은 불쾌한 기분으로 머리를 숙였다. 갑자기 음식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누이동생을 팔아서 서풍엽에게 아부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충왕부의 권세가 드높다 해도 이런 식의 행동은 옳지 않았다.

    조옥언은 시종일관 장신성의 말이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어찌 보면 그를 가족으로 여기지도 않는 듯한 태도였다. 물론 촉박하긴 했지만 그녀는 딸의 혼사가 늦는 것보다는 빠른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미 오늘 조옥언은 모친과 상의한 끝에 혼삿날을 받아둔 후였다. 음력 12월이 날짜도 가장 좋고 적당했다. 딸의 나이를 생각하면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어차피 그녀는 혼례 후 이 년 정도는 딸을 곁에 둘 생각이었다. 서풍엽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쨌든 생각보다 이르게 혼인을 올리게 된 건 그가 머리를 쓴 탓이 아니던가.

    장서전은 누이동생이 아직도 아버지가 발라준 생선을 먹고 있자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가 그보다 더 큰 생선살을 집어 동생의 그릇에 놓아 주었다.

    “이걸 먹어. 그건 다 식었잖아.”

    고개를 든 장서열이 오라버니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인 뒤 갈비를 집어 그의 밥그릇에 놓아 주었다. 비록 장서전은 아직 보잘 것 없는 9품 순시(巡視)였지만 훗날 구염락이 황위에 오른 후에는 달라질 것이다. 구염락은 장차 금위군을 통합하여 연경에서 금위군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황제 직속의 군대로 만들 예정이었다. 그대로라면 장서전의 앞길은 창창했다.

    장서전은 불만스레 식사를 끝마쳤다. 그는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속이 빤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누이동생은 아무런 불만이 없는 사람처럼 식사를 했다.

    그는 혹시라도 누이동생이 멍청하게 서풍엽에게 조정의 일을 물을까 겁이 났다. 그가 아는 한 남자들은 여자가 바깥일을 캐묻거나 작은 일로 수다스럽게 구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장서전은 장서열이 방으로 돌아가는 틈을 타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너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온순해진 거야?”

    “무슨 말이에요?”

    “내숭떨지 마. 아버지가 하는 말을 왜 가만히 듣고만 있었냐고.”

    초 마마가 서둘러 농교와 완정을 물러가게 한 뒤 둘만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몇 마디 반항 좀 하면 어때. 아버지는 당장 널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이잖아.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너도 알지, 정말 너답지 않다는 거. 예전의 너였다면 진작 아버지에게 소리 질렀을 거야.”

    장서열은 긴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서쪽 끝으로 만개한 목련꽃이 노을과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연못의 푸른 담수는 맑고 투명했으며 오솔길 옆으로는 떨어진 꽃잎이 향긋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평온한 풍경과 달리 어지러웠다.

    “이젠 그럴 마음이 사라졌어요.”

    “어째서?”

    긴 복도를 내려온 장서열은 천천히 자갈이 깔린 오솔길을 걸었다. 길의 양 옆으로 노을에 젖은 개나리가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어차피 아버지가 뭐라 하시든 아버지에게는 결정권이 없어요. 그러니 구태여 아버지의 말에 토를 달 필요도 없죠. 만일 제가 거역하는 기색을 보이면 아버지는 앞으로 뭐든 말도 없이 곧바로 행동에 옮길 거예요. 제가 미처 손쓸 새도 없이 말이에요. 차라리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게 나아요.”

    장서전이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너… 그게 무슨 뜻이야? 왜 아버지가…….”

    장서전이 괴로운 얼굴로 누이동생을 바라보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뒤 달라진 분위기를 짐작 못하는 바 아니었으나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놀랄 것 없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아버지가 오라버니에게 한 말들을 생각해 봐요. 제 일은 어머니가 책임지고 결정하실 테니 오라버니는 걱정하지 말아요.”

    장서전의 얼굴은 살짝 질려 있었다. 그는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많이 사랑하셔. 어릴 때도 자주 안아 주셨고…….”

    “아버지는 오라버니가 없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안아주셨어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사랑해 마지않는 서출들 말이에요.”

    장서열은 질투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최근 장서양을 위해 주 태부를 스승으로 모셔오려 했어요. 아쉽게도 거절당했죠. 하지만 오라버니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섭궁개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했어요. 그것도 모르고 오라버니는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게 당연하다 여겼고요.”

    장서열이 비꼬며 말했다. 그녀는 언제까지고 오라버니에게 진실을 숨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장서전은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 몇 년간 홀로 외지에서 지내는 동안 아버지는 한 번도 그를 보러 온 적이 없었다. 외숙이 그를 강남학부(江南學府)에 집어넣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그를 보살피지 않았다.

    그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다만 믿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 역시 아버지가 장서양을 편애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건 아우가 총명하기 때문이라며 애써 스스로를 달래 왔다.

    장서열이 손에 꽃을 받쳐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지난 이 년 동안 계속해 기 씨를 만나러 갔어요. 귀하고 좋은 물건들은 모두 그녀에게 보냈죠.”

    아쉽게도 그 물건들은 기 씨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아버지의 서찰을 읽고 장서열은 탄식을 금치 못한 적도 있었다.

    장서전이 비틀거렸다. 한 가지 기억나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특별히 잘해줄 때는 항상 그만한 목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일이 있거나, 장서양에게 필요한 은자를 챙겨 주기 위해 어머니에게 부탁할 때, 혹은 다른 이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시킬 때면 유독 그에게 잘해 주곤 했다.

    하지만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던 아버지가 아니던가. 장서전은 혼란스러웠다.

    “언제부터 안 거야?”

    “오라버니가 황자인 구염락을 때릴 때부터요. 오라버니는 아버지의 서재에 숨어서 엿들은 비밀이라며, 자기가 직접 황제의 근심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죠. 바보처럼.”

    그를 바라보는 장서열의 표정은 덤덤했다.

    “물론 정말로 근심을 덜어주긴 했죠. 십삼황자에게 아무리 맞아도 끄떡없는 맷집을 길러 주었으니까요. 그는 오라버니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훗날 오라버니에게 고마워하게 될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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