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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59)화 (59/449)

제59화

궁술을 겨루는 건 서로 실력을 갈고 닦아 진일보하기 위함이었다. 장서열을 찾아가 대결을 펼쳤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권서함은 충분히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멍청하다니. 구염락은 권서함이 장서열과 대결 기회를 얻은 것에 만족했으며 오히려 당자가 생각하는 문제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섭궁개가 크게 호통쳤다.

“준비! 두리번거리지 말고 쓸데없이 입을 열지 마라! 너희의 용기와 기세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보여라! 이번에 규칙을 위반하는 자는 반드시 군법에 따라 처벌할 것이다!”

섭궁개가 마지막 말을 뱉으며 구염락을 바라보았다.

“네, 사부님!”

한 목소리로 외친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구경꾼은 별로 없었다. 이와 같은 정규 시합은 매 수업마다 있기 때문에 특정 자제들에게 잘 보이려는 목적을 가진 몇몇 사람만이 드물게 응원을 보냈다.

섭궁개는 시합에 참가하는 학생 개개인의 얼굴을 한 번씩 눈으로 훑은 후, 들고 있던 징을 세게 두드렸다.

스무 필의 말이 순식간에 뛰쳐나갔다. 압도적인 선두는 단연 구염락이었다.

섭궁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당자를 놀리느라 느릿느릿 달리던 녀석이 모처럼 열심이었다.

화가 난 당자가 이를 악물고 구염락의 뒤를 바짝 쫓았다. 분명 자신은 구염락보다 모자란 곳이 없는데 그를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에 약이 올랐다. 자신은 구염락보다 키도 컸고, 타고 있는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뒤처지는 것인가.

“이랴!”

당자는 굴복할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구염락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뒤를 쫓은 그가 순식간에 3등을 따라잡았다.

구염락은 잠시 말고삐를 당겨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자세는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지켜보던 많은 이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반독일 뿐인 이 황자가 매우 대단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징과 북이 울렸다. 누군가 이미 첫 번째로 장애물을 전부 통과했다는 뜻이었다. 경주에 임하던 아이들이 많이 뒤처졌음을 깨닫고 다시금 미친 듯이 말을 재촉했다. 구염락 같은 이에게 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으나, 그래도 너무 창피하게 패배할 수는 없었다.

섭궁개가 경기장에 있는 모든 아이들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사실 기마술은 천부적인 재능과 고된 연습이 중요했다. 같은 말일지라도 타고 있는 주인에 따라 발휘하는 능력은 천차만별이었다.

말과 하나가 된 구염락은 바람처럼 거침이 없었다. 그는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내달렸다. 마치 모든 장애물의 특성과 거리를 미리 외운 듯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당자는 장서열에게서 장애물 경주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장애물 경주야 말로 가장 힘들이지 않고 손쉽게 승리할 수 있는 경주라고 했다. 사전에 거리를 계산하여 말이 그 거리를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한다면,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 말의 속력을 줄일 필요가 없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다.

당자는 지금까지의 경기 중 오늘이 최고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확실히 예전보다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망할 놈의 구염락은 이미 두 번째로 장애물을 뛰어넘은 후였다.

구염락의 말은 쉬지 않고 달리면서 이미 뒤처진 이들을 또 다시 추월했다. 두 번째로 경주로를 돌 때 반드시 류소경의 말과 마주쳐야 했다. 만약 급작스럽게 속도를 늦춘다면 그를 주시하는 섭궁개의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므로 차라리 한 발 앞서는 게 나았다.

그가 번개처럼 질주해 나갔다.

이미 구염락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던 이들조차 지금 이 순간 그가 발휘하는 실력에 또 한 번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기장의 모두를 완벽히 압도했다.

구염락은 다른 이들의 체면은 고려하지 않은 채 줄곧 아이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두 번째로 돌기 시작하며 속도를 제어한 그가 서서히 류소경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소나무 길까지는 백 미터가량이 남아 있었다.

구염락은 류소경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아이를 과감하게 가로막아 류소경과 거리를 넓히도록 했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구염락은 다시 정상적으로 추월을 시작하며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소나무 길에 먼저 발을 들여놓았다.

한편 류소경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제 나이에 걸맞은 기마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살이나 어린아이가 그를 앞지른 것이다. 비록 구염락에게 미안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의 자존심은 꼬마에게 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류소경은 필사적으로 말을 달리면서 뒷사람과의 거리를 벌렸다.

소나무 길은 삼 미터 정도로 그리 길지 않았다. 따라서 손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짧았다.

재빠르게 말의 고삐를 당긴 구염락이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말이 앞발을 번쩍 치켜들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류소경이 구염락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황급히 고삐를 당겼다. 그러나 고속으로 질주하던 말을 갑자기 멈출 수는 없었다.

류소경은 돌발 상황에서 말을 통제할 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고삐를 당기기가 무섭게 방향을 잃은 말이 곧장 옆에 놓인 향심호로 달리기 시작했다.

구염락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소나무 길을 빠져나왔다. 전광석화처럼 빠른 속도였다.

뒤따라 소나무 길로 들어오던 아이는 구염락의 말 그림자가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류소경의 말이 주인의 통제를 잃고 미친 듯이 발작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어 무언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큰일 났다! 사람이 물에 빠졌다!”

모두들 술렁이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른 이는 류소경이 호수로 돌진하는 것을 본 그의 동기였다.

갑작스런 사고에 시합은 중지됐다. 말을 멈춘 아이들은 곧 향심호 방향으로 돌진했다.

거친 숨을 내뿜던 류소경의 말은 호숫가에 선 채 물에 빠져 살려 달라 소리치는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을 무책임하게 떨어뜨린 말이었다.

섭궁개가 황급히 도착했다.

“시위들은 어디 있느냐! 어서 빨리 그를 구하라! 태의, 태의를 불러 와!”

“살려 주세요! 전 수영을 못… 살려……!”

허우적대는 류소경의 입으로 물이 한 움큼씩 들이쳤다. 수면 위로 보이는 건 그의 머리뿐이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줘!”

“조금만 더 버텨!”

호숫가에 선 구염락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다는 듯 호수에 빠진 류소경을 바라보았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구염락은 보란 듯이 즉시 외투를 벗고 다른 이들보다 한 발 빠르게 물에 뛰어들었다.

섭궁개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아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구염락을 따라 용감하게 물에 뛰어들려 하자 그는 거의 미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물에 빠진 건 한 명으로 족했다. 심지어 이 호수는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는 향심호였다.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섭궁개가 일갈했다.

“물러서! 모두 물러서란 말이다! 구염락, 당장 돌아와!”

시위들이 도착했다. 류소경을 건져 올릴 여러 개의 대나무 장대와 구조 인원이 줄줄이 호수에 들어갔다.

호수로 들어간 구염락은 일단 일어서지 않고 숨을 참았다. 연잎이 빽빽하게 들어찬 물속을 헤엄쳐 들어간 그가 류소경의 발밑에 다다랐다. 그는 사악한 늑대처럼 무서운 눈빛을 번뜩이며 돌연 손을 뻗어 류소경의 발을 세게 잡아당겼다.

류소경은 영문도 모른 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미 실컷 물을 마신 류소경은 그대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를 구하기 위한 대나무 장대는 겨우 한 뼘 거리에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류소경이 못 버티고 가라앉았어요!”

“소경, 조금만 버텨! 시위들이 널 구해줄 거야!”

바깥의 외침을 들은 구염락이 재빨리 류소경을 진흙 속으로 걷어찼다. 본래 그의 계획은 아예 류소경을 묻어 버리는 것이었다.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 죽고 싶어 환장했군. 앞으로도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

시위들이 도착할 시간을 가늠해 본 구염락이 다시 신속하게 물에 빠진 척했다. 바깥에서는 류소경이 호수에 빠지는 광경을 목격한 아이가 섭궁개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류소경은 너무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설명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류소경이 갑작스레 고삐를 너무 세게 당기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라고 믿고 있었다. 섭궁개 역시 누군가 고의로 일으킨 음모일 가능성을 배제했다.

누구도 구염락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소나무 길에 들어선 후 빠져나간 시간은 완벽했으며, 그의 말 역시 류소경의 앞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잠시 뒤, 초혜전의 모든 학생들이 호수 주변에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야?”

“류소경이 물에 빠졌다고?

“어서 권 공자께 알려!”

류소경을 구조하는 것과 동시에 시위들은 다리에 쥐가 난 구염락도 함께 건져냈다. 태의들은 물을 마신 후 의식을 잃은 류소경을 진맥하기 시작했다.

구염락 역시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온몸이 흠뻑 젖은 그의 머리는 수초로 덮여 있었으며, 쥐가 난 다리는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다행히 계절상 물에 빠지는 게 위험할 날씨는 아니었다. 문제는 향심호가 관상용 호수라는 데 있었다. 호수에 풀어놓은 수많은 물고기를 살찌우기 위해 수면 위로는 빽빽한 연꽃과 수초가 산처럼 뒤덮여 있었다.

류소경은 물에 빠진 후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의 다리를 잡아당긴 것이 수초인지 사람인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게다가 의식을 잃었기에 가해자를 지목한다는 게 불가능한 상태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류소경이 당시 뒤를 돌아보던 구염락의 행동이 고의였는지 아닌지조차 분간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뒤돌아보던 구염락의 눈빛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평온했으며, 그는 아주 잠시 말고삐를 당겼다가 이내 다시 앞으로 달려나갔을 뿐이었다. 얼핏 보기에 그의 행동은 뒤에 있던 류소경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고, 류소경의 담력이 작은 건 구염락의 잘못이 아니었다.

류소경의 몸은 차가웠다. 코와 입은 새파랗게 변해 있었고 입과 눈에는 온통 진흙이 가득했다. 문제는 미량의 진흙이 그의 비강과 기도를 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위급한 상황이었다.

“비켜라! 모두 물러서!”

여덟 명의 태의가 재빨리 응급처치에 나섰다. 아이들이 동요했다.

“류 공자는 죽는 건가요?

울먹이는 말소리에 섭궁개는 아이의 신분도 개의치 않고 소리쳤다.

“닥치지 못해!”

섭궁개는 말할 수 없이 참담한 기분에 휩싸였다. 류 씨 가문과 황제 폐하께 뭐라 고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구염락은 뻣뻣해진 다리를 붙잡고 계속 아프다고 소리쳤다. 신분이 낮은 일부 아이들이 다가와 호의적인 태도로 그를 위로했다. 어떤 아이는 구경 인파와 동떨어져 있는 장서열을 부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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