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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10)화 (10/449)
  • 제10화

    장서영과 가장 가까이 앉아있던 장서양이 누이동생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냉정하고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상부의 서자이자 장서영의 친오라비였다. 그는 장서전과 몇 개월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세상물정에 밝았다. 장서양은 장신성을 빼닮았으며 무표정한 얼굴에는 위엄이 넘쳤다.

    “어서 가서 시중을 들거라.”

    장서양은 장서영이 가장 믿고 따르는 오라버니였다. 그녀는 몹시 억울했지만 결국 오라버니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언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를 지켜보던 기 씨는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장신성을 한 번 흘겨본 뒤 다시 시선을 낮게 드리우고 주모의 접시에 반찬을 덜어주었다. 이어 미소를 머금으며 조 씨에게 말했다.

    “큰아가씨의 식사 시중을 드는 건 서영이의 복입니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나란히 앉아 식사하는 건 기쁜 일이죠.”

    조 씨가 돌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기 씨의 말은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조 씨의 매서운 시선이 기 씨를 향했다. 누구라도 자신의 딸을 비꼬아 말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장서열의 배려 덕분에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서영이는 본래 서열이의 식사 시중을 들었어야 하지. 하지만 서열이는 그간 어린 서영이를 측은하게 여겨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었다네. 오늘 농교가 자리에 없어 서영이에게 잠시 본분을 행하라는 것인데, 그게 그리 힘든 일인 줄은 몰랐군.”

    “…….”

    “그래, 서영이가 정 그리 내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이곳으로 건너와 식사할 필요 없네. 서양과 서목 역시 이제 나이가 어리지 않으니 더는 서전이의 식사 시중을 들러 올 필요 없다.”

    장신성의 안색이 삽시간에 어두워졌지만 아내의 말에서는 어떠한 허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장서양은 표정 변화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 씨를 향해 공손히 절을 올렸다. 꼿꼿하고 점잖은 태도였다.

    “지난 몇 년간 어머니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앞으로 두 동생들을 잘 단속할 터이니 오늘 서영이의 실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기 씨는 후회로 속이 끓었다. 공연히 말 한 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나 버렸다. 그녀의 아이들은 주모와 함께 식사하는 특혜를 잃었다. 앞으로는 그 돼먹지 못한 다른 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세 자식은 푸대접을 당할 것이다.

    기 씨가 황급히 조옥언의 비위를 맞추며 조심스레 미소 지었다.

    “큰아가씨, 큰도련님의 식사 시중을 드는 건 세 아이의 복인걸요. 앞으로도 함께 식사를…….”

    “되었네. 가족끼리 시중들고 말고 할 게 어딨나. 홍촉, 네가 큰아가씨의 식사 시중을 들어라. 그외 관계없는 사람은 모두 나가도록.”

    조 씨가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누구도 감히 대꾸할 수 없었다.

    ‘내가 왜 나가야 하지? 아직 밥도 안 먹었는데……. 여긴 내 자리인데?’

    장서영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

    장신성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뭘 그러고 서있는 게야. 데리고 물러가래도! 아가씨와 부인을 노하게 할 작정이냐?”

    장서열은 새삼 장신성에게 탄복했다. 이런 순간에서도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하다니, 고생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세 아이는 식당 밖으로 내보내졌다.

    장서목은 주변에 유모 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작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생모 기 씨의 음흉한 눈빛과 매우 닮은 모양새였다.

    “둘째 형님!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걔만 아가씨고 우리 영아는 아가씨가 아니에요? 의자에 앉은 사람을 내쫓다니, 우리를 대체 뭘로 보는 건지! 아버지도 마찬가지예요. 영아를 위해 나서지 않다니 정말 너무하잖아요!”

    이번 일을 곰곰이 되짚어보던 장서양은 장서목의 마지막 말에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닥쳐라. 아버지는 널 위해 그러신 거다. 다시는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지 마라. 안 그러면 곧바로 아버지께 데려가 벌을 주겠다.”

    장서목은 언짢은 듯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렸지만 감히 형의 말에 반박하지는 못했다.

    “알겠어요.”

    고개를 저은 장서양은 여전히 섭섭해 하는 누이동생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손을 잡아주었다.

    “가서 오라버니와 함께 식사하자. 앞으로 나와 서목 오라버니 외에는 네게 진심으로 잘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기억해. 서전 오라버니는 장서열의 오라버니지 네 오라버니가 아니다.”

    그 말에 장서영은 큰 소리로 펑펑 울었다. 당황한 그들은 그녀를 달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한편, 장서열은 보기 싫은 사람이 사라지자 태평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맛있는 음식을 음미했다. 그녀에게 그들 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쓸 만한 이들도 아니었다. 구염락이 그녀를 죽이지 않는 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마음껏 처분할 수 있었다.

    조 씨는 희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식사하는 틈틈이 딸을 지켜보았다. 딸의 습관은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산만하고 무모한 성격은 식사 시간에도 예외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딸은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천천히 음식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큼직한 국자가 작고 정교한 그릇 안에서 몇 번을 돌았지만 소리 한 번 나지 않았고, 가볍게 쥔 젓가락은 입에 딱 들어갈 만큼만 적당한 양을 집어 들었다. 손짓 하나하나에 기품이 흘러 넘쳤다. 또한 옅게 웃는 미소 속에서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매력이 느껴졌다. 이런 자태는 어린아이가 내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궁에서 따로 규칙을 배운 걸까, 아니면 누군가 비밀리에 서열이를 가르친 걸까?’

    그녀는 한 가지 유력한 가능성을 떠올리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이렇게 서둘러 딸아이를 맞아들이려 하다니! 대체 황후의 속셈이 무엇이지?’

    딸이 궁에서 타인을 통해 규율을 익혔다고 생각하자 조 씨는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왔다. 이런 몸가짐은 쉽게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교습 마마(教習嬷嬷,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몸종)에게 맞아가며 온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들이었다.

    ‘내 아이 역시 남자의 눈에 들기 위해 영문도 모를 규칙을 익히고 연습해야 하다니. 태자의 마음이 계속 딸에게 있으리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조옥언은 딸아이를 응시하며, 딸을 위해 혼처를 미리 정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깊은 밤, 촛불이 켜졌다. 야간 당번을 정해놓은 시녀들은 이미 잠자리에 든 후였다. 회랑에 걸린 등롱이 하나씩 차례로 꺼지자 정원에는 짙은 어둠이 깔렸다. 상부의 별원(别院)에서는 시중들던 이들을 물린 기 씨가 화를 내고 있었다.

    “같은 상에서 식사하다 자리에서 쫓겨났어요.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 아이들이 조옥언의 눈 밖에 났다고 폄하할 거라고요!”

    상심한 그녀는 자리에 앉아 울고 있었다.

    “모두 이 어미가 못났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에게 좋은 신분을 물려주지도 못하고…….”

    “그만 하시오!”

    듣다 못한 장신성이 짜증을 냈다.

    “고작 한 끼 밥을 먹는 문제요. 앞으로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게 뭐가 나쁘오?”

    기 씨는 장신성이 자신에게 화를 내자 죽을 만큼 억울해져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뭐가 나쁘냐니요! 내 아이들은 더 이상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대접 받지도 못하게 됐어요. 내 처지와 똑같잖아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누구든 마음대로 부려먹으려 하겠죠!”

    “헛소리!”

    장신성은 아이를 위해 우는 기 씨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는 그녀와 함께 과거 고향에 있을 때 나누었던 깊은 사랑을 떠올리고는 다가가 그녀를 꽉 껴안았다.

    “그만 하시오. 그 아이들 모두 우리의 자식이 아니겠소. 나도 마음이 아프오.”

    “…….”

    “이렇게 합시다. 내 개인적으로 외원(外院)의 집사를 통해 매달 당신에게 생활비를 더 보태주리다. 그러면 아이들의 고생을 덜 수 있지 않겠소.”

    고작 몇 마디 감언이설로 그녀의 마음이 가라앉을 리 없었다. 그러나 기 씨는 계속 소란을 피워봐야 장신성의 마음만 멀어지게 할 뿐이라는 걸 알았다. 기 씨는 그의 품에 안겨 더욱 구슬피 울었다. 그리고 깊은 사모의 마음을 담아 그를 위해 기꺼이 억울함을 감내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소첩이 잘못했습니다. 아이들이 고생한다는 생각에 무례를 범하고 말았어요. 부디 제 말을 마음에 두지 마세요…….”

    말을 마친 기 씨는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조옥언, 두고 보자!’

    장신성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녀의 눈이 독사처럼 번뜩였다.

    “그럴 리 있겠소. 내 사려가 부족한 탓이오.”

    장신성이 기 씨의 아름다운 등을 어루만졌다. 손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이 그의 마음을 산란하게 했다. 그러다 문득 딸의 억울한 목소리가 떠오르자 그 역시도 노한 마음을 참지 못했다.

    “그 아이들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줄은 몰랐소. 돌아가면 서열이와 얘기를 나눠보고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아보리다. 서열이가 갑자기 영아를 괴롭히는 이유가 궁금하군.”

    그들은 장서열에게 형제자매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아울러 장서영은 말 못할 병을 갖고 태어났으며, 생모인 기 씨가 첩실이라 많이 돌보지 못해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자랐다는 걸 강조했다. 이렇게까지 공을 들인 건 그녀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켜 장서영을 장서열과 똑같이 대우 받게 하려는 의도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됐었다.

    기 씨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장서열을 비난하는 걸 잊지 않았다.

    “큰아가씨 성미가 점점 고약해지는 것 같아요. 이젠 친동생에게까지 손을 대니 말이에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바라는 일이었다.

    * * *

    주홍색 아치문 내부에 펼쳐진 대나무 숲으로 수려한 정자와 누각이 펼쳐졌다. 높고 웅장한 가산유수(假山流水, 바위로 만든 인공산과 그 곳에 흐르는 물) 위로는 상부에서 가장 존귀한 안주인의 거처와 뜰이 있었다.

    그녀는 상부의 식솔을 거느리며 무수히 많은 문하객을 맞이했다. 상부 사람이라면 누구든 연경에서 으뜸가는 귀부인인 그녀가 배후의 실권자이며, 그녀의 권력을 능가하는 건 장신성 역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인의 거처에는 아직 촛불이 켜져 있었고 조용히 하인들이 드나들었다. 침소에 들 준비를 하고 있던 조옥언은 자홍색 비단 침대 휘장 안에서 마마(嬷嬷)에게 딸의 상황을 보고 받는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또 한밤중까지 희극(戲劇, 중국의 전통 연극)을 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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