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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91)화 (91/449)
  • 제91화

    마침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장서열은 사람이 적은 연못을 찾아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너무 피곤했다. 쉬지 않고 웃느라 얼굴이 다 굳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칭찬 세례를 받은 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러나 장서열은 특별히 기쁘다고 느끼지 못했다. 전생에서도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칭찬에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자신의 단점을 크게 여겼고 오히려 스스로 남에게 귀여움을 받을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장서열이 버드나무 잎을 잡아 연못에 던졌다. 휘어진 눈썹 같은 녹색 이파리가 수면 위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그 순간, 장서열에게 말을 걸 기회만 엿보고 있던 위지해어가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나타났다. 분노에 찬 그녀가 남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뭐하는 짓이야? 내게 망신을 주니까 속이 시원하니? 내가 풍엽 오라버니를 좋아하는 게 잘못이야?”

    다시 이파리 하나를 딴 장서열이 위지해어를 힐끗 바라본 후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내가 언니에게 망신을 준 건 뭐가 잘못이죠?”

    “난……!”

    “억지 부리지 마요. 언니가 먼저 시작했고 난 반격했을 뿐이에요. 왜요? 일은 저질렀지만 잘못은 인정하기 싫어요? 그 정도로 아둔한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위지해어의 오만이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자부심이 음흉한 아이에게 뭉개지고 있었다.

    ‘어째서 장서열에게 진 거야? 어떻게 질 수가 있지?’

    사람들의 동정을 사고 칭찬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위지해어 자신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편을 들고, 자신이 서풍엽과 혼인하지 못하는 것은 못된 장서열 때문이라고 여기게 만들었어야 했다. 정말로 무고하고 억울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장서열은 모든 게 지루했다. 저런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건 시간 낭비였다.

    “좀 비켜요. 또 내 길을 막고 있잖아요.”

    위지해어는 자신을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 구는 장서열의 태도에 원한을 품었다.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대체 뭘 믿고 저리 안하무인으로 구는지 알 수 없었다. 풍엽 오라버니도 분명 예전에는 자신을 좋아했었다.

    돌연 난간에 기댄 위지해어가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장서열, 만약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사람들은 네가 날 밀었다고 생각할 거야. 풍엽 오라버니를 좋아하는 나를 질투한 탓이라고 하겠지. 그렇게 되면 네 평판은 어떻게 될까? 너 같이 지독한 아이를 과연 풍엽 오라버니가 아내로 맞이하려 할까?”

    장서열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이마를 짚었다.

    “좋은 생각이야.”

    동시에 위지해어의 손을 붙들고 난간으로 다가간 그녀가 이내 손을 놓은 후, 망설임 없이 연못 아래로 뛰어내렸다.

    “꺄악!”

    공포에 질린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이제 누가 누구를 질투한 게 될까?’

    질겁한 위지해어가 연못으로 가라앉은 붉은 옷자락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사람 살려! 서열 아가씨가 물에 빠졌어요!”

    “큰일 났어요! 해어가 서열이를 물에 빠뜨렸어요! 여봐라, 어서 사람을 구해라!”

    놀란 부인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자신의 손과 연못을 번갈아 쳐다보는 위지해어를 보며 모든 상황을 눈치챘다. 설령 고의가 아니었으며 일이 벌어진 후 후회하고 있다 해도, 위지해어가 장서열을 연못으로 밀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부리나케 달려온 충왕비는 연못 밑으로 붉은 옷깃이 점점 가라앉자 곧장 신발을 벗어던졌다. 그녀는 연못에 뛰어들어 장서열을 구하려 했다.

    “서열아! 조금만 버티거라! 이 어미가 당장 구해 주마!”

    권 소부인이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왕비마마, 진정하십시오! 집사! 어서 빨리 사람을 불러 서열 아가씨를 구하거라!”

    장서열이 물속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아슬아슬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겁에 질린 만정은 곧장 울음을 터뜨렸다.

    “서열 언니! 조금만 참아요! 어서 언니를 구해주세요! 빨리요!”

    막 도착한 시위(侍卫)가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위지 부인은 전에 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결코 사람을 밀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만약 장서열에게 뜻밖의 변고가 생긴다면 그녀의 딸은 앞으로 남은 반평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장서열이 무사하다 해도 이제 그녀의 딸은 끝장이었다.

    위지 부인은 우선 불안한 마음을 다독인 뒤 사람들이 부주의한 틈을 타 멍하게 넋을 잃은 딸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그녀가 침착하게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딸의 평판이 망가질 거라면 장 씨 가문의 계집 또한 차라리 재수없는 일을 당하는 게 나았다. 연못은 아이 한 명을 익사시키기에 충분한 깊이였다.

    근심 가득한 얼굴의 부인들이 가슴을 졸이며 연못을 가득 에워쌌다. 그들은 물속에서 발버둥치는 장서열과 함께 붉은 치마가 수면 위를 오르내릴 때마다 자신들의 애간장도 함께 타들어가는 걸 느꼈다.

    대체 얼마나 큰 원한이기에 사람을 연못에 빠뜨린단 말인가. 설령 장서열에게 패배했다 해도, 혹은 장서열이 고의로 위지해어에게 본때를 보여줬다 해도, 오늘 위지해어의 행동은 용서 받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무리 남자에게 눈이 멀었다 해도 사람을 그렇게 만들다니!’

    장서열에게 연민을 느낀 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곱지 않은 눈으로 위지해어를 쳐다보았다. 위지 부인이 딸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본 이들은 역시 딸의 비행은 부모가 제멋대로 키운 결과임을 확신했다. 처녀가 수치도 모르고 남자에게 매달리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정원을 관리하는 하인들은 오늘 같이 특별한 날이면 주인의 명을 즉각 받들 수 있도록 대기해야 했기에 곧바로 달려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물에 들어가 장서열을 구해냈다.

    장서열의 몸이 연못 밖으로 끌어올려졌다. 대기 중이던 의원은 그녀에게 입 속에 있는 물을 전부 뱉어내게 한 후, 침으로 인중을 찔렀다.

    황급히 옷을 벗어 장서열의 몸에 덮어준 충왕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가 바닥에 누워있는 연약하고 가련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평소 활발해 마지않던 아이가 지금은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만약 서열이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그녀 역시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서열이는 어떠한가? 무사한가?”

    장서열의 주위를 둘러싼 부인들이 의원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잔뜩 긴장했다. 조금 전까지 생기발랄하고 아름답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바닥에 누워 있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다.

    긴장한 만정은 새빨개진 눈으로 손수건을 입에 문 채 장서열을 바라보았다. 만정은 다른 아이들과 꽃구경을 하느라 서열 언니의 곁을 지키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의원은 서둘러 사람들을 비켜서게 한 뒤 침을 꺼내 수차례 혈자리에 찔러 넣었다.

    장서열은 가까스로 이를 악 물었다. 그녀가 수영에 능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오직 그녀 자신뿐이었다. 여러 개의 침이 몸에 착착 꽂히자 그녀는 너무 아픈 나머지 정말로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이렇게 불쌍하고 가련한 역할은 역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이러다간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평소에는 실수로 자수바늘에 살짝 찔리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그녀였다.

    “음…….”

    장서열은 얼른 의식을 찾은 척했다. 계속 기절한 척 했다가는 의원이 그 이상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희생하면서까지 위지해어를 떼어내 주다니, 서풍엽은 반드시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했다.

    “깨어났구나! 깨어났어!”

    “와! 서열 언니가 깨어났어요!”

    충왕비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녀의 목숨과 애간장이 모두 되살아났다. 서열이가 무탈하게 깨어나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그녀는 조옥언을 다시 볼 낯이 없었을 것이다.

    “어서 생강탕을 가져오너라! 아니지, 어서 아가씨를 방으로 모셔라!”

    남자들이 모여 있던 전원 역시 한바탕 술렁거렸다. 서둘러 달려간 집사가 호흡을 채 고르지도 못한 채 이마 가득 땀을 흘리며 서둘러 외쳤다.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해어 아가씨가 서열 아가씨를 밀어 연못에 빠뜨렸습니다!”

    순간 서풍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구염락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후원을 향해 돌진했다.

    구염단영은 갑자기 대화를 나누던 상대가 사라지고 자리가 텅 비게 되자 술잔을 내려놓은 후 언제 그랬냐는 듯 곁에 앉은 다른 사람과 친밀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소식을 접한 충왕 또한 동료를 내팽개친 채 황급히 후원을 향해 달려갔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는 아들만큼이나 장서열을 염려했다. 그가 알고 있는 장서열의 모친을 생각하면 장서열에게는 절대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조옥언은 필시 그의 가죽을 벗길 것이다.

    권서함은 갑자기 달려 나가는 충왕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의 곁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전해졌다.

    “위지 씨 가문의 아가씨가 장 씨 가문 아가씨를 밀어 연못에 빠뜨렸다는군.”

    “위지해어? 세자를 좋아한다는 그 어린 아가씨? 쯧쯧… 어찌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을꼬. 너무 했군. 그렇게 되바라져 보이진 않던데.”

    “자네들 모르는군. 듣자 하니 위지해어가 장서열에게 금 연주를 시켰다는군. 그런데 장서열의 연주 솜씨가 뛰어나 위지해어의 콧대를 꺾었다고 들었네. 일이 그렇게 되니 위지해어가 마음을 넓게 쓰지 못한 게지. 어쨌든 어린 나이에 세자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으니 가슴에 맺힌 게 많았을 게야.”

    “어린 아가씨가 참 무섭군. 어떤 일에서든 품위를 지켜야 하는 법인데.”

    “어려서 그렇지요.”

    어떤 이유에서든 위지해어가 장서열을 밀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 위지해어의 행동은 그녀의 편에 선 모든 이들의 명분을 빼앗은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세자를 연모하는 대갓집 규수가 아닌, 그저 남의 부군을 탐낸 악독한 여인일 뿐이었다.

    곁에서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권서함은 무의식적으로 초혜전 풀밭에서 활을 당기며 웃던 장서열의 모습을 떠올렸다.

    ‘물에 빠졌다고?’

    그녀는 분명 울지도, 소란을 피우는 일도 없이 그저 참고 있을 것이다. 권서함이 아는 장서열은 아주 침착한 사람이었다.

    문득 권서함의 시선이 장신성에게로 향했다. 때마침 내원을 향해 가던 장신성은 갑자기 중간에 멈춰선 채 하인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권서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출 자녀들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장신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입가에 잠시 경멸이 일었으나 곧 원래대로 평정을 되찾았다.

    “제가 민 게 아니에요! 그 애가 혼자 뛰어내린 거라고요! 정말로 제가 민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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