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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11)화 (11/449)
  • 제11화

    초 씨 성을 가진 교습 마마는 조상 3대가 모두 몸종이었으며, 충성스러운 기질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했다. 그녀는 조국공 부인이 외손녀인 조옥언에게 친히 붙여준 유모로, 조국공부에서 지위가 높았던 덕분에 상부에서도 제 나름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녀는 부인이 사가에서 데려온 하인들에게는 상냥했으나 장신성의 하인들에게는 냉담했다. 그리고 장서열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다.

    “이게 무슨 일인지요. 벌써 석 달이나 되었습니다. 아가씨께서는 희극 없이는 잠을 청하지 못하시고, 밤이 되어 불을 끄면 깨어나십니다. 누군가 잠깐 자리를 뜨는 소리에도 단박에 긴장을 하시니, 노비가 의원을 불러 진맥을 청했지만 매우 건강하시답니다. 모든 것이 노비의 탓입니다. 노비가 아가씨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어요…….”

    초 마마(嬷嬷)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자책했다.

    조옥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초 마마를 나무랄 뜻은 없었지만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그녀는 옥같이 가냘픈 손을 들어 가슴을 짚었다.

    ‘딸아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곁에 사람이 없으면 잠들지 못하고 인기척이 들리지 않으면 불안해하다니.’

    어느 날은 저녁 내내 초 마마의 손을 잡고 밤새 이야기를 해달라며 졸랐다고 했다. 초 마마가 얼마나 수다스러운지, 살면서 겪었던 대수롭지 않은 일들을 얼마나 여러 번 되풀이 하는지 조옥언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딸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했다. 아이다운 행동이 아니라, 마치 한참을 방치되어 자식과 떨어질까 두려워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알아야만 비로소 안심하는 노파 같았다.

    게다가 오늘 일도 이상했다. 장서열은 평소 서출인 장서영을 몹시 귀여워해 누군가 그녀를 업신여기는 걸 용납하지 않았고, 무리할 만한 일은 시키지 않았다. 자신과 동등하게 큰아가씨로 대우받도록 해준 것도 그녀였다. 그런 딸아이가 갑자기 장서영에게 식사 시중을 들게 하고, 내쫓았음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설마…….

    조옥언은 가슴이 철렁했다.

    ‘딸이 장서영에게 괴롭힘을 당했구나!’

    기 씨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서영을 시켜 자신의 딸을 음해하려 하다니 속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호의를 베풀었건만 이를 역으로 이용하다니. 과연 악랄하기 그지없군. 분명 서열이에게도 입단속을 시켰겠지.’

    “여봐라!”

    홍촉이 즉시 방으로 들어왔다.

    “예, 부인.”

    “지금 당장 장서영을 반운(伴云)에 꿇어앉게 하고, 서열이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게 하라!”

    말을 마친 조 씨의 머릿속에 여운이 함께 떠올랐으나, 누가 되었든 그녀의 딸을 괴롭힌 자는 가만 둘 수 없었다.

    “초 마마도 이만 돌아가 쉬게. 서열이가 희극을 좋아한다면 듣게 하고. 다만 매번 밖에서 사람을 부르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

    조옥언이 잠시 생각하다가 이어 말했다.

    “내일 해숙을 보내 적당한 자를 데려와 제대로 가르쳐서 서열이에게 보내거라.”

    “예, 부인.”

    * * *

    기 씨는 갑작스러운 작은 아들의 소란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신성은 방금 전까지 기 씨와 사랑을 나눈 뒤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작은 아들의 부름에 그의 미간이 찡그러졌으나, 그는 침대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냉랭한 장신성과 달리 기 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장신성에게는 다른 자식이 넘쳐났으나 그녀에게는 오로지 세 아이밖에 없었다. 자식이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무슨 일이냐.”

    기 씨가 하녀를 제지하며 물었다.

    “이랑(姨娘, 첩의 자식이 친어머니를 부르는 호칭)!”

    장서목이 그를 가로막는 마마(嬷嬷)를 밀어내고, 이제 막 바깥으로 나온 기 씨의 손을 초조하게 잡았다.

    “하인들이 영아를 데려갔어요! 지금 영아가 반운루(伴云楼)에 꿇어앉아 있어요. 큰누이가 용서해줄 때까지 계속 하라 했대요!”

    그 말을 들은 기 씨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조옥언! 정말 해도 너무하는구나! 똑똑하고 사리에 밝은 내 딸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막 돼먹은 네 딸에게 무릎을 꿇는단 말이냐!’

    “큰아가씨는 무얼 하고! 계속 영아를 꿇어앉히고 있다더냐?”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기 씨는 황급히 억울한 얼굴을 하고 허겁지겁 반운루로 달려갔다. 딸은 이제 겨우 다섯 살이었다.

    ‘이 추운 밤에 어찌 밖에 꿇어앉아 있는단 말인가!’

    장서목이 급한 발걸음으로 뒤따르며 답했다.

    “큰누이는 자고 있어서 만날 수 없었어요. 하인들이 깨우지 못하게 합니다. 초 마마가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면 같이 벌을 내리겠다고 했어요. 지금 둘째 형님이 영아와 함께 꿇어앉아 있고요.”

    “네 형까지 꿇어앉아 있다고?”

    걱정이 더욱 커졌으나 그녀는 차츰 이성을 되찾으며 걸음을 늦추었다. 여러 해 동안 조옥언을 지켜보며, 기 씨는 조 씨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명문가 귀족 출신인 조옥언의 눈에 자신과 같은 일반 백성의 목숨 하나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서출 자식을 벌준다는 건 썩 보기 좋은 일이 아니었으나, 조옥언은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랬다면 이미 과거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기 씨는 일순간 조소를 머금었다.

    “이랑! 어서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러 가요!”

    기 씨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도움을 청하러 가? 장신성은 모든 이들에게 장서열만 애지중지하는 ‘자애로운 아버지’를 연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도움을 청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으리라. 하지만 자식들을 계속 꿇어앉아 있게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기 씨는 돌연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아직 사흘밖에 지나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만약 정말로 아이가 들어선 거라면 이번에야말로 조옥언의 명성을 흠집 낼 절호의 기회였다. 제대로만 진행된다면 뱃속 아이를 지키는 것은 물론, 장서열 그 망할 계집이 뱃속 아이에게 평생 죄책감을 갖게 할 수도 있었다.

    ‘만일 아이를 지키지 못한대도…….’

    기 씨의 눈 속에 굳은 결심이 스쳐 지나갔다.

    ‘노야(老爷,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존칭)께서 내게 어떠한 지위라도 만들어 주리라.’

    그녀가 아직 모양도 잡히지 않은 배를 만지작거렸다.

    ‘아이야, 이 어미가 네게 모질게 군다고 탓하지 마라.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이랑, 어서 오세요!”

    기 씨가 초조해 하는 아들을 갑자기 우뚝 잡아 세웠다.

    “이 일은 내가 처리할 것이다. 날이 어두우니 넌 걱정 말고 이만 가서 자거라. 내일 학당에 가야지.”

    말을 마친 기 씨는 아들에게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유모를 통해 그를 억지로 끌고 가게 했다.

    반운루에 펼쳐진 밤의 정경은 아름다웠다. 문 밖을 지키는 나이 든 하녀들은 모두 건장한 몸집을 갖고 있었다. 기 씨는 군말 없이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자갈이 깔린 복도 위에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 서영이를 용서해 주세요. 서영이는…….”

    순간 무표정한 하녀가 두꺼운 손을 들어 그녀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찰싹 하는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들짐승처럼 센 힘은 일순간 사람의 몸을 비틀거리게 했다. 고개를 쳐든 하녀가 무시무시한 힘과는 대조적이게 실처럼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가 주무시니 떠들면 안 됩니다.”

    기 씨는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떠들면 안 된다니! 이럴 거면 내 딸을 왜 꿇어앉혔어!’

    나이 든 하녀들은 분노한 기 씨의 눈빛에도 아무런 동요 없이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서양과 장서영이 황급히 어머니에게 뛰어들었다.

    “괜찮으세요, 이랑? 이랑…….”

    기 씨는 두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맞은 뺨을 가린 채 문 앞을 지키고 선 두 하녀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대관절 나는 무슨 이유로 매를 맞고, 나의 아들딸은 어째서 못된 장서열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 가족이 조옥언의 한 마디에 이런 치욕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주모도, 고귀한 신분의 자리도 모두 조옥언의 차지였다. 기 씨는 더 이상 첩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딸이 더는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최소한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측부인이라도 되었다면, 오늘 꿇어앉은 자식들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서양은 기 씨와 누이동생이 연이어 억울한 일을 당하자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그들이 아무리 인내하고 싸움을 피하려 해도 주모는 그들을 가만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주모는 원인 모를 죄명으로 누이동생을 이곳에 꿇어앉혔고, 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때렸다. 장서양은 치솟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아무리 애쓰고 비위를 맞추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주모는 우리를 사람으로도 안 보는 것을!’

    “이랑, 어서 일어나세요. 어머니(母亲, 조옥언)께서는 누이동생만 벌한다 하셨지 이랑까지 꿇어앉으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서 돌아가세요. 건강에 주의하셔야죠.”

    “괜찮다. 너희와 함께 있으마.”

    기 씨는 위안이 된다는 눈빛으로 큰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는 적자보다 훨씬 영특한 아들이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장서전보다 백 배는 더 우수하고 영리했다. 만약 장서전이 죽는다면 장자는 그녀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것도 모든 상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나고 우수한 장자일 것이었다.

    기 씨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째서 이걸 생각 못했지? 만약 장서전이 죽는다면…….’

    꿇어앉은 두 아이의 모습이 그녀를 덮쳐왔다.

    “이랑…….”

    “괜찮다. 내가 어찌 너희만 두고 가겠느냐. 큰아가씨가 용서해줄 때까지 함께 있자.”

    하녀들은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나이 든 하녀 몇몇은 그들의 대화에 속으로 코웃음 쳤다.

    세 사람은 서로 부축하며 밤새도록 꿇어앉아 있었다. 장서영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 기분이 좋지 않았고, 기 씨와 장서양은 생각이 많았다.

    동녘 하늘이 밝아오고 새벽의 햇살이 대지를 비췄다. 분주히 뜰을 오가며 일을 시작하는 하인들이 늘어났다. 밤 당번을 섰던 하녀들도 다른 하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났다.

    눈가에 눈물 자국이 남은 딸을 끌어안고 있던 기 씨는 순간 하복부에서 어렴풋한 통증을 느꼈다. 뱃속 아이를 지킬 수 없게 됐다는 걸 직감한 그녀는 초조한 눈으로 반운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장서열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편, 세수와 빗질을 마친 장서열은 밝은 귤색 유군을 차려 입고 금박을 입힌 잠자리 모양의 비녀를 꽂고 있었다. 산뜻하고 앳된 자태였다. 그녀는 이제껏 몸단장에 소홀한 적이 없었고 몸치장을 할 때는 각별히 더 신경을 썼다. 누구든 예쁘고 아름다운 걸 선호한다. 그건 가진 것 하나 없는 구염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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