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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8)화 (28/449)

제28화

올해는 장서열이 초혜전에 오는 마지막 해였다. 이 사실을 떠올리자 구염락은 그 좋아하는 밥맛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나이가 찼기 때문에 앞으로 삼 년 동안은 집에서 혼수를 준비 할 것이라 말했다. 게다가 혼인 후에는 마음대로 궁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자신 역시 장성한 후 출궁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가 되면 다시 서열 누님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궁을 나가기 위해 얼른 자라야 했다. 출궁하면 반드시 서열 누님과 함께 할 것이다. 누구도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구염락은 다시 밥을 먹을 기운이 생겼다. 세 그릇을 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얼마나 더 먹어야 클 수 있는 거지? 오늘 저녁에는 사냥이나 하러 갈까?’

변소에 다녀오던 곽 공공은 사색에 빠진 듯한 열셋째의 위험한 눈빛을 보고 하마터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어머니, 그가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걸까요? 아미타불, 모든 신불이시여, 어서 그를 거두어 가소서!’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감히 열셋째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전부 곽 공공에게로 돌릴 것이다.

곽 공공은 황급히 도망가면서 선식방(膳食房) 태감에게 밥 양을 늘리라고 말해야겠다 생각했다. 어차피 열셋째에게 밥을 주려는 사람은 널려있었다. 특히 예전에 그를 제일 심하게 괴롭혔던 사람들이 그러했다.

소리자와 금용은 자리를 정리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주인을 학당에 보냈다. 힘껏 손을 흔들던 소리자는 갈수록 커가는 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 * *

대주국에서 입신양명을 하려면 반드시 기마술을 익혀야 했다. 기마술은 무술의 기본 기술로 변방을 개척하고 주변을 정복하여 입신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따라서 기마술은 초혜전 모든 남자아이들이 선망하는 수업이었으며, 이 시간이 생긴 이래로 아프다는 핑계로 오지 않는 아이가 거의 사라졌을 정도였다.

따스한 햇살 아래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말들이 세 줄로 열을 지어 섰다. 말의 뒤로는 사육 태감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행군하는 기세가 퍽 위풍당당했다.

특히 케케묵은 지식만 듣다가 봄날이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기마술을 배우는 것은 마치 들놀이를 간 듯 편안했다. 하지만 이러한 편안함은 초혜전의 귀족 소녀들의 몫이지 소년들은 달랐다. 그들은 소년의 풍채를 선보이기에 급급했다.

구염락은 아직 자신의 말이 없었다. 하지만 기마술을 싫어하는 장서열이 일 년 전 자신의 흑산을 구염락에게 주었고, 그는 장서열의 기마술 수업과 과제를 대신했다.

초원에서 공물로 바친 명마답게 흑산은 천 리를 바람처럼 달리며 구염락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흑산은 묘기를 원하는 장서열이 아닌, 요령 있는 구염락이 자신을 끌고 만 리 길을 가주기를 바랐다.

흩어지라는 명령과 함께 오십 마리가 넘는 말들이 각자의 주인에게로 달려가 그들의 귓가에 친근하게 얼굴을 비볐다. 이는 말과 주인의 호흡을 맞추기 위한 훈련이었다. 각 주인들의 손에는 말에게 줄 먹이가 들려 있었다. 말에서 흐르는 윤기가 마치 자신들의 두 번째 얼굴이라도 되는 양 아이들은 애마에 무척 공을 들였다. 한 침대에서 먹고 잠들지만 않을 뿐이었다.

구염락은 흑산을 몹시 좋아했다. 온몸이 갈색으로 덮인 흑산의 눈빛은 형형했으며 호흡이 길었다. 앞발굽이 살짝 굽어서 뛰지 않을 때에는 생기가 없어 보였지만, 일단 뛰기 시작하면 네 다리는 마치 날듯이 가벼웠다.

구염락이 흑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는 흑산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 왔다. 흑산은 두 살이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아 무거운 짐을 지거나 먼 길을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수업에서 기마와 경주, 그리고 단거리 장애물 넘기 정도를 함께 할 뿐이었다. 흑산은 실컷 달리지 못하게 하는 그에게 성질을 부린 적도 있었다.

흑산의 반대편에 선 장서열은 짧은 유군(襦裙)을 입고 그 위에 비슷한 색감의 배갑(背甲, 등과 가슴을 단단하게 감싸는 보호용 의복)을 몸에 꼭 맞게 입고 있었다. 깔끔한 승마화가 돋보였다. 그녀는 흑산의 윤기 나는 갈기를 어루만지며 섭 장군의 수업을 들었다.

“열셋째.”

“네.”

장서열의 부름에 구염락이 황급히 앞으로 나갔다.

“넌 1조로 가는 게 좋겠어. 또 섭 장군이 너를 괴롭힐 수도 있으니.”

장서열은 난감한 얼굴로 구염락을 바라보았다.

“안 가요.”

구염락은 단호했다. 1조로 가지 않으면, 또 줄을 잘못 섰다는 이유로 섭 장군의 추가 임무를 수행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는 장서열의 옆자리인 반독을 넘기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장서열을 여자아이들 사이에 홀로 두고 싶지 않았다. 계집애들은 요즘 틈만 나면 그녀를 괴롭혔다. 지금은 그저 양제(良梯, 태자의 첩실)일 뿐인 범억아가 설령 태자비가 된다고 해도, 그쪽에 아부하려는 자들이 마냥 그녀를 괴롭히게 둘 수는 없었다. 눈살을 찌푸린 장서열이 사색에 잠긴 눈빛으로 섭궁개를 쳐다보았다.

‘섭 장군이 또 비웃을 리는 없겠지.’

그녀는 섭궁개가 유독 구염락을 대할 때 어딘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섭궁개는 엄격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로 질책하지 않았고, 지난 이 년간 구염락을 집중적으로 지도하여 빠르게 성장시켰다. 어쩌면 그는 구염락을 자신의 친아들이라 생각하는 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면 그가 왜 매번 구염락을 쳐다보고 있는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장서열은 생각에 잠긴 듯 섭궁개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리라. 구염락은 무엇이든 곧잘 해내는 소년이었다. 섭 장군이 처벌이란 명목 하에 조용히 구염락을 키우는 것도 그다지 신기할 일은 아니었다.

‘설마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겠지.’

장서열은 여전히 섭궁개를 향한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잘해 준다는데, 자신이 무어라 나설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전생에서 태자가 낙마한 것은 정말 사고였을까? 만약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면 그들은 대체 언제부터 일을 꾸몄으며, 어떻게 태자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군주를 세울 수 있었을까?’

제왕이 된 구염락을 회상하자 장서열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분명 자신들이 밀어 올린 열셋째 황자가 ‘그러한’ 성격을 가진 자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과연 죽기 직전 후회했을까. 그녀는 궁금했다.

장서열은 흑산의 갈기를 어루만지는 구염락을 바라보았다. 구염락은 그녀를 돌아보며 웃으면서도, 부드러운 손길로 흑산의 갈기를 빗어 주었다. 마음이 놓였다. 구염락은 밝아 보였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며, 예절 또한 어느 정도 습득한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그가 미래에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폭군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장서열은 많은 사람들이 구염락을 감화시킨다면 황궁의 따스함 속에서 그가 잔인하게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혜롭고 자비로운 황제가 된다면 이전처럼 어두운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사적으로 스승님을 청해 구염락을 좀 더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그가 자신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많이 느꼈으면 했다. 또한 그로 하여금 더욱 넓은 시야를 갖게 해 지금처럼 안온한 심성을 유지하고, 미래에 그가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지 않길 바랐다.

고개를 들던 구염락은 장서열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기쁜 얼굴로 장서열을 마주보며 바보처럼 웃어 보였다. 문득 그녀에게서 걱정하는 기색을 읽은 그가 서둘러 약속하듯 말했다.

“말 잘 들을게요.”

장서열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뜬금없이 말을 잘 듣겠다니?’

곧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정말로 아이 같았다.

구염락은 더욱 활짝 웃었다. 누님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왜 사람들은 항상 그녀가 무언가 잘못하기만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다.

‘누님이 태자의 마음을 거절해서? 용서할 수 없어. 태자는 너무 막무가내야. 누구와 혼인할지는 서열 누님이 스스로 결정해. 뻔뻔스러운 태자 같으니라고.’

1조의 수업 내용은 장애물 뛰어 넘기였다. 5조의 여자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타고 꽃을 구경했다. 구염락은 장서열을 부축하여 말에 태운 후 마장을 한 바퀴 돌고 오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섭 장군도 장서열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므로 반드시 수업 과정을 따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황가의 교육을 무시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장서열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으나 구염락은 그녀가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게 싫었다. 그녀를 대신하여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장서열은 그런 구염락을 보며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마음씨에 위로를 얻었다. 역시 모든 것은 노력하기에 달려 있었다. 그는 분명 좋아질 것이다.

“뭐 해? 어서 1조로 가야지.”

구염락은 고개를 저었다.

“누님 먼저 해요.”

“아니야, 난 작은 말을 찾았어.”

순간 구염락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가 긴장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말이라고? 감히 나와 흑산의 총애를 나눠 가지려 하다니!’

태감이 장서열보다 약간 몸집이 큰 망아지를 데리고 나왔다. 온몸이 하얗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예쁜 말이었다. 움직이는 긴 속눈썹과 물처럼 매끄러운 눈빛에는 즐거움이 뿜어져 나왔다. 말은 천진난만하게 가는 꼬리를 흔들며 장서열의 주위를 맴돌았다. 털은 반짝반짝 빛났으며, 목에는 금색 리본이 묶여 있었다. 누가 보아도 여자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만한 모습이었다. 말을 끌고 온 태감이 밝고 청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께 문안 인사 올립니다. 이것은 황제께서 아가씨께 하사하신 명마입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태감까지 보내? 구염락은 순간 흑산에게도 위기가 왔음을 느꼈다. 장서열이 말의 목에 걸린 리본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걸로 할게요.”

사실 그녀는 말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말은 그저 수업에 필요한 도구였고, 품종 또한 황궁과 집만을 오가는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상황을 파악한 구염락이 흑산의 고삐를 풀고 기쁘게 뛰어와 장서열을 위해 고삐를 잡아 주었다.

“마음에 들어요?”

“별로.”

그녀는 위풍당당한 준마를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별로라면 다행이다.’

구염락은 그제야 안심했다.

“다들 돌기 시작했어요. 어서 올라가요. 넘어지지 않게 내가 잡아줄게.”

다른 조는 이미 말을 탄 후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를 본 장서열이 말했다.

“나 혼자 탈게. 어서 가봐. 오늘은 풍엽이가 있으니 문제가 있으면 그가 도와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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