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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68)화 (68/449)
  • 제68화

    시간이 흘러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장서영은 오늘 저녁 오리탕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점심에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기에 그녀는 저녁에 이를 보충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식사로 나온 건 오리가 아닌 닭고기탕이었다.

    그 이유 역시 큰언니 때문이었다. 큰언니는 점심으로 오리탕을 먹고 싶어 했고, 이를 전해 들은 주방에서는 모든 오리를 삶아 서로 다른 백여 가지의 맛을 내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만족을 얻어내지 못한 주방 하인들은 부인과 큰언니에게 질책을 받고 말았다. 게다가 큰언니는 상에 가득한 오리를 보고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져 앞으로 일 년 동안은 상에 오리탕을 올리지 말라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

    때문에 오늘 저녁에는 누구의 밥상에도 오리탕이 올라오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가 먹고 싶다고 해도 불가능했다.

    장서영은 서럽기 그지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현재 집안에 아가씨는 장서열이 유일했고, 서출들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장서열은 하루아침에 상부 최고의 인물로 등극했다. 집안의 중심에 선 그녀는 좋아하는 모든 것을 눈앞에 두었고, 싫어하는 것은 거침없이 치워 버렸다.

    씻는 물을 길어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출이 부리는 계집종들은 평소보다 일각(一刻, 15분)을 일찍 움직여도 반 시진(半个时辰, 30분)이나 늦게 돌아왔다.

    역시 큰아가씨 때문이었다. 장서열이 사용하는 물은 모두 더운 물이 솟는 못에서 길어 와야 했는데, 한 번 사용할 물을 채우려면 족히 백 통을 길어야 했다. 이는 주방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결국 각 처소에서 사용할 물이 가장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서출들은 목욕통에 앉아있는 중이더라도 장서열에게 필요한 물이 전부 길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주방에서는 아무리 물이 급해도 오히려 큰아가씨에게 부려지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서열은 놀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놀았다. 밤낮없이 징과 북을 치며 소란을 피워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할 때면 희자들은 하루 종일 희극을 선보였다. 그녀는 회임을 한 이랑을 방해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고, 시끄러운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조옥언은 희극 소리가 거슬리는 이는 별채에 자리를 마련해 뒀으니 언제든지 건너가도 좋다고 분부한 상태였다.

    장서영은 모든 것이 하룻밤 새 변했다고 느꼈다. 서출들은 큰아가씨가 다니는 모든 곳에 나타날 수 없었고 첩실들 역시 장서열을 보면 가던 길을 돌아서 가야 했다. 장서열은 어떠한 규칙도 지키지 않고 마음껏 상부를 누볐다. 그녀는 상야 부인 조옥언조차 뛰어 넘는 장 씨 가문 최고의 주인이었다.

    이불을 껴안은 장서영이 이불자락을 입에 물고 서럽게 흐느꼈다. 이제야 알았다. 내일 자신의 마마는 큰언니의 시중을 먼저 들고 그 뒤에 자신을 깨우러 올 것이다. 이는 부인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 큰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들이 자진해서 나서는 것이었다.

    “어머니…….”

    장서영이 작은 목소리로 이불 속에서 외쳤다. 그녀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온화했다. 만약 어머니가 곁에 있었다면 그녀 역시 매사에 많은 귀여움과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다.

    장서영이 최근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큰아가씨는 부인과 어르신의 친딸이고 적녀예요. 태생적으로 귀한 운명을 타고났지요. 아가씨들은 큰아가씨와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좋은 곳으로 시집갈 수 있게 큰아가씨와 부인을 잘 섬기도록 하세요.”

    장서영은 어렸을 적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들은 은밀하게 어머니야말로 아버지의 진정한 부인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자신 역시 상부의 큰아가씨이고 존중받는 존재여야 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은 다 조옥언이 아버지를 빼앗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 역시 이토록 무시당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에게 빌붙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하여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해야 했다.

    * * *

    장서열이 집에 머물기 시작한 후 며칠간 상부에는 큰 변화가 일었다.

    그녀는 무엇을 요구하거나 애써 쟁취할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는 자동적으로 그녀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대령했다.

    조옥언은 딸이 혹여나 친구들이 없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그녀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백여 가지가 넘는 놀이를 만들고 수십 명의 놀이 친구를 선발했다. 그리고 그들이 정해진 시간에 딸아이와 함께 놀도록 했다.

    장서열은 황당했다. 마치 순시를 떠나는 황제처럼 어디를 가든 항상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전생에서도 그랬었다. 어머니는 초혜전에서 돌아온 딸이 행여나 외로움을 타지는 않을까 지금처럼 염려했다. 당시 그녀는 어머니의 배려를 그저 귀찮게 여겼으나 지금은 비로소 어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위해 애써 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차를 음미하던 장서열은 금을 가르치는 루 부인를 바라보다가 문득 언제든 자신과 제기차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바깥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또 저를 세상에 저 혼자 사는 줄 아는 오만한 사람으로 길러낼 셈이신가요?’

    장서열은 전생에서 매섭기 그지없던 자신의 성격과 습관적인 소유욕을 떠올렸다. 물론 그녀는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연경 최고 가문의 적장녀이자 황후였던 그녀에게 하지 못할 일이란 없었다. 다만 정도가 너무 지나쳤던 탓에 그녀는 타인의 마음까지도 강제로 얻으려 했고, 사람의 목숨을 먼지처럼 하찮게 여겼다.

    “아가씨 뭘 보고 계세요?”

    루 부인이 금의 현을 튕기며 말했다.

    “이 음률을 연주해 보고 싶지 않으세요?”

    “피곤해요.”

    장서열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배우는 게 내키지 않을 때면 루 부인에게 연주를 시켰다. 초혜전의 대학사조차 어쩌지 못한 고집이었다. 하물며 규방의 사부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루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상부에서 초빙한 스승일 뿐 귀빈이 아니므로 억지로 장서열을 가르칠 수 없었다.

    그러나 루 부인은 직감적으로 눈앞의 어린 아가씨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가씨는 구태여 거만을 떠는 것도, 일부러 자신을 도발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녀는 가끔씩 정말로 피곤해 보였고, 그저 차를 음미하며 쉬고 싶은 얼굴이었다.

    루 부인은 자신의 유일한 제자에게 확실히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장서열의 시선은 창밖을 날아다니는 꿀벌 두 마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날아오르던 꿀벌이 갑작스레 떨어지는 모습에 놀란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금의 현을 미끄럽게 훑었다. 마치 금의 영혼을 깨우는 듯한 손짓이었다.

    순간 루 부인이 고개를 들어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장서열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서풍엽이 선물한 나비 두 마리가 아기 고양이를 정신없이 뛰어오르게 만든 일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그녀의 기분 좋은 모습에 루 부인이 슬쩍 입을 열었다.

    “황궁의 스승은 역시 일대의 대학자라 칭송받을 만합니다. 금 음률이 뛰어나 듣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한다지요.”

    장서열이 루 부인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맞아요.”

    루 부인 역시 웃어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아가씨께서 한 곡조 타 주신다면 소인에게 큰 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장서열이 입술을 오므렸다. 잠시 후, 소매에서 미끄러져 나온 두 손이 금의 현 위에 놓였다. 새하얀 손가락은 꽃술처럼 희었고, 보드랍고 맑은 손가락은 건강한 혈색을 발하고 있었다. 현에 올려진 가늘고 긴 손가락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농교, 향을 태워라.”

    장서열의 말에 루 부인이 입을 열었다.

    “소인이 하겠습니다.”

    루 부인이 친히 무릎을 꿇고 향안(香案, 향로를 올려놓는 탁자) 앞으로 다가가 정중하게 손을 씻고 향을 태웠다. 은은하고 우아한 향기가 순식간에 공기를 상쾌하게 했다.

    장서열이 가만히 손가락을 튕기자 저 먼 곳에서 전해오듯 낮고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어떠한 꾸밈도 기교도 없는 음색이었다. 마치 금과 천지가 서로 화답하듯 아름다운 선율이 이어졌다. 그녀가 뜯는 모든 음은 용맹한 매처럼 자유로이 하늘을 날아오르다 하강하는 등 세찬 기세로 가득했다.

    연주를 마친 장서열이 루 부인의 놀란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익힌 재주는 모두 구염락의 환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들이었다. 그는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정신을 차린 루 부인이 다시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소인의 실력은 아가씨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저는 이만 스승의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장서열은 완정이 건네주는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평범한 연주일 뿐이에요. 루 부인의 연주는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요. 제 연주로 인해 스승님 한 분을 잃게 될 줄 알았더라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거예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던 루 부인은 미소를 머금은 평온한 눈과 마주한 후 무언가를 깨달았다. 장서열은 루 부인에게 줄곧 그녀의 연주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는 걸 알려준 것이다. 아가씨는 그저 배우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루 부인이 그녀를 마주 보며 웃었다. 아가씨의 의중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 전 금 연주는 더는 가르칠 게 없을 정도로 충분히 뛰어났다. 그리하여 루 부인은 즐거운 마음으로 아가씨에게 연주를 들려주기로 했다.

    루 부인이 이전보다 훨씬 공손한 태도로 자리에 돌아가 가볍게 말을 건넸다.

    “아가씨의 금 연주는 뛰어나지만 기개가 넘쳐 도무지 여인의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약간만 더 부드럽고 온화하게 연주하신다면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루 부인이 말하는 건 남자들의 취향이었다. 그녀는 기생 출신으로 남자와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데다, 기예가 정점에 달했을 시기에는 풍류에 밝은 남자들을 통해 여인으로서 매력을 발산하는 법을 익혔다. 그녀는 아가씨에게 오랜 기간 남자를 대하며 체득한 바를 알려준 것이었다.

    장서열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누구보다 기백 넘치게 행동할 수 있는 그녀에게 부드럽고 온화하게 행동하라는 건 쥐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생에서 혼인에 실패했던 경험 때문에라도 이번 생에서만큼은 절대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서풍엽이 지금처럼 영원히 자신에게 잘해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앞으로의 삶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루 부인이 기쁜 듯 온화하게 맞절을 올렸다.

    “별 말씀을요, 아가씨.”

    루 부인은 남의 말을 새겨들을 줄 아는 이 아리따운 여자아이를 바라보면서 그녀가 몇 년 후 얼마나 대단한 절세미인으로 성장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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