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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22)화 (22/449)

제22화

“많이 좋아지셨고 찜질을 더 해주면 열은 내릴 겁니다.”

말을 마친 소리자는 혀를 꽉 깨물며 말주변이 없는 스스로를 탓했다. 그녀가 물어본 건 이게 아니었을 것이다.

“금용이 약초를 캐러 갔으니 돌아오면 전하께 붙여드리겠습니다.”

그는 다시 혀를 깨물었다. 만일 전하의 병을 고치려던 의도가 아니라면 어찌한단 말인가! 그가 즉시 말을 바꾸었다.

“그, 그게 아니라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네, 물을 가지러…….”

그러나 장서열은 그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듣지 못했다.

“어찌 이렇게 된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녀는 얼른 다시 수건을 적셔 구염락의 이마에 올려주었다.

‘이렇게 뜨거운데 많이 좋아진 거라고?’

구염락은 이마 위에 수건을 얹은 채로 피범벅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장서열은 당장 이곳을 불살라버리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그는 구염락이었다. 높은 자리에서 남을 내려다보며 잘난 체하던 그 구염락!

‘그는 황자야. 이것들은 대체 황자가 뭔지도 모른단 말인가. 정말 구염락이 죽으면 출세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빌어먹을!’

그때 구염락이 눈을 떴다.

“너는…….”

윤곽을 알 수 없는 입가에 웃음 비슷한 것이 어렸다.

“서열… 나… 괜찮…….”

그는 피곤한 듯 눈을 감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 모습에 장서열은 화가 나 부들부들 떨며 이성을 잃고 크게 소리쳤다.

“여봐라!”

전원(前院)의 곽 공공과 황 공공이 들어와 바닥에 털썩 꿇어앉았다. 그들은 거의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고 있었다.

“아가씨, 부르셨습니까!”

“당장 태의를 불러라!”

그녀의 말에 곽 공공이 난처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께서는 이곳이 처음이라 규칙을 모르시겠지요. 이곳은… 의원을 모시기가 곤란한 곳입니다.”

그리고는 아첨하며 덧붙였다.

“보기에 안쓰러우시면 도적놈의 병이 나은 뒤에 다시 오셔도 됩니다. 아가씨의 흥이 깨지지 않도록 맨 첫 번째로 손을 쓸 수 있게 준비해 놓겠습니다.”

“닥쳐라!”

장서열이 냉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일찍이 전생에서 이런 노비들의 민낯을 본 적이 있었다. 총애를 잃었을 때 이런 것들의 피부 가죽을 벗겨내지 못한 게 한이었다. 하물며 구염락은 황제가 괴롭혀 죽이라고 지시한 인물이었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너희는…!”

“하지 마… 나…….”

장서열은 서둘러 그가 들어올리는 손을 잡았다.

“말하지 마. 알았어. 넌 괜찮다는 거지? 네 걱정 안 할 테니까 얌전히 누워 있어. 괜찮아질 거야, 내가 장담해.”

옆에 있던 소리자가 마치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발견한 듯 쿵쿵대며 더 열심히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를 구해주십시오, 아가씨! 제발 부탁드립니다. 노비가 소가 되고 말이 되어 아가씨의 은혜에 보답하고, 매일 아가씨를 위해 향을 태울 테니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뒤이어 그보다 더욱 야위고 왜소한 그림자가 소리자와 함께 바닥에 꿇어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를 살려주세요, 아가씨.”

그 목소리를 들은 장서열은 순간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막대한 증오를 느꼈다. 가까스로 감정을 억누른 그녀가 시선을 돌려 문 앞의 노비에게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가서 태의를 불러와라.”

곽 공공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알량한 동정심으로 여기저기 들쑤시는 주인이 제일 싫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미움을 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이를 악물고 답했다.

“아가씨께 아룁니다. 태의들이 모두 바쁘니 황제 폐하께 직접 여쭤보심이 좋으실 듯합니다.”

“바쁘다?”

냉소를 지은 그녀가 허리에 찬 옥패를 끌렀다.

“태의원이 바쁘면 호 태의(胡太医)를 데려와라! 만일 그도 바쁘다면 너희 모두 문기둥에 머리를 박고 죽어라. 그 소리가 얼마나 낭랑한지 내가 확인할 것이다!”

“소인이 당장 가겠습니다!”

곽 공공은 마음이 떨려 옥패도 제대로 줍지 못한 채 허겁지겁 태의원을 향해 달렸다. 이마에 흐른 땀은 닦아도 닦아도 끝없이 줄줄 흘렀다.

‘망했다, 망했어! 이제 끝장이구나!’

이를 본 소리자는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다시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정말 감사합니다! 크나큰 은덕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고, 노비가 다음 생에서 반드시 아가씨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야윈 몸뚱이가 그보다 더욱 빠르게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감격의 눈물이 커다란 눈망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아가씨의 자비로운 마음에 노비가 절을 올리겠습니다! 노비가 아가씨께 절을 올릴게요!”

장서열은 구염락의 손을 잡은 채 옷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하얀 비단이 그의 시퍼런 입가에 떨어지자 그녀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매우 아파하고 있었다.

볏짚으로 덮인 침대 위에 실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숨죽여 울었다.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문간에 선 서풍엽은 그녀가 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수업에 불참한 그녀를 비웃어주려고 했으나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으나 쉴 새 없이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이 짙은 비애가 되어 그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서풍엽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침대 옆에 선 그가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목소리가 저절로 따뜻해졌다.

“울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네가 태의를 불렀으니 얼마 안 가 펄쩍펄쩍 뛰어올 거야.”

서풍엽은 그녀의 머리를 응시하면서 그녀가 평소처럼 남의 일에 참견 말라고 욕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장서열은 황급히 눈물을 닦고 자신이 약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재빨리 염낭을 푼 그녀가 구염락에게 덮여 있던 볏짚들을 치웠다.

“등잔에 불을 붙여라! 가위와 독한 술도 가져 와!”

방 안이 분주해졌다. 서풍엽은 조용히 그의 하인에게 이곳에 없는 물품을 보충하도록 지시했다.

장서열은 구염락의 옷을 가위로 잘라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그녀는 비단 손수건을 술에 담근 뒤 상처로 뒤덮인 구염락의 몸에 떨어뜨렸다. 독한 술이 벌어진 상처와 피부 사이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침대 위에 누워있던 구염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아파서 깨어났다가 다시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일단 열을 식혀야 했으므로 장서열은 주저하지 않고 같은 방법으로 그의 전신을 닦았다. 계속 이렇게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는 죽을지도 모른다.

장서열은 구염락의 전신을 다 닦은 뒤 가져온 상자를 꺼냈다. 그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며 챙겨 온 모든 약을 그의 몸에 발라주었다.

서풍엽은 그녀의 능숙한 손놀림과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 그리고 침착한 태도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마치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경험해 본 사람 같았고, 심지어 환자가 보일 고통까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서풍엽은 그녀가 정말 화밖에 낼 줄 모르는 장서열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모든 처치를 마친 뒤 장서열은 구염락의 옷을 벗긴 채로 그대로 두었다. 열병을 앓은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빨리 체온을 낮추려면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만일 겨울이었다면 아예 눈밭에서 몸을 식히게 했을 것이다.

호 태의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장서열의 전담 태의인 그는 황제가 어째서 일개 신하의 딸에게 자신을 붙여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어린 주인을 잘 모셔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장서열의 전담 태의는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또 다른 태의의 디딤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가씨, 아가씨!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호 태의가 날듯이 들어와 그녀를 진맥하려 했다. 장서열은 슬픔이 걷힌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연한 표정은 마치 방 안의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있는 사람 같았다.

“이분을 잘 돌봐드려라. 그의 병이 낫지 않으면 자네를 폐하께 데려가 의술이 신통치 않아 중임을 맡을 수 없는 자라고 고하겠다.”

놀란 호 태의의 눈에 장 씨 가문의 아가씨는 옥침을 던지고 주전자를 내동댕이치던 평소 때보다 훨씬 더 무섭게 보였다.

“지금 당장 진맥하겠습니다!”

호 태의는 침대에 누운 사람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우선 능숙하게 코의 호흡부터 확인했다.

‘이렇게 상처를 입고도 죽지 않았다니…….’

그러나 감히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호 태의는 그가 죽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얼른 침을 놓기 시작했다. 약물의 효력은 늦게 나타나므로 억지로 기력이 돌아오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의 목숨을 보전하고 오장육부를 보호하는 게 급선무였다.

호 태의는 썩은 살점과 핏자국으로 엉망인 작은 몸뚱이를 바라보며 분명 신형사에서 새로 고안한 고문을 당한 거라 추측했다. 이렇게 맞았음에도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열셋째 황자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풍엽은 구염락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장서열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는 슬프거나 초조한 기색 없이, 마치 눈물을 보인 적도 없는 사람처럼 침착하게 태의가 침을 놓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고한 눈빛과 매화처럼 우아한 자태는 몹시도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새하얀 대금 배자(对襟褙子, 두 섶이 겹치지 않고 가운데서 단추로 채우게 만들어진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귀에는 동해 진주가, 흑단 같은 머리에는 활짝 핀 목단 장식이 보였다. 최상급 금사와 은사 비단으로 만들어진 치마는 움직임 없이도 마치 구름이 바람을 따라 흘러가듯 넘실거렸다. 온 연경을 통틀어도 찾기 어려운 귀한 비단이 모두 그녀의 몸에 있었다. 어린아이가 걸쳤음에도 전혀 과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땅히 제 주인을 찾아간 느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물건도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앞에서는 무색했다.

서풍엽의 마음은 줄곧 환희로 요동치는 듯했다. 정말 그녀가 자신의 아내가 되는 걸까. 부드러운 마음과 굳은 심지를 가진 그녀는 이미 남들이 앞다퉈 욕심내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앞으로 어떤 절세미인으로 성장하게 될지, 그녀가 성장한 후의 모습은 어떠할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미래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서풍엽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호 태의가 있으니 별 일 없을 거야.”

호 태의는 그제야 세자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절을 했다. 서풍엽이 얼른 손을 저었다.

“됐다. 환자가 우선이지.”

그의 말에 호 태의는 감히 계속 꿇어앉아 있지 못했다. 침을 놓는 그의 손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침대에 누워있는 자가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기에 세자까지 온 것인지 궁금했다. 구석에 꿇어앉은 소리자와 금용은 쉬지 않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은 쉰 목소리로 온갖 부처님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그들의 주인이 이번 난관을 극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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