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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40)화 (40/449)

제40화

구염락의 시선이 돌연 당자를 향했다. 그의 눈에 일렁이던 외로움이 순식간에 굳은 다짐으로 변했다. 강해져야 한다. 지금보다 더욱 잘해야만 서열 누님을 대신해 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들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당자의 말이 맞았다. 자신에게는 서열 누님에게 세도가의 자녀들을 친구로 대하지 말라고 저지할 권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을 선택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는 장서열이 조금 전 즐겁게 당자가 준 차를 마시던 모습을 떠올렸다. 게다가 지금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다른 사람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이 솟아났다. 그는 더 강해지기로 결심했다.

“좋아!”

구염락이 호전적으로 답했다. 당자와의 대결은 오늘 아침 그를 마주쳤을 때부터 바라던 바였다.

자리에 선 말 두 마리가 울부짖으며 숨을 토해냈다. 말은 짙고 숱 많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발굽을 튕겨냈다. 사람들의 눈길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저 둘, 뭐 하는 거야?”

상황을 확인한 아이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열셋째가 미쳤나 봐! 기마술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당자와 대결을 하다니!”

어린 여자아이가 입을 가리고 빙긋 웃었다.

“그러게나 말이야. 당자라면 거리의 폭군이잖아. 말을 타고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그런 부류.”

태감들은 빠르게 장내를 정리했다. 그들은 상단의 장애물을 새로 정비하고 지면을 세세히 점검하면서 최대한 당 씨 도련님의 안전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열셋째라면 머리를 부딪쳐도 좋다고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섭궁개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굳이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열셋째의 기마 실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것은 기회였다.

출발선 가까이 사람들이 가득 모였다. 장서열 역시 사람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쉬지 않고 열셋째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 모습에 구염락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장서열이 자신에게 가장 잘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왠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시합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비치면 그녀는 즉시 시합을 중단시킬 것이다. 돌연 전신에 힘이 솟구쳤다. 장서열을 향해 고개를 저어 보이는 그의 눈에 강한 의지가 비쳤다. 반드시 이길 것이다.

장서열은 구염락의 기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대결을 저지하지 않았다. 당자는 장군을 배출한 무신 가문 출신이었고 그 역시 훌륭한 기마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구염락의 실력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구염락이 매 순간 목숨을 걸고 기마술을 익혔다면 당자는 취미로 이를 즐긴 것에 불과했다. 애초에 차원이 다른 실력이었다. 장서열이 빙그레 웃었다.

“잘 해.”

당자가 황급히 물었다.

“나는?”

장서열이 더욱 환하게 웃었다. 녀석도 참.

“너도 마찬가지야.”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구염락은 이내 분노하여 당자를 노려보았다. 작은 얼굴은 마치 그를 씹어 먹기라도 하려는 듯 잔뜩 화가 나있었다.

‘누님의 응원을 빼앗아 가다니. 반드시 패배하게 만들어 주마!’

당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었다.

‘버릇없는 자식, 이 몸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려주마. 앞으로도 내 앞에서 잘난 체 할 수 있는지 보자!’

징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필의 말이 쏜살같이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말들은 앞으로 돌진하자마자 갈색과 흑색의 그림자를 그리며 나란히 두 줄로 내달렸다. 응원하는 함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들을 필요도 없이 당자를 응원하는 외침이었다.

열셋째를 괴롭히던 이들은 이미 나이가 차 초혜전을 떠난 후였으나, 새로 들어온 이들은 열셋째 구염락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당자는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기마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므로 모두가 그를 응원하는 것도 당연했다.

헌원상은 겁에 질린 얼굴로 구석에 몰려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두 사람이 대결하는 모습을 올려보다가 다시 얼른 고개를 숙였다. 마치 사람들에게 들키면 한 대 맞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그는 그들을 힐끗거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이어 볼품없이 마른 망아지의 고삐를 꼭 쥔 그가 다른 사람들의 커다란 말을 마냥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잠시 뒤, 사람들 사이에서 의혹과 감탄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어째서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지지 않는 거지?”

“당자가 봐주는 것 같지는 않은데?”

권서함의 주변에 몰려 있던 몇몇 아이들은 그를 둘러싸고 논의를 시작했다. 어떤 목소리 하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외쳤다.

“녀석에게 잘 보이려고 당자가 일부러 져주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다른 목소리 하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오늘 아침에도 당자는 장서열에게 푹 빠져 있었잖아. 그녀가 아끼는 열셋째에게 일부러 져준 뒤 점수를 따려는 속셈이지. 안 그래요, 권 공자?”

권서함은 한 무리의 사람들과 뒤섞여 있었으나 그의 곁은 널찍이 벌어져 있었다. 그를 둘러싼 이들이 터 준 공간이었다.

권서함은 금실과 은실로 정성스럽게 짜여 진 대금(对襟, 두 섶이 겹치지 않고 가운데에서 단추로 채워지는 중국식 옷) 승마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이는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기 그지없었다. 붕대로 칭칭 감긴 왼손을 들고 평온한 눈빛으로 경기를 보던 그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외모와 마찬가지로 목소리에서 역시 진중함이 묻어났다.

“당자는 양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자가 오히려 속도를 올리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구염락의 기마 실력이 뛰어나구나.”

“구염락? 구염락이 누구지?”

“바보, 지금 말을 타고 있는 열셋째 말이야.”

“하하, 저 아이 이름이 구염락이구나! 황자들의 돌림자인 단() 자 조차 없다니, 정말 불쌍하군!”

“황실의 일은 함부로 입에 담지 말자.”

당자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계속해 천한 열셋째와 당자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전력을 다해 외쳤다.

“도련님! 그를 제쳐요!”

“봐줄 필요 없다! 그에게 본때를 보여줘!”

구경하는 이가 점점 많아질수록 헌원상과 그의 병약한 말은 점점 뒤로 밀려나 가장 구석 자리까지 몰렸다. 한 바퀴를 돈 구염락의 말이 장서열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두 필의 말은 어깨를 나란히 했으나 시간이 지나 구염락이 당자보다 반 마신(两个马身, 말 몸뚱이의 반절되는 거리) 앞선 국면으로 돌아섰다.

지켜보던 장서열은 기쁨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생에서 당자의 기마술은 동년배 중 천하무적이었다. 그러나 구염락은 그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벌써 놀라운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전생에 장성한 그가 신의 경지에 이르는 기마 실력을 보여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하늘이 내린 천재이자 말 위의 제왕답게 단번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장서열은 속으로 탄복했다. 마치 영웅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남몰래 기쁨을 만끽했다.

반 마신 정도 차이가 났던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말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듯 속도를 높였다. 구염락은 당자에게 조금도 추월할 기회를 주지 않고 쏜살같이 달렸다. 맹렬한 기세에 수반되는 위험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았다. 중점을 돌파할 때 그는 당자와 두 마신(两个马身, 말 몸뚱이 전체 길이의 두 배)의 간격을 두고 있었다.

북소리가 울렸다. 막이 내리자 장내는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열셋째가 이겼다고? 게다가 그렇게 쉽게?”

“처음에 막상막하였던 건 당자를 놀리기 위함이었나?”

“그가 언제부터 그렇게 대단했지?”

“정말 열셋째가 맞아? 맞으면 다시 일어나 웃던 그 바보?”

“그래, 단 자도 이름에 못 넣은 황자!”

“뭐? 쟤가 황자야?”

“바보냐! 성이 ‘구염’인 거 보면 몰라?”

여기저기서 놀라움에 찬 비명과 술렁거림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화가 난 당자의 얼굴은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더욱 그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 내렸다. 겸손한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치욕은 난생 처음이었으며 심지어 상대는 그가 평소에 가장 무시해 마지않던 열셋째 구염락이었다.

당자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비웃고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도적놈에게 진 자신을 향해 수군대는 것 같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아 그대로 흙 속에 파묻고 있는 듯했다.

고개를 돌린 채 말을 끌고 이동하는 당자의 앞으로 갑자기 수건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장서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벅차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두 마신 차이로 지다니 대단해. 나라도 겨우 그 정도 차이로 열셋째를 이기진 못했을 거야.”

장서열은 무의식적으로 미래의 구염락과 자신을 비교하여 말했다. 방금 전 구염락이 말을 타고 질주하던 모습은 과거 그가 뭇 나라의 대장군들을 제압하던 혼란의 시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의 말에 당자의 얼굴이 와락 붉어졌다.

“정… 정말?”

장서열이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전생의 친한 친구였던 당자가 마치 보란 듯이 구염락을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그녀는 실제로 당자와 구염락이 대결하는 장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당자는 전생에서 가문의 몰락과 함께 끝내 장군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헌원가의 죽음 이후 당 씨 가문은 쇠퇴했으며 당자는 두 번 다시 말을 만지지 못했다. 하마터면 장서열은 당 씨 가문이 조상 대대로 유목 생활을 하며 변방을 지키는 대장군이자 말 위의 강자였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누님도 저 도적놈을 이기지 못한다니. 좋다, 구염락.’

당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장서열의 말에 그는 자신이 마치 자랑스럽게 이긴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패배가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장서열이 감탄하며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보자, 자신이 잘한 게 맞는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좋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서열 누님이 대단하다고 했으니 자신은 분명 대단한 것이리라.

구염락은 멍하니 마장 한편에 서 있었다. 이겼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흑산을 몰고 질주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승리했다.

하지만 서열 누님이 없었다. 그녀가 기뻐하며 그를 칭찬하면 그 역시 함께 기쁨을 만끽하며 쑥스럽게 웃어야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녀를 웃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던 모습을 대결에서 진 당자가 하고 있자 그의 머릿속은 온통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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