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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7)화 (27/449)

제27화

기 씨의 놀란 기색을 본 조옥언은 기 씨가 확실히 장신성에게 특별하다는 것과 그들 사이의 자녀가 셋이나 되는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녀는 장신성이 누구를 끔찍이 사랑하느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기 씨가 총애를 빌미로 자신의 두 아이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은 좌시할 수 없었다.

“홍촉.”

달뜬 표정의 홍촉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 부인.”

“기 씨를 국사(国寺, 나라에서 관리하는 사찰)로 보내라. 두 시진 후, 기 씨가 비구니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는 것을 보겠다.”

“알겠습니다, 부인!”

놀란 기 씨의 눈이 크게 떠졌다.

‘국사(国寺)라니? 못 간다, 절대 못 가! 그곳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야!’

국사는 한 번 들어가면 속세로 돌아올 수 없었다. 이제야 좋은 날이 시작되고 있는데, 아직 장신성에게 자신을 다시 아내로 맞이하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끝날 수는 없었다.

“저, 아! 읍!”

능숙하게 기 씨의 입을 막은 홍촉은 하인에게 그녀를 들쳐 메고 나가라 명했다.

‘염치없는 것, 총애를 받으면 받는 게지, 누가 방해한다고 그런 난리법석을 떠누? 남들을 바보로 알고 혼자 잘난 척하더니 꼴좋구나. 그리 잘났으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국사의 비구니들 사이에서 어디 한번 제대로 겨루어 보거라.’

정원은 다시 고요해졌다. 돌아온 기 씨를 감히 아무도 비난하지 못했으나, 그녀가 다시 기이하게 떠나는 것에 대해 누구도 입에 올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장서열은 어머니와 홍촉이 바뀐 계절에 맞춰 사용할 장식품을 고르는 것을 보았다.

“오셨어요, 아가씨. 부인께서 비단을 전부 바꿔 두셨어요. 어서 보세요.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부인께서 또 바꿔 주실 거예요.”

“정말?”

조옥언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좋아하니 다행이었다. 그녀는 딸과 가까이 지내고 싶었지만 타고난 천성이 살갑지 못했다. 홍촉이 여러 번 간청했으나 그녀에게는 딸을 껴안고 '보배'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곧이어 장서전이 뛰어왔다.

“나는? 내 것은 어디 있어?”

“도련님 것도 물론 있지요.”

홍촉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 * *

잠에 들기 전, 어렴풋이 정원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장서열이 초 마마(嚒嚒)를 시켜 알아보게 했다. 사당에 들어간 장서양과 장서목에게 열이 있었으나 의원을 불러주는 이가 없어 병이 악화되었고, 그들의 어머니인 기 씨는 국사로 보내져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아버지가 기 씨를 데리러 갔지만 국사의 비구니는 황태후나 황후의 명이 있지 않는 한 절대 풀어줄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장신성은 집과 절 양쪽에서 당한 분노를 참지 못한 나머지 조 씨와 언쟁을 벌였고, 심지어는 본채에 있는 물건까지 던졌다고 했다.

장서열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창밖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가 볼래.”

초 마마가 그녀를 눕히며 말했다.

“주무세요, 아가씨. 부인께서는 아가씨가 놀라서 깨셨을까 걱정하시며 방금 홍촉을 보내 아가씨의 안부를 물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아가씨는 잠들었다고 답했답니다.”

장서열이 초 마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초 마마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는 부인을 믿지 못하세요? 상야께서 상부를 불살라버린다 해도 부인께는 그저 처소를 옮기면 그만인 사소한 일일 뿐이에요.”

그 말에 장서열은 조용히 다시 누웠다. 흘러내린 청록색 휘장이 그녀의 시선을 가렸다. 물론, 자신보다 어머니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와 오라버니만 무사하다면 어머니는 죽어서도 상부의 주인으로 남을 것이다. 전생에서 그녀는 어머니 덕분에 많은 일들에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 자신을 해칠 거라 염려할 필요도 없었다. 어머니가 미리 해결한 덕분이었다.

새로 바꾼 휘장을 바라보던 장서열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잠이 들었다.

* * *

새하얀 겨울이 왔다. 눈이 내리자 은빛으로 물든 겨울이 대지를 감쌌다. 잠시 쉬어가는 듯했던 가을비가 지나자 또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또 한 차례 봄이 오고 여름이 갔다. 그렇게 시간은 마음속 소망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풍윤(丰润) 21년, 얼음이 추위를 깨고 만물이 소생했다. 심해의 물고기는 수면으로 나와 신비로운 거품을 뿜어내며 강으로 숨어들었다.

오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간택을 맞이하여 궁은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갔다. 아침부터 관가의 대태감(大太监)들은 품계를 나타내는 솜옷을 입고 두 손을 모은 채 분주하게 각 궁전을 오갔다. 그들은 궁 곳곳을 확인하며 어느 곳이든 한 치의 결함이 없도록 재차 점검했다.

새벽, 얇은 그림자 하나가 전각 사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홑옷 한 장만을 걸친 몸은 팔을 굽힌 채 물이 한 가득 담긴 철통을 들고 있었다. 물을 들고 걷는 발걸음은 안정적이고 익숙한 것이 꼭 건장한 태감 같았다. 멀리서 게슴츠레 뜬 눈으로 이를 바라보던 손 공공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때 아닌 칭찬을 늘어놓았다.

“건장하군. 다른 놈이었다면 이 추운 날 침대에서 꽤나 앓았을 텐데.”

손 공공은 사십 줄에 가까운 나이였으나 얼굴은 백옥 같고 목소리는 가늘고 부드러웠다. 그는 주인을 잘 모신 덕분에 6품 대태감으로 승급되어 현재는 남궁을 관리하고 있었다.

“손 공공께서는 안목이 좋으십니다. 열셋째 저 녀석이 다른 건 몰라도 가죽 하나는 두껍고 실합니다.”

답을 한 이가 입을 가리고 차마 겉으로 내색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손 공공의 뒤를 따르던 태감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무엇인가 꺼림칙한 모습이었다.

손 공공은 기침을 하며 양손을 복부에 두른 후, 우아한 난화지(兰花指, 엄지와 중지를 구부리고 나머지 손가락은 편 동작)를 만들며 부드럽게 그를 불렀다.

“열셋째야, 이리 와라. 내 곁으로 오렴.”

구염락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왔다. 철통이 바닥에 쏟아졌다.

“손 공공께 문안 인사드립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손 공공이 웃으며 얼른 그를 일으켜 세웠다. 얇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가 받쳐 든 팔뚝과 부딪쳤다.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 어서 일어나거라. 아이고, 갈수록 귀여워지는구나.”

그가 소년의 야들야들한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열심히 하고. 이따가 내게 와서 사탕 받아 가거라.”

구염락은 그가 볼을 만지게 두고는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공공께서 열셋째를 제일 예뻐해 주십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을 마친 구염락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손 공공, 저는 아직 물을 몇 통 더 길어야 하니 먼저 가 보겠습니다. 늦으면 야단이 날 것이라 용서해 주세요.”

“요 쪼그만 녀석.”

손 공공은 다급히 말했다.

“어서 가거라, 야단나기 전에.”

물통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에 그가 걱정이 되는지 발을 구르며 말했다.

“천천히 가거라. 녀석, 조심 또 조심해! 그렇게 급히 가서 뭐 하려고!”

“걱정 마세요, 손 공공. 저는 이미 적응했어요!”

구염락이 다급히 뛰어갔다.

손 공공은 소년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역시 우리 열셋째가 남자답지.”

주변에 있던 태감들이 연거푸 맞장구를 쳤다. 누구도 다른 내색을 하지 못 했다.

이 년 전, 열셋째를 노린 태감 하나가 그에게 약을 쓴 후 새벽에 침실까지 끌고 간 일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어찌 된 영문인지 열셋째는 멀쩡했고 우물에서는 태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후 흑심을 품고 있던 태감들은 점차 신중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는 태감들 모두 입맛만 다실 뿐 실제로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저 원수.”

손 공공은 열셋째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눈빛을 거두고 뾰로통하게 말했다.

남문을 활짝 열어젖힌 구염락은 철통을 내려놓고 소매를 걷은 채 우물가로 달려갔다. 그가 물 한 바가지를 얼굴에 뿌리고 고개를 돌리자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나 왔어.”

진작부터 그의 기척을 들은 금용은 머리를 빗고 있었다. 헝겊 조각을 기운 옷을 입고 있었지만 열 살 소녀의 사랑스러움은 감춰지지 않았다. 장기간 풍족한 생활을 한 그녀의 용모는 이전보다 한층 나아져 있었다. 금용이 재빨리 수건을 들고 뛰어나왔다.

“전하, 고생하셨어요.”

이미 식사를 준비해 놓은 소리자도 기쁘게 뛰어나왔다. 그는 문 앞의 모래시계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전하, 오늘 또 일각이 걸렸습니다!”

“그래?”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구염락은 생기가 넘치는 눈빛으로 이미 멈춰 선 모래시계를 보았다. 그는 다시 한번 물 한 바가지를 몸에 부은 뒤 수건을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옷 갈아입고 나와서 밥 먹자.”

“네.”

소리자와 금용이 웃으며 뛰어가 물건을 정리했다.

남소원은 예전과 다를 것 없이 황량하고 협소했다. 또한 이들은 여전히 총괄 태감을 주인처럼 조심히 모셨다. 그러나 전과 다른 점이라면 뜰이 깔끔해졌고, 문에 달린 자물쇠는 열셋째의 명령이 없이는 누구도 열 수 없었으며, 대태감 역시 남는 밥을 모두 그들에게 줘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예전처럼 보름 동안 밥을 주지 않는 행동은 감히 하지 못했다. 이러한 변화는 위에서 누군가 구염락을 뒷받침해 주거나 양심 없는 자들이 괴롭힘을 멈춰서가 아니었다. 열셋째가 반격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반격은 태감이 그의 옷을 숨기고 학당에 가지 못하게 한 날 발생했다. 서열 누님과 함께 말 타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다니, 그놈은 벌을 받아 마땅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태감에게 복수를 시도했고 복수는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이후에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옛날 신형사에서 본 장면이 훨씬 무서웠다.

복수를 통해 짜릿한 흥분을 느꼈고 그를 괴롭히는 사람이 한 명 줄었다는 생각만 하면 온몸에서 힘이 솟았다. 하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비록 사람들이 자신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지만 뒤에서는 자신을 손가락질 하며 음흉하고 잔인하다 욕하는 걸 알고 있었다.

구염락은 탁자 위에 놓인 푸짐한 반찬을 바라보았다. 비록 장서열과 함께 먹을 때보다 못했지만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여덟 살 구염락은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생일 같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는 것만이 가장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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