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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중생계 (3)화 (3/449)
  • 제3화

    그녀의 오라비인 장서전은 생기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준수하고 훤칠한 용모가 돋보였다. 고급스런 비단 옷을 걸친 장서전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우아한 귀공자의 품위가 있었다. 다만 그는 평소 명망 있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 외에는 교류하지 않았는데, 이는 오만한 성품 탓이었다.

    장서전이 금족령에서 풀려난 누이동생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어머니도 화가 풀리셨을 거야. 걱정하지 마라. 네 심기를 건드린 후부의 멍청한 계집은 그동안 우리가 실컷 괴롭혀줬으니까.”

    그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나랑 태자 형님이 단단히 겁을 줬다. 초혜전에는 발도 못 들이게 해놨으니 염려하지 마라. 아마 지금 집에서 꾀병을 부리고 있을걸.”

    장서열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그녀는 못 말리겠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에 장서열은 태자가 그녀를 위해 감행한 복수를 매우 통쾌하게 여겼다. 심지어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여운을 신형사(慎刑司, 죄를 저지른 궁인, 비빈이 형벌을 받는 곳)로 부른 뒤, 태자와 오라버니를 부추겨 그녀를 궤짝 안에 가두고 참혹한 고문과 형벌을 보게 했다. 잔뜩 겁을 먹게 해서 그녀가 다시는 황궁에 발걸음도 못하게 만들 속셈이었다.

    그 일로 여운은 긴 시간동안 앓아누웠고 결국 지병이 생겼다. 수 년 뒤, 여운이 입궁하자 장서열은 유년 시절 그녀에게 저질렀던 일에 죄책감을 느껴 난생 처음으로 타인에게 잘해주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인과응보였다.

    장서전은 누이동생의 얼굴에서 기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자 걱정스레 물었다.

    “서열아, 무슨 일이야? 오라버니가 뭘 잘못했니?”

    ‘하지만 그 망할 계집은 내 누이동생을 괴롭혔는데.’

    장서열은 얼른 얼굴을 활짝 펴고 거만하게 답했다.

    “그럴 리가. 오라버니는 날 위해 복수해 줬잖아. 역시 오라버니가 최고야.”

    정말로 오라버니는 최고였다. 그녀가 어떤 잘못을 했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든 그는 언제나 그녀를 위해 나서줬다. 그런 오라버니에게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단지 오라버니는 너무 멍청했을 뿐이다. 오라버니 자신의 입장이 난처할 때에도 누이동생을 위해 복수하려 했으니까.

    장서열은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못난 자신 때문에 오라버니는 노비 출신인 금비(锦妃)의 아우 밑에서 치욕을 당하며 살길을 도모해야 했다.

    “서열아, 왜 그래?”

    장서전은 누이동생이 더욱 염려스러웠다.

    “평소와 너무 다른 걸…….”

    원래대로라면 잔뜩 흥분한 누이동생은 자신에게 달려와 여운 그 계집을 어떻게 골탕 먹일지를 상의해야 했다.

    장서열은 진심을 담아 활짝 웃은 뒤 뾰로통하게 오라버니를 흘겨보았다. 그녀의 두 눈이 도도하게 빛났다.

    “겁먹고 학당에 못 오는 게 대수야? 영원히 발길도 못 하게 만들어야지!”

    장서열의 말에 장서전은 하하 웃었다. 이래야 내 동생이지. 누이동생이 흘겨보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장서전은 자기도 모르게 누이동생을 거슬리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 죽을 때까지 괴롭혀주마 다짐했다.

    방문이 활짝 열렸다. 장서열을 발견한 홍촉이 잠시 놀란 듯 멈칫하다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부인, 부인! 아가씨와 도련님이 문안인사 드리러 오셨어요! 아가씨, 도련님, 어서 들어오세요.”

    ‘정말 잘 됐어. 드디어 아가씨가 부인께 순응하는구나. 부인께서는 언제나 아가씨에게 각별히 신경 쓰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 분은 사사건건 부딪쳤었지.’

    조 씨 역시 놀라 멈칫했다. 결점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에 뜻밖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엄격함이 사라지고, 마음에서 우러난 기쁨이 눈부시게 차올랐다.

    “어서 홍두고(红豆糕, 붉은 콩으로 만든 떡)를 내오너라.”

    홍두고는 장서열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조 씨는 갈수록 철이 드는 딸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장서열은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로 방에 들어가 흠잡을 데 없는 모습으로 절을 올렸다.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황궁에서 이십여 년 동안 총애를 다투고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그녀였다. 예의범절에 있어서는 단연 최고 경지라 할 만했다. 그녀의 뒤를 바짝 뒤따라 선 장서전도 이어 절을 올렸다.

    “어머니,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그는 곧 어린아이처럼 어머니 곁으로 파고들어가 어리광을 피우며 말했다.

    “어머니, 서열이가 잘못했답니다. 특별히 어머니께 사죄드리려고 온 거예요. 그러니 노여움을 푸세요. 네?”

    자신을 향해 눈을 찡긋해 보이는 장서전을 보며 장서열은 문득 회상에 젖어들었다.

    과거 그녀는 금족령이 내려진 후 세 달 동안 갇혀 지낸 것에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게다가 그 전날 아버지는 그녀를 어르고 달래면서 여운을 때린 건 사소한 일이다, 네 어머니가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필요 이상의 말을 했다. 아버지의 두둔 속에서 당시 그녀는 정말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오늘, 어머니와 화해시키려는 오라버니에 의해 억지로 끌려왔던 그녀는 어머니의 다그침에 맞서 반항하고 언성을 높였다. 결국 두 사람은 화해하지 못한 채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고,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입궁했었다.

    홍두고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던 홍촉은 기쁜 표정으로 아가씨를 힐끔 바라보았다.

    장서열은 양심의 가책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바보였다. 다른 이들에게 어머니와 오라버니를 괴롭힐 기회를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현명한 어머니조차도 장신성이 친자식을 이용해 자신에게 맞설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장서열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마 아버지의 눈에는 그 여인의 소생들만 진정한 자식으로 보였을 것이다. 애초에 고귀한 신분인 어머니를 포기하고 그 여인과 백년해로 했다면 좋았을 것을. 게다가 아버지는 어머니가 지난 사십여 년간 아버지를 위해 고군분투한 노고를 저버리고 집 밖에서 생을 마감하게 했다.

    “잘못했어요… 앞으로 어머니 말씀 잘 들을 게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장서열은 천천히 어머니에게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고 그리움 가득한 표정으로 가만히 어머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조 씨가 감격하여 딸의 머리를 어루만지려다 문득 단정하게 틀어 올린 딸의 머리를 보고는 기쁜 표정으로 이내 손을 내렸다.

    “그래, 그래. 네 오라버니와 함께 말 잘 들어야 한다.”

    조 씨는 혹시나 딸이 놀랄까 염려되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장서열은 돌연 그녀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목 놓아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는 어머니를 화나게 하지 않을 게요.”

    다시는 제멋대로 놔두는 걸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을 게요. 타인의 언행에 속아 어머니의 진심을 등한시하지 않을 거예요.

    조 씨는 감격에 찬 눈빛으로 딸을 꼭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래. 내가 내린 벌 때문에 겁을 먹었나보구나. 착하지. 이제 그만 뚝 그치렴. 네 오라버니가 웃겠다. 계속 울면 얼굴이 못나지잖니.”

    조 씨가 딸에게 바라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딸이 사리를 분별할 줄 알기만을 바랐다. 장서전은 누이동생이 우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운, 두고 보자. 내 동생을 울게 하다니, 본때를 보여주마!’

    홍촉은 시간이 흘러도 아가씨가 여전히 부인을 껴안은 채 울고 있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부인 역시 아가씨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바깥 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본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부인, 아가씨와 도련님께서는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다. 지금 안 가면 늦으실 거예요.”

    조 씨가 황급히 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어 손도 대지 못한 홍두고를 싸준 뒤, 궁에서는 행동에 조심하고 스승님을 존중하며 태자를 잘 섬겨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장서전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태자의 사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한바탕 울고 난 장서열의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었으므로 서둘러 떨치고 일어나야 했다. 그 와중에 오라버니가 어머니의 신신당부에 시원스럽게 응하는 모습은 일순간 그녀를 웃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 새어나오는 탄식은 어쩔 수 없었다. 장서전과 태자는 아직 나이가 어려 신분과 위계를 엄격히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 뒤 벌어질 사건은 오라버니로 하여금 황제의 권력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오라버니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부로 모든 이들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황제의 권력 앞에서는 모두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올린 장서전은 누이동생의 손을 이끌고 방을 나섰다. 바깥에는 어느새 이랑들과 그들이 낳은 서자, 서녀들이 어머니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기 위해 가득 서있었다. 장서전은 평소처럼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누이동생을 데리고 지나갔다.

    장서열은 잠시 고개를 돌려 힐끗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대 이랑 기 씨와 그 곁에 선 2남 1녀에게로 향했다. 기 씨는 머리에 은색 비녀를 꽂고 다갈색 의복을 입은 채로 부드럽고 순종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재 아버지의 첩실들은 새로 들어온 육 이랑을 주목하고 있을 뿐,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대 이랑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의 자식을 셋이나 낳은 기 씨가 집안에서 얼마나 특수한 위치에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니, 어리석었다. 그녀는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대 이랑이 선량하며 무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어머니가 기 씨를 압박할 때마다 오히려 어머니를 옹졸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새삼 어머니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 띌 만한 증거가 없을 때부터 어머니는 이미 기 씨와 아버지의 사이가 남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기 씨와 아버지는 아이를 셋이나 낳았는데, 바로 이 점이 어머니의 경각심을 일깨운 듯했다. 모든 방면에서 뛰어났던 기 씨의 인내심도 자식 문제에서만큼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장서열은 마음을 가다듬고 오라버니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장서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녀의 표정은 차가웠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 이랑, 어디 마음껏 해 보거라. 이번에는 내가 너를 환생조차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

    마차가 빠른 말발굽 소리를 내며 황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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