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진짜 영주 ⑴
다음 날, 아폴로니아는 벤, 탄, 룬 삼형제에게 은밀하게 칼트산에 가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물론 그들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기 때문에 시드를 함께 보냈다.
그들은 한나절 만에 충격 받은 얼굴로 돌아와 덜덜 떨며 보고했다.
“사실입니다. 분명 다이아몬드 광산이 맞았습니다.”
“저희가 올라가도 산은 울리지 않더군요. 마물은 눈에 띄었지만…….”
“칼트의 다른 봉우리들에선 루비며 사파이어도 발견되었습니다.”
삼형제는 앞 다투어 말하며 주머니에서 몇 개의 원석을 꺼내 놓았다. 새파란 것, 붉은 것, 투명한 것. 아폴로니아는 그중 선혈처럼 붉은 조각을 집어 들었다.
“이건 루비인가?”
“아니요. 그 조각은 칼트의 심장에서 나왔습니다.”
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그럼?”
“저희도 처음 보았지만, 붉은 다이아몬드라고밖에 설명이…….”
침착하던 아폴로니아도 눈이 커졌다. 붉은 다이아몬드는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석이었다.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불과 몇백 년 전이었으며, 그 후로도 겨우 수십 개 발견된 것이 다였다.
잘 세공하면 한 조각으로 작은 도시를 살 수도 있는 전설 같은 보석. 그것을 한나절의 탐사로 찾아냈다니. 그 말은 칼트산에 이런 보석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산의 모습은 어때?”
“겉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보물을 잘 숨기고 있지요.”
시드가 조금 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다행이었다. 아폴로니아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에 누군가가 광산의 가치를 알게 되면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일단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
“예. 그럼 여기 세 명은 죽이도록 할까요?”
시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삼형제는 창백하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절대로! 절대로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살려 주세요!”
“다이아를 보고도 안 훔쳤단 말이에요! 힘들게 참았는데 죽음이라니!”
“이 멍청아 닥쳐! 아닙니다! 절대로 욕심이 생긴 적도 없었습니다. 믿어 주세요!”
세 사람이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던 아폴로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붉은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도 훔칠 시도를 안 했다면 괜찮아.”
세 미남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어떤 평범한 소녀도 반할 만한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아폴로니아는 평범한 소녀가 아니었다.
“입단속은 다른 문제지만. 이 집 안에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누설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는 죽이도록 해.”
* * *
간단한 면담이 끝나고 아폴로니아는 한숨을 돌렸다. 머리가 아직 복잡했고, 정리되지 않은 일투성이였다. 페트라나 황제의 눈에 띄지 않고 모든 준비를 마치려면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그러나 바깥에서 들려온 시끄러운 소리가 그녀의 집중을 깨뜨렸다.
“비켜라! 영주님의 명이시다!”
문을 열고 나가자 바깥에는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병사들 몇 명이 집에 그나마 있던 가구들을 넘어뜨리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황녀 전하를 납치한 자가 어디 있지? 어서 말해!”
우두머리로 보이는 덩치 큰 병사가 타냐의 할머니를 윽박질렀다.
“그런 사람 모른다니까! 썩 나가시오!”
“거짓말 하지 마! 이 근방에 없으면 하늘로 솟았단 말인가?”
그는 저항하는 노파를 한 손으로 밀쳐 쓰러뜨렸다. 탄이 달려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시드도 유리엘도 움찔했지만 아폴로니아의 명령 없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미처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한 병사가 구석의 방에서 나오며 외쳤다.
“대장님! 여기 제가 찾은 걸 보십시오!”
“아파! 아프니까 놔!”
그가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은 타냐의 팔이었다. 타냐는 안간힘을 써서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병사의 손은 조여들었다. 순간 아폴로니아는 긴장했다. 타냐는 아침에 물약을 먹지 않아 자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타냐와 그들이 함께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한 자들이 있었나? 하지만 그 의심은 우두머리 병사의 표정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오호라…… 너 거기 있었구나. 영주님께서 오래 찾으셨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구나. 이번에 잡히면 절대 다시 빛을 보지 못할 거다.”
그는 비열한 표정으로 큭큭거리며 웃었다. 황녀를 찾는다는 것은 핑계였다. 그들은 가정집에 쳐들어 가 행패를 부리는 것이 습관된 자들이었다. 아폴로니아의 판단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장은 수색을 더 하지도 않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황녀 전하는 여기 안 계신다! 이 애라도 찾았으니 돌아가자! 가족들과는 마지막 인사라도 하시지. 크큭.”
“안 돼! 타냐는 안 된다!”
노파의 외침과 함께 벤과 룬이 달려들었지만 병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을 발길질로 쳐냈다.
“노파가 죽는 꼴을 보기 싫으면 닥치고 있어!”
그 한마디에 조용해진 가족들을 보며, 대장은 만족했는지 씩 웃고 돌아섰다.
“그 아이가 황녀를 납치했다는 것이 영주의 판단인가?”
신이 나서 집을 나서는 그들의 뒤에서,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울렸다.
“너는 뭐지? 다치고 싶지 않으면…….”
“분명 황녀를 찾아왔다면서, 아이를 왜 데려가는 거지?”
아폴로니아가 다시 물었다. 얼굴을 가려 주는 로브를 쓴 채였다. 대장이라 불린 병사는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한 번에 온몸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칼트산에서 만난 마물을 연상시키는 자였다.
“뭐, 범인을 모르니 아이도 용의자 아니겠나? 이 애는 수배를 받고 있는 범죄자야. 영주님 명령을 수행하는데 감히 토 달지 말고 물러나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그는 대충 말을 지어내며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타냐를 보는 혐오스러운 시선은 그녀를 데려가는 것이 황녀 납치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이에게서 손 떼. 아프다고 하잖아.”
아폴로니아는 병사의 코앞까지 다가가 말했다. 작은 움막에서, 어차피 몇 걸음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큭큭. 길을 잘못 든 여행자인 모양인데 여기는 영주님의 말이 곧 법이야. 가만, 그런데…….”
그가 살짝 고개를 숙여 아폴로니아의 로브를 들여다보았다. 징그럽게 웃는 그의 얼굴이 다가오고, 불쾌한 입김까지 느껴졌다.
“멈춰.”
“너, 잘은 안 보이지만 입술이며 코며 꽤 예쁠 것 같잖아? 아예 같이 영주님께 데려가면…….”
아폴로니아의 말을 무시한 채, 그가 커다란 손을 그녀의 얼굴을 향해 뻗었다. 거친 손가락의 감촉이 턱에 닿는다 싶던 순간.
뻐억-!
날듯이 다가온 유리엘이 장검을 반쯤 뽑아 손잡이 끝으로 대장의 목을 가격했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대장은 목을 부여잡고 멀리 날아가 쓰러졌다. 손으로 감싸고 있는 곳에 시뻘겋게 멍이 든 것이 보였다.
“켁! 케켁! 이, 이놈이 감히…….”
그는 고통이 잦아들지 않았는지 팔다리를 파들파들 떨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고개를 든 그는 유리엘의 눈을 마주치자 얼어붙어 말을 끝내지 못했다. 새파랗게 날 서 있는 시선은 마치 맹수의 그것과 같았다.
유리엘은 장검을 뽑지도, 넣지도 않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 언제든 검을 사용할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너, 너는 대체…….”
그는 몇 마디 더 해 보려 했으나 유리엘의 기에 눌려서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부하들이 그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폴로니아의 손이 로브 자락을 쥐었다. 당장 정체를 밝히면 타냐가 풀려날 것이다. 그러나 로브를 걷으려던 순간, 시드가 그녀의 손을 살짝 잡으며 속삭였다.
“여기서 나서시면 순식간에 소문이 퍼질 겁니다.”
그녀의 손이 멈칫했다.
옳은 말이었다. 지금 타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로브를 벗으면 대장은 그녀를 곧바로 디아만 자작에게 데려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그의 죄상을 밝힐 기회도 없이 단순한 오해였다며 사건은 종결될 것이었다.
자칫 자작이 자신이 황녀를 찾아내는 공로를 세웠다며 주장할 수도 있었다. 당연히 황제 또한 이 일을 알게 될 터였다. 더 확실한 일처리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잘 들어.”
그녀는 쓰러진 대장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기가 꺾인 그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오늘 중으로 풀려나게 될 거야.”
그녀는 한 걸음 더 내디디며 타냐의 팔을 잡고 있는 병사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아이가 풀려났을 때 그 애의 몸에 멍 자국 하나라도 발견되면, 아니, 털끝 하나라도 상했다면.”
아폴로니아는 대장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러고는 빠르게 그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잡아 뽑았다.
스릉-
“히, 히익!”
대장은 놀라 눈을 질끈 감았으나 검은 그를 내려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검의 손잡이를 대장의 턱에 대고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리게 만들었다. 조금 전 그가 하려 했던 행동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거칠게.
“너는 고통스럽다 못해 빨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야. 물론 난 애원을 안 들어줄 거고.”
말을 마친 그녀는 검을 휙 하고 내동댕이치고는 돌아섰다. 다만, 돌아서기 직전 타냐와 눈을 맞추고는 입 모양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조금만 참으렴.’
덜덜 떨던 타냐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대장은 기듯이 일어나 저 멀리로 도망쳤다.
“빨리 철수하라!”
겁에 질린 명령을 남기고.
“타, 타냐…….”
아폴로니아가 돌아서자, 자리에 쓰러져 초점 없는 눈으로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노파가 눈에 들어왔다.
“미안하군. 디아만 자작이 다시는 건드리지 못하게 될 거라고 약속을 해 놓고.”
아폴로니아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면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하루만 더 나를 믿어 주게.”
그녀는 시드에게 노파의 부축을 맡기고는 벤과 탄, 그리고 룬이 서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럼 준비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예? 무, 무슨…….”
“사람들을 조금만 모아 줘. 비교적 입이 무거우면서 영주를 싫어하는 자들로.”
그녀는 집 안에서도 쭉 쓰고 있었던 로브를 걷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눈에 띄는 밝은 금발과 독특한 금적안이 드러나자 벨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 황족……?”
“나는 황녀 아폴로니아 알리스테어 페르디안이라고 하네.”
그들은 얼어붙은 채 태양 같은 외모를 가진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 그럼…….”
“벨라들 사이에만 퍼트려 줘.”
그녀는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옅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진짜 영주가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