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칼코마니-11화 (11/44)

11.

이른 아침부터 외출 준비를 하는 윤주의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작은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빗던 윤주가 빗을 ‘탁’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놨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매번 이 외출을 할 때마다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다.

거실 청소를 하던 이강은 외출복을 입고 나오는 윤주를 보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해보였다. 한국에 온 후 첫 주말이고 오늘은 윤주와 같이 외출을 해볼까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요?”

“네.”

“중요한 일이에요? 나 한국 오고 첫 주말인데 같이 보내면 안 되나?”

“미룰 수 없는 약속이에요. 갔다 올게요.”

같이 보내자는 이강의 말에 유혹을 느꼈지만 윤주는 이내 돌아서 나가버렸다. 핑계를 찾고 미뤄버리면 그게 습관이 되고, 그럼 점점 더 이 외출을 피하게 될 거였다.

이강은 냉정하게 나가버리는 윤주의 뒷모습에 입을 삐죽거렸다. 하루쯤 시간 좀 내주지 하는 섭섭함이 계속 밀려들었지만 이내 그 감정을 털어버렸다.

“미리 말 안 한 내 탓도 있으니까. 오늘은 또 혼자 뭘 하고 놀지?”

이강은 집 안을 둘러봤다. 거실은 이제 제법 사람 사는 맛이 났다. 이강의 취향대로 알록달록 활기찬 색이 가득했고 덕분에 이강의 기분까지 좋아졌다.

그렇게 거실을 둘러보던 이강의 눈에 시커멓게 맨땅을 드러내고 있는 작은 마당이 보였다. 이상할 정도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없었다.

“오늘은 흙장난을 좀 해볼까?”

이강은 쟝에게 전화하며 마당으로 나갔다.

반나절 정도만 고생하면 작은 마당에 나무 두어 그루와 예쁜 꽃이 핀 화초를 옮겨 심을 수 있지 않을까? 핸드폰 넘어 잠이 덜 깬 쟝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소 보내줄 테니까, 1시간 후에 거기서 만나. 이따 봐.

뭐라고, 뭐라고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끊어버렸다.

무슨 꽃이 좋을까, 주황색은 싫다고 했는데 그럼 무슨 꽃이 남나? 정원을 가꿀 도구들은 다 있나? 머릿속에 계획이 세워진 이강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기도 외곽의 요양병원에 도착한 윤주는 차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엄마를 만나는 건 반가우면서도 힘겨운 일이었다. 안 보면 궁금하고 걱정되고, 보면 짜증나고 속상하고 그 두 감정 사이에서 윤주는 항상 혼란스러웠다.

윤주의 머릿속 엄마는 밝고 씩씩하고, 웃음이 많고, 말도 많고, 활기차고 기억력이 거의 로봇급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는 그 모든 걸 다 잃어버렸다. 그런 엄마를 직면하는 게 윤주는 정말 힘들었다.

“후우, 엄마야, 엄마. 우리 엄마라고.”

다짐하며 윤주는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알아보는 간호사에게 면회 신청을 하고 병실에 가까워질수록 윤주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3인 병실 안에는 그녀의 모친인 수경 외에도 두 분의 어르신들이 더 있었고 수경은 그중에 가장 어렸다. 겨우 50대 후반인 수경은 아마 이 병원에서 가장 어린 환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 사실이 더욱더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윤주는 억지로 웃으며 수경에게 다가갔다.

“엄마, 나 왔어. 우리 2주 만이다. 잘 지냈어?”

윤주의 부름에 수경의 눈동자가 잠깐 그녀를 향하는 것 같더니 다시 창밖을 향했다. 매번, 매 순간 바뀌는 수경의 반응은 예측하기 힘들었지만 확실한 건 그녀를 몰라보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진다는 거였다.

“엄마, 사랑하는 윤주가 왔는데 아는 척 좀 해줘. 딸이 좀 섭섭할라 그러네.”

윤주는 모친의 손을 슬쩍 잡았다. 아이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조물거렸지만 수경의 시선은 역시나 미동 없이 공중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엄마, 뭐 봐? 무슨 생각해, 엄마는? 난 요즘 되게 바빴어. 되게 유명한 배우랑 화보를 찍었는데, 그거 때문에 할 일이 정말 많았어. 옷도 협찬받아야 하고, 스튜디오도 예약해야 하고, 사진작가도 섭외해야 하고, 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더라.”

윤주는 여전히 반응이 없는 수경을 보며 예전 두 사람의 한때를 떠올렸다.

아프기 전에는 수경이 거의 말을 하고 윤주는 대답만 하는 쪽이었다. 수경은 항상 말이 없는 윤주에게 제발 대답이라도 하라고 했었는데 이젠 그 반대가 되어버렸다.

‘우리 딸 고생했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삼계탕이라도 해줄까?’

‘응.’

‘전복도 넣고, 어때?’

‘난 낙지.’

‘계집애, 까다롭기는. 그래, 엄마가 인심 썼다. 전복이랑 낙지 넣고 삼계탕 해줄게. 대신 자연산은 안 돼.’

‘도대체 그 돈 다 모아서 뭐 할 건데?’

‘너 시집갈 때 쓸 건데?’

잠시 예전 생각에 빠져있던 윤주는 수경의 휠체어 옆으로 가 앉았다. 엄마 옆에 앉아서 같은 풍경을 보면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에서였다.

병실 안, 작은 창밖으로는 푸른 잎이 무성해지는 나무들과 저 멀리 조용히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가끔 들리는 새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 약간은 서늘하게 느껴지는 바람까지 완벽한 풍경 안에서 윤주는 그나마 마음이 좀 편안해짐을 느꼈다.

“여기 진짜 조용하다, 엄마. 나는 가끔 오니까 괜찮은데 엄마는 매일 이렇게 지내는 거 심심하지 않아? 옛날의 엄마 같았으면 하루도 못 견뎠을 텐데. 맞다, 엄마 식물 키우는 거 진짜 좋아했지?”

“…….”

“우리 집 나무랑 화초는 다 죽었어. 엄마 대신 열심히 키워봤는데 난 안 되더라. 엄마는 내가 안 보고 싶어?”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윤주가 이야기하는 중 수경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수경을 보는 윤주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올랐다. 뇌가 망가졌다는 엄마가 뭐라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윤주는 반가웠다.

“엄마, 아직도 그 노래 기억하네? 나 어릴 때 엄마가 많이 불러줬잖아.”

수경은 윤주의 말에도 얼마 동안 계속 노래만 불렀고 윤주 역시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수경이 노래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았고 마음이 다소 풀어진 윤주가 자신이 가지고 온 가방을 열었다.

“엄마, 내가 엄마 좋아하는 만두랑 복숭아 사왔는데 지금 드실래요? 만두 식으면 맛이 없는데. 초콜릿이랑 과자는 여기 서랍에 넣어둘게.”

윤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경이 윤주의 손에서 가방을 낚아챘다. 덕분에 들고 있던 봉투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며 음식물들이 쏟아져버렸다. 놀란 윤주가 음식들을 치우기도 전에 수경이 냉큼 바닥에 떨어진 만두를 잡아챘고 그대로 입에 밀어넣었다.

“엄마, 안 돼. 먹으면 안 돼. 바닥에 떨어진 거잖아. 그거 더러운 거야.”

“이거 놔, 이거 놔.”

“안 된다고. 더러워서 먹으면 안 돼. 아프단 말이야! 아야! 엄마, 진짜 왜 이래!”

“너 나빠. 가!”

수경에게 물린 손을 잡고 있던 윤주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수경은 그러든지 말든지 계속 만두와 터져버린 복숭아를 입에 밀어넣고 있었고 결국 소란을 듣고 쫓아온 보호사가 뒤처리를 했다.

윤주보다는 보호사의 말을 더 잘 듣는 수경을 보며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날 뿐이었다.

“속상하시죠? 평상시엔 안 그러세요. 드물게 있는 일이에요. 예의 바르시고 얌전하셔서 저희와 잘 지내세요.”

“……그런데 왜 저한테만 이러실까요? 우리 엄마는 제가 미우신가 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마음과 몸이 아프신 분이세요. 오늘은 이만 가시는 게 어떨까요? 어머니도 이대로 주무실 것 같은데.”

“……네, 저희 어머니 잘 부탁드려요.”

“걱정 마세요. 저희가 최선을 다할게요.”

윤주는 부드럽게 자신을 위로해주는 보호사에게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병실을 나오기 전 잠시 멈춰 섰지만 끝내 수경의 얼굴을 다시 보지는 못했다.

볼 때마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것만 같은 엄마, 기억 속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이자 존경하던 엄마의 모습과 괴리감이 점점 커져가는 게 윤주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요양원을 출발한 윤주의 차는 미친 듯이 질주했고 결국 갓길에 세워놓고 한참 숨을 돌린 후에야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 * *

집에 도착해 자동차 트렁크에 가득 실었던 화초를 내려놓은 이강은 그걸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이걸 마당에 심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 났다.

―이 집에서 묵고 있다고? 당장 호텔 잡을 테니까…….

―싫어.

―여긴 너무 후지잖아.

―말 함부로 하지 마. 어떤 사람의 귀한 집이야.

―혹시 이 집 주인이 여자야? 그 여자가 다시 널 디자인하게 만들었고?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때보다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이강을 보며 쟝은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졌다.

쟝의 눈이 반짝거렸다. 테오에게 새로운 뮤즈라, 그건 아주 좋은 신호였다. 그림과 디자인에 있어 테오는 천재적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창의적이었고 예술 분야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경영학을 전공해 자신의 뒤를 이어주길 바라던 아버지 베르기도 테오의 천재성에 결국 그림 그리는 걸 허락했다.

아버지의 허락에도 테오는 결국 경영학을 전공했고 학교를 다닐 때도 장학금을 받을 만큼 성적이 우수했다. 졸업 후 당연히 경영수업을 받을 줄 알았는데 테오는 정식으로 테스트를 거쳐 디자이너로 회사에 들어왔다.

디자인 파트의 신입사원으로 테오를 만났을 때 베르기의 표정을 쟝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학교 다닐 때 최선을 다해 공부 열심히 했어요. 이젠 디자인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예측을 할 수 없는 테오의 행보에 베르기도 두 손을 들었다.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는 아들이라 딱히 참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굉장히 제멋대로라고 느껴지는 테오의 천재성이 더욱더 빛을 발할 때가 있다. 바로, 촉매제가 있을 때였다.

그림, 조각, 풍경, 장소, 음악, 영화 그리고 사람, 가리지 않고 꽂히는 것이 있으면 거기서 영감을 얻고 누구도 상상 못한 디자인을 해내곤 했었다. 그 많은 것들 중 사람에게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

‘상상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내 창작 욕구가 마구 폭발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테오의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디자인이 어떻게 하면 최고로 주목을 받고 빛을 발할지 본능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한참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던 테오가 수석 디자이너 계약을 앞두고서 갑자기 사라졌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회사에서만 사라진 게 아니라 가족들 곁도 떠났다. 단순히 디자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고 짐작은 했지만 테오도 안드레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테오는 부랑자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녔고 몇 주, 몇 달씩 흔적을 남기지 않을 때도 있어서 그를 찾는 건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웠다.

그렇게 이방인처럼 살던 테오가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다시 디자인하겠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말이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낼 거야?

―어, 작업실은?

―알아보고 있어. 일주일 안에 준비될 거야.

―사무실은 싫어. 넓은 스튜디오 형태 작업실이면 좋겠어. 붉은 벽돌 건물에 바닥은 나무로, 당분간은 그곳에서 먹고 지낼 거야. 주변에는 나무가 많으면 좋겠고 3층 이상이면 좋겠어.

―더는 없어.

―하나 더, 여기서 너무 멀면 곤란해.

디자인에 완전 몰두하겠다는 말이었다. 화초들을 집으로 나르는 테오를 두고 떠나는 쟝의 머릿속이 아주 바빴다. 테오가 저렇게 디자인에 몰두하면 서울에서 새로운 패션위크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자, 그럼 어떤 일들을 해놔야 하나? 아시아 패션위크로 시장을 넓혀봐?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쟝이 힘을 줘 액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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