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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새로운 불씨 (1) (21/34)

Chapter 6. 새로운 불씨 (1)

“하아…….”

별궁에 도착하자, 카엘리온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토해 내며 아폴로니아의 서재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 걱정시키는 것 좀 그만하시면 안 됩니까? 애써서 중립 귀족들과 모여 있는데 누이와 유리엘이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치고는 적절한 때에 잘 왔는걸. 어떻게 들은 거야. 그건?”

아폴로니아는 달래듯 말했다.

조금 전 연회장에서의 카엘리온과 단둘이 나누었던 대화는 이제 그녀의 머리에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장난기 있고 넉살 좋은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드리안이 살짝 알려 줬습니다. 일단 계획은 보류하고 상황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옆에 있던 아몬 백작을 데리고 들어갔죠. 탐욕덩어리이기는 해도 아들의 공개적인 추태는 못 참을 작자이니까요.”

카엘리온이 대답했다. 다른 의자에 앉아 찢어진 유리엘의 입술을 봐 주고 있던 아드리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그저 할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맞은 건 이쪽인데 엄살은 왜 네놈이 피우는지 모르겠군.”

소파에 늘어지는 카엘리온을 보며 유리엘이 중얼거렸다.

“별로 세게 안 맞으셨는데요.”

유리엘의 입술을 대충 훑어본 아드리안이 말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솔직해지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유리엘의 입에는 작은 상처밖에 없었다.

“맞는 것도 요령이 있으니까요.”

유리엘은 정중하게 대답하고 아드리안이 건네는 약을 받아 입가에 발랐다. 아드리안은 아폴로니아 외의 사람에게 약을 직접 발라 줄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았고, 유리엘은 아폴로니아 외의 사람이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허, 나한테는 반말하는 놈이 아드리안에게는 경어를 써?”

소파에 한 발을 올리고 드러누운 카엘리온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걸 신경 쓰는 버릇은 영원히 안 고쳐지나 보군.”

두 사람은 서로 몇 마디씩 으르렁댔다. 그들은 전시를 비롯해서 필요할 때에는 합이 무척 잘 맞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자주 투닥거렸다.

“둘 다 잘했다니까 왜 싸우는 거야?”

아폴로니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카엘리온이 어깨를 으쓱했다.

“성공한 것 같긴 합니다. 에드윈 후작은 물론이고, 에스테반과 트리온도 누이를 달리 보게 됐으니까요. 아직은 대단한 변화가 아니지만 추후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저와 누이의 동맹을 알리면 지지를 살 가능성이 높아진 겁니다.”

“그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소식은 퍼지겠지.”

아폴로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걱정이 되지 않으십니까?”

카엘리온이 물었다. 그는 황제와 페트라를 떠올리고 있었다.

“너라는 방패가 있고 세타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가레스에게 겁을 조금 준 정도로는 아버지를 자극하지 않을 거야. 자극하더라도 괜찮아. 카엘리온이 무시 못 하게 성장한 이상 아버지는 나를 건드릴 수 없어. 시집보내서 한 명이라도 제 편을 늘리셔야지.”

“페트라는요?”

“고모님 마음 속 한구석에야 의심이 있을지도 모르지.”

아폴로니아는 피식 웃었다. 페트라의 직감은 지금도 무서웠다. 하지만 페트라가 아폴로니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열이라면, 아폴로니아가 페트라에 대해 아는 것은 백이 넘었다.

“하지만 고모님께는 급한 불이 더 많아. 카엘리온, 아일린 이데나, 지금은 세타까지. 화상을 달고 사는 내가 조금 건방지게 변했다고 한들, 그 문제에 집중할 시간은 없을 거야. 집중한다 해도 상관없어.”

그녀는 유리엘을 보며 살짝 웃었다.

“옆에 유리엘이 있으니까.”

유리엘은 완벽한 호위 기사였다. 시드 바이안과 비교를 해도 훌륭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가족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드 바이안이 아폴로니아의 호위를 맡던 시절 그의 가족은 페트라의 핍박에 적지 않은 고생을 했었다.

그에게도 백작의 작위와 선황이 하사했던 영지가 있었으나 가이우스 황제의 등극 후로 그의 경제적 사정은 조금씩 나빠졌었다. 페트라와 황제는 시드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상인들이 그의 영지 전체와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다른 가문과의 교류도 교묘하게 방해했었다.

시드는 아폴로니아를 위해 목숨도 내놓았지만, 가족들의 고생 앞에서 페트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이 없었더라면 진작 가레스를 강물에 집어 던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유리엘은 달랐다. 그는 가족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약점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폴로니아를 지키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거나 처치하기에는 그를 존경하는 기사들이며 그를 마음에 둔 귀족들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페트라 자신도 한때 유리엘을 황제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었을 정도이니까.

의심을 사지 않고 그를 곁에 둔 이상, 아폴로니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했다. 그리고 유리엘을 카엘리온으로부터 떨어뜨려 놓기 위해서도, 황제와 페트라는 지금 유리엘을 데리고 있는 아폴로니아를 가만히 둘 것이다.

유리엘이 아폴로니아를 마음에 두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더더욱.

“가레스가 분해서 울고 있겠군요.”

카엘리온은 즐거운 듯 말했다. 그러나 유리엘은 조금 더 심각한 표정이었다.

“조심하십시오, 전하.”

“가레스를?”

“멍청하고 앞뒤 못 가리는 자이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원한을 품으면 죽을 때까지 집착하는 성격입니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옆에 있던 아드리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멍청하다고 해서 무해한 것은 아닙니다.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요. 경계를 풀면 물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폴로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표정이 굳어 있는 아드리안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의 곁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기억이 종종 아드리안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아폴로니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내일쯤 다시 만나 볼까?”

아폴로니아가 다시 미소를 띠며 물었다.

“누구를 말입니까?”

카엘리온과 유리엘이 동시에 말했다.

“다시 한 번 얘기를 나눠 볼까 하고. 해 줄 이야기가 있거든.”

아폴로니아는 손으로 동궁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마일론의 눈’ 말이야.”

카엘리온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자신의 팔을 이리저리 살폈다.

“뭐야 그게?”

아폴로니아가 물었다. 세세한 근육이 자리 잡혀 한눈에 보아도 단단한 그의 팔에는 작은 새가 할퀸 것 같은 자국이 잔뜩 있었다.

“그게…… 있습니다. 그런 거.”

카엘리온은 이를 갈며 대답했다. 유리엘이 조금 전 입가에 발랐던 약을 주워 들고, 말없이 그에게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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